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투쟁과 연대가 있는 자리에 노래가 있다. 1980~1990년대에는 '민중가요' 스타일 노래를 함께 불렀다.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투쟁 현장에 다른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투쟁·승리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지만 현장에 있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노래였다.

젠트리피케이션(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원래 입주한 세입자가 변두리로 쫓겨나는 현상)의 상징이었던 서울 한남동 문화 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싸움이 끝났다. 2014년 8월부터 시작된 월드스타 싸이와의 대결은, 양측이 대화로 합의하며 마무리됐다. 싸이는 2016년 8월 말까지 건물 재건축을 연기하며 중단된 예술가들의 전시를 보장했다.

2년 가까이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음악가가 공연으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응원했다. 황푸하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황 씨는 주로 홍대에서 공연하는 인디 뮤지션이다. 기타 하나 들고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른다.

황푸하 씨를 만나려면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는 투쟁 현장에 주목하면 된다. 그는 포이동 재건마을을 지키는 문화제에서 기타 치며 노래했다. 분더바 투쟁 현장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광화문광장 문화제에서도, 노래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 포이동 재건마을 지킴이 문화제, 용산 참사 문화제, 세월호 광장 토요 문화제 등 거리에서 노래하는 신학생 황푸하 씨. 그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 약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황푸하)

먼저 그의 특이한 이름에 눈길이 갔다. 게다가 이 사람, 알고 보니 전도사다. 투쟁 현장에서 노래하는 음악가, 교회에서는 전도사, 배움이 한창인 신학대학원 학생. 세 가지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때아닌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4월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 근처 카페에서 황푸하 씨를 만났다. 그는 이 학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덥수룩한 머리와 큰 뿔테 안경, 까만 야구 잠바에 달린 노란 세월호 배지가 눈에 띄었다.

인디 음악가, 투쟁 현장으로

황푸하 씨는 2008년 대학생 때부터 홍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신앙 노래는 아니었다. 학부에서도 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목회학을 택한 '정통' 신학생이지만, 기독교와 음악 활동을 억지로 연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회현상을 보며 느낀 점을 자기 언어와 가락으로 불렀다.

처음 '투사'로 노래 부른 곳은 용산 참사 현장이다. 홍대 클럽에서 노래하던 황 씨가 거리로 나선 것이다. 용산 참사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경찰도 아니면서 경찰 옷을 입고 유가족과 활동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을 보면서, '사회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가지는 않지만, 노랫말에 함축적으로 담긴 내용을 보면 결국 희망이다.

그토록 우리 기다리던 빛 모두에게 비춘다 비춘다
꿈꾸던 축제 맞이하면서 우린 모두 춤춘다 춤춘다
가난한 집에도 울려 퍼진다
따스한 위로가 울려 퍼진다
귀 기울여 처음에는 조용하게
귀 기울여 
그토록 우리 기다리던 빛 모두에게 비춘다 비춘다
꿈꾸던 축제 맞이하면서 우린 모두 춤춘다 춤춘다
- '해돋이' 황푸하

싸움 현장에는 지친 사람들이 많다. 법·용역·경찰에 치이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힘이 빠진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황푸하 씨는 신학자 틸리히의 말을 떠올렸다. 그가 가진 신학생과 음악가의 정체성이 포개지는 시점이었다.

"구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예언한 건 아니라고 해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믿음, 그런 믿음이 있었다는 거죠. 사람은 다 죽어도 주의 말씀이 남아 있는 것처럼요.

'해돋이'는 곧 발매할 정규 앨범 타이틀 곡이에요. 틸리히가 말한 그 믿음을 담고 싶었어요. 우리가 다 죽어도 하나님 말씀이 남아 있는 게 어떻게 보면 신비하잖아요. 우린 이미 끝났는데 우리를 살리겠다는 약속이 남아 있다는 것은 엄청난 믿음이죠."

학교 안에만 머무는 신학생보다

그는 현재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신학생이자 교회에서 초등학생을 교육하는 전도사다. 교회와 신학교에서는 현장에서 노래하는 황푸하 씨를 안 좋게 보지는 않을까 괜히 걱정이 됐다. 황 씨의 답은 담백했다.

"성경 말씀에 쓰인 대로 약자를 찾아 그들 곁으로 다가가는 것뿐이에요. 정치적인 담론으로 만드는 건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죠. 저한테는 그 말이 더 정치적으로 들려요. 교회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거라는 믿음. 그냥 앉아서 기도만 하는 건 비겁해 보여요."

지금 다니는 장신대는 황 씨가 학부 공부를 했던 성공회대학교보다 학생들 사회참여가 적다. 그렇다고 "왜 당신들은 사회참여를 안 하냐"고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보수 신앙을 가진 친구들도 약자를 돌보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친구들을 고통받는 사람들 곁으로 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때 생각난 것이 떼제 찬양이다. 조용하게 반복해서 부르는 찬양. 과거 서대문에서 떼제 찬양 모임에 참여해 느낀 '평화'가 떠올랐다. '평화로운 노래', '노랫말이 평화롭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찬양을 부르는 그 순간, 공기 자체가 평화로웠다. 평화가 없는 곳, 그곳에 평화를 가져가 놓으면 좋겠다 싶었다.

'은혜와정의'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3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떼제 찬양 모임을 열고 있다. 이제 두 번 모였다. 걸음마 단계지만 고무적이다. 4월 15일 교내 채플 시간에는 '하나님의선교'팀과 함께 세월호를 추모하며 떼제 찬양을 기획했다. 5월에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떼제 모임을 할 예정이다. 학내에서 함께 찬양하던 이들이 조금씩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마련하고픈 마음이다.

주일에는 초등학생과 뒹구는 전도사가 된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현장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초등학생들에게 사회 이슈를 꺼내지 않는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조금씩 설명해 주고 있다.

4월 17일에는 세월호를 주제로 설교했다. '최초의 거짓말'이라는 주제였다. 세상에 수많은 거짓말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쟤는 미워해도 괜찮아", "저 친구는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세월호 이제 끝났어. 잊어도 괜찮아". 이런 목소리가 들릴 때도 있지만 그건 하나님의 속성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황푸하 씨는 교회에서 초등학생을 돌보는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배운 신학을 교회 현장에 접목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학문과 현장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앞으로도 계속, 노래하는 신학생으로

황푸하 씨는 곧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10곡이 수록돼 있는데 가사를 가만히 살펴보니 신앙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곡도 있다. '반대로 걸어가'도 그중 하나다. 세상은 돈과 명예, 1등을 추구하지만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가치보다 다른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사했다.

"드러내 놓고 기독교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노래에 신학적 고민이 담기는 것 같아요. 그동안 교회는 사회와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만' 살자고 외쳐 왔던 것 같아요. 진리를 추구하는 신학생으로, 또 노래를 만드는 음악가로, 이 두 정체성을 잘 연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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