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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설교 맡은 강태우 집사 "세월호 가족 등 이 땅의 수많은 을들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 되자"

김종희   기사승인 2016.04.28  10: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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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주일,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 교인들은 오전 기도회를 가진 뒤 점심을 먹고 곧바로 한마음 기도회를 열었다. 한마음 기도회는 몇 달에 한 번씩 열린다. 강태우 집사는 지금까지 마당 기도회 외부 설교자를 섭외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날은 본인이 단에 오르게 되었다. 마당 기도회는 예배라는 단어 대신 기도회라 부르고 축도 대신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무리할 만큼 흠 안 잡히려 애를 썼다. 집사를 설교자로 세운 것은 파격이었다.


▲ 오전 기도회 정주채 목사 설교,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 한마음 기도회 강태우 집사 설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강태우 집사는 파격적인(?) 설교로 호응했다. 이날 설교 제목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지금부터 31년 전인 1985년,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명호 선장 전제용 씨가 남중국해상을 표류하던 96명의 베트남 난민을 구한 사건을 소개했다. 당시 전제용 선장은, 무인도에 내려놓으라는 본사의 지시를 거스르고 난민 전원을 부산항에 데리고 왔다. 전 선장은 귀국하자마자 직장에서 해고되고 당국의 조사를 받고 사회적 몰매를 맞았다.

이후 보트피플의 리더 격이었던 피터 누엔 씨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생명의 은인인 전제용 선장을 오랫동안 찾았고, 마침내 2004년에 전 선장을 미국으로 초청해 19년 만에 다시 만났다. 당시 전 선장은 회사에서 쫓겨나 고향인 통영에서 멍게 양식을 하고 있었다.

기자들 앞에 선 피터 누엔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수많은 배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전제용 선장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 그들을 데리고 가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강태우 집사는 강도 만난 베트남 보트피플에게 전제용 선장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준 것처럼, 우리도 강도 만난 자의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교했다. 예수님이 강도 만나 죽어 가는 우리의 이웃이 되어 준 것처럼 말이다.

파격적인 내용은 이제부터다.

"전제용 선장 이야기와 2년 전 어제(4월 16일)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만약 세월호가 전제용 선장과 같이 자기를 희생한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났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 마당 기도회 공동체도 아프고 힘들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이 땅에서 강도 만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꿈과 희망을 포기한 청년들, 위안부 할머니들, 절대 빈곤에 놓여 삶의 소망을 잃고 자살 직전까지 몰린 가난한 사람들, 노숙인들, 어른들의 폭력에 학대받는 아이들, 갑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감추고 살아가는 수많은 을들이 강도 만난 자들이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세월호 가족이야말로 강도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직 인양되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있습니다. 2년 넘도록 진상 규명이 안 되고 미수습자를 찾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침묵과 교회의 외면 때문일지 모릅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 상처와 아픔을 잊기에 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체 인양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당 기도회에 대해서 그만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미라 하더라도 상처가 되는 것은, 사랑의교회 문제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안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당 기도회를 불편하게 여기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해치는 세력, 분열 세력, 강남 예배당을 탐내는 자들, 목사 반대파라고 부르며 비난합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다고, 한국교회를 욕먹이고, 전도의 문을 막는다고 비난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은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다른 교회에서 일어난 분쟁과 갈등에 무관심하고 그들을 비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그동안 집단적인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롭고 핍박받고 오해받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쫓겨난 자들, 억울하고 오해받고 핍박받는 자들, 강도 만난 자들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 자신, 마당 공동체,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 우리 사회와 세상을 보면서, 강도 만난 자들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어디가 왜 아픈지 정확히 알아보라고, 상처를 닦아 주고 싸매 주라고, 나귀에 태워서 안전한 회복의 쉼터로 데리고 가라고, 그들을 끝까지 돌보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강태우 집사는 이렇게 설교를 마무리했다.

"세월호 2주기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이 시대 강도 만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개인적으로도 좋고 바라기는 공동체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고난과 문제를 통해 알게 된 이 세상의 불의와 고통과 아픔을 통해, 이 땅의 강도 만난 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2016년 4월 17일 주일, 오늘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서초역 옆에 있는 사랑의교회만 아니라 강남역 옆에 있는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에서도 '세월호'는 금기어였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가 아니면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단어가 '세월호'였다. '오정현'이 분노의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라면 '세월호'는 불편의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그런데 외부 초청 목사가 아니고 그 교회 소속 집사가 설교에서 '세월호'를 끄집어냈다. 아직 수습하지 못한 9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강단에서 불렸다. '사랑의교회가 바로 세월호'라는 것을 이제 깨달은 것일까.

   
   
   
   
▲ 4월 17일 주일, 사랑의교회 강남 예배당에서 열린 오전 마당 기도회 설교는 용인 향상교회 정주채 은퇴 목사가 맡았다. 정 목사는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대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희망 없는 한국교회에서 대안 세력, 대안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후 한마음 기도회에서 설교한 강태우 집사는 "강도 만나 죽을 지경에 처한 이들에게 우리가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진 제공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

강 집사가 설교하는 그 주 월요일인 4월 11일, 나는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썼다. "내가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를 너무 사랑하는가보다.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 너무 지체하지 말고 세월호 가족 초청 간담회를 열기 바란다.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교회 가족들을 위해서…"

강 집사는 내가 낙서처럼 쓴 이 글을 읽고 전율과 부담감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4.16 2주기 바로 다음 날 자신이 설교를 하게 된 것, 아주 우연히 나의 페이스북을 보게 된 것이 그저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마당 기도회에 뭔가 원하시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교인들이 '세월호'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잘 알기에 고민했지만, 원래 하려고 준비했던 본문과 내용을 바꾸었다.

나는 4월 8일에도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와 세월호를 연결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3월 말 어느 날이었다. 안산 분향소에 내려갔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만나서 한 시간 넘게 대화했다. 그때 예은이 아빠의 이야기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위안부 할머니나 밀양 할머니의 고통에 무감각했을 것이다. 할머니들을 찾아가서 그동안 무심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오래전에 대형 참사로 가족을 잃은 어떤 분들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들이 그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으면 이번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예은이 아빠는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슬픔에 빠져서 이렇게 싸우는 게 아니다. 슬픔은 그냥 각자의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 이런 비극이 사슬처럼 이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우리가 지금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아이들을 웃으면서 만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이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슬픔과 아픔에 머물지 않고, 우리만큼, 우리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찾아가기 위해 합창단, 중창단도 만들어서 노래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마음이 참 좋았다. 사적인 슬픔과 고통에 매몰되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 공적인 가치를 담아 투쟁하는 모습. 너의 슬픔을 나의 더 큰 슬픔으로 안아 준다면 '슬픔×슬픔=기쁨과 환희'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상처 입은 치유자의 모습이고 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수십, 수백 편의 주옥과 같은 설교보다 수천 배 능력이 있는 실천이다.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은 어쩌면 다행이다. 몇 년째 좋은 설교자들을 돌아가면서 초청해서 듣는다. 분쟁을 겪는 교회가 장기간 이렇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도 뭐가 옳은지 모른 채 탐욕에 지배당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소름이 돋을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지금이 더 감사한 상황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고만 있을 것인가. 슬픔과 분노에만 잠겨 있을 것인가. 매주 좋은 설교만 듣고 있을 것인가. 소송전만 벌이고 있을 것인가. 절대로 멈추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손이라도 잡아 보았는지 궁금하다. 안산에 가서 그분들을 안아 보았는지, 단원고 교실에 가서 눈물을 쏟아 보았는지, 광화문에 가서 촛불 예배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아마 그분들을 만나고 나면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억울하게 종북, 좌빨, 빨갱이로 매도되고 있는가.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 교인들도 그런 매도를 당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은 억울하면서, 세월호 가족, 위안부 할머니, 밀양 할머니,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처참히 짓밟히는 것에 무감하다면, 그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내막도 모르면서 단정적으로 썼을지 모르겠다.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희망이 있다. 사랑의교회의 진정한 개혁의 완성은 나쁜 놈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가족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수많은 을들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제자 훈련'은 그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긴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이 글을 놓고 어떤 사람은 너무 벅찬 것을 요구한다고 반응했다. 어떤 사람은 마당 기도회와 세월호는 다른 이슈라고 구분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안산 분향소를 다녀왔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철옹성과 같은 대한민국 강남 사랑의교회에서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균열은 분열이 아니다. 긍휼에 기반을 둔 공감과 연대이다.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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