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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재세례파,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재조명이 한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는 16세기 츠빙글리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의 분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이상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오히려 '재세례'라는 말 때문에 이단이나 조심해야 할 단체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와 여러 메노나이트(아나뱁티스트로 분류되는 교단) 교회가 협력해 '아나뱁티스트 신학 학술 발표회'를 1월 23일 기독교회관에서 열었다. 주제는 '아나뱁티스트란 무엇인가, 왜 아나뱁티스트인가'였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아나뱁티스트 학술제였다.

메노나이트 학교 고센대학(Goshen College) 교수이자 <메노나이트쿼털리리뷰>(The Mennonite Quarterly Review) 편집장 존 로스(John D. Roth) 교수가 한국을 찾아 기조 강연을 맡았다. 침신대 남병두 교수, 고신대 이상규 교수, 로고스교회 김기현 목사, 대전신대 정원범 교수가 각각 주제를 맡아 발제했다. 현재 메노나이트 교회를 다니고 있거나 아나뱁티스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 70여 명이 참석했다.

존 로스 "중요한 건 신학 체계가 아닌 삶"

▲ 존 로스 고센대학 교수(왼쪽)가 학술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통역은 김복기 KAC 총무(오른쪽)가 맡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아나뱁티스트는 뭔가 특이한 집단 같지만 가톨릭과 종교개혁 맥락에 있다. 존 로스 교수는 아나뱁티스트가 가톨릭의 제자도, 수도원 운동, 신비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어떤 종교적 전통도 성경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에 따라 교황 및 사제 시스템을 거부한 종교개혁과 결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종종 아나뱁티스트를 표현할 때 '무언가를 거부한' 부정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게 된다. 가령, 아나뱁티스트는 유아세례, 맹세, 법정 시스템, 무기, 사유재산 등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존 로스 교수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아나뱁티스트를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이야기한, 아나뱁티스트가 다른 종교개혁 전통과 다른 점은 △제자도 △공동체로서의 교회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존 로스 교수의 강조점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말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21세기에 어떻게 말씀이 육신이 되는가를 보여 주기는 어렵다. 존 로스 교수는 아나뱁티스트가 어떤 하나의 신학 체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나뱁티스트는 하나의 신학을 가지고 구조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아미시공동체에서 메노나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존 로스 교수는 '복음의 토착화'를 이야기하며 한국의 아나뱁티스트들이 분단된 국가,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과 전쟁의 위험, 고도로 군사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로 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도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다. 아름다움은 고통과 슬픔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이 우리 주변의 절망과 초라함을 뚫고 나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물론 선한 창조의 원모습을 잠깐이나마 보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삶의 중심에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기억하게 한다. 그것은 사랑이 두려움을 이기고 빛이 어둠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이다."

'근원적 종교개혁'과 '평화주의'

▲ 남병두 교수(왼쪽)와 이상규 교수(오른쪽)는 각각 아나뱁티스트의 역사적 의의와 평화주의에 대해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남병두 교수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오해와 의도적인 왜곡이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주류 교권주의자들과 교단 신학자들, 정치권력에 의해, 아나뱁티스트는 종교개혁의 '서자' 혹은 '기형'이라는 말로 불렸다. 20세기에 들어와 아나뱁티스트 안팎에서 여러 학자가 노력한 결과, 부당한 역사 기술 및 평가가 상당히 바로잡히긴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고 봤다.

남 교수는 특히 그들의 '교회론'에 주목했다. 남 교수는 아나뱁티스트가 추구했던 것을 '근원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이라고 표현했다. 교회의 타락으로 인한 여러 현상을 고치는 게 아니라 교회 자체를 고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헌신된,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 인식했다. 교회에 대한 이런 단순한 신념이 아나뱁티스트의 급진적인 제자도를 가능하게 했다. 그들에게 유아세례를 통해 날 때부터 교인이 되는 것은 세례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명목적인 교인을 양산해 교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는 주류 개신교의 개혁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신학을 삶의 방식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가령, "루터의 '이신칭의'나 '전신자제사장' 개념은 논리적으로 '신자들의 교회'라는 틀에서 가장 적합한 개념이지만, 루터의 교회론은 이런 신학적 재발견들을 교회라는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삶의 방식 혹은 윤리로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 교회 역사에도 폭력이 반복됐다고 했다.

이상규 교수는 '메노나이트 교회의 평화주의 전통'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메노나이트의 기원, 메노 사이먼스(Menno Simons, 1496~1561)의 이야기를 꺼냈다. 메노는 가톨릭 사제였다. '화체설'과 '유아세례' 등 전통적인 로마교 교리에 회의를 품게 되면서 재세례파가 되었다. 16세기 당시 재세례파 중에는 '혁명적 재침례파'라는 폭력적인 운동도 있었는데, 이들의 난동을 보면서 메노는 평화주의를 더욱 확고하게 지향하게 되었다.

메노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했다. 재세례파 운동은 제자도를 중시했고 이는 그리스도를 총체적으로 본받는 것이었다. 메노는 이를 비폭력 평화주의라고 생각했다. 메노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모범은 비전(非戰)이나 반전만이 아니라 대립, 투쟁, 폭력, 무기 소지 등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포기라고 믿었다. 이런 평화주의 전통은 칸트에 의해 근대의 평화 사상이 대두되기 300년 전의 일이었다.

메노나이트의 이런 전통은 필연적으로 '병역거부'와 연결됐다. 물론 병역을 거부한 사례는 초기 기독교 전통에도 많지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는 4세기 이후 '절대평화주의'는 퇴조하고 '정당전쟁론'이 대두되었다. 무죄한 자를 방어하고 부당한 탈취를 회복하여 정의를 보장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정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암브로스와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칼뱅, 20세기 라인홀드 니버와 폴 렘지에 이르기까지 주류 교회는 '의로운 전쟁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메노나이트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병역거부를 소중한 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메노나이트들은 많은 박해를 당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메노나이트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했다. 이들은 병역거부 대신 대체 복무를 주장했다. 이는 1995년 채택된 '메노나이트 신앙고백서'(Confession of Faith in a Mennonite Perspective)에 잘 드러나 있다.

콘스탄틴(Constantine)과 크리스텐돔(Christendom)을 벗어나

▲ 김기현 목사(왼쪽)와 정원범 교수(오른쪽)는 각각 아나뱁티스트의 탈콘스탄틴, 탈크리스텐돔 운동에 주목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기현 목사는 탈콘스탄틴 운동 관점에서 아나뱁티스트를 조명했다. 콘스탄틴주의란, 교회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은 곧 교회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교회는 각 나라의 이익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장하게 된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국가=교회'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철저하게 성경에 기반한 탈콘스탄틴주의였다. 아나뱁티스트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교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유아세례가 곧 국가교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미카엘 자틀러(Michael Sattler)의 순교는 아나뱁티스트의 모범이다. 그는 총 9가지 혐의로 기소됐는데, 그중 하나는 터키가 침략해도 전쟁에 임하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외에 그가 해명한 것은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 오히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을 죽이는 당시 정치·종교 권력의 모순을 고발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종교적인 관용과 다원주의다. 아나뱁티스트는 종교가 다르고 국가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생명과 생존을 박탈하는 행동을 거부했다. 이단과 이교를 용납하지 못했던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상당히 앞서 나간 발상이다. 김기현 목사는 "아나뱁티스트의 관용은 어쩌면 평화주의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원범 교수는 '한국교회의 신학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발표하면서, 아나뱁티스트의 '탈크리스텐돔'적 운동에 주목했다. 크리스텐돔이란 콘스탄틴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 국가교회, 기독교 세계, 제국적 기독교라는 말이다.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것을 생각하면 된다. 국가와 종교 권력이 상호 협력하고 지지하는 사회다. 그는 한국교회의 타락과 그에 따른 신뢰도 하락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 변질의 뿌리를 크리스텐돔에서 찾는다.

한국은 국가와 교회가 하나 되어 다스렸던 적은 없으나, 국가와 교회 사이의 상호 승인과 야합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승만 정부가 기도로 국회를 연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때도 많은 기독교인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보수 교단이 대부분인 한국교회의 친정부적인 태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교회가 크리스텐돔의 신학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아나뱁티스트의 탈크리스텐돔, 포스트크리스텐돔적 신앙 전통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급진적 제자도, 가능한가

▲ 아나뱁티스트의 급진적인 평화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발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가장 빈도가 잦았던 질문은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평화주의'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특히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병역을 거부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남병두 교수는 "지금은 교회마저도 너무 쉽게 세상의 솔루션을 받아들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병역거부를 비롯한 아나뱁티스트의 평화주의 전통은 너무 급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공동체, 그런 문화에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다면 그들이 충분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KAC 김복기 총무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항상 '제3의 길'을 찾는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을 이야기했다. 아나뱁티스트는 이런 주제로 많은 대화를 해 왔으며, 이 가운데서 '군대에 가느냐 마느냐'는 선택이 아니라 다른 길을 모색해 왔다고 했다. 앞으로 이런 아나뱁티스트의 대화에 주목하고 참여해 주기를 바랐다.

각각의 주제가 소논문 정도의 심도 있는 내용이었으나, 이를 제한된 시간 안에 모두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발제자들을 재촉하고 재촉해도 정한 시간을 훌쩍 넘긴 후에 학술제는 끝났다. 이번에 발표된 발제문은 몇몇 다른 글과 함께 조만간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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