[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최근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이종락 목사)의 '베이비 박스'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목사의 사역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드롭 박스(The Drop Box)'가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드롭 박스는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개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5월 12일(목) 저녁, 드롭 박스를 보려고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영화 상영 후에는 이종락 목사, 부인 정병옥 씨, 아들 루리 군이 나와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목사는 처음 '베이비 박스'를 설치하게 된 계기와 주사랑공동체교회 사역 이야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2009년, 한국에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도입했다. 산모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을 때, 놓고 갈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대부분은 장애아,미숙아를 두고 갔다. (주사랑공동체교회 페이스북 갈무리)

949명의 아이가 베이비 박스에 놓였다

이 목사는 2009년, 한국에 처음으로 베이비 박스를 도입했다. 베이비 박스는 산모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을 때, 놓고 갈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길가에 유기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위에는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 주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안쪽에는 출생일을 꼭 적어 달라는 당부가 있다. 지금까지 949명의 어린아이가 베이비 박스에 놓여졌다. 주로 장애아, 미숙아였다.

베이비 박스 사역을 하기 전부터, 교회에는 장애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아들 역시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하나둘씩 받는다는 이야기가 퍼졌는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교회 대문 앞, 주차장에 아이를 두고 갔다. 이종락 목사는 유기되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베이비 박스'라는 개념도 알지 못했을 때다.

6년간 이 목사는 다양한 아이와 산모를 만났다. 공중 화장실, 빈집, 계단에서 아이를 낳고, 탯줄을 정리하지 못한 채 베이비 박스를 찾은 산모도 많았다. 출산하기 전 교회에 온 산모가 하혈이 많아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아이를 놓고 간 뒤, 술 먹고 새벽 2~3시에 전화해 "목사님 우리 아기 어디에 뒀냐"고 전화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부모들을 만나자고 설득했고,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베이비 박스 안에 놓인 아이들과 함께 미혼모, 10대 부모들을 직접 만나 도왔다. 그들에게 잘못된 게 아니라 위로하고, 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이 쾌락의 도구가 아니고,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알려 줬다. 지금처럼 피눈물 나는 경험을 다시는 하지 말자고 토닥였다. 오갈 곳 없는 미혼모에게는 생활공간을 제공하고, 자립 기술을 배우도록 도왔다. 이 중 미혼모 2명은 직원으로 고용했다.

경우에 따라 아이를 찾으러 올 테니 잠시 맡아 달라는 부모들의 청도 들어줬다. 공동체가 직접 아이를 돌봤다. 베이비 박스에 맡겼다가 다시 데려간 아이들만 40명이 넘는다. 경제적 부담으로 양육을 주저하는 부모들에게는 기저귀, 분유, 쌀, 생필품을 제공했다. 방세, 병원비를 주고 교회가 아니라 원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지원했다. 78가정을 도왔다. 이 목사는 부모 중 30%는 아이를 다시 데려간다고 말했다.

▲ 이종락 목사는 6년간 도움이 필요한 산모, 가정에 재정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 아이를 맡겼다가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사진 제공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유기 조장 아니라, 유기 방지다"

"한 아버지가 교회 앞에 쌍둥이를 놓고 갔다. 종이 쇼핑백에 애를 겹쳐 놨는데, 밑에 있는 아이가 장애아였다. 상태가 심각해 병원으로 바로 보냈다. 나중에 TV를 보는데 그 아이가 나왔다. 2시간 후에 전화가 왔다. 2년 전 베이비 박스에 쌍둥이를 놓고 간 아기 아빠인데, 아이를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다. 아이를 찾아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초기에는 베이비 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종락 목사는 "유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고 유기를 사전에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에 빠진 사람, 길거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지나가면 안 되듯, 주사랑교회공동체가 그들에게는 119와 다름없다고 했다. 길에 아이를 유기하지 말고 차라리 베이비 박스에 두라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왜 쓰레기처럼 버려져 죽어야 하나. 베이비 박스는 최선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8월부터 실행된 입양특례법의 허점도 짚었다.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입양특례법은 한국에서는 전혀 실행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아이의 부모가 미성년자이면 출생신고 할 때, 아이의 조부모들도 함께 가야 한다. 아버지도 도망가고 없는데, 아버지의 아버지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 법 만들어 놓고 출생신고 안 하면 안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법이 유기를 조장한다는 말이다.

법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미혼모가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의 경우, 학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학교 안에 탁아소가 있고, 임신 중에도 공부할 수 있도록 임신부 좌석이 따로 있다. 뱃속에 생명이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다. 그러나 한국은 체면이 중요한 문화라, 미성년자가 임신하면 어렵다고 했다.

실제 베이비 박스는 유럽에서 시작해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에도 생겨났다. 독일은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데가 99곳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경제, 복지 시스템이 뒷받침되지만 혹시 한 생명이라도 위험해질까 싶어 설치해 놨다. 독일 베이스 박스로 들어오는 아이는 1년에 30명가량이다. 두 달간 주사랑공동체교회로 들어온 아이들 수보다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목사는 법이 개정되면 베이비 박스에 놓이는 아이들이 줄어들 것이라 내다봤다.

제13회를 맞은 서울국제영화제 이번 주제는 '위로'로, 5월 10일(화)에 시작해 15일(일)에 끝난다. 상영 개봉작인 드롭 박스는 5월 19일에 개봉한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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