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7곳에서 연쇄 테러가 일어났다. 식당이나 축구 경기장, 공연장 등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폭탄이 터졌다. 최소 120여 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상해를 입은 테러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이슬람국가(IS)는 이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크게 술렁였다. 프랑스 정부는 즉시 IS 근거지에 대한 폭격을 결의하고 실행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러시아까지 공습 대열에 합류했다. IS가 장악하고 있는 시리아 락까와 이라크 모술에 대한 폭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례적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겹치는 방식으로 애도했다. 그만큼 파리 연쇄 테러가 주는 충격은 컸다. 테러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었고, IS에 대한 공습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러시아까지 가세한 서방국가들의 유래 없는 폭격에 '시원하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도 있었다.

▲ IS가 파리를 테러한 직후 러시아까지 가세한 서방국가들의 폭격이 시작됐다.

이슬람 교리 자체가 폭력적?

이역만리 한국에서 듣는 것만 해도 IS의 반인륜적인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IS는 외국인 포로들을 참수하거나 불태우고, 동성애자를 높은 곳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영상을 공개한다. 이런 잔혹한 살상 장면이 퍼지면 국내 언론들도 이를 앞다투어 보도한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짓을 벌이는지에 대한 분석은 드물었다.

IS에 테러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슬람교 교리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이번 익산 할랄 식품 단지 조성과 관련해 기독교인 사이에 괴담이 퍼져 나갈 때에도 기저에는 이런 논리가 깔려 있었다. IS가 알라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테러를 감행하는 것은 맞다. 이는 IS와 무관한 무슬림들도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중동 전문가들은 이슬람 테러의 원인을 종교뿐 아니라 '국제 정세'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IS라는 테러 조직이 왜 생겨났는지는 중동과 서방국가의 관계를 이해해야 알 수 있다.

십자군 전쟁까지 가지 않아도 기독교를 대표하는 서방국가들과 이슬람을 대표하는 중동 아랍권의 대립은 첨예하다. 21세기 전후만 보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과 탈레반-알카에다-IS로 이어지는 이슬람 무장 단체의 역사는 복잡하게 엉켜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IS에 초점을 맞춰 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본다.

상처 입은 무슬림

▲ 중동 지역의 국경선을 관찰해 보자. (구글지도 갈무리)

세계지도를 펼쳐 중동 지역을 보자. 서쪽으로는 리비아, 남쪽으로는 남수단, 북쪽으로는 터키, 동쪽으로는 이란 및 아프가니스탄 등이 있다. 국경선을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중동 여러 국가가 자로 잰 듯 일직선의 국경선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경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와 컴퍼스를 대고 그은 것이다.

현대 아랍권과 서방국가의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지역을 다스리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붕괴하면서 시작됐다.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지도를 펼쳐 놓고 중동 지역을 각자의 이익대로 나눴다. 이후 이스라엘의 진입과 여러 국가의 내전 등으로 국경선이 조금씩 바뀐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1차 대전 후의 영국과 프랑스가 정해 놓은 국경을 유지하고 있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이렇게 국경을 정했을 때 두 가지 영향이 나타난다고 했다. 첫째는 한 마을 한 부족이었던 공동체가 갈라지는 것이다. 둘째는 이보다 더 최악의 경우인데, 원수인 부족이 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이 일본 남쪽과 한반도, 동북 삼성까지 한 나라로 정해 버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종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공동체가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중동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내전의 저변에는 이런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서방국가의 책임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이를 수백 년 전 십자군 전쟁의 트라우마와 함께 '기독교 vs. 이슬람'의 구도로 받아들였다.

IS의 태동

▲ 서방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와 이슬람 극단주의가 만났다.

전문가들은 IS가 생겨난 이유로 2003년 '이라크전쟁'을 지목한다. 2001년 9월 11일, 자국에서 전례 없는 테러를 당한 미국은 한 달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몰아냈다. 그러나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추종하는 조직 알카에다를 처단하지는 못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쟁을 일으킨다. 당시 사담 후세인 정부가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으며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미국 부시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군은 후세인 정부를 처단했으나 알카에다와의 커넥션이나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한겨레출판사)을 쓴 정의길 기자는 이라크전쟁을 "미국의 대외 정책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이라크는 영국과 프랑스의 재단으로 종족적으로는 아랍인과 쿠르드인이,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수니파(20%)와 시아파(80%)가 섞여 버린 나라였다. 1979년 집권한 후세인은 수니파 계열로,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은 시아파를 억제하기 위해 20여 년간 폭정을 벌였다.

미국의 침공으로 후세인 정부는 궤멸됐다. 당시 미군은 후세인 정부 바트당의 지도자들을 이라크 남부에 있는 감옥 부카 캠프에 수용했는데, 여기에는 알카에다 소속 알 자르카위와 후에 IS를 창설한 알 바그다디가 있었다. 세속주의 정부였던 바트당 지도자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길로 치달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에 분노의 칼을 갈게 된다. 미군의 이러한 조치는 이후 "IS 지도부를 길러 낸 꼴"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미군은 2011년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그러나 미군 철수 후 곧바로 이라크는 다시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후세인 뒤로 들어선 시아파 계열 누리 알 말리키 총리는 수니파를 억압하고 노골적으로 친시아파 정책을 폈다. 곳곳에서 수니파 반군들이 들고일어섰다. 이 중심에는 알 바그다디가 있었다. 2009년 부카 캠프에서 출소한 바그다디는 감옥에서 만난 노회한 수니파 정치인들과 손잡고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 격인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지도자가 된다.

이라크이슬람국가는 2013년, 미군의 가혹 행위로 국제사회의 논란을 일으켰던 아부그라이브 형무소에 차량 폭탄 테러를 가해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 500명을 탈옥시키며 절정을 구가했다. 때마침 옆 나라 시리아에서도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 등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와 알카에다 하부 조직인 누스라전선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바그다디는 2013년 이라크이슬람국가와 누스라전선을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로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상위 조직 알카에다의 의사와는 다른 것이었다. 바그다디는 알카에다와 달랐다.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의 비전을 현 이라크·시리아 정권의 타도가 아닌 '칼리프 제국의 건설'이라고 선포했다. 이에 무장 투쟁을 벌이던 반군들이 매력을 느끼고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에 가담하게 된다.

2014년 2월, 바그다디는 알카에다와 결별하고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를 '이슬람국가'(IS)로 바꾼다. 시리아 동북부에 있는 도시 락까를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시리아와 이라크의 작은 도시들을 점령하며 세를 불렸다. 6월에는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모술을 점령하고, 정부군이 남기고 간 각종 무기와 자금을 손에 쥐게 된다.

▲ 전문가들은 IS 태동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전쟁으로 본다. 

1만 명과 25만 명

IS의 목표는 칼리프 제국의 건설이다. 지금까지의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과는 달리 실제로 영토가 있는 '국가'다. 이들은 서방이 그어 놓은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랍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7세기 칼리프 제국을 다시 구현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물론 이 주장에 동의하는 무슬림은 전 세계에서 1%도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9% 무슬림들은 저들이 '이슬람국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불편하게 느낀다.

허무맹랑한 주장인 듯하지만, 문제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IS에 가담하려 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102개 국가(한국 포함) 출신이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IS의 선전이 매우 정교하고 은밀하게 들어가는 면도 있고, 각국의 정세가 어지럽기 때문도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중동 국가들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화에 실패했다. 다시 군부가 들어선 곳도, 무정부 상태인 곳도 있다. 미래가 없는 아랍 청년들에게 IS의 존재는 허무맹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회다.

서방국가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일례로 시리아 내전의 인명 피해를 보면, IS는 1만 명, 시리아 아사드 정부는 25만 명을 죽인 것으로 추산된다. 아사드 정부는 반군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대량 학살하고 있다. 드럼통에 화약을 가득 넣어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통폭탄'은 악명 높은데, 아사드 정부는 여기에 독가스까지 넣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통폭탄 한 번에 500~600명씩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IS가 점령한 시리아 지역 민간인들은 자발적으로 IS에 협조하고 있는 상태다. 어쨌든 IS가 아사드 정부의 무차별 폭격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들은 아사드 정부에 침묵하면서 IS를 향해서는 대규모 공습을 벌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샤리아(이슬람법)를 집행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IS는 샤리아에 위배되는 사람을 코란에 나오는 문자 그대로 처결한다. 높은 곳에서 사람을 떨어뜨리거나 팔 다리를 자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한 행동이다. 국제 사회는 이를 비난하지만,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건국이념 자체가 이슬람 극단주의 '와하비즘'(Wahhabism)이다.

칼로 칼을 막을 수 있나

▲ 파리 테러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럽 우파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보고 있다.

서방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와 증오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만나 사상 최악의 테러 집단을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파리 연쇄 테러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유럽 국가 중 IS에 가담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 안에 남아 있는 유색 인종차별, 우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조장하는 무슬림에 대한 위화감, 이슬람 무장 세력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지속적인 공습 등이 얽히고설켜 일어난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테러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테러를 하면 안 된다'거나 '테러 단체를 박살내야 한다'는 말은 테러를 없애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을 몰아내고, 이라크를 침공해 알카에다 세력을 무력하게 해도, 또다시 IS라는 괴물이 생겼다.

미국과 유럽의 우파 정치인들은 시리아 난민, 정확하게는 무슬림들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논리는 보수적인 한국교회도 답습하고 있다. 할랄 식품 단지 조성을 비난하며, 무슬림들의 유입을 막는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유럽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 또한 테러를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역사적 맥락을 보면 오히려 이런 정책과 시선이 테러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테러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도 없고, 무조건 무슬림을 배격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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