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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화를 위해 감옥 택했다

평범한 기독 청년, 병역거부자 되기까지…"기독교 평화주의는 보물 같은 유산"

구권효 기자   기사승인 2016.01.30  2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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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이상민(30)을 처음 만난 건 2010년이다. 우리는 약 1년간 <복음과상황> 청년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상민이는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말렸다. 모태신앙에 이미 군대에 다녀온 나로서는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군대는 전쟁을 위해 존재하지만 진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 감옥에 간다? 그런 건 '여호와의증인'들이나 하는 것 아닌가.

2014년 4월, 상민이는 정말 감옥에 갔다. 병역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다.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결국 갔구나.' 그 결정을 존중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원래 좀 특이한 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최근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기독교 안에 내려오는 유서 깊은 전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하지만 말이다. 상민이가 생각났다. 상민이도 감옥에 가기 전 아나뱁티스트에 속한 교회를 다녔다.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한국 메노나이트로서는 첫 번째 병역거부자였다. 1월 29일, 경기 광명의 한 커피숍에서 상민이를 만났다.

"7년간 나에게 질문했다"

   
▲ 신앙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 감옥에 갔다 온 상민이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우리는 인터뷰라기보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병역거부를 고민했던 지난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민이는 모태신앙으로,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한국교회 주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신학대 유아교육과에 진학했고, 선교 동아리 활동을 했다. 군대는 학사장교를 생각했다.

고민은 2007년 시작됐다. 동아리방에 꽂혀 있던 <복음과상황>에서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자신과 같은 기독교인이었다.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부터 상민이는 병역거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는 그냥 읽고 말았는데,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거야. 밥 먹다가, 잠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그 사람이 했던 고민들이 생각나더라구. 그 질문을 나에게도 해 봤어. '만약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방어하기 위해 남을 해치는 건 과연 기독교적으로 정당한 걸까'. 연관된 자료를 공부하고 고민을 거듭할수록 그 사람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았어.

2~3년쯤 고민했을 때는 위기감이 들기도 했어. '내가 이상해지는 거 아닌가.' 기독교에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스스로 군대를 가야 하는 이유를 항변하기도 했지. 근데 이미 그쪽으로 생각의 길이 나 버린 느낌이었어. 맨 땅이라도 물이 흐르면 물길이 생기는 것처럼. 5~6년쯤 됐을 때는 생각의 관성을 멈출 수가 없더라구. 나는 이미 총을 들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

평범한 사람이 병역거부를 하려니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가족과의 관계가 가장 큰 마음의 짐이었다. 상민이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공군에서 복무하셨다. 부모님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두 분 다 기독교인이었지만 상민이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주었을까. 설득할 수 없는 대화를 계속하며 서로 속울음을 우는 날이 많았다.

대체 복무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체 복무 제도는 4주간의 집총을 포함한 군사 훈련, 복무 후 예비역이 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눈 딱 감고 4주. 그게 안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서로 총을 겨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이 아니었다. 그뿐이었다. 7년간 고민한 끝에 상민이는 감옥행을 택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반대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7년이 오히려 징역살이였던 것 같아. 재판 날짜 잡히고 구속되니까 차라리 마음이 놓이더라구. 법정 구속된 사람들은 그날 밥도 잘 못 먹고 하는데, 나는 맘 편하게 밥 잘 먹고 잘 잤어(웃음)."

   
▲ 상민이가 감옥에 가기 몇 주 전, 상민이의 결정을 지지하는 친구와 지인들이 '이상민후원회'를 결성했다. (사진 제공 이상민)

전 세계 아나뱁티스트들의 위로와 격려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교회에서는 낯선 주제라 원래 다니던 교회와 동아리에서는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위로와 지지가 필요했던 상민이는 한국에 있는 메노나이트 교회에 찾아갔다. 감옥에 가기 5년 전부터 은혜와평화교회에 다녔다. 은혜와평화교회 멤버들은 공동체 차원에서 상민이의 고민을 함께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었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에 대해 알아 가면서 병역거부가 이상한 게 아니라 성경 말씀에 충실한 일이라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됐다. 어떤 이는 남북이 휴전 중인 한국에서 병역의 의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 중에도 많은 아나뱁티스트가 신앙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 복무를 택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맞지 않았다.

메노나이트들은 상민이가 병역거부를 결정하기까지 곁에서 자기 일처럼 고민하고 조언해 주었다. 결정을 내렸을 때는 상민이를 존중하고 지지해 주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는 꾸준히 편지를 보내 주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아나뱁티스트들이 상민이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진짜 아프리카 쪽 빼고는 다 받아 본 것 같아. 나중에 알고 보니까 미국에서는 나에게 편지 보내기 운동까지 조직했더라구. 한국 아나뱁티스트가 메노나이트로서 병역거부한 사람이 있다고 전 세계에 알린 거야. 물론 그중에는 심한 필기체로 쓴 편지도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웃음). 감옥에 있는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전 세계에 있다는 건 큰 힘이었지."

한국 주류 교회의 시각으로 보면 상민이는 '이단아'였지만,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기독교 평화주의자였다. 그렇게 상민이는 한국인 메노나이트로서 첫 번째 병역거부자가 되었다.

   
▲ 상민이 이야기는 2014년 10월 메노나이트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The Mennonite 홈페이지 갈무리)

평화롭게 사랑하기 위해

한국교회에게 병역거부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배타성의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다. 할랄 식품 단지 조성을 반대하며 이슬람을 악(惡)으로 규정한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 소리친다. 성경 전반에 펼쳐져 있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 갔을까. 아니, 한국교회에서 평화를 제대로 가르친 적이 있었던가.

"'평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 같아. 우리는 군사적 노력을 기울이기 전에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방어하기 위해서라지만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 평화와 공존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게 이미 여러 데이터로 드러났지.

기독교인들이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아. 기독교 평화주의는 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교회는 이런 부분은 외면하고 자꾸 한쪽 면만 보려 하는 것 같아. 좀 더 폭 넓게, 다양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 상민이는 자전거 타는 게 취미다. 근래에는 자전거정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사진 제공 이상민)

6년 전 상민이를 말렸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긴 시간 평화에 대해 고민한 결과를, 나는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 기독교 문화로 쉽게 판단했다. 어쩌면 지금 주류 개신교의 배타성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상민이 말처럼 "생각의 관성"대로 그냥 흘러가는. 우리는 교회에 새로운 "생각의 길"을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급진적 제자도 실천가'로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상민이는 지금 지극히 평범한 '취준생'이다. 2015년 7월 출소한 후, 출소자의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전거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몇 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현재 자전거 정비 쪽 일을 구하고 있다. 전과가 생겨 취업이 쉽지는 않다.

"내 삶 어디가 급진적이라는 거지(웃음). 나를 이단아로 보는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급진적 평화주의자' 이런 시선이 느껴지면 좀 민망해. 별로 그렇지 않은데. 한 5년만 지나면 병역거부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아. 그때는 뭐 육아가 고민이려나?"

감옥에 다녀오면 열에 한둘은 폐인이 된다던데, 상민이는 수감 생활을 잘 견디고 자기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야기하면서 이 녀석은 어째 육아를 해도 좀 다르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민이를 응원한다. 듣기로는 자전거 정비업계가 상당히 열악하다고 하던데, 어디 좋은 일자리 있으면 소개해 주시라.

► 감옥 가기 전 인터뷰: "병역 거부, 7년의 가슴앓이 결과" <복음과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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