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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배제 대신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길 위에서 노래하는 뮤지션, 장현호

최유리   기사승인 2016.01.29  12: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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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호 선생님, 이야기하실 때랑 노래하실 때가 정말 달라요. 놀랐어요."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1월26일(화), 길가는밴드 장현호 씨가 기획한 '쌀의 노래 평화 콘서트'가 끝나고 초대 손님으로 참여한 세월호 가족 동혁 아버지가 그에게 한 말이다. 푸근한 인상의 장현호 씨는 차분하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끔 '허허' 소리내 웃기도 한다. 그러던 그가 기타를 메고 마이크만 잡으면 동혁 아버지 말처럼 달라진다. 그가 노래를 부르자 현장에 있던 관객들이 손을 들어 박수를 친다. 어깨춤을 춘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표정만 보아도 흥겨운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 길가는밴드의 장현호 씨를 만났다. 베이시스트였던 그는 길가는밴드를 하면서 이웃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2012년부터는 평화 콘서트인 '쌀의 노래'도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베이시스트, 길 위에서 노래하다

길가는밴드를 결성하기 전까지 그는 베이스 연주자였다. 학부에서도 베이스를 전공했다. 최성규·고형원 전도사가 있는 찬양 선교 단체인 부흥한국에서 7년간 활동했고, 코드셋·이길승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길 위에서 이웃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26일(화)부터 28일(목)까지 3일 동안 장현호 씨를 만났다. 3일 동안 장현호 씨는 '쌀의 노래 평화 콘서트'와 '하이디스' 정리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 한일 '위안부' 합의 규탄을 위한 집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제2의 쌍용차로 불리는 하이디스 노조 집회에는 그가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곳이다. 그전에는 꾸준히 재능교육 노조의 투쟁 현장을 찾았다. 노래로 해고 노동자들을 위로했다. 이외에도 강정마을, 세월호, 기아자동차 노조, 한남운수 노조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장현호 씨를 만나기 전, 줄곧 예배 음악을 하던 그가 지금은 왜 길 위에서 노래할까 궁금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보통 교회' 청년부에서 찬양 인도도 하고 있는 그를 왜 연대의 현장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가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그리스도인이니까요"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처음 길가는밴드는 대학 주변에서,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노래했다. 그러던 중 처음 방문한 현장이 홍대에 있는 두리반이었다. 당시 두리반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길가는밴드가 만든 노래로 사람들을 만났다."

두리반은 2006년 건물 철거 통지로 투쟁을 시작한 곳이다. 길가는밴드가 만든 곡으로 처음 노래를 부른 곳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퀴어 페스티벌이 있던 서울시청에서도 노래했다. 당시 길 맞은편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피켓 시위를 했다. 장현호 씨는 기독교인들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배제와 혐오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혐오 대신 예수가 말한 '이웃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것'에 대한 의미를 돌이켜 보았다.

   
   
▲ 그는 응원과 연대가 필요한 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27일(수)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는 집회를 찾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배제와 혐오 대신 이해와 사랑으로

그러고 보니, 현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전도자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하는 장면을 봤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 교회에서는 실천되지 않았다. 성 소수자, 해고 노동자, 노숙자가 말씀대로 자신의 짐을 풀어 놓으면 사랑과 이해 대신 배제와 혐오가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칭하는 기독교인이 타인을 '죄인'으로 낙인찍는 일이 모순이었다. 그는 '사랑', '평화', '진리'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최근 교회 지도자들이 우리도 북핵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미가서에 나오는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와 맞지 않는 말이다. 평화의 방식이라면 '나도 없앨테니 너도 없애라, 우리 대화로 해결하자'는 태도가 우선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같은 주장이 유토피아 같고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진리다. 진리. 진리는 보편적이지 않다. 우리의 삶과 괴리감이 있기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하다. 그래도 이게 진리라고 생각한다."

장현호 씨는 그리스도인은 순진한 생각처럼 보일 수 있는, 예수가 꿈꾸고 바라는 하나님나라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들의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현장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리를 내 주고 있다.

그에게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 물었다. 그는 노래로 세상과 교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글, 말, 노래 등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노래하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큰 파급력은 없을지 몰라도 노래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현호 씨의 말뜻은 그가 한일 '위안부' 합의 규탄 집회에서 부른 노래에서도 알 수 있었다. 현장에는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가 울려 퍼졌다. 그는 노랫말 중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부분을 "후회 없이 투쟁했노라 말해요"라고 개사했다. 노래를 끝내면서 투쟁 대신 다시 원 가사인 '사랑'을 읊었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투쟁'을 외쳤다. 몇 차례 사랑을 유도하던 그는 "후회 없이 투쟁, 사랑했노라 말해요"라며 노래를 마쳤다. 장현호 씨는 교회 안팎으로 투쟁과 분노가 있는 곳에 예수가 보인 '사랑'이 답임을 노래에 담고 싶다. 그렇게 교회와 사회를 이어 가려고 노력한다.

2월 중 개인 앨범 발매

현장을 다니기 바쁜 그지만, 2월 중에는 개인 앨범도 나온다. 길가는밴드가 아닌 장현호의 예배 음악 앨범이다. 뮤지션이지만 찬양 인도자이기도 한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가 담겨 있다. 이지음, 박정수 씨가 프로듀싱을 도왔다.

또 이번 해부터는 '쌀의 노래 평화 콘서트'를 다시 시작했다. 부흥한국을 하면서 통일에 관심을 두던 그는 2012년부터 탈북민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만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쌀의 노래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했다. 세월호에 관심은 있어도 언론에서 들을 수 없는, 당사자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첫 번째 콘서트에서는 동혁 부모님이 나왔고, 두 번째 콘서트에는 창현 어머니가 나올 예정이다. 2016년 두 번째 쌀의 노래는 2월 23일(화) 7시 30분에 카페바인에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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