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서 부활절 새벽 예배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부활의 아침이 오기 전 캄캄한 새벽,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 촛불이 하나둘 켜졌다.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때, 사방이 트인 화랑유원지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추위에 참석자들은 옷깃을 여미고 손을 비볐다. 사람들이 자리한 곳 너머로 합동 분향소가 우두커니 서 있고,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부활의 소망이 필요한 곳, 안산 합동 분향소 앞에서 부활절 새벽 예배가 열렸다. 박인환 목사(화정교회)와 안산 시내 목회자들, 기독교인 유가족들이 주축이 되어 예배를 준비했다. 예배는 새벽 5시 30분, 이른 시간에 시작했지만 안산 지역뿐 아니라 서울·수원 등 각지에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기독교인 세월호 유가족 10여 명을 포함해 총 200명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봤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다. 하나님은 예수를 부활시켜 악에 대한 영원한 승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면 승리는 요원하다.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는 길은 아직도 멀다. 너무 멀고 험해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예배 중 있었던 희생자 다영이 아빠 김현동 씨의 증언이 이런 현실을 말해 준다.

"오늘은 부활의 아침입니다. 희망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얼마나 엉망이고, 비정상적인가를 보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저의 상식이 거의 100% 뒤집어진 사회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열정을 바쳤지만, 결국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이 사회에 사람의 귀중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우선이었고 이익이 우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우리가 생각하는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제도와 규제를 완화하면서 안전은 뒷전이었고, 참사 이후에는 그 생명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들은 무엇이 두려운지 숨기려고만 했습니다.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냐고 물으면 조롱으로 응답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알았습니다.

▲ 다영 아빠 김현동 씨가 시대의 증언을 맡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비록 정치 세력이라든가 언론이라든가 힘이 있는 사람들은 여러 악행을 벌이지만, 그들은 최후의 진실을 감추면서 피해자 가족들을 조롱하지만, 한편으로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싸워 주는 국민이 있기에 저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국민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서 희망을 직접 저희들에게 확인해 주셨듯이,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상식적인,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비록 저희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더욱 안전하게, 저처럼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상의 행복을 꿈꾸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열심히 싸워 나갈 것입니다. 혼자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입으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면서 같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승리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힘을 합쳐서 나아간다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따뜻한 이웃으로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한 명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인환 목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를 주제로 설교했다. 두 제자는 예수의 죽음을 보고 낙심하며 엠마오로 가고 있었지만, 부활의 주님은 그들에게 그 처참했던 죽음과 공포의 자리,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라고 명하셨다. 박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목격하고 주님을 잃은 것에 크게 낙심하여 슬픔과 절망에 빠져 예수님을 죽게 한 죽음과 공포의 땅, 십자가가 있었던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희망을 두었던 그들의 마음은 이제 싸늘히 식어 있었으며, 그들의 발걸음은 낙심과 슬픔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시고 성경 말씀을 상기시키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두 제자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소망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곧 엠마오로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자기들이 버리고 도망쳐 떠나온 비극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했던 땅,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죽어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던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박인환 목사가 설교했다. 화정교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꾸준히 물심양면으로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늘 한국교회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엠마오로 가는 발걸음입니까?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발걸음입니까?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을 피해 자기 안일을 위해 가는 것은 엠마오로 가는 발걸음이고,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발걸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의 자리는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소외된 자,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죽을 죄도 짓지 않았는데 원인도 모른 채 죽어 간 304명의 억울한 희생자의 영정이 있는 세월호 합동 분향소 앞, 자녀들의 희생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슬퍼하며 절망하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이 있는 세월호 합동 분향소 예배실 앞에 모여 있습니다. 이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이곳이 바로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우리의 마음을 두고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곳입니다."

▲ 박인환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가 엠마오로 가고 있는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인환 목사는 사도바울의 말로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했다.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병들어 싸늘해진 우리의 마음은 부활의 예수를 만나면 회복될 수 있고, 슬픔과 절망과 탄식으로 얼룩진 2년 전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눈물을 다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눈물이 말랐다고 가슴에 응어리진 슬픔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지워져 가고 있다고 해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이 무디어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족 여러분, 사도바울의 말씀에 위로를 받으십시오.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고후 6:9) 유족 중 누군가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아프더군요.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싸워 주시고 이겨 주십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승리의 주님의 손에 붙잡혀 서로서로 손 붙잡고 함께 걸어갑시다. 여러분의 발걸음을 예루살렘으로 돌리십시오. 아니 이미 여러분은 이 부활절 아침에 여러분의 발걸음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옮겨 왔습니다. 이제 그 발걸음이 중단되지 않도록 합시다. 아멘."

▲ 박인환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유가족들은 눈물을 훔쳤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배 중간에는 유가족들과 기독교인들이 특송을 했다. '희년을 위한 우리의 행진'을 불렀다. 예배가 진행되는 1시간 동안, 예상치 못한 추위에 사람들은 덜덜 떨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동이 텄다.

▲ 유가족과 기독교인들이 특송을 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불처럼
사랑이 햇빛처럼 하나님 주신 생명 보듬어
눈물로 씨를 뿌리며 지나온 수난의 세월
보아라 우리 눈앞에 새 하늘이 활짝 열린다
희년을 향해 함께 가는 길 주의 약속 굳게 믿으며
일곱 번씩 일곱 번 넘어져도 약속을 굳게 믿으며

- 희년을 위한 우리의 행진

▲ 예배가 끝날 때가 되자 동이 텄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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