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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다니던 청년, 세월호 기억공간 만들다

[인터뷰] 제주 '기억공간re:born' 기억지기 황용운 씨

구권효 기자   기사승인 2016.04.28  1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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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긴 머리를 질끈 묶었다. 코와 턱에 아무렇게나 난 수염이 덥수룩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이 굵은 얼굴, 덩치도 제법 있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길에서 만났다면 피해 다닐 만한, 산에서 만났다면 '웬 산적인가' 싶을 인상이다. 황용운 씨(37)의 첫 인상은 그렇게 강하게 다가왔다.

황용운 씨는 416합창단이 김동수 씨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아픈 사람끼리 작은 음악회'에서 사회를 봤다. 김동수 씨를 '동수 형님'이라 부르고, 세월호를 잊지 않고 음악회에 참석한 제주 지역 사람들과도 친하다. 그는 제주 '기억공간re:born'의 '기억지기'였다. 기억지기는 봉사자를 부르는 말인데, 그중에서도 그는 기억공간을 만든 사람이었다.

   
▲ 제주 기억공간re:born. ⓒ뉴스앤조이 구권효

게다가 기독교인이다. 김동수 씨와 아내가 부르는 '힘을 내세요'라는 찬양의 기타 반주를 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찬양 인도도 했다고 한다. 제주에 온 지는 1년밖에 안 됐다. 그 전에는 6년간 서울 강남에 있는 소망교회(김지철 목사)를 다녔다. 어렸을 때는 광림교회(김선도 원로목사)를 다녔단다. 이런 사람이 제주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음악회 다음 날 4월 26일,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한 카페에서 황용운 씨를 만났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세월호 참사 전 그는 말끔한 모습이었다. 단식하는 유민 아빠를 본 이후로 머리와 수염을 다듬지 않았다. 세월호는 그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 열혈 청년 황용운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는 내 삶의 임계점이었다

퇴직금을 털었다. 6년간 멀쩡하게 다니던 아름다운가게를 2014년 12월 말로 그만뒀다. 무작정 서울에서 제주로 갔다. 제주는 가족도 친지도 없고 업무차 1년에 한두 번 정도 오가던 곳이다. 지인의 소개로 한 시골 마을에 도서관을 준비 중인 사람을 만났다. 그 공간에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지인 집에 얹혀 살았다. 지금은 마을 이장님 집에 얹혀 산다.

기억공간은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때 오픈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한구석에 있다. 스무 평 정도 되는 단층 빈 창고를 개조했다. 동네 할머니가 우사(牛舍)로 쓰다가 창고로 쓰다가 하던 곳이었다. 가족이 없으면 굳이 오지 않을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드나든다.

   
▲ 기억공간은 시골 마을 구석에 있다. 빈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많은 사람에게 그렇지만, 세월호 참사는 황용운 씨의 인생을 뒤집어 놓았다. 그날 4월 16일 이후 거의 매일을 울고 다녔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세월호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하던 안타까운 일 중 하나,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그런 종류의 슬픔이 아니었다.

"기울어 가는,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는 살았구나'였어요. 그 배 속에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진짜 숨이 차고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잖아요.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이 나이 때 고민하는 돈, 결혼 이런 걸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 제가 하도 그러니까 나중에는 친구들이 말렸어요. 오버하지 말라고.

제 삶의 임계점이었던 것 같아요.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는 하는데 그 말이 좀 공허하더라고요. '어떻게 기억하자는 거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자고 결심했어요.

공간을 만들어서 뭘 하고 어떻게 운영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있는 건 아니었어요. 너무 나이브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저는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한 믿음, 확신이 있었어요. 일단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사람들이 모이면 뭐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에 만들까 고민하다가, 세월호와 관련해 뭔가 있는 곳은 서울 광화문, 안산이잖아요. 단원고 아이들이 수학여행으로 가려고 했던 제주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주에 기억공간을 만들 생각을 한 거예요."

공간의 힘, 사람의 힘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생겼다. 현재 12명의 '기억지기'가 수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기억공간을 지키고 방문자들을 맞고 있다. 매월 한 번씩, 함께 모여 도시락을 먹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포닥'(포틀락+다큐멘터리) 모임을 한다. 세월호 영화 '나쁜 나라' 상영회를 15번 열었다.

지난 4월 2일과 9일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 행사로 '하이, 헬로, 하와유'를 열었다. 이 행사는 특별히 청소년에게 주목했다. 청소년들이 세월호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제주 지역 청소년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을 초청했다.

   
   
   
▲ 기억공간 내부. 홍진훤 작가의 사진을 전시 중이다.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각종 전시물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억공간에서는 안산에 있는 416기억전시관과 연계해 지난 1년간 '아이들의 방'이라는 주제로 상설 전시회를 했다. 올해 4월부터는 안산 416기억전시관, 서울 광화문 기억하라 전시관, 제주 기억공간에서 '두 해, 스무네 달'이라는 주제로 순회 사진전이 진행 중이다. 현재 기억공간에는 홍진훤 작가의 '기다리다'가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의 수학여행 일정을 따라간 사진들이다.

뜻만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기억공간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공간의 필요성을 아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후원하는 돈으로 운영된다. 이번 2주기 행사 때는 스토리 펀딩으로 500만 원을 모았다. 황용운 씨는 지인 소개로 노지 감귤, 한라봉을 직거래 유통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

"혹시 한국 역사를 아세요?"

황용운 씨의 꿈은 '공연기획자'였다. 여느 대학생처럼 20대 초반까지 사회적인 일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목사님 말씀에 아멘하면서 교회 일에 열심인 청년이었다. 그를 바꾼 건 한 질문이었다.

군대 가기 전 대학 선배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줬다. 가수 안치환의 공연에서 잡무를 하는 것이었다. 때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간 화해 모드가 한창일 때였다. 공연에 '위안부' 할머니들과 장기수들이 초청되었다. 이들을 안내하고 문 밖에 있는데, 한 일본인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는 일본 유학생으로 나눔의집 봉사자였다.

"저한테 오더니 '혹시 한국 역사를 아세요?' 그러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어요. 일본인이 저에게 한국 역사를 아느냐고 물어봤는데, 제가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아는 게 없었어요. 왜 한국 사람들 괜한 반일 감정 있잖아요. 일본 사람 싫어하고 축구할 때 꼭 이겨야 하고 그런 거. 근데 정작 한국 역사는 모르는 거예요.

무식을 인정하는 건 둘째 치고 정말 창피하고 염치가 없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생전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역사책도 읽고 인문학 지식을 쌓기 시작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 질문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세상을 알아 가면서 '사람'에 주목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박원순'이라는 사람에 끌려 아름다운가게에 취직했다. 버려진 것들을 재활용해 상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 일한 지 6년째,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 지극히 평범했던 황용운 씨를 바꾼 건 하나의 질문에 솔직하게 응답한 결과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크랙'을 만들자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신앙적으로도 고민이 찾아왔다. 황용운 씨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교역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기도해야 한다는 말. 그는 지쳤다. 그가 아는 하나님은 교회 안의 일만 관심 있는 신이 아니었다. 20년 교회 생활을 접었다.

다시 교회를 찾은 건 2008년. MB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황용운 씨는 MB가 다녔던 소망교회로 갔다. 하나님이 MB를 대통령이 되게 하셨다는 생각을 깨고 싶었다. 특히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소망교회 청년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청년회에 등록했다.

막상 들어가서 분위기를 보니 그런 이야기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먼저 청년들과 친구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들과 어울렸다.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연애,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끔씩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 가서 희희낙락했다. 그렇게 6년을 다녔고 소망교회 청년들과 정말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계속할 수 없었다.

"2013년 12월 22일이 일요일이었어요. 그날이 민주노총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들이 서울 경향신문사 건물에 투입된 날이었죠. 경찰들이 창문과 집기를 부수고 얼굴에 캡사이신을 뿌리며 난리가 났죠. 공권력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짓밟았고 SNS에서는 계속 관련된 글과 사진이 올라왔어요.

근데 저는 큰 예배당에 앉아 있는 거예요. 역겨웠어요. '오늘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라는 설교를 듣고, 예배가 끝나면 청년들과 또 연애 얘기, 진로 얘기를 하겠지'. 못 하겠더라고요 더 이상. 예배당을 나와서 서대문으로 갔어요. 그날 다시 한 번 교회를 떠났죠."

   
▲ 사람들이 시골 마을 구석까지 찾아오는 것.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제주에도 많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 후, 2014년 5월 18일 황용운 씨는 난생 처음 경찰에게 '연행'을 당했다. 광화문에서 연좌시위하는 대학생들을 경찰이 연행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있을 수 없어 뛰어들었다. 이틀을 유치장에서 보내고 나왔다. 그때 소망교회 청년회장이었던 친구가 면회를 왔다.

"소망교회에서 저는 그냥 '착한 일 하는 청년' 정도의 이미지였어요. 근데 그런 애가 연행을 당했다니 친구들도 깜짝 놀랐던 거죠. 그들에게 경찰서는 나쁜 일을 해야 가는 곳이에요. 그런 곳에 제가 갇혀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때 면회를 왔던 친구는 유복한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어요. 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었어요. 사회문제에 대해 뭐 강하게 얘기한 게 아니라, 그냥 상식 수준에서 이야기했어요. 그 와중에 제가 교회를 떠난 거죠.

그런 친구들에게 '경찰서는 꼭 나쁜 일 한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다' 정도의 인식이라도 줘서 저는 만족해요. 그 세계관에, 소망교회 청년들의 분위기에 조금의 크랙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주로 간다고 했을 때도 소망교회 친구들이 연락 와서 몇 번 만났어요. 왜 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얘기해요. 친구니까 편하게 대화하는 거죠.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시위장으로 나오라고 하지 않아요. 마음을 열고 그들 입장에서 충분히 대화하면 그 친구들도 솔직하게 얘기하거든요. '그런 건 줄 몰랐다. 그래도 나는 시위 못 나가겠다. 구호 못 외치겠다'.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요. '나오지 않아도 된다. 대신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해 줘라. 그런 단체와 언론사들을 후원해라'."

   
▲ 공간의 힘은 기대 이상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눈높이를 맞춰서

30대 후반, 사회를 배워 나가면서 깨닫게 되는 건 결국 '기-승-전-정치', '기-승-전-교육'이라는 것이다. 정치와 교육이 탄탄하게 서면 세상은 변한다고 믿는다.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했다고 교육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게 아니다. 4년에 한 번 투표만 하고 정치에 관심을 끌 수는 없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비판하고 배워야 한다.

그가 좌우명처럼 생각하는 말이 있다. 뉴스타파 김진혁 PD의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하라". 그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월호를 겪은, '세월호 세대'라 불리게 된 아이들. 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내도록 돕고 싶다.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눈높이를 맞출지 고심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 행사 초점을 청소년에게 맞춘 것도 그런 이유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느냐 물었더니 단박에 "없어요"라고 답한다. 나이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공간에 대한 꿈은 현재 진행 중이다. '기억공간re:born'의 뜻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역사를 기억하는, 사회적 기억이 개개인의 의미로 다시(re) 태어나게 하는(born) 일을 계속하고 싶다.

세월호 기억 공간에 방문해 보세요

   

안산에, 광화문에, 제주에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가 있습니다. 4월 2일부터 9월 4일까지 '두 해, 스무네 달' 사진전이 진행 중입니다. 노순택 작가의 '사람들', 김봉규 작가의 '아버지 마음으로', 홍진훤 작가의 '기다리다'가 한 곳씩 순회 전시됩니다. 현재 안산에는 노순택 작가, 광화문에는 김봉규 작가, 제주에는 홍진훤 작가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기억 공간은 시민의 후원으로 유지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 416기억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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