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을 가리키는 지역을 우리는 '중동'이라고 부른다. 왜 이 지역이 중동(Middle East)일까. 지금은 의미가 좀 달라졌지만, 유럽이 동양을 구분할 때 거리에 따라 근동, 중동, 극동이라고 칭한 데에서 유래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지명으로 완전히 굳어진 중동은 그 자체로 서방세계의 시각이 깔려 있는 말이다.

한국교회 안에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슬람의 시각으로 중세 십자군 전쟁을 조명하는 강좌가 열렸다. 1월 28일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열린 양화진문화원 역사 강좌에는, 무슬림으로 알려진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강단에 섰다.

강의는 할랄 식품 단지와 같은 현재 이슈나 기독교와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랍권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는 정도였지만, 서구의 시각이 익숙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 이희수 교수가 1월 28일 양화진문화원 역사 강좌 강사로 섰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유럽을 압도했던 아랍 문화

기독교인들은 십자군 전쟁을 피의 역사로 알고 있다. 300년에 걸친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전쟁. 현대의 가톨릭이나 개신교인들은 십자군 전쟁을 로마 가톨릭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무슬림들을 학살한, 기독교 역사상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수치스러운 과거로 인식하고 있다.

이슬람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이희수 교수는, "물론 이슬람도 십자군을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종교적이며 반인륜적인 야만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기독교 대 이슬람'의 구도보다는 '기독교도끼리의 싸움'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신성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사이의 세력 다툼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전쟁'의 관점보다는, 유럽이 아랍의 선진 문화를 배운 계기로 십자군을 기억하고 있었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까지 아랍의 문명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이 자기 스스로의 콘텐츠가 없어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몽땅 흡수했다고 설명했다.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과 인도 등에서 온갖 학문과 문화를 받아들여 아랍의 문화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아랍 문명은 유럽과 비교할 수 없었다. 과학과 이성을 신학의 이름으로 억누른 중세 유럽과 달리, 이슬람은 과학을 신학의 하부 학문으로 생각해 계속해서 발전시켜 왔다. 가령, 라마단 기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이 발달했고, 매일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지리학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희수 교수는 많은 사람이 인류 문화의 전성기로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를 꼽지만, 사실 르네상스는 아랍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당시 유럽의 지성들은 아랍 사람같이 옷을 입고 터번을 둘렀다고 했다.

"중세를 1000년의 암흑 시기라고 하는데, 이후 갑자기 르네상스가 등장합니다. 16세기 갈릴레이가 지구는 둥글다고 얘기해 파문당했어요. 배를 타고 수평선으로 가다 보면 폭포로 떨어져서 지옥의 심연으로 간다고 믿었던 유럽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등장하고, 지금 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인체, 의학, 측량 기술이 하늘에서 두두두 떨어지거든요. 이건 문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가능케 했던 지적인 빙산의 하부 구조가 분명히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 상당 역할을 이슬람 과학이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랍의 문화는 유럽으로 건너가 16세기 르네상스를 꽃피웠고, 동시에 동방으로 넘어가 티무르제국과 명나라, 조선에도 이르렀다. 한반도는 고려 시대 100년간 무신 정권을 겪고, 이성계의 조선 건국 뒤 바로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그런데 세종대왕 시대 때 갑자기 과학과 학문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이희수 교수는 조선의 경우도 아랍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강의에는 400여 명이 참석했다. 자리가 모자라 밖에서 영상을 통해 듣는 사람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종교적 동반자 아닌 문화적 동반자로

이슬람의 시각으로 본 역사를 강의하는 자리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IS(이슬람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희수 교수는 IS의 테러에 대해 무슬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잠깐 언급했다.

"이슬람권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있습니다. 99%가 IS에 동의할 수 없으며, IS는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IS에 동의하는 국민이 1% 미만으로 나왔는데, 4% 정도 나온 국가가 몇 개 있어요.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슬람 하면 흔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떠올리는데, 사우디는 사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지배하는 곳으로 21세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희수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현재 한국 사회가 이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소수의 극단주의자로 인한 오해, 그 오해를 더욱 왜곡·과장한 소문이 떠도는 지금, 우리는 무슬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꼭 기독교인만 대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슬람포비아 현상이 두드러지는 한국교회가 곱씹을 만한 이야기였다.

"이슬람 인구가 16억 정도 됩니다. 57개국, 지구촌 1/4에 해당하는 세계 최대 단일 문화권입니다. 그들을 언제까지 적대적 이해 당사자로 버리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적 도그마로 보면,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선악 구도잖아요. 나는 선이고 상대는 때려 부숴야 할 악입니다. 그럼 지구상에 우리가 함께해야 할 상대는 별로 없습니다. 다문화, 다종교, 공존의 시대에는 상대방을 종교적 파트너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이웃, 협력적 파트너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한다면 말이죠.

문화에는 선악이 없습니다. 이 문화는 선이고 저 문화는 악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문화에는 우월 개념도 없습니다. 이 문화는 우월하고 저 문화는 열등하다는 개념도 없습니다. 문화는 다만 같고 다름의 문제입니다. 이슬람 16억 57개 덩어리를 종교적 파트너로 보면 결코 화합할 수 없죠. 그러나 문화의 차원으로, 같음을 통해 공감대를 넓혀 나가고, 다름을 이해함으로 극단적 적대감을 줄여 나가는 것이 21세기 종교 지성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비판할 건 냉정하게 비판해 나가면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합리적 대안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일부에서는 굉장히 비판도 많이 받는 이야기지만, 이슬람 내에서도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 일부를 인정합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브라함의 이야기, 모세의 출애굽까지 코란에 다 기록돼 있고, 예수님에 대한 언급이 코란에 많이 나옵니다.

코란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성스러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남자와의 접촉 없이 성령으로 잉태 탄생하셨도다.' 수태고지와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명백히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을 빌어서 행했던 이적들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 무함마드에 대한 기록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종교는 화합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래도 이슬람은 예수님 인성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 세상에 충실히 전파한, 오류를 범하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로 존경하고 따릅니다. 두 종교를 다르게 이야기하려면 도저히 다른 거지만, 같음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보자면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도 되새길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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