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 향린교회 1층 향우실에서 육우당 13주기 추모 기도회가 열렸다. 이번 기도회는 육우당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또 다른 성 소수자들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에 사는 성 소수자는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청소년 성 소수자 중 45.7%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53.3%가 자해를 했다. 청소년기를 보낸 성 소수자 2명 중 1명이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지만 '살아남았'다. 2014년 친구사이가 발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욕구 조사 최종 보고서' 결과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괴롭거나 싫기 때문은 아니다. 이들은 동성애자를 향한 사회적 혐오와 편견, 차별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특히 부모와 친구에게 거부당한 청소년 성 소수자의 자살 시도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8배 높다.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2배 가까운 자살 시도율을 보였다.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3년 4월 25일 스무 살 동성애자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육우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동성애 반대 활동에 열을 올리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국민일보>, 침묵하는 기독교인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3년이 더 지났다. 한국교회가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아니 오히려 더 후퇴한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혐오 발언이 쏟아지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내뱉는 말이 '혐오'라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동성애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육우당은 13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액자 옆에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또 다른 성 소수자들의 모습이 담긴 액자가 놓여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육우당 옆에 놓인 네 개의 액자

2016년 4월 25일, 육우당 13주기 추모제는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추모 기도회'로 열렸다. 12년 전, 육우당 한 명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추모제였다. 13년이 지나는 동안 육우당 영정 옆에는 네 개의 또 다른 영정이 놓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또 다른 성 소수자들 사진이 육우당 옆자리에 놓였다.

추모객 100여 명이 함께했다. 성 소수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목사·평신도·일반인 등 다양한 사람이 참석했다. 주최 측이 준비한 안내지는 시작 전에 벌써 동났다. 기도회가 열린 명동 향린교회 1층 향우실 공간이 부족해 교회 마당에 의자를 펴고 앉았다. 이제껏 열린 추모 기도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육우당은 살아 생전 시조 시인을 꿈꿨다. 그가 남긴 시조를 함께 읊는 것으로 예배가 시작됐다. 사회자와 청중이 번갈아 가며 한 줄씩 읽었다. 육우당이 남긴 글의 의미를 곱씹으며 읽었다. 중간중간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무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평화로운 세상이여
어두컴컴 암흑 세계 잡아먹고 어서 오라
은하수가 흐르듯이 꽃잎 타고 흘러오라
평등 평화 아름다운 세상이여 어서 오라
동성애자 보호받고 장애인도 존중받고
흑인 또한 사람대접 받는 세상 낙원이여
그런 날이 온다면은
모든 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것이다
- '낙원가', 육우당

분위기는 시작부터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엔.소.이(프로젝트 밴드)의 노래가 시작되자 더 무거워졌다. '밤 기도'라는 노래 중 "별세한 모든 이들의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쉬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가슴에 박혔다.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어깨만 들썩이는 사람도 있었다. 예배 처소 바깥 마당에서는 엉엉 울다 쓰러진 사람까지 있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 '사랑이 이기네'는 찬양 사역자 이지음 씨 노래다. 이 노래는 한국 기독교 성 소수자 사이에서 많이 불린다. '사랑이 이긴다'는 내용을 담은 이 찬양을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들이 이렇게까지 슬퍼하는 이유가 뭘까. 예배에 참석한 성 소수자들은 곁에 있던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간에 마이크를 잡은 한 청년은 "1년 사이 내 친구는 별이 돼 액자 속에 담겨 저기 저렇게 새로운 얼굴로 데뷔했다"며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그는 쏟아지는 울음을 참기 위해 오히려 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님, 왜 당신은 가만히 계시나요"

현재 신학교에 다니는 성 소수자 학생들이 직접 쓴 기도문을 낭독하는 시간. 성 소수자로서 자신들을 탄압하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또 다른 이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작성한 기도문이었다.

"주님, 간절히 애타는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소수자들이 고통받지 않는 차별 없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청소년 성 소수자들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생각과 아픔·고민·사랑이 한순간의 방황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중략) 이러한 세상이 올 때까지 우리들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쓰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옳은 길, 차별이 없는 길, 평화와 생명의 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요즘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HIV·AIDS 감염인을 위해 또 다른 신학생이 작성한 기도문도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낭독됐다.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든 삶을 이어 가야만 하는지 따지고 싶네요. 주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와 세상을 이겼다고 성경에 나와요. 그런데 왜 우리의 매일매일은 혐오와 차별, 폭력 속에 놓인 채로 살아가고 있나요. 심지어 기독교인들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이 종교적 신념이고 차별하는 것이 사회적 평등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주님은 조용히 계시기만 하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 크레이그 바틀렛(열린문공동체교회) 목사가 준비한 기도문을 읽었다. 그는 가족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성 소수자들에게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 소수자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한 기도문도 있었다. 열린문공동체교회를 담당하는 크레이그 바틀렛 목사가 나와 직접 작성한 기도문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부모님께 버림받는 두려움, 친구에게 절교당하는 두려움, 교회와 모임에서 내쫓기는 두려움, 일자리를 잃는 두려움, 집에서 쫓겨나는 두려움,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 때문에 커밍아웃하지 못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중략) 두려움 속에 삶을 살아 가는 영혼에게 용기를 주세요.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도 우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문 낭독이 끝난 후 성찬 예식이 있었다. 참가자들 모두 떡을 포도주에 찍어 옆 사람 입에 넣어 줬다. 직접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을 받아 먹는 것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도심속수도원 신비와저항 박진석 수사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옆 사람에게 먹여 주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20분 정도 이어진 성찬례가 끝나자 어두웠던 참가자들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보였다. 이어서 '우리 승리하리라'를 불렀다. 가사 한 소절마다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서 떼창을 부르듯, 크고 하나 된 목소리로 불렀다.

 

예배 순서 순서가 다 의미 있었지만 마지막 공동 축도도 인상 깊었다. 모두 둥그렇게 서서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 대고 준비된 공동 축도문을 읽었다.

우리는 함께 추억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를.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누군가가 꾸던 꿈들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를

우리가 우리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 이상 아픈 일이 아닌 세상을 
우리는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켜 주세요.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세요.

어느 멋진 날에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날 때,
머리맡에 눈부시게 서 있는 당신을 만날 그날이 올 겁니다.

이런 우리들을 만드시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에서 쫓겨난 성 소수자들과 함께 울고 계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에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친구 되심이
당신 안에, 또 우리 안에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공동 축도문을 함께 읽는 것으로 예배를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 대고 진심을 담아 축도문을 읽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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