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3월 22일 오전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사건 직후, IS(이슬람국가)는 이 테러가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작년 11월 파리 테러의 참상이 잊히기도 전에 들려온 테러 소식은 한국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국내에 들어오는 무슬림 중에 IS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번지고, 이슬람 혐오로 이어진다.

한국교회는 이보다 한술 더 떠서 '기독교 vs. 이슬람' 구도를 그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이 이슬람화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작년부터 일부 개신교계에서는 정부의 할랄 식품 단지 조성을 반대하고 테러방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슬람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시위가 열렸고, 교회 단체 채팅방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시기에 청어람아카데미(양희송 대표)가 이슬람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3월 24일 한겨레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세미나는 '이슬람, 어떤 얼굴로 만날 것인가'라는 주제로 한국교회의 이슬람포비아 현상을 조명했다.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와 김동문 목사(중동 선교사·저널리스트)가 발제했다. 60여 명이 모여 강의를 경청했다. 기독 청년부터 목사, 선교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 청어람아카데미가 3월 24일 한국교회 내 이슬람포비아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여전한 논란,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김선욱 교수는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의 책 <알라>(IVP)에 대한 서평을 중심으로 발제했다. 그는 강의 전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가 같은가'라는 볼프 교수의 질문이 한국교회에 상당히 무거운 주제인 점을 언급했다. 기독교 신앙을 위해 순교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있고, 그 전통 위에 있는 한국교회에서 이런 주제는 민감하고,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럼에도 크로아티아인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겪으며 종족 간 살육을 경험했던 볼프 교수가 종교 간 화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충분히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알라>에서 보여 준 치밀한 논리 전개는 설득력이 높다고 했다.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볼프 교수의 주장은 전체적으로 건전하다고 평가했다.

볼프 교수는 책에서 △신은 오직 한 분이다 △신은 신이 아닌 모든 것을 창조했다 △신은 신이 아닌 모든 것과 다르다 △신은 선하시다 △신은 우리에게 모든 존재를 다해 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신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이를 근거로 양쪽에서 섬기는 신은 같다고 논리를 펼쳐 나간다.

▲ 세미나에는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 목사, 선교사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물론 큰 장애물(근본적 불일치)로 보이는 게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다. 이슬람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선욱 교수는 무슬림이 주장하는 신의 단일성은 기독교인들도 철저히 믿는 바라고 설명했다.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해서 신이 셋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인은 무슬림이 비판하는 것과 같은 삼위일체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인들도 그런 이해를 함께 비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이해하는 삼위일체 관념을 제대로 무슬림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슬람의 신관이 기독교의 신관과 충돌할 이유는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슬람의 근본 속성 가운데 '폭력'이 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알라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김선욱 교수는 이를 근거로 이슬람의 신이 폭력적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했다. 무슬림 중 테러 집단은 극소수이며, 절대 다수의 무슬림은 테러를 비난한다. 또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 또한 폭력의 종교라는 명제에서 비껴 나갈 수 없다.

볼프 교수는 십자군과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언급하면서 "이들은 모두 피를 부르는 힘의 신을 예배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 교수도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일삼는 테러리스트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함께 믿고 있는 사랑과 자비의 신이 아니라 다른 신을 믿고 있음이 분명해진다"고 말했다.

김선욱 교수는 볼프 교수의 말을 인용해, 세계 인구 절반이 넘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기보다 협력해야 할 일이 더 많다며, 우리가 부딪힌 진짜 문제는 수백만의 극빈층, 물 부족,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고 있는 환경, 전염병, 그리고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쾌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고 말했다.

▲ 김선욱 교수는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의 <알라>를 읽고 난 후 전보다 더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편 김 교수는 <알라>가 쓰인 환경이 한국교회 상황과 조금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볼프 교수는 '규범적 주류 기독교'와 '규범적 주류 이슬람'의 입장을 토대로 책을 썼다. '규범적'이란, 각각 성서와 코란에 확실히 기초하고, 해석과 논의의 전통을 잘 이해하는 전통 주류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슬람과의 차이만을 강조하며 공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소수파 강경 칼뱅주의자(hyper Calvinists)와 비슷하다고 했다.

또 한국교회는 구원론 중심의 신앙이 강해서 이런 논의 자체를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선욱 교수는 <알라>를 읽지 않은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책을 읽었을 때 다원주의적이 된다거나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슬람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면서,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더욱 고찰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김 교수의 발제가 끝나고 사회를 본 청어람 양희송 대표도 덧붙였다. 볼프 교수는 미국 복음주의권에 많은 기여를 한 신학자다. 그런 사람이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단지 '기독교의 신과 이슬람의 신이 같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제 이 정도의 논의를 할 때가 되었다는 과감한 제안인 것 같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이 논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볼프 교수의 제안이 의미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왜 팩트에 기반한 논쟁은 하지 못하나

김동문 목사는 이슬람 자체에 대해 논하기보다 한국교회에 퍼졌던 이슬람 관련 루머들을 정리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작업을 했다. 이를 근거로 과연 한국교회가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결론지었다.

2~3년 전부터 지금까지 개신교 내에 돌았던 이슬람 괴담 중 김 목사가 예로 든 것만 10개가 넘었다. △아프간 선교사 사형 판결 특별 기도 요청ISIS를 둘러싼 긴급 기도 제목한국의 이슬람화를 위해 태극기 옷 입고 기도하는 무슬림IS 성직자의 크리스천 가정 아기 살해쾰른 집단 성폭행과 무슬림의 타하루시스위스 국기까지 바꾸려 한 무슬림들눈과 입에 바느질 당한 사우디 소녀서울대에서 기도 방해했다고 교수를 처형하겠다는 무슬림들 교회 십자가 떼어 낸 김해 무슬림들 익산 할랄 식품 단지 반대 서명운동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

이슬람 관련 루머는 SNS를 타고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또 전직 국회의원이나 국정원 간부가 이런 루머를 마치 기정사실처럼 공식석상에서 말하고 다녀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위에 적어 놓은 것은 모두 거짓이다. 이에 대한 팩트 체크는 <뉴스앤조이> 기사와 김동문 목사가 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김동문 목사는 수년 전부터 기독교계에서 이슬람에 관한 소문이 돌 때, 일일이 원출처를 찾아가며 팩트를 체크하는 작업을 해 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동문 목사는 "체크해 본 결과 모두 사실무근, 날조, 왜곡이었다. 코란을 해석하는 부분도 맥락 없이 딱 그 구절만 떼어놓고 해석한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성경도 폭력을 조장하는 내용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한국교회 공포감의 실체다. 한국교회에서 만든 이야기다"고 했다.

"실제 일어난 일을 가지고 비판하면 되는데, 왜 그런 건 하지 않고 이런 날조된 주장만 반복하는가. 왜 한국교회는 근거 있는 논쟁, 건설적인 대화를 하지 못할까. 누가 무엇을 추구하기에 이런 루머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것인가. 우리는 실체가 있는 두려움조차도 신앙으로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런 식의 기도는 할수록 두려움과 미움만 커진다.

이슬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무슬림 인구 수조차도 모두 추정치에 불과하다. '한국 기독교계'라고 할 때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이슬람을 IS와 같은 극단주의자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허상들을 먼저 제거한 다음, 이슬람의 위치를 조금 공정하게 만든 다음에야 이슬람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체 있는 두려움도 있다

두 사람의 강의가 끝난 후 참가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한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하고 있다는 목사가 김동문 목사에게 물었다. 김 목사의 주장은 한국교회의 이슬람포비아가 대부분 실체 없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인데, 세계 곳곳에서 IS의 테러가 터지는 현실에서 과연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을 '실체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동문 목사는 답했다.

"나는 테러·내전 현장에 있어 봤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총알이 왔다 갔다 하고 건물이 무너지는 현장. '테러'를 떠올리면 그때 그 상황과 함께 그 안에서 평화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무슬림들이 같이 생각난다. 그 사회에는 소수의 극단주의자도 있었고,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무슬림'을 한마디로,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할 수 없다. 나는 그들 각각 성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했다.

실체 있는 두려움, 테러의 위험을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 사건 하나로 보자. 이렇게 제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지만, 테러가 일어났다고 그걸 대다수 평범한 무슬림에게까지 적용하지는 말자. 그런 사건이 하나 일어났을 때 피해를 입는 다수의 무슬림, 그들의 황당함과 슬픔이 아직도 생각난다.

극단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IS를 일반 무슬림으로 일반화한다면, 그것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일이다. 테러 단체를 이야기한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무슬림도 이야기해야 한다. 왜 그런 평범한 무슬림의 일상과 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가."

▲ 청어람아카데미는 상반기 동안 4번의 월례 강좌를 마련했다. 양희송 대표는 강의 시작 전 혐오와 포비아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청어람은 기독교인들의 '혐오와 포비아'를 대화와 토론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자리를 올해 상반기 동안 진행할 예정이다. 4월에는 '동성애', 5월에는 '여성', 6월에는 '종북'에 대해 논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