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재호 목사는 도시·시골 교회의 상생을 도모하다가 자비량 목회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작은 교회들을 위한 디자인 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 로고, 주보, 전도지, 쇼핑백, 간판 등을 직접 디자인해 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아, 하나님은 스스로 길을 찾는 자에게 빛을 비춰 주시는구나.' 자비량 목회를 하는 오재호 목사(41)를 인터뷰하고 든 생각이다. 오 목사는 작은 교회들을 위한 디자인 사역을 한다. 교회 로고, 주보, 전도지, 쇼핑백, 간판 등을 직접 디자인한다. 현재 오 목사는 나음과이음 디자인 대표 겸 클라우드처치 공동목회자로 있다.

오 목사와의 만남은 벌교 농부 최혁봉 씨의 소개로 이뤄졌다. 최 씨는 오 목사가 자비량으로 목회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사역도 꾸준히 펼친다고 제보했다. 봄바람이 불던 3월 24일 저녁, 오 목사가 근무하는 고양시 일산동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1층짜리 상가에 있었다. 간판도 없고 내부는 커튼으로 가려 있어 외지 사람은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길이 없다. 오죽했으면 "컴퓨터 고쳐 주는 곳"이냐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을까.

사무실은 3.8평 규모로 아담했다. 창틀 밑 횡으로 뻗은 테이블 위에는 모니터 5대가 놓여 있고, 바로 뒤에는 회의용 탁자가 있다. 기자가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까지 오 목사는 업무 중이었다. 하루 평균 12시간 일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급 노가다'를 하는 셈이다.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눴다. 오 목사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원래 <뉴스앤조이> 기사는 안 봤어요. 몸담고 있는 기성 교회를 자꾸 '까니' 싫었죠. 집안일을 외부에 동네방네 떠들어 가면서까지 해결하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집안일은 집안에서 해결하자는 주의였어요.

그런데 저 같이 조용히 있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보면 <뉴스앤조이>처럼 사회에 관심 많은 집단이 있어야 해요. 잘못된 교회 모습을 '그건 아니야!'라고 이야기해 줘야죠. 그게 선지자 역할이라고 봐요."

▲ 나음과이음 디자인 사무실 내부 모습. 오 목사는 이곳에서 청년 파트너들과 함께 일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기성 교회를 박차고 나온 이유

오 목사는 1995년 총신대에 입학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학했지만 학교생활은 기대만큼 재밌지 않았다. 칼빈주의 신학은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이 기조라고 들었는데, 총신에서 '신문'은 뒷전이었다. 오 목사는 '인간 복제'를 주제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다. 당시 복제 양 '돌리', 복제 송아지 '영롱이'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오 목사 논문에 코멘트해 줄 수 있는 교수들은 없었다.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교회와 신학교의 언어·이야기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는 경제·사회·과학 그리고 기독교·교회와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신학교는 이 부분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24살 때부터 기성 교회에서 사역해 온 오 목사는 2012년 12월 교회 사역을 그만뒀다. 당시 나이 38살. 세 아이를 둔 가장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사임하기 전 아내에게 가장 먼저 동의를 구했다.

"마흔 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줘."

다행히 아내는 오 목사의 뜻을 존중해 줬다. 오 목사의 부모도 그를 지지했다.
사임을 하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나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역과 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개척도 잠깐 생각했지만, 최소 1~2억 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접었다.

"한국교회에 (목회자) 수급 불균형이 일어난 지 오래에요. 박사 학위 받으러 외국 나갔던 신학대 친구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어요. 자리가 없으니까. 어떤 교회는 세습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교차 세습하잖아요.

누군가는 기도 많이 해야 하나님이 은혜 주고, 좋은 임지 얻을 수 있다고 말해요. 사실과 다르잖아요. 기도하지 않아도 줄만 잘 서면 길이 열려요. 배경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면 목회하는 데 문제가 없죠. 하지만 저 같은 소위 흙수저는 갈 데가 없죠."

오 목사는 마지막 사역지에서 한 가지 영감을 얻었다. 중형 교회에 속했던 그 교회는 수십 개가 넘는 시골 교회들을 돕고 있다. 각 부서별로 1년에 10번 이상 찾아가 후원도 하고, 마을 잔치도 열어 준다. 오 목사는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가 상생할 수 있는 지점이 없을까 고민했다. 사임 이후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도시와 농촌 교회가 서로 교류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6개월간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경비가 필요했다. 과거 교회에서 홍보 사역을 했던 경험을 살려, 시골 교회 인쇄물을 만들어 줬다. 사진도 찍고, 홈페이지도 개설해 줬다. 수입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자비량이 시작됐다. 2013년 5월, '나음과이음'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 오 목사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고 있었다.

일터=교회, 업무=사역

▲ 오재호 목사는 나음과이음 디자인 대표다. 그의 사역은 자비량 목회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터 반경 1km 안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수요가 필요했다. 교회 문을 두드렸다. "작은 교회들의 디자인실이 되어 드리겠다", "교회 바깥에서 사역하는 교역자로 생각하고 업무를 맡겨 달라", "나음과이음이 자립해야 내가 목회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직접 만든 브로슈어 50장을 들고 선배 목사들을 찾았다. 반응은 좋았다. 선배 목사들은 고생이 많다며 오 목사를 격려했다.

응원의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동기와 후배는 "그것은 목회가 아니다, 장사하는 것이다"며 우려했다. 번듯한 예배당은 없지만, 오 목사는 '일터'가 곧 교회며, 자신이 하는 '업무'를 사역으로 이해한다.

"보통 우리는 하나님께 '어디로 가야 하나요?'고 묻는데, 저는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이곳'에 보내셨어요. 보냄받은 그 자리, 부름받은 그 자리가 현장이라고 믿어요. 이곳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님이 살았던 것처럼 실천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선교'라고 생각해요."

오 목사의 말대로 '삶의 자리'는 중요한 문제지만, 정작 한국교회는 사회 일에 관심이 없다. 오 목사는 한국교회가 현실을 외면하고, 저 너머의 천국만 사모한다고 성토했다. 부름 받은 그 자리에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교인들과 해결해 가야 하는데, 이 중요한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정 수익' 그리고 '채움 프로젝트'

나음과이음 디자인 첫 달 수입은 40만 원이었다. 수입이 적은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문제가 있었다. 오 목사는 '과연 얼마를 벌어야 되는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한 달에 1,000만 원을 번다면 이 돈 전부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오 목사는 '적정 수익'을 정했다.

적정 수익의 기준은 대략 이렇다. △성실하게 일한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가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맨날 외식하지 않더라도 한 달 한 번 탕수육을 먹을 권리는 있어야 한다.

오 목사가 구체적인 액수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적정 수익' 취지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현실은 고달프다.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먹고살기 벅차다. 오 목사는, 교회가 이러한 사회구조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구원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교인들 '일터'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저 돈 많이 벌라고 축복만 한다는 것이다.

"자비량 목회를 하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어요. 부적절한 이윤 추구, 기업들 간의 담합, 정경유착…. 부조리한 일에 교인들도 관여하고 있겠죠. 또 목회자들은 그 사람들 편들고, 기도해 주겠죠. 성실하게 일한 만큼 소득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직원은 4명뿐인 소형 회사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은 누구 못지않다. 오 목사는 버는 것보다 나누는 것에 관심이 많다. 스스로를 비워 내자는 취지로 '채움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일터 반경 1킬로미터를 교구로 생각하고, 주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집도 수리해 주고, 모금 활동도 벌인다. 말 그대로 상생과 공생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 중 오 목사가 최고로 생각하는 도움이 '고용'이다.

"음식도 사다 주고, 병원비도 지원하고, 학원비도 내 주고, 집도 고쳐 주는 등 여러 일을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주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필요하더라구요. 회사 수익이 생기면 쌓아 두지 않고, 함께 일할 수 있는 '파트너'를 모집했어요. 특히 청년 일자리가 큰 문제잖아요. 이들을 조금이라도 돕는 게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복음은 영혼 구혼이자, 사회 개혁"

▲ 오 목사에게 복음이란 영혼 구원이자, 사회 개혁이다. 개혁은 교회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다. 나음과이음 디자인은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나음과이음 디자인 홈페이지 갈무리)

오 목사는 클라우드처치 공동목회자 중 한 명이다. 총신대 동기 박영범 전도사와 공동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다. 교회는 오 목사 가정을 포함해 세 가정이 전부다. 일요일 오후 2시에 예배하는데, 늦은 밤에 끝날 때가 많다. 말씀을 묵상하고, 교제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클라우드처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로 본다. 어린아이도 하나의 교회고, 어른도 하나의 교회다. '집단 군중체'인 셈이다.

오 목사는 자신이 하는 일과 목회에 구분이 없다고 말한다. 일 자체를 예배로 생각한다. 복음도 전해야 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 목사가 말했다.

"복음이 과연 뭘까요. 대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뭉뚱그려서 이해할 텐데요, 복음은 영혼 구원이자, 사회 개혁이라고 생각해요. 청년 문제에 응답하라고 저를 이곳에 보냈다고 생각해요.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이 현장에 보내 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일(사역)할 생각입니다. 이게 클라우드처치의 사명이에요.“

오재호 목사에게는 꿈이 있다. 디자인 회사를 혼자가 아닌 함께 일하는 청년들과 공동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집이 없는 이들에게 집을 나눠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500평 규모에 스무 가정이 사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오늘도 땀흘린다. 사회에서 실패한 이들의 자활을 돕는 사람, 그게 오 목사의 비전이다.

▲ 3.8평 사무실은 오재호 목사의 일터이자 예배당이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사역)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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