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서울에 위치한 유서 깊은 교회. 존경받던 담임목사와 여전도사 사이에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 담임목사는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다. 문제를 제기하는 교인들은 쫓겨났다. 교회 지도자들은 사건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한술 더 떠 주일예배에 설교하러 온 교단 목사들은 담임목사를 감싸고 용서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교를 했다.

10년 전 교계를 휩쓴 성 추문 스캔들이었다. 결국 사건은 담임목사가 교단에서 출교·파직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교계에 있다. 출교되기 전 미리 교단을 탈퇴했기 때문에 목사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지금도 타 교단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중직을 맡고 있다.

목회자가 성(性) 문제로 교회를 떠나는 것은 지금도 드문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대형 교회를 담임하며 교단 차세대 리더로 추앙받던 목사가 갑자기 교회를 떠났다. 공식적으로는 심장병 때문에 교회를 사임했다고 하지만 교회 내에는 여자 청년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목사들의 성 추문.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목사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교회 공동체가 받는 충격이 크다. 목사는 교회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교회에 남은 교인들은 상처를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교회를 향한 지탄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 교회개혁실천연대가 4월 26일 '목회자 성 윤리 어떻게 다뤄야 하나?'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박득훈 공동대표는 "목회자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한국교회는 피해자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세속화하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증거"라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관련 강좌도 없고, 전문 상담소도 부족하다

목회자의 성범죄를 막기 위해 신학대학원에서부터 관련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방인성·박득훈·백종국·윤경아 공동대표)는 '신학대학원 성 윤리 교육 실시 여부에 관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2015년 11월 11일부터 2016년 3월 17일까지 전국 교단 산하 31개 신학대학원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 보기)

총 17개 학교가 답변을 보내왔고 14개 학교는 '업무 처리로 바쁘다', '응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답을 거부했다. 여성 목사 안수를 거부하는 예장합동 소속 총신대 신학대학원과 예장고신 소속 고려신학대학원도 조사에 응답하지 않았다.

▲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이 '신학대학원 성 윤리 교육 실시 여부에 관한 실태 조사'를 보고하고 있다. 총 31개 학교에 질의 공문을 보냈지만 응답한 학교는 17곳에 불과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6년 각 신학대학원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여성신학, 교회와 여성, 양성평등, 성 평등 개념을 가르치는 강좌가 있는지 분석했다. 31개 신학대학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강의 소개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관련 과목을 개설한 학교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부산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등 11개에 불과했다. 

남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목회 예비생들에게 여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잘 가르치지 않는다. 성범죄 예방 차원의 교육은 거의 없다. 성폭력 예방 교육이 있다 해도 1년에 1회, 한 학기 1회에 불과하다. 이마저 비정기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폭력·성희롱 예방 교육의 부재는 실제로 학교에서 성범죄가 발생한 경우, 부실한 대처로 이어진다. 응답한 학교 17곳 중 성희롱·성폭력 대처 매뉴얼이 없는 곳은 7개교에 달한다. 성범죄를 당했을 때 상담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 9개 학교는 학생생활센터가 성 상담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양성평등상담소, 성희롱고충상담센터같이 성 문제에 특화된 상담소를 운영하는 곳은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세 곳에 불과했다.

신학대학원 성 윤리 교육 더 강화해야

4월 26일 개혁연대는 '목회자 성 윤리, 어떻게 다뤄야 하나? - 신학대학원 성 윤리 교육의 현실과 방향성'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예방과 관련한 신학대학원의 현황이 일반 학교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 김승호 교수(영남신대 기독교윤리학)는 신학대학원에서 성 윤리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학대학원이 성 윤리 관련 과목을 정규 교과로 개설하고 더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승호 교수(영남신대 기독교윤리)는 신학교에서 성 윤리 과목 및 관련 과목을 정기적으로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성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목회자를 성적 탈선에 취약한 그룹으로 봤다. 한국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 재정 운영, 치리뿐만 아니라 성적인 부분에서도 불필요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목회자 지망생도 분명 배워야 하는 학생이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전도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학생으로서 배우려는 인식보다 사역자로서의 자기 인식이 더 강하다. 신학대학원 3년 동안 성과 관련해 자신을 직면할 기회 없이 바로 목회 현장에 투입된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서강대학교 성평등상담실 김영희 교수는 대학에서 반성폭력 정책과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마다 성폭력에 대처하는 기구를 운영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고 소개했다. 성평등·양성평등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인권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그는 반성폭력 교육을 일회성으로, 의무감에서 하는 신학교가 많은데 이보다는 꾸준히 성 문제를 공론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문제 제기할 수 있는 SNS 창구가 늘어나는 추세를 긍정적으로 봤다.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의견을 용기 내어 개진하고 학생들도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영희 교수(서강대 성평등상담실)는 일반 대학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성 평등 교육이 진행되는지 발제했다. 김 교수 역시 반성폭력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이런 교육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학내·교회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용기를 내기 전까지 문제 해결이 어렵다. 김영희 교수는 공동체의 관심과 용기가 사건을 처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공동체가 적극 나서서 피해자에게 함께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처벌 이루어진 후에 용서 말하자

발제가 끝난 후 한신대·장신대·감신대 신학대학원 여학생회장이 나와 각 신학교 현실을 증언했다. 이들의 발언에 공통점이 있었다. 남성이 우세한 학교에서 성 평등 교육이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하는 15분 성폭력 예방 교육이 전부인 곳도 있었다. 각 학교 여학생회가 앞장서서 성 평등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체 학생의 관심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 포럼에는 한신대·장신대·감신대 신학대학원 여학생회장들이 나와 각 신학교의 성 윤리 교육 현실을 증언했다. 왼쪽부터 한신대 이성지 회장, 장신대 조은애 회장, 감신대 임하나 회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장신대 신학대학원 여학우회 조은애 회장은 "여학우회 차원에서 교내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교수와 직원, 교수와 학생 사이에 성희롱 사건이 많았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아 결과를 공표하지 못했다. 여학우회는 가해자가 똑같은 일을 다시 저지르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예장합동 소속 목회자 신분으로 포럼에 참석한 김성수 목사(호모북커스)는 진상 규명과 목회자 처벌이 이뤄진 후에 회복·용서·은혜를 말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목사 아버지에게 장시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 피해자가 이길 수 있는 힘은 자기가 속해 있던 교회 공동체였다. 청년 공동체가 이 자매를 전적으로 품어 줬다. 성급하게 은혜와 용서를 말하기 전에 공동체가 먼저 피해자의 온전한 지지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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