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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슬픔 곁으로 간 시인

[인터뷰] <처럼> 펴낸 김응교 교수…실천 빠진 성찰은 윤동주가 아니다

양정지건·이은혜   기사승인 2016.03.19  17: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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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양정지건·이은혜 기자] 99년 전 태어났다. 날 때부터 제 나라가 없었다. 스물일곱 한창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남의 나라 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반년이 지나 나라를 되찾았지만, 그렇게 꿈꾸던 순간을 함께하진 못했다.

고향 땅에 묻혔다. 어디에 묻혔는지, 한동안 찾을 수 없었다. 역사는 휘몰아쳤다. 그가 묻힌 땅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쪽에 남겨진 가족에게 그곳은 금역이었다. 역사의 장난일까. 청년을 죽였던 바로 그 나라 사람이 묘소를 찾아냈다. 40년 만이었다.

평생 시를 쓰던 시인이었지만 살아서는 시집 한 권 내지 못했다. 가히 섭리라 부를 만한 곡절을 거쳐 유작이 세상에 남았다. 땅으로 돌아가고 3년이 지나서야 시집이 나왔다. 청년은 흠모하던 고요 '곁으로' 갔다. 시는 남은 우리 '곁으로' 왔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후 68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한다. 영화 '동주' 관객이 100만을 넘었다. 연극과 뮤지컬도 줄을 이어 선보인다. 그의 흔적이 남은 곳에는 문학관, 박물관이 들어섰다. 초판본 시집이 서점가 화제로 떠올랐다. '동주 열풍'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다.

윤동주 시를 매개로 그의 삶을 조명한 <처럼>(문학동네)의 저자 김응교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동주 열풍'을 우려했다. 윤동주를 우상화하고,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성찰에서 시작해 실천까지 나아갔던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김 교수가 본 윤동주는 기독교 도그마에 가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처럼', 슬픔 '곁으로' 다가가고자 몸부림쳤던 자유인이다. 슬픔 옆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이다. 갈릴리 호수에 "불리어 온 것" 자체를 이적으로 여겼던 청년이다. 그랬기에 윤동주를 알리는 일이 예수를 알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김응교 교수는 <처럼>을 집필했다.

김 교수가 근무하는 숙명여대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김 교수 입을 통해 윤동주가 건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숙명여대 인근 카페에서 김응교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처럼> 서문에 윤동주의 서시가 "슬며시 영혼에 깃들었다"고 쓰셨다. 이때의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달라.

윤동주를 알았지만 젊을 때에는 그가 했던 고민의 농도에 다다르지 못했다. 이전에는 윤동주 시를 이해 못 했다. 실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시로 우습게 얕봤다. 한국문학 전공자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만들어진 우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윤동주 시를 다 안 읽고 함부로 얘기해서 그렇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을 이해하게 되더라. 보통 사람들은 사과를 보면 눈에 보이는 사과만 보고, 간판을 보면 겉만 보는데 시인은 전체를 보는 사람이다. 자기 동일화가 중요하다. 시인의 고통과 기쁨이 나의 감정과 동일화되어야 한다.

2005년 일본에서 일본판 쌍용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도요타 사태를 지켜봤다.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으니 집, 학교, 병원 등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았다. 쌍용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2009년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온 후, 용산 철거민, 쌍용 사태 등을 접했다. 세월호 사건을 대하면서, 유족을 만나면서 죽어가는 것들이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윤동주가 썼던 "죽어가는 모든 것"이 공감되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한 구절이 나오려면, 삶이 있어야 한다.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윤동주는 서울에 올라와서 여성 노동자를 보기 시작했다. "누나의 얼굴은/해바리기 얼굴/해가 금방 뜨자/공장에 간다"('해바라기 얼굴', 1939년, <처럼> 183쪽)라고 썼었다.

평소에 '연희전문' 교모를 쓰고 다니지 않고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녔다고 여동생은 증언했다. 문익환과 찍은 사진을 보면 윤동주의 쭈글쭈글한 모자를 문익환이 쓰고 있다. 사진 찍을 때 모자를 바꾸어 쓰고 나중에 윤동주가 용정에서 문익환에게 팥죽을 샀다는 일화가 있다. 받은 혜택을 숨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윤동주를 만들어진 우상쯤으로 함부로 봤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고나서 어설피 말했던 내 시늉이 남세스러워졌다"라고 책의 앞날개에 썼다. 부끄러워졌다. 윤동주의 독서량이 엄청나다. 그가 읽었던 일본어 책을 나는 아직도 다 못 읽었다. 그의 지식 수준을 20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컴퓨터 게임하고 영화 보고 노는 요즘 세대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집중해서 <맹자>를 읽는 등 동서양 고전을 읽었던 시대였다. 지금 60대 수준으로 봐야 한다.

그렇게 서서히 윤동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즐겁게, 부끄럽게 윤동주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시를 한 편 한 편 제대로 읽어 보니 미학적으로 뛰어나다. 윤동주는 자기 시집을 만들면서 모방한 시는 넣지 않았다. 미적 잣대가 굉장히 높다.

   
▲ 학창시절 찍은 사진. 뒷줄 중앙 문익환, 오른쪽 윤동주. 문익환이 쭈글쭈글한 모자를 쓰고 있다. 본래는 윤동주의 모자다. 윤동주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문익환과 모자를 바꿔 쓴 다음 사진을 찍었다.

- 올해 들어 영화, 다큐 등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윤동주 열풍'이라 할 만하다. 이 과정을 보시면서 걱정되는 게 있으신지.

첫째, 윤동주가 우상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우상은 그를 따라 실천하지 않고 맹종하는 거다. 껍데기를 맹종한다. 우상은 주체와 거리가 있지만, 친구는 함께 대화하고 함께 곁으로 간다. 윤동주는 멀리 있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곁으로 가는 친구다.

키 175센티 이상의 수려한 외모를 가졌다. 깔끔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친일 작가들 작품이 많이 실렸던 국정교과서 시대에 우상화되었다. 윤동주와 이육사 정도만 교과서에 넣고 노천명, 서정주, 염상섭, 현진건 등 친일 시인 작품을 교과서에 채워 놓았다. 박정희가 이순신 동상을 만들고, 이명박이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었듯이, 거짓 세력이 윤동주 시를 우상화하고 면죄부를 받으려 한 부분이 있다.

기독교에서도 그를 우상화하는 측면이 있다. 윤동주는 현재 한국교회 형식에 갇히지 않는 사람이다. 윤동주는 예수를 가장 좋아한 사람이다. 몇몇 신문은 윤동주가 '기독교 작가'라며 강조하고 있다. 지금 살아 있다면 윤동주는 큰 교단의 장로님이 되어 있을까. 윤동주는 헌금 액수나 예배 참여 횟수를 신앙의 척도로 생각하는 초등학교 수준의 교회와 거리가 있다.

그는 '예수' 그 본질을 따르려 했다. 예언자의 징표인 "종소리도 울리지 않는"('십자가', <처럼> 300쪽) 교회에 실망하여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다만 행복한 예수의 길을 따르는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갈 가능성도 크다. 윤동주를 기독교에 가두는 것은, 예수를 시멘트 교회 건물에 가두는 것과 유사하다. 윤동주가 제일 싫어했을 사람들이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고 말한다. 현재 선거 기간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둘째는 상품화가 염려된다. 아직 완벽한 윤동주 시 정본이 없다. 시집이 많이 왜곡돼 있다. 1948년에 나온 판본은 윤동주를 알리고자 수정하여 낸 책이다. 윤동주가 만든 시어(詩語)나 함경도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꿔 버렸다. 윤동주 시집에 정작 윤동주가 죽어 있다.

내 책도 1쇄, 2쇄에 차이가 있다. 목차 보면 "햇비"라는 표현이 있는데, 윤동주가 만든 단어다. 여우비라고 하는 비다. 해비라는 말이 있는데 윤동주가 일부러 ㅅ을 넣었다. 모든 시에 의도가 있다. 그런 걸 살려 줘야 한다. 윤동주가 만든 신조어, 함경도 사투리 같은 것은 살려 줘야 한다. 표준어로 바꾸면 맛이 떨어진다.

   
▲ 김응교 교수는 지난달, 시를 중심으로 윤동주의 삶을 정리한 평전 <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문학동네)를 출간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최근에 나오는 시집은 윤동주 시 전체가 아닌 일부다. 또한 윤동주 시는 가나다순으로 편집하면 안 되고 연대별로 나열해야 한다. 그래야 시를 읽는 독자들 의식이 변한다. 윤동주는 시를 쓰며 항상 날짜를 기록했다. 가령 시 <참회록>은 끝에 '1942년 1월 24일'이라고 써 있다. 윤동주는 '1월 29일'에 창씨개명 했으니 5일 전에 쓴 시다. 곧 시를 쓴 연대 자체가 시를 쓴 배경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시집에는 그게 없다. 정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세 번째 걱정은 윤동주를 왜곡하는 것이다. 윤동주 삶의 핵심은 자기 성찰에 끝나지 않고 실천과 이어져 있다. 그의 시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윤동주의 시를 자기 성찰의 시라고만 묘사한다. 언론과 인터뷰할 때 여기까지 얘기해도 자기 성찰 부분만 싣는다.

윤동주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자기 성찰에 머물면 안 된다. 친구들은 윤동주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줌마가 있으면 뒤에서 밀어주고, 앉아서 쉬는 농부가 있으면 곁에서 대화하곤 했었다고 증언했다.

윤동주 시집에 공감한다면, 세월호 현장에 찾아가고, 늙은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한 통 드리고, 독거 노인한테 반찬을 갖다 주거나 아프리카에 돈을 보낼 수도 있다. 윤동주를 읽고 아무 실천이 없다면, 윤동주를 단지 유행의 한 가지로 소비하고 즐겼다는 말이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왜곡하는 게 염려가 된다. 윤동주 시를 생각할 때 '큰 고요'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내 책 <곁으로>(새물결플러스)라는 제목도 윤동주 시 '병원'에서 착상을 얻었다. 성경에 '곁에'는 나쁜 맥락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곁으로'는 좋은 맥락이 많다. 예를 들면 아이 곁으로 다가가고, 내 곁으로 오라든지. 예수님이 약자 곁으로 다가간다. 윤동주 시에는 '병원'에서 빈 침상에 곁으로 가서 누워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 '병원', 1940.12. <처럼> 281쪽)

자기 성찰과 실천의 일치를 말한다. '큰 고요'(자기 성찰)를 품고 '곁으로'(실천) 가야 한다. 큰 고요만 강조하면 윤동주의 뜻이 왜곡되기 쉽다. 자기 성찰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빠진 성찰은 공허할 뿐이다.

- 윤동주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배경에 그가 보낸 특별한 어린 시절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명동마을에는 김약연 목사로 대표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맞다. 명희조 선생의 영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영화 '동주'에서는 송몽규를 강조하다 보니 명희조 선생을 강조했다. 윤동주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명동학교는 정재면 선생 같은 가장 현대적인 정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도 모셔 왔다. 김약연 목사 자신은 유학의 대가였다. <맹자>를 달달 외웠다는 관북 지역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근대 학문의 성과물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걸 배웠다.

용정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을 한 것이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맹자를 공부했다. 맹자가 어떤 사람인가.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단어가 <맹자>에 처음 나왔다. 조선 시대의 금서였다. 그런 책을 마음대로 외우고, 영어, 러시아어를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공부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라는 성경에 의지해 어마어마한 학문에 접근했다.

강원용, 문익환, 송몽규, 정일곤 같은 사람들이 김약연 제자다. 한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 뒤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면 그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유가 없는 교육 환경에서 제대로 된 사람이 나올 리 만무하다. 사상적인 자유함 속에서 공부한 인물들이 어떻게 자라나는가.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그 환경에서 싹튼 것이다.

사과 하나가 만들어지려면 바람, 햇빛, 뿌리, 물, 그 모든 것이 함께 일한다. 맘껏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명동마을에서 성장했기에,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윤동주의 신앙에서 한국교회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윤동주 시에는 대부분 성경 말씀이 숨어 있지만 기독교의 도그마에 갇혀 있지는 않다. 윤동주는 교리와 형식에 가둬지는 사람이 아니다. '이적'이라는 시가 있다. 갈릴리호수를 걸으셨던 예수에 대한 시다. 이 장면을 모티브로 쓴 시가 많다. 정지용은 그 이야기 그대로를 시로 썼다. 박목월은 예수님이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어머니 마음에 비유했다.

윤동주의 '이적'은 21살 때 쓴 시다. 윤동주는 부르는 이가 없어도 갈릴리에 와 있는 것 자체가 이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든 감사하다는 것이다.

내사 이 호수가로
부르는 이 없이
불리어 온 것은
참말 이적(異蹟)이외다
- 윤동주, '이적'에서(<처럼> 203쪽)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다. 내가 물 위를 걸어야 축복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부르지 않아도, 예수를 알지 못해도, 호수 근처에 온 것만으로 이적이라는 것이다. 부르는 이 없이 그냥 여기 불려 온 것만 해도 이적이라는 고백이다. 빠져 죽어도,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굉장히 놀랐다. 물 위를 걸어야, 돈을 벌어야, 합격을 하는 것이 이적이 아니라, 그저 이 불안한 호수가에 부르는 이 없어도 온 것 자체가 '이적'이라는 실존록적 고백이다. 전혀 다른 차원의 신앙고백이다. 예수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난 가겠다는 의지다. 주기도문과 축도가 끝난 다음, 진짜 산 예배를 드리려 애를 쓴 사람의 고백이다.

윤동주 신앙의 핵심은 '팔복'에 있다. <처럼>(263쪽)에서 '팔복'은 지금까지의 해석과 전혀 다르다. 기존 연구는 풍자시, 저주의 시로 봤다. 그러나 시를 쓴 연대를 눈여겨봐야 한다. 1940년 12월, '팔복', '병원', '위로' 세 편의 시를 썼다. 긴 침묵을 깨고 쓴 시다. 윤동주의 세계가 크게 도약했다는 첫 증거가 '팔복'이다.

윤동주는 슬픔 '곁으로' 가는 것이 복이 있다 말한다. 세월호 '곁에' 가서 슬퍼하면 복이 있다는 말이다. 한병철의 <피로 사회>를 보면 남과 피로를 나눌 때 회춘(回春)한다는 말이 나온다. 피터 한트케(P. Hantke)는 '피로에 대한 시론'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면 그 피로는 우리의 삶에 힘을 주는 '우리-피로'로 바뀐다고 했다. 슬픔과 함께 나누면 그것은 '우리-피로'를 거쳐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수가 말씀하신 팔복이 그게 아닌가.

   
▲  김 교수는 윤동주가 무엇보다 슬픔 '곁으로' 가서 함께 슬퍼하는 것을 복이라 여겼다고 말한다. ⓒ황문성

예수의 행복론은 "돈 많이 벌어 헌금 많이 내라"는 게 아니다.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가 행복이다. 부활하신 예수가 처음으로 간 곳이 갈릴리다. 그들에게 가서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다.

'팔복'을 이렇게 봐야 하는데 엉뚱하게 풍자시로 해석한다. 윤동주의 행복론은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 헤겔이 말한 것과 차이가 있다. 오랜 시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내가 고민했던 거를 윤동주는 20대에 알았던 거다. 나는 30대, 40대에 알았다. 자기 동일화가 있어야 시를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이 느끼는 것만큼 느끼지 못하면 절대 시를 이해할 수 없다.

- 다른 평전과 달리 굉장히 쉽게 읽혔다. 말도 쉽고, 시를 매개로 쓰셔서 흡입력 있게 읽어 내려갔다. 쉬운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쳤을 것 같다.

글을 쓸 때 핵심 독자가 누구인지 포커스를 잡아야 한다. <그늘>(문학동네)과 <곁으로>은 지식인을 포커스한 거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 <그늘>로 말을 걸고 싶었다. <곁으로>는 일반 대중들을 염두하고 썼다. <처럼>은 더 많이 읽히고 싶었다. 인터뷰할 때 윤동주만 말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책 홍보보다 어떤 방식이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윤동주의 마음이 널리 퍼지고, 우리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이 급하다고 무심결에 생각하는 모양이다.

윤동주 앞에서는 진보, 보수가 없다. 남녀노소가 없다. 초등학교 가면 윤동주의 동시를 가지고 강의한다. 아이들이 윤동주 동시를 함께 노래하며 좋아한다. 소망교회 등 노인대학에서 강연할 때 일본 말 자료를 보면 노인께서 같은 세대의 추억을 생각하셨는지 눈물 흘리시며 듣는 것을 보았다.

책을 쓰며 쉬운 글을 쓰려 했던 조지 오웰을 많이 생각했다. 최고 명문인 이튼스쿨을 나와서 왜 그렇게 쉬운 말로 <동물 농장>을 썼을까. <처럼>을 쓸 때, 미8군 동네에서 함께 태어나고 자랐던 아잇적 친구들이 읽어 줬으면 했다. 그 친구들에게 윤동주 이야기를 선물로 주고 싶었다. 조지 오웰처럼 책을 쉽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처럼>의 초고를 우체국 직원, 지하철 노조원, 주부, 선생 등 여러 분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조금이라도 먹물 티가 난다거나 어려운 부분에 밑줄을 그어 달라고 했는데 많이 체크해 주셨다.

십여 년 후 고칠 수 있다면, 이번 책에서 못 다룬 시들이 많아서 개정판은 두 권으로 나오더라도 윤동주 시 전체를 다 다루고 싶다. 이번에 다룬 시가 1/3밖에 안 된다. 윤동주의 마음이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윤동주를 기억하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2월 16일은 윤동주가 죽은 날이다. 7월 14일은 윤동주가 체포된 날이다. 이날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지 다짐하는 날이다.

기독교 주류에 대한 새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 그저 이름만 유명한 큰 교회 목사들은 기독교 주류가 아니다. 주기철, 윤동주, 김교신, 전태일, 장기려, 장준하, 문익환 같은 분들을 주류로 세워야 한다. 이번 책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 100편 넘는 윤동주의 시 중에서 독자에게 한 편만 소개해 준다면.

연희전문 입학하기 전인 1937년경에 쓴 '반딧불'이라는 시가 있다.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이 시를 보면 자기 자신이 조각이 나서 그믐밤처럼 야위어지더라도 반딧불처럼 빛나겠다는 독특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 김응교 교수는 윤동주가 1937년경에 쓴 시 '반딧불'을 소개했다. 사진은 김 교수가 친필로 쓴 '반딧불' 전문. ⓒ뉴스앤조이 강동석

연희전문 가기 전에 마음이 밝았는데 가고 나서 마음이 무너졌다. 윤동주의 시 '해바라기 얼굴'에 "일터에 간다"는 구절이 있다. 여자가 공장에 가는 걸 서울 와서 처음 본 거다.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간다.

- 윤동주 시가 세상에 알려진 과정이 신비롭고, 하나님의 섭리나 역사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공부하면서 놀라는 적이 많다. '조개껍질'이라는 시가 있다. 시를 연구할 땐, 시가 쓰인 연도 뿐만 아니라 메모까지 다 봐야 한다. 조개껍질 육필 원고 메모를 확대하면 "봉수리에서"라고 적혀 있다. 윤동주가 평양에서 숭실학교를 다녔다. 숭실학교는 수업 외에도 방학 때 꼭 봉사 활동을 해야 하는데, 윤동주는 대동강변에 있는 봉수리에서 문익환과 겨울 성경 학교를 도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북한에 첫 교회로 그곳에 봉수교회가 세워졌다. 문익환과 윤동주가 겨울 성경 학교를 도왔던 곳에 북한의 첫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우연일지 모르나 기분이 묘했다.

윤동주와 정지용의 관계로 놀라웠다. 연희전문 학생이었을 때 윤동주는 이화여전 교수였던 정지용을 찾아갔다. 정작 정지용은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윤동주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정지용의 아드님이 글을 남겼다. 나중에 정지용은 윤동주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1948년에 나온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 윤동주를 "얼음 아래 잉어"라고 표현했다.

일본 도지샤 대학에 윤동주, 정지용 시비가 있는데, 그 옆에 연못이 있다. 세미나 때문에 도지샤대학에 갔다가 우연히 시비 옆 연못 안에 있는 두 마리 잉어를 보았다. 정지용의 표현이 생각나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인생에 주어진 사명 중 하나가 윤동주를 널리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힘들지만 윤동주에 대해 강연해 달라고 하면 되도록 가려고 한다. 윤동주의 삶과 시 속에 예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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