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 위기에 놓인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여관 앞에서 여관 주인 이용범 씨가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있다. 인터뷰를 한 5월 12일부터는 언제든지 철거 용역이 밀고 들어올 수 있기에, 이곳 일대는 사뭇 긴장감이 흘렀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두 사람을 만나러 간 5월 12일.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5월 11일로 자진 퇴거 기한이 끝나, 언제 철거 용역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 적막한 철거 현장을 몇 장 찍으려니 어느새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따라 붙었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함부로 만지면 안 돼요" 말한다. 들어가서 촬영할 수 없겠냐 물으니 단호하게 거절한다.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여관 앞에는 젊은 청년 세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옥상에도 한 사람이 올라가 누가 오지는 않는지 살폈다. 언제 밀려들지 모르는 용역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다. 마지막 남은 성을 지키는 수성군처럼, 그들에게 결기가 느껴졌다.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기 위한 기도회에서 구본장여관 주인 이길자 씨를 만났다. 한눈에 봐도 신앙심 깊은 분이었다. 기도와 설교에 연신 '아멘'을 외쳤다. 다부진 목소리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씨는 요즘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인터뷰 도중 수시로 CCTV를 쳐다봤다. 잠들기 전에는 여관 입구에 있는 두꺼운 자물쇠를 채워야 마음이 놓인다. 강제 집행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기에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여관에 머무른다.

이 지역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최은아 씨도 함께 자리했다. 한 명이라도 더 같이 있어야 힘이 되기에, 최근에는 거의 구본장여관에 와 있다고 했다. 최 씨도 30여 년 신앙생활한 기독교인이다. 재개발구역에 유이하게 남은 두 사람 모두 기독인인 셈이다. 그들이 엄습해 오는 불안감과 싸우면서 이곳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역에 살던 118세대 중 2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건물을 재개발 조합에 내주고 떠났다. 헌 집 주면 새 집 받을 거란 희망에 부풀었다.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추가 비용 몇 억을 보태야 새집에 들어갈 수 있는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떠났고 집들은 헐렸다. 100년 역사를 지닌 골목은 폐허로 변하고 이제 단 한 블록만 남았다.

이길자 씨는 재개발을 피해 한 번 이주한 경험이 있다. 길 건너 교남동에서 30여 년 여관을 운영하다가 7년 전 이리로 이사 왔다. 돈의문뉴타운 개발을 피해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에도 재개발의 손길이 뻗칠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37살 때부터 숙박업을 시작한 이 씨. 처음엔 으스스한 직업이라 꺼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어느덧 생업이 됐다. 여기서 번 돈으로 자식도 키우고 집도 한 채 마련했다.

최은아 씨에겐 이곳이 제2의 고향이다. 40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와 결혼하기까지 이곳에 살았다. 어렸을 적 기억도 난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를 보며 으스스했던 기억. 박완서가 쓴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며 소설에 나오는 현저동 48번지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무악동 48번지라는 걸 알고 '문학작품에 나오는 동네에 산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 최은아 씨와 이길자 씨는 모두 신앙인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기도하며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돈을 떠나서…여기는 '옥바라지'다"

옥바라지 골목은 진보·보수 불문하고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다. <한겨레21>, <주간조선>,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을 다뤘다. 역사학자들도 나서서 철거를 반대했다.

주민들은 193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석방 후 묵었던 영천 여인숙, 인혁당 사건 당시 피해자들 부인이 묵었던 동양여관 등의 자료를 들고 서울시 공무원을 찾아가 이곳만은 철거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제일 먼저 철거됐다.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를 해도 별 소용없었다.

"여기는 돈을 떠나서 '옥바라지'죠.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한 옥바라지도 존재해야 해요." 이길자 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게 재개발 대가로 받을 금액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 씨는 다시 간청했다. 대답은 한결같다. 구본장여관은 아파트 입구가 들어설 자리라 철거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신 표지석 하나 세워 준다는 것이 개발업자들 입장이다. 200세대가 채 못 되는 아파트와 100년 역사를 바꾸자는 얘기다. 이 씨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용산 참사를 뉴스로 보고, 구룡마을 강제 집행 철거를 소문으로 들었지만 '남의 일'로만 여겼다. 내 일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이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재개발의 실상을 그때 알았다면, 찾아가서 위로라도 해 주고 함께했을 텐데 싶죠." 이 씨는 문제를 잘 해결하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를 전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 '무악2구역'으로 지정된 이곳 일대 건물은 대부분 헐렸다. 몇 채 안 남은 건물들 뒤로 한창 개발 중인 돈의문뉴타운 구역이 보인다. 이길자 씨는 돈의문 재개발을 피해 옥바라지로 옮겨 왔는데, 또다시 내몰려야 할 위기에 놓였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옳고 그름 문제'로 싸우는 주민, 함께하는 기독교인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하나님께 기댔다. 최은아 씨는 "예수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와 용기, 담대한 마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앞이 막막하던 순간,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옳고 그름을 제일 많이 생각하며 기도했어요. 하나님 뜻 아니면 (투쟁하는 것) 원치 않는다고 했어요. 욕심 갖고 한 게 아니라,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원주민들을 쫓아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이것은 그른 일이다. 그른 일에 대항하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 했을 거예요."

함께하는 신앙인들이 있다. 구본장여관 입구와 옥상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용역을 대비해 젊은 청년들이 지키고 있다. 며칠째 여관에 투숙 중인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을 비롯, 녹색당·노동당 활동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11일 저녁과 12일 저녁에는 감신대·장신대·한신대 학생들이 여관을 찾아 함께 기도했다. 두 사람은 특히 신앙인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제 옥바라지를 위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죠.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밖에 못 하죠."

최고의 기도제목은 "여관을 지켜 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이길자 씨.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맑은 표정으로 부탁 하나 하자고 말했다.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요… 언론을 막 타서 큰 교회들이 들고 일어서면 우리한테 보호막이 될 수 있을까요? 이 동네에 만약 재개발 교회 하나 있어 봐요. 목사님이 '너 죽고 나 죽자. 우리는 못 나간다' 하면 큰 교회들이 나설 거 아니에요. 길거리 나앉아서 예배하는 모습 보면 사람들이 '세상에 저 교회는 재개발 때문에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네' 하고 여기저기서 올 거 같은데… 우리는 안 될까요?"

▲ 철거가 진행 중인 건물들에는 '공가'라는 표시나, 철거 대상 건물이라는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에서 1970년대 느낌이 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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