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혜원 인턴기자]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폭로로 위안부 참상이 사회에 드러났다.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위안부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긴 시간만큼 점차 무뎌졌다. 얼마 전, 한일 위안부 협상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인 배상 없이 양국 정상 간에 졸속으로 타결됐다. 다시 사회가 위안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후에 말이다.

한편 1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는 교회를 꿈꿔 온 목사가 있다. 그는 제자감리교회 박영규 목사로, 1년째 동대문 천막 교회에서 '세계위안부소녀기념교회'(위안부기념교회) 예배를 진행했다. 이번 위안부 협상 결과를 보며 수요 집회에도 나서게 됐다.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로 말이다. 박영규 목사를 만나기 위해 위안부 교회 설립 1주년 예배가 진행되는 동대문 천막 교회를 찾았다.

위안부기념교회 설립 예배는 1주년을 맞았지만 여느 때처럼 조촐하게 진행됐다. 가스가 새어 나오는 낡은 난로가 천막 한 가운데서 위태롭게 작동되고 낡은 스피커에서는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동대문교회 교인들과 제자감리교회 교인들은 찬송과 기도를 하며 예배를 했다. 예배를 마친 후 박영규 목사에게 위안부기념교회의 초창기부터 수요 집회 예배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 1월 10일, 동대문 천막 교회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위안부기념교회 설립 예배 장소 찾던 중, 고 김학순 할머니가 다니던 동대문교회를 만나다

동대문 천막 교회에서 위안부기념교회 예배를 진행한 데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동대문교회는 2013년 동대문성곽공원이 생기면서 철거됐다. 동대문교회 교인들은 교회 복원을 위해 공원 초입부에 천막을 세우고 예배를 했다. 위안부를 최초로 세상에 알린 고 김학순 할머니는 동대문교회 출신이다. 당시 김학순 할머니는 몇 교인들의 권면으로 위안부 참상을 최초로 고발하게 됐다.

"원래는 감리교 재단인 배화여대나 이화여대 강당을 빌려서 위안부기념교회 예배를 하려고 했어요. 그러던 도중 동대문 천막 교회가 눈에 들어왔죠. 좋은 건물보다 허술한 천막에서 예배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의미도 더 잘 전달될 것 같았고요. 그래서 무작정 동대문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문세광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죠. 통화 중에, 위안부 참상을 고발하신 고 김학순 할머니가 다니시던 교회가 바로 이 곳 동대문교회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동대문 천막 교회의 전경. ⓒ뉴스앤조이 강혜원
▲1월 10일, 1주년을 맞이한 '세계위안부소녀기념교회' 설립 예배에 참석한 박영규 목사. ⓒ뉴스앤조이 강혜원

동대문교회는 지금도 위안부 역사와 관련이 깊은 분들이 출석하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참상을 고발할 때 도움을 줬던 고 장기천 감독도 동대문교회 출신이다. 현재는 그의 부인 김영혜 씨를 비롯하여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제 치하에서 구국 간호사로 활동했던 최애도 장로도 매주 위안부 예배에 참석한다.

1년 전 동대문교회와의 운명적 만남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위안부소녀기념교회 건립'이라는 목적을 위해 달려 온 박영규 목사. 그는 왜 위안부 역사를 기리기 위해 굳이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일까. 그가 단지 목사이기 때문일까?

박영규 목사는 이번 협상을 통해 현 정권이 위안부의 역사를 지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교회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함을 주장했다. 박영규 목사는 '교회'를 통해 위안부 역사를 영원히 기록하길 바랐다.

"정대협을 비롯한 다른 민간단체들은 위안부 기념관을 세우고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하잖아요. 물론 그러한 움직임도 굉장히 중요합니다만, 지금 현 정권을 보세요. 이번 위안부 협상 타결한 거 보면, 아픔의 역사는 점점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근데 교회는 강력해요. 공산주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거든요. '세계위안부기념교회'를 세우면 위안부 역사도 이 교회와 함께 영원히 기록되겠죠. 제가 굳이 위안부를 위해 다른 게 아닌 교회를 세우려는 이유입니다."

"위안부 협상, 대통령은 용서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을 것"

박영규 목사는 위안부 협상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10년간 위안부를 위해 기도하고, 1년 동안 천막에서 위안부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예배를 매주 진행했다. 박영규 목사에게 이번 위안부 협상은 더 의미가 클 것 같았다. 그는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 없이 돈 몇 푼으로 타결된 이번 협상에 대해 유감을 밝혔다.

"이번 협상은요, 겨우 100억 주고 이제 더 이상 위안부 얘기를 꺼내지 말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일본 총리가 방송에 직접 나와서 사과를 했어야죠. 강자가 약자한테 돈 몇 푼 줄 테니 입 다물라, 이거 아닌가요?"

그는 일제 치하에서의 위안부 참상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일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위안부는 초경도 안 한 어린 여자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남자 여럿을 상대하고 만신창이가 돼 있는데 아래에 묻은 정액을 닦아 낼 때 종이 한 장 주지 않고요, 새끼줄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지나가게 했답니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 내야 해요. 직접적인 사과요. 대통령 혼자서 전화받고 용서하면 뭐합니까. 이번 협상은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새로운 '행동'의 시작, 수요 집회 사전 예배 진행

오랜 기간 위안부를 위해 힘써 온 그이기에, 이번 위안부 협상에 더 분노했다. 그리고 더 좌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영규 목사는 이번 협상 결과를 통해 다시금 기독교인들이 행동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예수가 사회에서 세리·창녀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실천을 보여 줬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목사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예배로 수요 집회에 힘을 더하기로 결심했다. 1월 13일, 1213차 수요 집회부터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는 "하나님이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함께, 끝까지 예배로 수요 집회에 연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요 집회 사전 예배에 종교계와 많은 시민이 연대해 주기를 청했다. 첫 예배는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촐하게 시작할거라는 그는 점진적인 연대를 바랐다. 1년간 위안부기념교회 설립 예배를 꾸준히 진행하자, 세상에 조금씩 알려진 것처럼 말이다. 박 목사는 벌써부터 수요 집회 예배가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임을 강조하며 설레는 표정을 드러냈다. 비장하기도 했다.

박 목사는 수요 집회 전에 진행되는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가 새롭고 다양한 행동의 시작이 될 것임을 말했다. 그의 최종 목적은 단지 '세계위안부소녀기념교회'를 세우는 것에 있지 않다.

"이번 수요 예배는 새로운 행동이자 실천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걸 시작으로 동대문 성곽 공원에 위안부 소녀 기념 동산을 세우고 사대문 안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것도 나중의 계획이랍니다."

거창한 계획을 듣고 후원 부분을 걱정하는 기자의 질문에, 박영규 목사는 당차게 답했다.

"후원이 별로 안 되면 뭐 어때요. 저희 제자감리교회 이름을 '세계위안부소녀기념교회'로 바꿔서라도 꼭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위안부 역사를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운동을 꾸준히 할 겁니다."

제1차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 '평화' 강조

1월 13일, 1213회 수요 집회가 열렸다. 이날 박영규 목사는 수요 집회 시작에 앞서 '제1차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를 진행했다.

▲1월 13일, '제 1차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를 진행하고 있는 박영규 목사의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박 목사는 예배가 시작하기 한 시간 전인 10시부터 예배를 준비했다. 소녀상 옆에서 조그만 강대상을 두고 자신의 차례를 꿋꿋이 기다렸다. 미리 만들어 온 주보를 주변 시민과 기자들에게 나눠 줬다.

그는 '12곳에 평화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정치·가정·노사 등에서의 사랑과 평화를 강조했다. 이어진 기도에서는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사과와 한국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도 기도했다. 예배는 '한국위안부소녀기념교회 설립 취지문'과 박 목사가 작성한 '위안부 소녀'라는 시 낭독으로 마무리 됐다.

수요 집회와 연대를 시작한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 박영규 목사는 첫 예배를 마친 후 "이 예배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입니다. 감개무량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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