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은 세계 90여 국가에 있습니다. 2012년 창당한 녹색당은 국내 유일의 국제 정당입니다. 높은 물가와 비싼 월세로 청년이 살기 어려운 이 시대, 녹색당은 국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입장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아직은 추운 날씨. 2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녹색' 목도리를 동여 맨 김영준 씨(40)가 지나가는 시민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 대부분 눈길 한번 주고 슥 지나간다.

20대 총선 녹색당 서대문갑 지역구 예비후보인 김영준 씨는 홍대와 신촌에서 번갈아 가며 정당 연설을 한다. 시민들의 무관심이 아쉬울 법도 하지만 김 씨는 "괜찮다"고 말한다. 홍대와 신촌을 지나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했다. 오히려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 기성세대에 책임이 있지 않겠냐고 했다.

'하늘소년' 정치에 뛰어들다

▲ 1인조 인디밴드 '하늘소년' 김영준 씨가 20대 총선에 출마한다. 녹색당 서대문갑 지역구 예비후보인 그는 "녹색당을 홍보하기 위해 나섰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 김영준)

김영준 씨는 뮤지션이다. 밴드 활동을 해 온 그는 2012년 1인조 인디밴드 '하늘소년'을 만들었다. 주거·노동 문제 등으로 고난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기타 치며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하늘소년이라는 이름에는 '하늘을 보며 살겠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희년사회를꿈꾸는사람들'에서 활동하며 토지와 주거 문제에 눈을 떴다. 성경 속 희년 원리를 현실 사회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거기서 시작됐다.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전국세입자협회(전세협)를 만들었다. 전세협 사무국장으로 지내며 토지권·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했다.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과 넝마공동체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현재는 전세협 기획국장을 맡고 있다.

처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목사다. 김영준 씨도 '보통' 신앙을 가진 보수적인 기독인이었다. 그러던 중 최철호 목사(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양진일 목사(가향공동체)를 만나고, <복음과상황>을 보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신학을 깊게 공부하고 싶어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도 전공했다. 졸업 후 목사가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목회는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난의 현장에서 노래 부르다, 현실 정치로 나아가다

▲ 2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정당 연설을 하는 김 씨와 당원들의 모습. 청년 주거 문제와 기본 소득, 탈핵 등을 주제로 연설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하늘소년으로 전국 곳곳을 누비던 김영준 씨는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 집회에 갔다가 녹색당과 인연을 맺었다. 김 씨는 녹색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성경 속 예언자에 비유했다. 근본을 중요하게 여기되 직설적이라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성서의 가치관과도 통한다고 했다.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애당초 정치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반골 기질이 그를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김 씨의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김형구 선생이다. 김형구 선생은 1919년 3월 3일 강원도 이천군의 만세 시위와 1923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에 참가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녹색당으로부터 지역구에 출마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위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부모님과 예비신부도 김 씨를 응원했다. 그렇게 녹색당 예비후보가 됐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든 대통령 선거든, 선거에 임하는 이들의 최종 목표는 당선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때로는 상대방을 헐뜯고, 자신을 과대 포장한다. 그런데 김 씨에게는 승리에 대한 욕망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선이요? 당선되면 좋죠. 하지만 저도 잘 알아요. 거대 정당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도 낮고, 지지율도 별로여서 당선되기 어렵다는 것을요. 대신 저는 녹색당을 알리는 데 주력할 거예요. 이번에 당 목표가 득표율 3%예요. 달성하면 비례대표 국회의원 1명을 국회에 보낼 수가 있죠."

▲ 인터뷰 도중 김 씨가 눈을 감은 채 생각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원내에 국회의원 1명을 진입시키려고 약 8,000명의 녹색당 당원이 땀을 쏟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질문이 생겼다. 국회의원 1명을 배출해 하는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김 씨는 국회의원 1명이 녹색당 전체임을 강조했다.

"녹색당은 어느 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지 않습니다. 대의원도 추첨제로 뽑을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높죠. 다른 정당에 비해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문제 될 게 없는 구조지요. 기존 정당이 시도하지 못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비롯해 탈핵과 관련된 법들을 제정해 나갈 겁니다. 국회 안과 밖에서 열심히 하면 언젠가 변화하지 않을까요."

김 씨 설명대로 녹색당은 특정 유명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정당은 아니다. 일례로 녹색당원들은 선거에 나가는 지역구 후보들을 위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전달했다.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 1명당 기탁금 1,500만 원을 내야 한다. 

녹색당의 주요 정책은 생명·평화에 맞닿아 있다. 탈핵에너지지전환기본법, 기본 소득, 생명권·동물권 보장, 학교 안전 급식 등은 녹색당이 벌이는 운동이다. 특히 당론으로 채택한 '기본 소득'은,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하자는 정책이다. 김 씨는 "국가가 1인당 40만 원 정도 줄 수 있다. MB 시절 들어간 사자방(4대강, 자원 외교, 방산) 예산만으로도 충분히 집행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독당 출마는 이해, 콘텐츠는 별로"

▲ 김 씨가 생각하는 녹색당은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와 같다. 근본을 중요하게 여기며 직설적이다. 생명과 평화를 일등 가치로 삼는다. 녹색당 홍보에 헌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경쟁 상대 중 하나인 기독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 씨는 기독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에도 기독당이 있다면서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진짜 문제는 '콘텐츠'라고 지적했다.

"지금 기독당이 욕먹는 것은 정책 때문인 것 같아요.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주장하잖아요. 핵무기를 갖자는 게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지 묻고 싶어요.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교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됐어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교회 안에 순수한 분들이 많이 있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커요.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도 바뀔 수 있다고 믿고요."

녹록하지 않은 현실, 희망을 품다

녹색당은 정당 득표율 3%를 목표로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0.48%(10만 3,842표)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당시 기독자유민주당, 친박연합, 국민생각 등 다른 군소 정당 지지율보다 낮았다. 2014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지역구 후보 11명과 광역 비례대표 후보 12명을 내보냈으나, 1명도 당선되지 않았다.

김영준 씨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8,000명 가까이 되는 당원이 똘똘 뭉쳐 있다고 했다. 당원 1명이 100표씩만 얻어 오면, 산술적으로는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대 총선이 49일 앞으로 다가왔다.

▲ 지나가는 시민들은 정당 연설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녹색당의 정책은 생명·평화와 맞닿아 있다. 주요 총선 공약은 △탈핵에너지 전환과 기후 보호 △기본 소득과 노동 전환 △식량 주권과 안전한 먹거리 △차별 없는 평등 사회 △주거권 보장과 토지 정의 △이주민과 장애인 권리 보장 등이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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