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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태계를 회복하라

소강석 목사, 전국 목사 장로 기도회 집회 설교 전문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6.05.10  13: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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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박무용 총회장) 제53회 전국 목사 장로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첫째 날 저녁 집회에서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교회 생태계를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소강석 목사의 설교 전문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설교자의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교정 및 수정 없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목사장로기도회는 우리 총회의 자랑입니다. 같은 장로교인데도 목사장로기도회는 우리 교단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목사장로기도회를 통하여 우리 총회가 더욱 기도로 하나되고 부흥하며 계속해서 성총회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교회는 사상전과 영전을 하지 못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영국이 어떤 나라였습니까? 전 국민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을 주도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국에도 성경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려고 하는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정서는 반기독교적인 문화와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와 제도가 입법화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교회는 이런 시대적 트렌드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알고 교회들이 함께 연합하여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적인 사상과 정서를 막아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영국교회의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노터치 하겠습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개교회의 목양을 하는 데만 집중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을 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35년, 40년 후에는 영국교회가 완전히 박살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기독교인이나 다름없던 나라가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겨우 2%밖에 안 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반대로 이슬람은 8%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테러 문제로 몸살을 앓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도 교회 생태계가 깨져 버리면 우리는 35년, 40년까지 가지도 못합니다. 25년, 30년이면 우리 한국교회는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교회는 사상전을 잘하고 영전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당면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교회 생태계와 교회 환경을 복원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회를 개혁하고 다시 부흥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셋째,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교회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생태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아십니까? 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기후변화협약까지 하며 자연 생태계 복원을 위해 목매고 있습니까? 환경,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생명 사회가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국교회도 교회 생태계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아무리 개교회가 부흥하고 한 교회가 예배당을 크게 지어도 소용없습니다. 교회 생태계가 깨져 버리면 대형교회도 소멸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다음 세대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잘 세워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교회 생태계가 깨져가고 있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우리 자체의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교수요, 세계 경제학의 석학이며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아마르티아 센 교수는 한 국가가 번영하고 국력이 신장되는 배후에는 반드시 기독교의 영적인 부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교회도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동력이 되고 본류가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말 오늘의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는데 한국교회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동력의 진원이 되었단 말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교회가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편승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자본주의·물량주의·세속주의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신앙의 본질과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해서 내부 파워게임이나 기득권 싸움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세상에 비춰지면서 교회가 비난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있는 교인들이 떠나고 특별히 젊은이나 지식인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게 되 었습니다.

두 번째는 안티 크리스천들의 의도적인 공격 때문입니다. 먼저는 우리 내부 문제나 잘못이 사회에 빌미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안티 크리스천의 의도적인 공격으로 한국교회는 난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점이 언제부터인지 아세요? 2007년도 부터였습니다. 2007년도까지 한국교회는 부분적인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한국교회를 떼거리로 싸잡아서 공격할 용기를 못 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07년도에 그 유명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 터졌습니다. 사실 그건 교회가 전혀 잘못한 게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며 온갖 구호활동을 펼친 것처럼 우리도 당연히 그런 일을 하러 간 것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할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호활동을 하러 갔던 사람들이 피랍이 되었을 때, 우리가 대처를 잘못한 것입니다. 안티 크리스천들은 기회가 이때다 하고 벌떼처럼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괜히 교회가 선교하러 가가지고 사고를 쳤다. 교회가 잘못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외교 관계까지 안 좋게 만들었다"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안티세력은 피랍된 사람들이 알라를 저주하고 모독했다고 사진까지 조작 합성을 해서 탈레반측에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탈레반들은 그들을 풀어주고 싶어도 성전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못 풀어 주었습니다. 만약에 그들을 풀어 주면 다른 무장단체들로부터 자기들도 테러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형규 목사를 포함하여 2명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때 한국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러기 전에 먼저 파송을 했던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면대응을 했어야 했습니다. 도피하고 숨는다고 능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우리 한국교회 전체도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전체도 대처를 못한 것입니다. 관상이라는 영화를 보면 조선 최고의 천재 관상가 김내경이 어 느 바닷가에서 한명회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거늘, 나는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관상만 보았지, 보이지 않는 시대정신과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이 왜 불어오는가, 그런 파도를 일으키는 원인인 바람을 보지 못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한국교회가 깨 서다고 연합하여 사상전, 영전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건처럼 금방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잊어먹긴 뭘 잊어 먹습니까?

그때부터 안티 크리스천은 대놓고 한국교회를 공격하였습니다. 벌떼처럼 비난하고 집중적으로 공격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개교회 목회와 개교단 위주의 사역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니, 한국교회는 다툼과 분열의 블랙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개교회도 계속 서로 내부 파워게임을 하는 교회가 많았고 교계도 계속 교권 싸움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연합 기관마저 분열해가지고 계속 치킨게임을 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송과 온갖 미디어는 한국교회를 계속 공격 했습니다. 특별히 인터넷에서는 교회를 향한 너무나 무차별하고 처참한 난타를 계속했습니다 안티 크리스천들의 악의적이고 비열한 목적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 무차별적 난타 공격이 한국교회 성장의 순기능과 교회 생태계를 무너뜨려 왔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회 흐름이 직접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교회 생태계를 파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교회 생태계가 깨져 버리면 교회들은 그냥 사멸이 되어 버립니다. 영국교회와 유럽의 교회들이 이 사실을 보여 주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럴 때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시대의 흐름과 바람도 보이고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근신하고 깨어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오늘날은 마귀가 교회 생태계부터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 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히는 줄을 앎이라." (벧전 5:8~9)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할 수 있습니까?

1.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불길 같은 역사로 부흥했습니다. 70~90년대에 한국교회는 세계에 전례가 없는 기적 같은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전성기, 즉 크리스텐덤 시대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회학적인 특성도 있습니다. 첫째는 80년대 초중반까지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이농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상가 지하실에 교회를 개척해도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오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완전히 지났습니다. 여전히 교회를 개척해 놓으면 무조건 사람들이 올 것이 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그러니 교회들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들 목회 전성시대가 끝났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두 번째 원인은 작은 교회의 희생이었습니다. 큰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작은 교회의 희생을 전제 했습니다. 작은 교회가 열심히 전도해서 성도를 모읍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7~8년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개중에는 머리가 커져서 대형교회를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빠져나가도 작은 교회가 또 전도하면 사람이 모였습니다. 교회 생태계가 비교적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선순환의 현상마저도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작은 교회는 더 이상 큰 교회로 보낼 사람도 없습니다. 교회 생태계가 살아 있을 때는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사람이 옮겨도 새로운 교인들이 또 들어왔지만, 지금은 더 이상 작은 교회에 교인들이 오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도 더 이상 보낼 사람들도 없고 뺏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큰 교회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이 있어서 큰 교회를 막 공격을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뺏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에 위화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큰 교회라도 전도하면 전도가 잘 됩니까? 지금 현대인들은 교회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크고 좋은 건물을 지어놔도 전도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 오질 않습니다. 수평 이동의 선순환이 깨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거에는 수평 이동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많았는데, 지금은 교회성장학자들이 그래도 교회 이동의 선순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런 수평이동의 선순환마저 깨져 버 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자립교회는 더 도태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자립 교회를 이대로 두었다 가는 정말 공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 생태 계상 작은 교회가 무너지면 나중에 큰 교회도 무너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농어촌교회 같은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자립교회는 미자립 교회를 지원을 해야 합니다. 도회지 교회가 농어촌 교회를 지원하고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지원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분히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자립대책까지 지원해 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 신학자 랄프 네이버가 주장한대로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총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교회자립지원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몇몇 큰 교회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하는 교회는 다 이런 일에 동참을 해야 합니다. 노회별로, 지역별로, 총회적으로 동참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을 만나고 기근을 당할 때 사도 바울 부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29~30)

바로 공교회성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2. 신앙과 신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 하는데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퓨리티의 신앙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전략 중의 하나가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을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언약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정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레위기의 가르침대로 정결을 갖추어야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거룩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순결이나 정결은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에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고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결한 영성, 순결한 신앙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더렵혀진 신부가 어떻게 신랑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의 정결,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 때도 신사참배 문제로 얼마나 한국교회를 더럽혔습니까? 영적 간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종교인들까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적 행위라고 변명하며 신사참배에 동참했습니다. 그때 주기철 목사님은 “아녀자에게 정절의 의무가 있듯 신앙인에게는 믿음의 정절이 있어야 한다!”며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일제의 폭압으로 감리교·성결교·구세군 등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마저 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맙니다. 그때 주 목사님은 "한국 교회가 세상의 명예와 권력 앞에 믿음의 정절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었다"며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칼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내가 그 칼날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외치며 일사각오의 길을 가다가 결국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옥중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 는지 모릅니다.

"과연 우리는 주 목사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산정현교회를 생각할 때, 오늘 날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교단의 선배 목사님들의 순수한 신앙심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신앙과 신학의 순수성 하나 지키려고 우리의 선배 목사님들은 빈손으로 황무지로 나와 그 광야에서 총신을 세우고 총회 회관을 세우며 오늘의 교단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를 사수하려고 했던 우리 교단 선배님들의 일편단심과 백절불굴의 신앙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신앙의 명맥을 이어받아 우리는 끝까지 WCC와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혁신학의 전통과 순수성을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단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를 얼마나 지키고 있습니까? 오히려 바벨론의 음녀가 금잔에 포도주를 들고 다니며 얼마나 유혹을 하고 있습니까? 이 바벨론의 음녀는 주로 세 가지 영으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맘몬의 영으로 유혹합니다. 음녀 는 먼저 돈에 신적인 영향력을 불어 넣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장로들로 하여금 돈독이 오르게 하고 돈에 미쳐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한마디로 돈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거 때만 되면 돈을 주고 표를 사게 합니다. 돈으로 모든 부정한 일도 해결하게 합니다. 솔직히 맘몬의 영 때문에 얼마나 우리 마음 이 혼탁해져 갑니까?

두 번째, 정사의 영으로 유혹합니다. 이 정사의 영은 주로 정치인들에게 붙어 다니는 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늘 정치판은 싸움만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는 늘 싸움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정사의 영은 청와대나 국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이 정사의 영이 누구에게 따라 붙는지 아십니까? 바로 교권주의자들에게 따라 붙어 다닙니다. 목사와 장로도 은혜를 안 받으면 교권 욕심에 눈이 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과 정반대되는 말만 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며 그런 일을 하고 살아갑니다. 이 일 때문에 맨날 싸우고 교회와 교계를 분열 시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총회가 존재하고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하는데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쾌락과 욕망의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러니 한국교회가 얼마나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까?

셋째, 음란의 영으로 유혹합니다. 이 음녀는 음란의 영으로 따라 붙어 가지고 눈을 음란하게 만들고 마음을 음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음란한 불독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마음과 눈은 음란으로 씌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란의 영이 얼마나 교회 안에서도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물론 목회자들까지 얼마나 여자 문제로 곤혹을 앓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얼마나 이런 일에 자유롭습니까? 얼마나 맘몬으로부터 자유롭고 교권 싸움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음란의 영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혹시라도 우리 가운데는 바벨론의 음녀가 주는 포도주 잔에 입을 댄 적이 있습니까? 아니 그 포도주로 취해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이 바벨론의 음녀는 세상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까지 들어오고 우리 노회나 총회까지 들어와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무너지고 쪼그라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18:4)

그러므로 이런 때에 우리는 정말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를 지켜야 합니다. 정말 정결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영혼의 눈물을 적셔 정결의 연서를 쓰고 정결한 신학과 영성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만약에 한국교회가 정결을 잃어버리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이 되고 두 눈이 빠진 삼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면 갈수록 안티 크리스천과 이단과 이슬람 등으로부터 한국교회가 온갖 조롱과 노리개거리가 될 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의 교회와 교단은 어떤 상황입니까? 행여 우리도 음녀의 유혹에 더러워지진 않았습니까? 말로는 개혁신학을 말하고 정결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맘몬과 정사와 음란의 영 에 유혹 당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것들로 인하여 교회 생태계가 깨져가고 있습니다.

3. 서로 연합하여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반기독교 정서가 교회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은 반기독교적인 정서 뿐만 아니라 안티 크리스천의 공격이 얼마나 주도적이고 전략적으로 공격해 오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일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는 핍박과 박해로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고난과 핍박에 대항하여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 5:8~9)

그런데 지금은 이주 보이지 않게 사상전과 영전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사상의 기본은 네오 막시즘입니다 한때 막시즘이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서 세계 절반 가까이 붉은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다 망했지 않습니까? 레닌도 망하고, 스탈린도 망하고, 모택동도 망하고 동구권 공산국가들도 다 몰락했습니다. 그러자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막시즘이 더 이상 매력적인 사상이 되지 못하고 폐기처분될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럴 때 사회주의자들이 네오 막시즘을 만들어 낸 것임 니다. 네오 막시즘(Neo Marxism)은 막시즘과 프로이드 심리학을 아주 교묘하게 접목하여 만든 것인데, 한 마디로 무신론적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이 절묘하게 결합된 사상입니다. 내용은 무신론이지만 겉으로는 평등, 인권, 박애,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의 권익 보호, 공동체 등을 추구합니다.

바로 이 네오 막시즘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진보사상과 신좌파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정치적으로는 친북이나 종북 라인에 있는 사람이고, 사회적으로는 민중, 해방, 개혁, 정의, 평등, 공동체 사회를 주장하고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인권이나 평화, 섬김, 그리고 소수 자의 권익 보호를 외치면서 동시에 반정부 운동과 기존 체제를 전복하려는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보수 라인에 있는 교회, 특별히 대형교회를 타도하고 공격하는 운동을 합니다. 이런 성향이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 세계에 은연중에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안티 크리스천화 된 것입니다.

평등, 인권, 박애,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 권익보호, 공동체 등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무신 론적 사상이 끼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에 있어서도 창조질서를 부인하고 성적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동성애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동성애를 통한 성정치를 펼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빌헬름 라이히가 창안한 성정치 이론에 의하면 억압된 성적 욕구는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파괴적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자유롭게 분출할 때 개인도 행복하고 이 세상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막시즘의 세상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가정의 고정관념부 터 깨는 운동을 합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서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네오 막시즘의 가장 큰 공격 목표는 기존 제도권의 가정과 학교입니다. 또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전통적인 가족의 구조부터 무너뜨 리려고 합니다. 또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성교육을 바꾸고 그 구조에서 해방을 하도록 충동하고 선동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자체에서는 어떻게든지 학생들의 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안달복달입니다.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고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정치와 네오 막시즘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 그래도 그 사람들 불쌍하니까 그냥 자기들 맘대 로 살도록 뇌두면 안 됩니까?" 물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그들이 소수차별금지 법을 만들려고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자기들 좋은 대로 살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동성애자들을 보호 한다고 소수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다수의 인권이 역차별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소수차별금지 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교회에서 이런 설교도 못합니다 이런 설교 했다간 당장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국처럼 교회 생태계가 저절로 파괴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 동성애자들이 몇 명이나 되고 영향력이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느냐 고 생각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성애를 연구를 하다 보니까 동성애가 이슬람이나 이단, 안티 세력과도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 세력이 엄청나게 커져가고 있습 니다. 이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한이 없겠습니마는, 이슬람은 절대로 기독교를 용납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력이 안티 크리스천들과 연합을 해서 한국교회를 전략적이고 주도면밀하게 공 격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연구 보고서를 듣고 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저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 들과 성도들이 깜짝 놀라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깨어서 사상전과 영전을 잘하고 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볼 때는 우리가 연합을 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야 합니다. 이걸 저는 정책적 연합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신학적 연합, 교리적 연합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교리적, 신학적 연합을 하 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교단만의 신앙의 순수성이 있고 개혁신학의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은 연합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정책적 연합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다른 교단이 무너지면 언젠가는 우리 교단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대의 트렌드상 홀로서기가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회가 한 몸 사회를 향해 가는데 내 교회 하나, 내 교단 하나만으로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흐름은 동성에, 이슬람, 이단, 모든 안티 크리스천들이 연합을 해서 어떻게든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예배당을 짓고 난 후 부도나면 전부 이단과 이슬람에서 접수를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는 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그런 교회라면 함께 연대해서 이슬람을 막아내고 동성애를 막아내고 이단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 생태계를 보존해야 합니다. 물론 이 일이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퓨리티와 유니티의 갈등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퓨리티에만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항상 분 리주의자고 독단주의자였습니다. 항상 남을 정죄하고 비난만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사역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교도 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또 유니티에만 온 정신을 쏟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의 순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선교를 잘하느냐, 이 사람들도 선교를 못했습니다. 양 극단에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퓨리티와 유니티가 조회를 이루지 못하니까 계속 갈등을 하다가 공멸의 나락으로 추락했던 것입 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퓨리티를 위장하여 자기주장이나 사욕을 앞세우고 갈등과 분열을 촉발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교단의 신학과 정체성을 앞세우기는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욕망과 수구적 주장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유니티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연합이라는 가면을 쓰고 종교다원주의로 빠지고 바벨론 음녀의 종교와 놀아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신앙과 신학, 교리적 퓨리티를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퓨리티의 정체성을 철저 하게 지키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정책적 연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교회도 과거에는 암묵적으로 교회 간의 경쟁, 교단 간의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미국도 기독교 국가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독교 국가도 빌리 그래함 이후에 연합 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상과 스피릿이 없으니까 다 개교회주의로 빠져 버렸습니다. 개교회, 개교단주의에 빠지고큰 교회 목사들 간에 스타플레이를 하다보니까 세상에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청교도적 가치 위에 세워진 미국도 교회 생태계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듣고 보면 우리가 정책적 연합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까? 신학적이고 교리적 연합을 할 수는 없지만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막아내고 그들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정책적 연합을 해야 한나는 역사적 사명을 느끼지 않느냔 말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정책적 연합은커녕 분쟁과 다툼에 휘말려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 이지 않을까요?

동로마교회는 동방정교회인데 죽도록 싸우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동로마제국의 멸망을 직감한 마누엘 황제와 요한네스2세는 서구 유럽 국가들을 순방하며 구걸 외교를 했습니다. "우리 좀 도와주세요. 우리가 망하면 당신들도 위험합니다. 우리가 망하면 언젠가 당신들의 나라도 이슬람화 될 것입니다." 그러자 서방 교회들이 "당신들하고 우리는 신학과 교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며 모르는 척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동로마의 황제가 다시 애절하게 당부합니다.

"신학과 교리는 조금 나를 수 있지 않습니까? 같은 예수를 믿고 신앙의 정체성이 같은데요. 신앙의 컬러가 좀 다르다고 어찌 안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래도 이슬람보다는 우리가 낫지 않나요? 우리가 망하면 언젠가 당신들도 망합니다. 그러니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구걸 외교를 해도 서방교회는 끝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5월 29일 이슬람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성벽 높이 바람에 펄럭이던 십자가기는 땅에 곤두박질 당하였고 이슬람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였습니다. 투르크 군사들은 굶주린 사자처럼 얼굴이 반반한 처녀들을 겁탈하려고 서로 칼부림을 했고 그 아리따운 딸들은 팔다리가 잘려 죽었습니다. 교회 사제들은 참수됐고, 예배당에서 쓰던 휘장은 어린 아이들을 노예로 끌고 가는 밧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성소피아 성당과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이레네교회를 비롯하여 100여개의 성당들이 다 이슬람 사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러시아정교회도 싸우다 망해 버렸습니다. 니콘 대주교 때부터 사제들이 모이면 논쟁과 싸움만 하는 것 입니다. 그들의 논쟁은 대부분 이런 거였습니다.

"십자가 성호를 그을 때 왼쪽부터 할 것이냐, 오른쪽부터 할 것이냐, 손가락을 세 손가락으로 할 것이냐, 두 손가락으로 할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직자의 가운을 길게 할 것이냐, 짧게 할 것이냐, 가운 색깔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축도를 할 때 손가락을 펴고 할 것이냐, 오므리고 할 것이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논쟁만 하고 있으니까 정교회가 백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이 정교회에 대해서 더 등을 돌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볼세비키 혁명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볼세비키 혁명이 무엇입니까? 유물론 사상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운동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이 볼세비키 혁명이 성공해서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나라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 있는 정교회 성당들이 다 무너지거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3만 개가 넘는 교회당이 있었는데 어지간한 건물들은 다 무너뜨려 버리고 너무 아까운 300여 개의 교회당만 보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배당도 대부분이 공산화 기간 동안에 폐쇄되어 버렸습니다. 예컨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카잔 성당은 무신론 교육 장소와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 쓰임 받게 되 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지은 피의 성당은 공산당이 감자를 보관하는 감자창고로 사용했다는 것 아닙니까? 교회당이 무신론 교육 장소가 되고 감자창고가 된 것입니다. 바로 러시아정교회가 계속 싸움만 하고 사상전과 영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연합의 지도력을 잘 발휘하여 이슬람을 막아내고 기독교 복음을 지킨 역사가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멸망시켰던 메흐메드2세의 손자인 메흐메드 4세가 그 여세를 몰아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마저 모스크로 만들겠다며 유럽을 치러왔습니다. 그런데 첫 관문이 비엔나였습니다. 당시로선 비엔나만 점령하면 로마로 바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서 이전투구에 빠져 있었고 특별히 프랑스는 은근히 비엔나가 무너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뒤에서 이슬람군에게 원조를 해 주며 비엔나를 치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어느 이웃교회가 서로 싸우고 있을 때 다른 이웃교회 목사가 반대파를 부추기고 지원해 주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메흐메드4세는 총사령관 무스타파를 앞세워 30만 군대를 조직해서 진격한 것입니다. 이때 비엔나 군사는 기껏해야 1만 5,000명이었습니다. 그러자 황제인 레오폴드1세는 당장 왕궁을 버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결국 비엔나 시장 리벤베르크가 군사들과 함께 결사 항전을 하지만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폴란드 왕 얀 소비에스키가 7만 명의 연합군을 조직해서 비엔나를 구하러 옵니다. 사실 소비에스키와 레오폴드1세는 앙숙관계요, 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레오폴드1 세가 소비에스키를 폐위시키고 로렌 샤를공에게 왕위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소비에스키가 얼마나 감정이 상했겠습니까? 그런데 소비에스키는 이렇게 말하며 비엔나를 구하러 욌습니다.

"아무리 레오폴드1세가 증오스러워도 비엔나가 망하면 폴란드도 망하고 유럽도 없게 될 것이다. 유럽의 교회도 몰락하고 이슬람 천지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구교도 없고 신교도 없게 된다. 그러니 나라도 일어나서 비엔나를 지키리라."

그러면서 소비에스키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는 이슬람 군대의 시선을 피해서 해발 550m나 되는 칼렌버그산 정상으로 대포를 직접 옮긴 것입니다. 맨몸으로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노구였지만 손수 대포를 밀며 정상까지 오릅니다. 정상에 오른 그는 칼렌버그 정상에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에 군사들에게 웅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비엔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교회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죽기 로 싸우면 유럽을 지키고 기독교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스만튀르크군 30만 명이 진치고 있는 본진을 향해서 대포를 비오듯 퍼부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무스타파와 30만명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혼비백산하며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소비에스키의 특공대들이 비호같이 벌판으로 내려가서 공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틀 만에 30만명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오스만뒤르크는 유럽에서 완전히 패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안 소비에스키의 섬김과 연합정신이 없었더라면 어찌 유럽의 그 찬란한 교회 건물과 기독교적인 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베토벤, 바하, 헨델의 음악이 나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콘스탄티노플 도성이 무너지고 메흐메드2세가 백마를 타고 성소피아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습 니다. 그때 만여 명에 가까운 콘스탄티노플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지금이라도 어서 빨리 미가엘 천사를 보내 주옵소서, 그가 이곳에 와서 빛나는 검을 휘둘러 저 짐승 같은 이교도들을 보스포러스 해협 바깥으로 물리쳐 주옵소서."

그러나 끝내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촛대를 옮겨버렸습니다. 결국 백마를 탄 메흐메드2세가 성소피아성당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욌습니다. 그 리고 뭐라고 이야기를 한 줄 아십니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왔노라. 내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에게 배웠던 기독교는 싸우는 종교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과 평화롭 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자라서 본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예수를 믿으면서 왜 늘 기독교는 싸우기만 한단 말이냐,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알라의 이름으로 평회를 주러 왔노라."

여러분,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은 동로마교회를 향하여 빈정거리고 조롱했던 메흐메드2세의 음성을 뼈저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 빈정대고 조소하는 말을 듣고 우리가 교회를 다시 세우고 지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함께 정책적으로 힘을 모아 사상전, 영전을 잘 해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도 이런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근시안적 시각만 고집하시겠습니까? 끝까지 정책적 연합을 반대하시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당연히 우리 교단의 개혁신학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반기독교적 정서와 공격으로부터 한국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자 교단이라면 장자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학과 교리가 좀 달라도 장형으로서 좀 가르치고 야단을 치면서라도 우리를 따라오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네들은 우리와 다르니까 니들끼리만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옛날에도 종갓집이 종갓집 역할을 잘해야 집안이 잘 되었습니다. 장손이 장손 역할을 잘 해야지 무능하고 역할을 못하면 못난 동생놈들이 육갑을 떠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생들이 장손보다 잘난체하고 육갑을 떨면 집안이 자칫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어떤 현실입니까? 더구나 장자교단인 우리 교단이 연합운동의 현장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단하고 게임도 안 되는 군소 교단이 오히려 힘을 더 발휘하고 그런 총회장이 영향력을 더 발휘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교단은 덩치는 가장 크고 교회수도 가장 많고 힘도 가장 있는데, 연합운동에서는 항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합운동의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하니까 연합운동의 기수 노릇을 못하는 것입 니다. 그리고 정책적 연합에 대한 의식구조가 부족했습니다. 어느 지방에 연합 집회를 갔는데 합동측은 전혀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고 말입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우리가 조금은 의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어떤 지역이든 그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한 연합 운동이 잘 되는 곳은 이단들이 용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역교회들이 콩가루처럼 나홀로 목회만 하고 개교회주의에만 빠져 있으면, 이단들이 기를 쓰고 용을 쓰는 것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연합에 대한 의식 전환을 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가 무너지면 우리 교회도 무너지고, 다른 교회 문 제는 우리 교회 문제가 되고, 다른 교회가 짜그라지면 우리 교회도 짜그라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를 지키면서 함께 연대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상전, 영전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정책적 연합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단이 좀 영향력도 발휘하고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대한민국도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이슬람의 샤리아법이 통과되면 한국교회는 2~30년 내로 영국교회처럼 공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성만 쌓는 캐슬빌더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가는 킹덤빌더가 되어서 한국교회 생태계를 복원하고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번 목사장로기도회 주제가 '회개와 회복, 주여, 우리를 살려 주소서'입니다. 이번 기도회를 통해서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살리는 목사장로기도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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