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전남 순천은 20대 총선 격전지 중 한 곳이다. 현 지역구 의원은 이정현 의원(새누리당)이지만, 야당 예비후보들 기세가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노관규·김광진 예비후보는 경선을 앞두고 있다. 승자는 이정현 의원과 맞붙는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두 후보는 이 의원과의 가상 대결에서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2011년까지 순천시장을 지낸 노 예비후보는 이 의원 지지율보다 8% 높게 나왔다.

노관규 예비후보(55세)는 '고졸 신화'로 불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문턱도 밟지 못했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1년간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이후 세무 공무원으로 8년간 지냈고,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33살, 검사가 됐다.

▲ 순천의 한 교회에서 노관규 예비후보를 만났다. 노 예비후보는 매일 저녁 선거운동이 끝나는 대로 교회를 찾아 하나님께 겸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997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로 있으면서 한보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고, 1998년 특수부 검사 시절에는 의정부 법조 비리를 수사하며 이름을 떨쳤다. 당시 노 검사의 수사 결과, 의정부 지원 소속 판사 8명이 옷을 벗었다. 나머지 판사 30명도 전원 다른 지역으로 전보됐다. 과거 구로공단에서 작두 작업을 했는데, 이때 '노작두'라는 별명을 얻었다.

검사 생활은 길지 않았다. 독특한 이력을 눈여겨본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애당초 정치에 관심은 많지 않았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치에 입문한 노 예비후보는 배고픈 사람은 있어도, 배 '아픈' 사람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노 예비후보는 신앙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신과 두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견딜 만한 아픔을 주신다'고 믿었다. 공단에서 일할 때도 교회에 빠지지 않았다. 검사로 재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3월 15일 저녁 8시, 순천의 한 교회에서 노관규 예비후보를 만났다. 매일 저녁 선거운동이 끝나는 대로 교회를 찾아 감사 기도를 한다. 노 예비후보는 "겸손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만해지면 엎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순천시장 재임에 성공한 노 예비후보는 2012년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 예비후보는 국회에 진입하면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회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승자 독식 경제구조를 바꾸고, 대기업 중심 문화도 바꿀 것이라고 했다. 능력이 있어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아래는 노관규 예비후보와의 일문일답.

▲ 노 예비후보는 기회를 빼앗겨 배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공단 직원, 세무 공무원, 특수부 검사, 순천시장 등 다양한 일을 해 왔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뭔가.

공평·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다. 나만의 정치 '철학'과 세상을 보는 '눈'으로 대한민국의 질서를 만들고 싶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국회의원과 대통령만 할 수 있다.

- 정치 '철학'과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배고픈 것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배고픈 것도 문제지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가진 재산에 따라 차별받는 시대가 됐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온다. 이제는 배고픈 것뿐 아니라, 기회를 빼앗겨 배가 아프게 된 사람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혜택은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기회를 빼앗긴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구조도 개혁하고, 공평·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 중 '수저 계급'을 타파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맞다. 내가 청년 시절일 때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바늘귀 만한 구멍이 있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바늘귀 구멍마저 닫혔다. 사회 장벽은 나 때보다 훨씬 높아졌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가 누구냐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됐다. 공정한 룰이 없다 보니, 젊은이들은 주저앉아 버린다. 대한민국 미래가 주저앉는 것으로 봐야 한다.

- 2월 29일 더불어민주당 공천 심사 공개 면접에서 사회에 제도적 장벽이 많다며, 이를 걷어 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가장 먼저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대기업은 '비만'이다. 사내 보유금만 700조나 쌓아 놓고 있다. 기업들이 일정 기간 안에 사내 보유금을 쓰지 않으면 국가가 일정 정도는 환수해야 한다고 본다. 700조 중에 70조만 써도 청년 실업 해결한다. 대기업에 돈은 쌓여 가지만, 중소 도시민과 농민들은 돈이 안 돌아서 난리다.

복지 영역도 확대해야 한다. 자치단체장 두 번 해 보니까 절실히 느끼는 점이다. 사람들이 군소 도시에서 대도시로 몰려가는 형국이다. 순천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이다. 농촌에 남아 있는 사람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자식들은 보험 역할을 할 수가 없고, 노후 대비책도 없다. 국가가 이들을 케어해야 한다. 정부는 예산이 없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 복지 정책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오히려 전체 사회비용도 줄일 수 있다.

▲ 노 예비후보는 순천시장 재임 중 19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낙선한 이후 2년간 순천 전 지역을 돌면서 시민들 목소리를 들었다. (사진 제공 노관규)

- 순천시장 재임 중 19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국제 정원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인정한다. 절대 잘한 일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국제 정원 박람회는 돈 벌 목적으로 시행한 게 아니다. 생태·환경 프로젝트가 지역 경제를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러나 순천시장이 가진 힘만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앙정부가 지원을 해 주지 않으니 방도가 없었다.

순천을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박람회 역할이 중요했다. 이를 살리기 위해 국회의원에 나섰지만, 시민들은 받아 주지 않았다. 임기를 못 채운 것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철저하게 반성했다.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2년간 배낭 메고 순천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국회에 입성하면 가장 먼저 발의하고 싶은 법안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경제민주화다. 지금의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생태와 환경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 기반이 될 것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정원 박람회도 장기적으로 끌어안고 갈 것이다. 세계 자연 문화 도시를 그리고 있는데, 기간은 10~20년으로 보고 있다.

- 청년 실업, 자살, 노후, 빈부 격차, 빈곤 등 사회문제가 수두룩하다.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문제점이 있는가.

청년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어렸을 때 피자 한 번 못 먹었지만, 불행하다고 느껴 본 적 없다. 지금은 다르다. 두 아이 아버지 입장에서 봤을 때 지금 애들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서른 살까지 백수로 지내지 않을까 걱정한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겁먹는다.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만큼 사회 풍토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른들 책임이다. 아이들 잘 먹이고, 옷 잘 입히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영화 '내부자들'을 보고 뜨끔한 적이 있다. 언론, 수사기관, 정·재계의 유착 관계가 문제라고 의식도 못 하고 살았다. (영화가) 황당한 소설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분명한 것은 예전에 비해 사회적 문제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불공정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은 미리 포기해 버린다. 해도 안 되는 것을 아니까. 기득권에게는 어떻게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노관규 예비후보는 현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페이스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이 맺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반대하며 1인 시위도 했다.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합의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이분들이 언제 돈 달라고 했는가.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원했다. 돈이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분들이 그 돈으로 뭐하겠는가. 힘없는 작은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합의는)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고 생각한다.

-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 관계가 경색됐다. 최근 개성공단까지 중단됐다.

나는 북한을 집안의 '망나니' 동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감싸 안고, 호되게 나무라야 한다. 말 안 들으니,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 겁준다고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자존심을 세워 주며 끌고 나가야 한다. 집권 세력이 북한을 '을'로 보는 것 같은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개성공단 폐쇄는 악수였다. 악수에 대한 비용은 젊은이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 됐다. 남북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돈 갖다 바쳐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핵개발을) 유도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 신앙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관심은 갈수록 줄고 있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한국교회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관심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한편의 드라마였다. 침수되는 과정을 생중계하며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를 쏟아 냈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잘 먹고 잘사는 것만 신경 쓰다가 기본을 잃어버렸다.

한국교회는 (세월호 피해자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지금 바닷속에는 아직도 9명이 있다. 교회는 이웃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실을 밝혀내려는 분들을 '좌'(파)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 해서 이상한 집단의 영향을 받았다고 호도해서도 안 된다. 그분들이 받았을 상처를 바라봐야 한다.

- 페이스북에 "전 크리스천입니다. 개독교라고 욕도 듣지요. 그러나 제가 본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세상의 빛이 되고 싶어 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세상의 약자들을 위로하고 감싸 안으신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라고 썼다. 오늘날 세상의 약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굉장히 다양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세월호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도 해당한다. 또, 자본가들보다 아무래도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해당될 것이다. 나이로 따지면 청년과 노인들이다. 장애인과 극한 빈민들도 있다. 사회적 약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사회적인 약자는 기회 한 번 가져 보지 못한 분들이다. 내 권리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이다.

- 본인이 생각하는 하나님나라는 무엇인가. 정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나라는 공평·공정한 세상이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는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똑같이 예배하고 은혜 받지 않는가. 밖에서도 똑같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금 사회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회가 아니다.

▲ 노 예비후보는 한국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모양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교회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교회는 양적 팽창만 추구하다가 본질을 잃어버렸다. 어렸을 때 교회에 가면 따뜻하게 품어 주고, 푸근하게 감싸 줬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화려한 건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높게 평가를 받는다. 이 문제는 돌아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돌아가신 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서로 더 많이 사랑하세요"였다. 기독교인들이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잊어버리고, 모양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질문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고 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말했듯이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말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아는 하나님은 절대 좋은 것만 주시지 않는다. 그리고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준다. 이것이야말로 공평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엎어질 때도 있지만,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신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던 것을 생각하며, 내 길을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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