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파주시 갑 지역구 예비후보 박찬규 씨를 만났다. 그는 기독교 사상가 김교신 전집을 읽으며 삶의 방향을 설정했다. 정치에 뛰어든 것도 김교신 영향이 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김교신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여름 무렵이다. 자취하는 선배 집에서 관련 책을 보게 됐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무교회주의자의 외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김교신 선생을, 총선에 나서는 박찬규 씨를 통해 다시 만났다. 박 씨는 대학 시절 김교신 전집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김교신 선생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김교신: 거대한 뿌리>(익두스)를 펴내기까지 했다. 이 책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 도서로 선정됐다.

평범한 신앙인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지 궁금했다. 3월 8일 파주시 교하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박 씨를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박 씨가 김광진·은수미 의원 인터뷰 기사를 보고 <뉴스앤조이>에 연락해 와서 성사됐다.

여의도 입성을 꿈꾸는 박찬규 씨는 올해 만으로 서른여섯이다. 자녀가 셋이다. 가진 재산이 많아 정치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아내와 출판사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만성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이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4년간 대안학교 교사로 있다가 지난해 그만뒀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기 위해서다. 더불어민주당 파주시 갑 지역구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경원시하죠. 김교신 선생님은 '해설자는 많지만, 선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저기서 훈수 두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죠. 옆에서 '야, 이게 문제야'라고 떠드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낫다고 마음먹었죠."

시골 청년, 사회문제에 눈뜨다

▲ 기독교 사상가 김교신(1901~1945). 무교회주의로 유명한 우치무라 간조에게 배웠다. 민족주의 교육가로도 알려져 있다.

박 씨는 육지의 섬으로 불리는 경북 영양 산골에서 태어났다. 10살까지 영양에서 지내다가 가족 전체가 대구로 이사했다. 부모님은 4남매를 키우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월세, 전세를 거쳐 집을 마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청소년 박찬규 눈에 비친 세상은 노력하면 꿈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셨는데, 누구보다 성실했습니다. 남들은 새벽 3시에 출근하는데 아버지는 새벽 1시에 나갔습니다. 가난했지만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죠.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정규직으로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보시기에, 대학까지 졸업한 제가 이렇게 사는 것이 이해가 안 가셨을 겁니다."

박 씨는 아주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미처 몰랐던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회과학 도서를 열독하며 운동에 투신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내면에 공허함만 커져 갔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 놓고 박 씨는 돌연 대입 시험을 다시 보기로 결정했다. 연세대 법대에 입학한 뒤 박 씨는 선교 단체 SFC(학생신앙운동)에 집중했다.

각자 삶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자는 영역 운동을 비롯해 부재자투표 운동, 정직 운동, 학교 앞 주변 문화 환경 개선 운동을 이끌었다. 손봉호·이만열 교수 등 SFC 선배들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김교신 전집을 읽으며 삶의 방향을 설정했다. 교육, 농사, 신앙, 출판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던 김교신 선생을 보며 자신도 그렇게 살겠노라 다짐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한 것도,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한 것도 바로 김교신 선생 때문이다. 정치에 뛰어든 것도 김교신 영향이 컸다.

"'누군가 말하였다. 서울 장안에서 경영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곧 쌀가게와 땔감가게라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날마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것이 먹을 곡식과 땔감이다. 그러나 서울 장안에서 가격과 저울을 속이지 않는 상인(배달부 포함)이 없으니,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정직한 상인이 있어서 안심하고 주문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일로 안심하고 받아 먹을 수 있는 우유 배달, 기생충 없는 깨끗한 채소상, 선량한 간수, 신실한 간호사, 친절한 차장 등등 그 어느 것도 큰일이 아닌 것이 없다. 이런 일들 가운데 하나라도 좋고 또 더 작은 일이라도 좋다. 한 세상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우주보다도 더 큰 사람이고 하나님의 크심과 함께 큰사람이다."
- 성서 조선 제98호 김교신의 '최대 중요 사업' 중에서

박찬규 예비후보에는 정치 영역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관심이 있어 정치를 택했을 뿐, 김교신 선생 말씀처럼 신앙인으로서 '진실하고 충실한 태도'로 정치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박 씨는 스스로 "신앙은 보수적"이라고 말한다. 삶의 근거를 성경 말씀에서 찾는다고. 또 예수가 당시 권력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를 '혁명가'로 규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죄인들에 대한 용서와 사랑에 그 방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새 한국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이 '심판자' 영역에 있고자 합니다. 저는 이러한 한국교회가 불편합니다. 교회가 가진 수많은 병폐들은 접어두고, 회칠한 무덤처럼 소수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부분에 대해 예수께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 '네 눈의 들보부터 빼라'고 하지 않을까요."

출산 문제부터 해결해야

▲ 박찬규 예비후보는 정치권이 불신으로 팽배해 있지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다둥이 아빠답게 박 씨가 가장 관심을 갖는 사회문제는 출산·육아다. 그는 이 문제가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보다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2050년이 되면 인구 부양 비율이 1:2가 된다. 소득 활동을 하는 사람 1명이 노인 2명을 책임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없는데, 세수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당면 과제지만 지금 국회의원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박 후보가 바라본 정치권은 불신으로 팽배해 있고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상호 설득 작업을 통해 이뤄가야 할 의회정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박 씨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적어도 10% 이상 의원은 당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과 연대해 국회를 바꿔 나갈 생각입니다."

여의도 입성을 꿈꾸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정치 경력도 짧고, 인맥도 부족하다. 함께 경선을 치르는 예비후보만 3명이고, 이 중 한 명은 현역 의원이다. 박 씨는 "해보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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