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일본인 목사 하면 누가 떠오르는지 물으면, 십중팔구는 '우치무라 간조'를 생각할 것이다. 일본 기독교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전쟁 국가에서 무슨 목회자가 나오겠어'라는 마음, 한 자릿수를 유지하는 일본의 기독교인 비율은 일본 기독교에 큰 관심을 두지 않게 하는 주된 요소다.

일본을 대표하는 목회자 중 한 명인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賀川豊彦, 1888~1960)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번역된 그의 저서 <사선을 넘어서> 이상으로 그의 삶을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 <그리스도교 입문> / 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 김재일 옮김 / 레베카 펴냄 / 400쪽 / 1만 3,800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과 신앙을 <그리스도교 입문>(레베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은 60세가 된 가가와 목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쓴 책이다. 19세기 말 태어나, 전쟁의 광기가 지배했던 일본과 종전 이후의 일본에서 살아간 기록을 담았다. 책 제목처럼 기독교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말하는 사람, 메신저의 삶이 있어야 울림이 있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신앙 체험으로 새 삶을 얻은 후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신학교 시절 폐결핵에 걸려 죽을 줄로만 알았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신학교를 뛰쳐나와 그가 간 곳은 고베의 빈민굴이었다. 14년 동안 그곳에 살면서 거기서 일하던 여성과 만나 결혼까지 한다.

그가 빈민굴에서 만난 사람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이었다. 사회적으로 무시받고 소외당하는 여성과 어린이였다. 이런 경험을 거쳐, 하나님은 그가 듣고 보고 느낀 사람들의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책의 1부, '나는 왜 크리스천이 되었는가?'에서 그는 그들의 하나님을 말한다.

"성경을 읽어 보면 예수님은 항상 어린이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1부 제13장 아이들의 종교, 187쪽)

"여성이 그처럼 멸시를 당한 것은 결국, 여성의 생리적 습관이 생명의 신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에 의해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바로잡혀, 여성 본래의 위치가 표면에 부각되었다. 예수님의 종교는 이 점에서도 혁명적이었다." (1부 제14장 여성의 종교, 195쪽)

"흙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그곳에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많은 농민들이 의식하지 않고 땅을 갈고 있기 때문에 흙 속에 숨겨져 있는 신비에 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하는 자들에 있어서 흙은 하나님의 의지가 직접 발현되는 거울이며, 피부다." (1부 제15장 농민의 종교, 210쪽)

"기독교는 노동자의 종교다. (중략) 예수님의 하나님은 노동자를 믿는 하나님이다. 손에는 삽을 들고 이글거리는 용광로 앞에 서고, 선반을 돌리고, 정밀 기계를 다루며 전차·기차·기선을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이다. 베를 짜고, 매장에 서 있고, 사무실에 파묻혀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믿는 하나님이다." (1부 제16장 노동자의 종교, 213쪽)

11개 장으로 이루어진 2부에서는 예수의 생애과 교훈, 사도 바울의 여정을 소개한 뒤 인문학적 고민으로 넘어간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신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그는 철학과 과학에도 탁월했다. '종교와 도덕'으로 시작해 '종교와 철학', '종교와 과학', '종교와 예술'을 고민한다. 진화론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나는 진화론을 연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증가되는 것을 느낀다"(2부 제7장 종교와 과학, 346쪽)고 말한다.

▲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賀川豊彦, 1888~1960).

2부에서는 사회·노동·평화 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가가와 목사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그는 폭력적인 운동을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무저항주의자'로 칭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이상 사회를 만들려 애썼다.

가가와 목사는 "나는 하나님 때문이라면 언제든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33세에 돌아갔는데, 나 자신이 그 이상 오래 살아 있다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신념이 부족한 증거인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남몰래 얼굴을 붉힌 일도 있었다"(383쪽) 고백할 만큼,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폭력 없는 싸움'에 임했다.

"예수님이 제시한 길은 회개와 재생이 있는 길이다. 생장력이 있는 정신이 폭발하여 회개하고 재생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야말로 무저항의 태도를 취하고 참고 견디는 것이다. 무저항은 비겁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저항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 '그것은 악을 부정하지 않으므로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무저항은 악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 근저에는 하나님과 같은 사랑에 대한 동경이 있다.

사랑과 희생을 두려워하는 자는 투쟁해야 한다. 사랑과 희생을 싫어하지 않는 자는 무저항주의를 취하게 된다." (2부 제3장 예수님의 교훈, 304쪽)

책 중간중간 그가 소개하는 말씀 구절과 찬송, 기도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보여 준다. 하나님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으면서도 삶으로는 빈민, 노동자,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거리에 거리낌 없이 나섰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비전동맹(非戰同盟)을 조직했고, 1921년 고베 조선소 노동자 3만 5,000명과 함께 대규모 항쟁에 나섰다가 수감당하기도 했다.

당초 2009년쯤 나올 예정이던 이 책은 역자 김재일 목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출간이 미뤄졌다가 작년 말 빛을 보게 됐다. 머리는 차가웠고 가슴은 뜨거웠던 목사,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에 대해 역자 김재일 목사는 이렇게 소개했다.

"교인은 많으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실천이 부족한 오늘날의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사회적 비판은 많으나 기도와 치열한 자기 관리가 부족한 진보적인 한국의 교회에서, 가가와 도요히코의 삶과 그가 걸은 길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옮긴이 후기,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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