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이런 합의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일 때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일본의 식민지인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생존자복지위원장이자 실행이사를 맡고 있는 정태효 목사는 말했다. 그의 말은 짧고 단호했다.

지난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갑작스럽게 타결했다. 언론을 타고 알려진 합의 내용은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군의 관여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했고, 한국이 설립하는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 엔(약 97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 결정이며, 합의 후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정대협은 합의의 맹점을 지적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 정부의 모호하고 진정성 없는 사과와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규탄하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배제한 채 성사된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진보 개신교계 단체들이 정대협의 성명에 연서하며 힘을 실었다. (정대협 성명서 바로 가기)

정태효 목사의 지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정 목사를 1월 4일 제주에서 만났다. 정대협 회원 단체인 기독여민회·전국여교역자연합회에서 활동하던 정 목사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이 열렸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대협 일에 뛰어들었다. 다음은 정 목사와의 일문일답.

-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가장 잘못된 것은 당사자 없이 합의했다는 점이다. 피해 당사자를 제외한 합의가 말이 되나. 지난 25년간 할머니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집회를 열고 많은 지원 단체가 함께하며 주장했던 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 번복할 수 없는 사죄와 법적 배상이었다. 이번 합의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이뤄지지 않았다. 합의는 무효다.

일본 정부는 "군의 관여하에"라는 애매한 말을 써서, 위안부가 일본군 주도의 조직적인 범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누구는 아베가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들어 보면, 전화로 이야기하다가, 그것도 자신이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대리로 사과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앞으로 더 이상 사과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사죄인가.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는 역사 교과서 기록이나 진상 규명에 대해 일본 정부에 요구할 권리도 포기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도 얘기하지 않는단다. 소녀상도 철거한단다. 이게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합의한 내용이 맞나 싶다.

자기 자식이 당했어도, 자기 부모가 당했어도 이렇게 할 수 있는가. 12~26살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질이 안 열리니까 칼로 찢고, 그런 걸 당했다고 한다면. 만약 그 가족들이 지금 이런 합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그건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라도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국가의 수장이라도 맘대로 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일본의 식민지인가. 지금 상황은 우리가 식민지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저들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 합의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정부가 계속해서 지원 단체들과 협의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내용으로 합의할 거라는 사실을 할머니들이나 정대협은 전혀 알지 못했나.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첨예한 부분이라서 정부와 계속 얘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합의가 있을 거라는 정부의 언질 정도였지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사실 조금 우려했다. 할머니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할머니들은 아니어도 그 가족들 중에 돈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비난할 수는 없다. 그건 할머니의 권리니까.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합의를 거부하면 배상도 못 받게 된다. 할머니 가족들이나 유족들에게 돌을 맞더라도 이 운동을 계속해야 하느냐 걱정했다. 그런데 합의 내용이 밝혀지자, 온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 이번 합의에 대해 할머니들과 지원 단체들은 공감대가 형성됐나.

그렇다. 이용수 할머니도 합의 내용을 설명하러 온 외교부 차관에게 호통을 치시지 않았나.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다른 할머니 한 분은 그러셨다. "정부가 하는 일인데 어쩔 수 있겠냐." 이건 긍정의 표시가 아니라 처절한 절망의 뉘앙스다. 이 정부에서는 더 이상 기대를 못하겠구나 하는 절망의 표현이다. 이번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우리는 합의 전까지,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 있어서는 적어도 배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이건 완전히 상납 수준이다.

▲ 정태효 목사는 피해 당사자를 배제한 채 합의한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보수 개신교 단체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한국교회연합(한교연)·한국교회언론회 등은 합의 발표 후 곧바로 성명을 내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보수 개신교 단체의 수장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는 안 그랬나. 한국교회 친일의 역사부터 똑같이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오히려 나는 그 수장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그 목사가 하는 말에 공감하고 쌍수 들고 환영하는 입장인지.

김삼환 목사가 평화의우리집(평화의집)을 만들어 주었다. 한번은 평화의집에서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우리 교회에 오실까요, 여기에 오실까요. 내가 알기로는 여기에 오실 겁니다." 사실은 다들 뭐가 옳은지 알고 있는 거다. 그러나 그런 단체에 속하다 보면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 진짜 정부의 합의가 잘됐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건 더 문제인 것 같다. 목사로서 할 짓은 아니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방송 뉴스에 나오는 자막 정도, 실무자들에게 브리핑받는 것 정도로 판단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방송은 마치 정부가 대단히 노력한 것처럼, 성과를 거둔 것처럼 이야기하니까. 그런 목사들도 바로 알기만 하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다.

- 많은 시민이 합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합의 자체는 인정하고 앞으로 일본의 태도를 지켜보자는 입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 전에 먼저 질문할 것이 있다. 과연 합의가 되긴 한 건가.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무엇인가.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다른 내용을 이야기한다. 소녀상을 이전해야 돈을 준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본 외무상이 "일본이 잃은 건 10억 엔밖에 없다"고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합의 내용과 일본이 알고 있는 합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합의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소녀상을 지키고 집회에도 참여하고 계시지만, 이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같이 대응해야 할 문제다. 일본과 한국과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제 정세를 보면, 미국이 일본 편을 들어 줘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다. 일본을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강정마을에 미 군함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전쟁 위안부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아닌가. 위안부 문제는 자칫 지나친 민족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

아시아 8개국에 전쟁 위안부로 희생당한 여성들이 있다. 일본군의 문제가 크지만, 한국군도 월남전에 파병되어 민간인 학살과 성폭행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베트남에는 지금도 한국 남자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 할머니들은 그런 문제도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다. 정대협에는 '나비기금'이라는 사업이 있다. 여기서 모은 후원금으로 콩고 내전으로 피해 받은 여성들을 지원하고,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당한 여성들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가 일본 정부에 요구하듯이, 국가 차원에서 사죄하고 법적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위안부' 하면 한일 간 관계만 생각하지, 한국도 가해자였다는 인식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가 차원의 문제의식을 가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먼 미래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주권을 찾지 못하면 위안부 문제는 언제까지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한국이 주권을 잃었다고 보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번 협상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가 있나. 사죄가 아니라 사과, 그것도 아베 총리가 직접 한 게 아니고 대리 사과다. 한국 국민이 2011년 일본 대지진 때 보낸 성금이 수백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수천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97억에 할머니를 팔아먹나. 그 정도에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나.

- 세월호 참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 유난히 힘든 일이 많이 벌어지는 때인 것 같다. 피해자들은 공감을 호소하는데, 시민들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그러더라. 지금 우리는 '재난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정권이 재난을 일으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시스템을 바꾸는 거다. 옛날 민주화운동을 했을 때는 사람들이 움직이면 사회에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아무리 투쟁을 해도 정부를 막지 못한다. 전에 있었던 일보다 더 큰 일을 터뜨려서 자신들의 뜻대로 사회를 움직인다.

서민들은 더욱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먹고살기 힘드니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기 급급해 죽겠는데 다른 사람 돌아볼 여력이 있겠나. 지금 한국 사회는 1%가 살기 위해 99%를 죽이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난이 모두의 문제인 거다. 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

-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더욱 보수화하는 것 같다. 사회적 재난에 관심이 별로 없다. 위안부 문제도 교인들에게까지 인식을 확장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목사뿐 아니라 일반 교인들도, 문제를 먼저 인식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자꾸 이야기해야 한다. 설교에서도, 기도에서도, 성경 공부에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정의가 어느 편인지 말이다. 교인들이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정대협에서 100만 명이 1만 원씩, 100억 모으기 운동을 하려고 한다. 합의를 원천 무효화하고, 일본에서 지원한다는 금액만큼 모아 한국 국민의 뜻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교회가, 교인들이 이 일에 앞장서 함께해 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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