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째 자끄 엘륄 총서가 나왔다.

▲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나는 무엇을 믿는가?> / 자끄 엘륄 지음 / 김치수 옮김 / 대장간 펴냄 / 328쪽 / 2만 2,000원

원제는 '나는 무엇을 믿는가?'이지만, 우리말 제목은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대장간)이다. 이 책은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인 자끄 엘륄이 믿는 것과 평생의 삶을 통해 얻은 지성적인 통찰, 영적인 지혜 중에서 개인과 역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존재의 이유>(규장)가 엘륄 책의 결론에 해당한다면, 이 책은 에필로그에 해당한다. 엘륄은 이 책에서 자신이 한 모든 학문적인 연구와 저작 활동들이 결국은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고 역사라고 강변한다. 엘륄의 의도는 곧 그 삶과 역사의 중요성,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데 있다.

문제는 믿음의 차원에서는 믿는 주체가 인간이라면, 계시의 차원에서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데 있다. 신학이 주로 계시의 차원을 다룬다면,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믿는 개인의 삶, 사회, 역사,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조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자는 이 책을 현대의 언어로 쓴 엘륄의 전도서라고 적고 있다.

이 책에서 만난 흥미로운 엘륄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한다. 첫 번째 글은 아내를 만났을 때, 두 번째 글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묘사한 것이다. 불경하다 단언하지 말고 몇 번 더 생각해 보면, 인간과의 사랑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빗대 영성을 표현한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를 처음 발견하고 태양이 폭발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나의 모든 갈망과 소망에 완전히 부합했다. (중략) 그녀는 나의 우주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통해서, 그녀의 눈 안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하나의 말씀이 돌연히 아주 실체적인 진리로 다가와 이제 그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중략) 그때 나는 그 말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또 그 말씀을 거부할 수도 없다. 그 말씀은 어느새 내 삶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엘륄은 "평생을 통하여 나는 인간이 더 깨어나서 자유롭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군중 속을 빠져나와서 스스로 선택하고, 또한 인간의 사악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나의 책들은 다른 목적이 없다.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과거 행위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사랑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한다. 그 사랑으로 엘륄은 개개인의 삶과 인간의 역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고 통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엘륄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의 전개는 적지 않은 단어의 개념에 대한 재정립과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몇 가지 부족하나마 그것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 책의 소개를 마무리한다.

사랑: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만, 사랑을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경험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주는 것이지 가지는 것이 아니다. 주는 사랑은 지속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이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내 평생에 한 번으로 그칠지라도, 이 승리 위에서 나의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 기억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의 존재가 빚어져 간다. 언제나 그 기억이 살아 있게 해야 한다. 은밀하게라도 계속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 신앙은 신념으로 변질될 수 있지만, 신념이 신앙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역사는 말한다.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며, 신앙의 보존과 전파를 목적으로 제도를 확립하려고 할 때 신앙은 신념으로 변신한다. 신앙이 진리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원칙들을 명확하게 하려 하고, 사회의 모든 것을 총괄하려 할 때, 신앙의 변질이 시작된다. 신앙이 결정적이고 확고한 원칙들만을 답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강요하려 할 때, 변질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때, 신앙은 사라지고 신념과 제도화된 종교만이 존속한다. 역사는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다. 역사는 물론 무익한 것이 아니지만, 미리 대비하여 수집한 해결책들의 모음집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창의적 대응을 독려하는 것이다.

변증법: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변화나 진화를 가져올 유일한 것은 모순과 반대, 그리고 부정적인 것의 등장과 부정적인 성향이다. 이는 상황을 전환한다. 하나의 주체가 항의하고 부정하여 명백하게 모순을 표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부정은 혁신을 가져오고, 집단과 개인의 역사를 이어 간다. 그때 부정이 전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은 오직 이 부정에 기인한다.

: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고유한 장소인 이 땅은 연합과 기쁨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땅이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그렇게 되도록 회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서지기 쉽고 갈가리 찢긴 이 땅이 우리의 유일한 거처요, 우리의 유일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하나님은 피조물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신생아를 길에 버려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존재를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을 사랑하고, 피조물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하나님의 지식을 전한다. 나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은밀한 현존을 믿는다. 때로는 우리를 침묵 가운데 남겨 두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늘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전한 말씀을 찾게 하고, 우리가 그 기록된 말씀을 살아 있는 현재화된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을 늘 새롭게 한다. 하나님은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는 화려한 의식들 가운데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의외의 모습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 속에, 내가 다가가는 이웃의 연약함 속에 숨어 있다. 사랑의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줄 정도로 사랑하는 당신의 피조물을 지옥에 보낼 수는 없다. 먼저 당신의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은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스스로 당신 자신의 몸을 절단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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