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평신도 교회인 새길교회에서 신학위원으로 있는 한완상 박사가 12월 6일 주일예배 때 나눈 설교문입니다. 30주년을 앞둔 새길교회의 시작을 돌아보고 공동체가 나아갈 길에 대해 적었습니다. 이 설교는 비단 새길교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설교문 제목처럼 더 예수답게 살아가려는 모든 한국교회에 속한 이야기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새길교회의 허락을 받고 설교문을 게재합니다. 설교문은 총 세 번에 나눠 올릴 예정입니다. 그 두 번째 글입니다. '예수 따르미'와 '평화 만드미'는 필자 한완상 박사가 문법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쉽게 부르고자 만든 용어입니다. - 편집자 주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는 숨을 거두셨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눅 23:46-47)

 

예수다움은 무엇인가

예수 복음과 예수 운동의 본질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와 그 실천에서 찾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로마 황제 지배 체제에 흡수되고 제도화하면서 보편 교회의 신조가 기독교 지배 이념으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갈릴리 예수, 곧 역사의 예수는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까지 내려온 사도신경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이 신조에는 역사의 예수가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가 바로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처형당한 것으로 부각됩니다. 그러니까 성육신 사건(incarnation)과 십자가 죽으심의 사건 사이에는 완전한 빈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성육신 신학과 속죄(atonement) 간의 빈자리에는 마땅히 네 복음서가 증언한 예수의 말씀, 예수의 삶, 특히 그의 급진적 실천의 삶 속에서의 고난과 죽음의 감동적 사건의 증언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마디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몽땅 무시된 셈이지요. 하나의 거대한 제국(로마 교황 지배)과 하나의 거대한 보편 교회(Catholic Church)의 유지를 위해서는 탈역사화한 초월적 그리스도로 충분하다고 지배 세력은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역사적 예수의 전복적인 급진성의 하나님나라 메시지는 매우 불편하기에 필요 없었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성육신 신학과 신앙, 그리고 십자가의 속죄 신학과 신앙만으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지배가 충분하다고 본 듯합니다. 

여기에는 20세기 초, 세계적인 성서신학자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의 영향도 크게 한몫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예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이 아니며, 그의 행적도 객관적 역사 서술이 아닙니다. 불트만 학파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 신앙에 불탔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신앙고백이지요.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합니다. 초대교회가 당면했던 위기 상황에서 교회 공동체가 실존적으로 대응한 고백이기에, 역사적 예수를 실증주의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요, 또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가 해석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의 해석은 신화적인 옷을 입고 있기에, 이것을 실존적 관점에서 비신화화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했지요. 이와 같은 불트만 학파의 영향이 한동안 압도적이었기에, 20세기 전반부 약 50년간 역사적 예수 탐구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사람의 세계적인 성서신학자였던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그의 유명한 역사적 탐구를 통해 역설적으로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연구의 의욕을 떨어지게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역사의 예수를 철저한 유대 종말 신앙의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갈릴리 예수는 곧 종말이 다가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그와 제자들은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것을 확신했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런 기대와 달랐습니다. 예수는 초조해졌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개입을 촉진하기 위해 그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게 될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종말론 신앙에 불탔던 역사의 예수가 현대인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이방인처럼 여겨진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접었습니다. 대신, 그의 위대한 종말론적 사랑 실천을 위해 신학교 교수직을 버리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의사가 되어 서구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했던 서양 교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아프리카 현지에 몸소 가서 제국주의적 수탈과 억압 대신 예수의 사랑 실천으로 예수 복음을 증거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 탐구 의욕은 꺾어졌습니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 탐구가 중단된 그 기간에 히틀러와 같은 괴수가 나타났을 때, 서구 교회는 그 괴수의 악행 앞에서 참으로 무력했습니다. 특히 불트만 학파의 영향 아래 있었던 학문적으로 진보적인 신학자들도 히틀러의 잔인한 야수의 횡포에 대체로 침묵했지요. 제도 교회도 대체로 그러했지요. 1950년대에 와서야 불트만의 제자인 케제만(Ernst Käsemann)은 자기 스승인 불트만이 결과적으로 가현설적 예수 이해(Docetism)에 함몰되어 역사의 예수가 추구했던 하나님나라 운동이 갖고 있던 복음의 실천적 동력을 살려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히틀러의 극우 전체주의 앞에 맥을 추지 못했던 진보적 성서신학은 실존주의적 성서 해석에 머물고 말았지요. 예수의 전복적 대안 질서 세우기 운동에 공헌하지 못했기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같이 악의 세력에 맞서는 '예수 따르미'들을 길러내지 못했지요. 그래서 1950년에 와서야 역사 예수 탐구가 불트만의 제자들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 예수 탐구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신학적 탐구로 끝나지 않습니다. 악의 지배를 극복해 내려는 실천적 예수를 새삼 주목하게 합니다. 그래서 새길공동체 첫 설교도 '하나님나라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답게'와 '더 예수답게'를 강조하는 까닭은,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나라 구현을 통해 오늘 여기서 우리를 부당하게 옥죄는 악의 지배를 예수의 대응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불완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이 역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과 공의의 새 질서를 세우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 복음이 갖는 공공성과 감동성을 오늘 우리는 되살려 잘못된 기존의 구조와 역사를 변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의 기존 세력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셨는지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일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의 권세에 대한 예수의 복음적 대응

우선 예수께서 악의 세력에 어떻게 대응하셨는지를 복음서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부터 악과의 대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의 성육신 사건은 바로 역사적 악의 지배와의 대결이라는 상황에서 더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마태복음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 왕의 악마적 권력욕을 부각시킵니다. 누가복음은 로마의 효율적 식민지 수탈, 곧 세금 징수의 배경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풀어 갑니다. 당시 로마제국과 그 제국의 하수인 노릇을 한 헤롯 권력의 비정한 상황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했습니다. 그 권력의 한낱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거짓 평화와 거짓 안정에 대한 진정한 대안으로 아기 예수를 평화의 왕으로 부각했습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거짓 평화와 예수의 진정한 평화 간의 긴장은 탄생 사건에서부터 십자가 사건까지 줄곧 계속됩니다. 그런데 두 평화 간의 긴장은 탄생과 처형 사이에서 펼쳐진 다양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특히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기존의 권력 구조에 대한 참신하고 감동적인 대안 제시와 변혁적인 대안 실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네 복음서는 모두 이 같은 예수의 대안 실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산 위의 말씀을 이 각도에서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운동은 무엇보다 예수의 무상 치료 행위에서 그 특징이 뚜렷해집니다. 단순한 육체의 아픔을 제거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질병을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저주했던 유대 지배 문화 자체를 거부하고 변혁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예수께서 죄로 인해 중한 질병에 걸렸다고 믿었던 환자를 치유하시면서, 죄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였습니다. 육체의 아픔뿐만 아니라, 육체의 아픔을 근원적으로 유발하고 지속시킨 종교 이데올로기의 횡포로부터 환자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곧, 총체적 치유였습니다. 도전적 치유였습니다. 게다가 치유의 효험을 낫게 된 환자가 계속 지속할 수 있도록, 환자의 자주적 능력을 고양시켰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말 온전한 나음을 통해 병든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한 돌보심의 사랑을 느끼게 했지요. 개인적 나음과 구조적 치유 모두 아울러 베푸신 것이지요. 이 같은 온전한 치유의 과정에서 하나님나라가 누룩처럼 번지게 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특히 사탄의 권세에 눌려 있던 귀신 들린 자들을 치유하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 지배가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하셨지요. 사탄이 번개 떨어지듯 쫓겨날 때, 하나님의 사랑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무덤가에서 자기 몸을 잔인하게 찢는 귀신 들린 자가 잔인한 로마 군단의 본성과 이름을 가진 귀신이었음을 예수님은 드러내 보이셨지요. 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예수 운동이 얼마나 감동적인 대안 행위였으며, 얼마나 급진적이고 전복적 처방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수 운동의 본보기는 그의 열린 밥상 공동체 실천이었습니다. 계급과 성, 인종과 종파의 장벽을 뛰어넘는 식탁 공동체를 펼쳤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식탁은 대체로 계급적, 인종적 장벽의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고대사회나 전통 사회에서는 식탁 둘레가 바로 계급 분리선의 구실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사의 예수는 이 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귀족이나 천민이나, 심지어 민족 반역 행위를 했던 세리도 참여하게 하는 식탁 공동체를 펼쳤습니다. 이 식탁에 둘러앉게 되면, 모두가 평등한 존재로, 또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됨을 깨닫게 했습니다. 바로 이 식탁에서 기존의 억압적 지배 구조와 차별적 권력 구조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나라가 이 식탁에 둘러앉은 자매형제들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새로운 대안 공동체였지요. 

이런 하나님나라의 맛을 예수님과 더불어 직접 체험했던 제자들이 안타깝게도 예수 운동의 진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평화와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평화, 곧 예수의 평화의 소중함을 더 설득력 있게 깨우치게 하기 위해 주님은 때로는 경구(aphorism)로, 때로는 비유로, 때로는 이야기(narratives)를 만들어 들려주셨습니다. 이를테면 산 위의 말씀에는 팔복의 선포가 있습니다. 여러 복들 중에 가장 중요한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임을 선포했습니다. 다른 축복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복들임을 은근히 깨닫게 했지요.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바로 '평화 만드미'(peace-maker)라고 하셨습니다(마 5:9). 그런데 이 메시지의 뜻을 제자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더 확실히 깨닫게 하기 위해 청중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전통적 가르침과 대조해서 이렇게 대안적 처방을 내렸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마 5:45)

아마도 이 비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큰 축복을 받으려면, 원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깨닫게 되지요. 그런데 제자들이 이것을 깨달았다 해도, 심히 불편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보다 설득력 있게 제자들을 깨우쳐 실천하게 하기 위해 비유의 이야기(story)를 적절하게 창안해 낸 것 같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부당하게 테러당해 죽어 가는 동족을 돌보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원수로 차별받았던 사마리아인은 자기의 원수인 유대인이 억울하게 죽어갈 때,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고, 자기 계획을 지우면서까지 혼신의 힘으로 바로 보살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원수를 선제적으로 사랑했던 사마리아인이야말로 하나님나라를 펼쳐 보인 복음실천자임을 깨우치신 것이지요. 정말 실천을 촉구한 대단한 신학적 발상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사마리아인의 실천에서는 복음의 공공성, 감동성, 그리고 변혁성이 모두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예수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억압적인 외세와 내세를 모두 쫓아내고 세속적 메시아가 된다면, 그때 가서 세속적 권력하에서 높은 자리 하나라도 맡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의 고집스러운 우둔함과 끈질긴 탐욕을 확인할 때마다 속으로 스산한 실망과 고독의 찬바람을 뼛속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예수 운동의 핵심은 세속적 집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자들에 의해 오히려 우아하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때 드러날 것임을 비로소 털어놓았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죽지 말고 메시아 왕으로 등극해야 한다고 촉구한 수제자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시며 이렇게 단호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마 16:24)

여기서 주님은 모든 '예수 따르미'에게 우아한 사즉생(死卽生)의 진리를 선포했지요. 당당하고 우아하게 죽음으로 참승리에 이를 수 있다는 십자가의 진리, 그 역설적 진리를 선포하셨지요. 그런데도 아직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왕의 다스림은 세속적 왕, 이를테면 헤롯이나 로마 황제의 강압적 다스림과는 전혀 다른 다스림임을 강력하게 시사했습니다.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능멸받고, 피 흘리며 자기가 매달릴 그 무거운 사형 틀의 십자가를 자기 어깨로 짊어지고 가면서도, 원수 사랑을 실천하는 고난의 종의 모습에서 하나님 왕국이 펼쳐진다는 놀라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시고, 당신이 그 비전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Kingdom of God이 아니라, 비움과 지움의 Lovedom of God입니다. 여기의 사랑 실천은 황금률적 사랑 계율이 아니며, 종교 명상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처절하게 감동적인 자기 비움의 실천이었습니다. 자기 지움과 자기 내려놓음의 실천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감동적 실천에 로마 권력이 드디어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역설입니다. 예수 사형집행관이었던 로마 중대장이 처형당하는 처참한 갈릴리 예수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렇게 탄성을 쏟아 냈습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마 27:54)

그 막강했던 로마 황제의 지배를 지탱했던 폭력의 기둥을, 폭력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힘이 바로 예수의 철저한 자기 비움 실천에서 터져 나온 것이지요. 사실, 예수가 수치스럽게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은 한마디로, 그의 즉위식과 재관식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시면서 새로운 사랑 지배, 공의 지배, 그리고 샬롬 지배의 문을 활짝 여신 것이지요. 이것보다 더 급진적, 더 진보적, 더 감동적, 더 변혁적, 더 공공적 대안을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파·종단·종파에서, 어느 체제와 문화에서 이 같은 감동적 역설의 창조적 동력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역설이 영광스럽게 현실화한 것이 바로 사흘 후에 터져 나온 부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이때 가서야 스승의 하나님나라의 본질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요. 여기서 우리는 예수 복음에서 십자가와 하나님 왕국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진리에 새삼 주목해야 합니다. 끔찍스러운 십자가 처형과 영광스러운 왕관 쓰기는 하나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역사적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가 분리할 수 없는 하나라고 하는 것은 성육신 신앙과 신학(incarnation)이 역사적 예수의 비움 신학과 신앙(kenosis)과 떨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1700여 년간 성육신과 십자가 신학(또는 속죄론적 신학) 사이에 예수의 역사적 비움의 사건들은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최근 복음주의 신학자로, 21세기의 바르트로 인정받는 톰 라이트(N. T. Wright)는 최근 저서 <하나님은 어떻게 왕이 되셨나>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여튼,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예수가 사랑 지배 질서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예수는 세속의 왕이나 황제처럼, 또는 사이비 종교 창시자들처럼 영광의 대접을 받으며 장수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작년 5월, 예언자적 바른 소리를 하다가 불교 권력에 의해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나 충북 제천 근처의 한 암자에 은둔해 있는 명진(明盡) 스님을 위로차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와 오찬을 함께하며, 그의 초라한 암자에서 두 시간가량 열린 소통을 했지요. 제가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몇 살까지 사셨느냐고 하니, 70~80년 사셨던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악의 세력이 있었다면 그 옛날 80세까지 사신 것은 정말 이례적이라고 했더니, 부처님은 궁중에서 태어났기에 권력 작동 방식에 대해 잘 알고 계셨을 것이고 그 권력과 맞부딪치는 일은 지혜롭게 삼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기야 깊이 명상하는 종교수행자들을 벌거벗은 악독한 권력이 잔인하게 쳐 죽이지는 않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명진도 미소 지으며 제 이야기를 경청했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씀과 실천 사이의 격차는 어느 시대, 어느 지도자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격차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낮은 수준은 말씀은 많이 하면서 실천은 아주 적게 하는 경우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들의 왈왈(曰曰)은 많으나 실천, 그것도 감동적 실천이 적은 경우, 종교는 위선의 극치로 인식되지요. 착한 사마리아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자들이 그러합니다. 두 번째 수준은 말씀과 실천이 같지 않은 현실을 항상 반성하고 그것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할 때 나타나는 더 성숙한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종교 수련에 열중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불교에서 하안거, 동안거를 통해 말 없이 자기의 위선적 삶을 성찰하는 일이 바로 이 수준의 모습이지요. 불교는 이런 점에서 다른 종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말씀과 실천을 끊임없이 합일하려는 성숙한 종교라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현실적으로 기독교보다 더 성숙한 종교 같다고 했지요. 마지막 가장 높은 수준은 말씀, 곧 왈왈은 적게 하고 실천은 가열차게 해내는 수준이라 했지요. 이 같은 격차는 아름다운 격차요, 감동적이고 변혁적 동력으로 작동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픈 것이 있다면, 말씀은 적게 하고 실천이 뜨겁고 강한 경우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명진 스님께 예수가 서른 중턱도 넘지 못하고 처참하게 십자가 극형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했지요. 그러나 처형자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의 권력을 감동적으로 해체시키면서 우아하게 처형당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역사의 예수가 80세까지 사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그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명진을 쳐다보며,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진은 이 시대에 이사야 선지자 같은 분입니다. 미가, 아모스 같은 구약의 예언자 같은 분이시지요. 비록 명진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의 영감을 갖고 부정하고 억압적인 악의 권력을 질타하는 참된 예언자요, 스님이시지요."

그는 저의 칭찬에, 다소 쑥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예수님보다 두 배 이상의 긴 인생을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처럼 치열하게 사시면서 말씀은 되도록 적게 하고,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에 진정 온몸과 마음을 바쳤다면,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하고 반성합니다. 명진 스님은 저보다 젊기에 더 용기 있게 비우는 실천에 앞서고 있기에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서로 아쉬워하며, 그는 강원도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고 하며 저와 함께 암자를 떠났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며, 오늘 한국 기독교의 타락을 더욱 아프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조용한 암자 방에 가득 차 있는 듯한 미가와 아모스의 분노하는 영성을 느끼며 예수다움의 따뜻한 공기를 마신 듯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즐거웠지요. 작년 5월 초에 있었던 즐거운 에피소드였습니다.

* 이 글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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