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국 기도회를 열었다. 목회자·신학생 등 300여 명은 서울 명동에서 광화문광장까지 1시간 동안 가두 행진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박근혜 정부는 교과서 국정화를 즉각 중단하라", "친일 미화, 독재 찬양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국정교과서 철회하라."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는 목회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최부옥 총회장) 소속 목회자 300여 명은 11월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시국 기도회'를 열고 명동에서 광화문까지 십자가를 들고 행진했다. 정부가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행보가 독재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규탄했다.

기장 총회가 직접 주최한 시국 기도회는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최부옥 총회장, 배태진 총무,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전 국사편찬위원장), 목회자·신학생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전라도, 제주도 등 지방에서 올라온 목회자들도 있었다.

시국 기도회는 1부 예배, 2부 십자가 행진순으로 진행됐다. 예배를 인도한 김경호 목사(총회 교회와사회위원장)는 "정부가 우리에게 국정교과서라는 우상을 숭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제2의 신사참배 강요로 생각한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철회를 위해 기도한 김윤석 목사(총회 역사위원장)는 "다양한 역사 해석을 시도하고, 비판과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정반대에 해당하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시국 기도회는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피켓을 든 채, 국정화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날 설교는 김상근 목사가 맡았다. 김 목사는 '공의가 빛처럼 드러날 때까지'(사 62:1-3, 라 1:1-4, 막 2:27)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국정교과서에 사활을 건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위기감이 들었다면서 목회자들에게 투쟁을 촉구했다. 김 목사는 "역사 교과서를 기어이 국정화하는 것으로 전제정치 시대를 다시 열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이지 않다. 거리로 나서는 학생, 교수, 시민들이 있다. 공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우리도 시대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정말 좌편향적일까. 이만열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근현대사 중 97%가 남한과 관련한 내용이고, 북한 관련 내용은 3%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설교가 끝난 다음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전 국사편찬위원장)가 '국정 교과서 왜 문제인가'를 주제로 증언했다. 증언에 앞서 이 교수는 "기장 교단에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선배들이 많았다. 예장고신 출신인 저는 기장 선배들에게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저처럼 부채 의식을 지녔다면, 개혁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국정교과서를 주도하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선동과 전략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기존 역사 교과서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등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종편과 언론을 통해 거짓말을 흘리고 있고, 잘 모르는 국민은 세뇌당해 간다고 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존 교과서 저자나 애당초 집필 지침을 내린 학자와 관계자를 문책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또, 이 교수는 세계적인 추세가 국정화에서 검인정제와 자율제로 바뀌는 것인데, 우리나라만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예배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십자가 행진을 했다. 목회자들은 보라색 스톨을 목에 걸었다. 한 손에는 '국정교과서 철회'가 적혀 있는 피켓을 들었다. 향린교회에서 출발한 일행은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하면서, '뜻 없이 무릎 꿇는', '우리 승리하리라' 등의 찬송을 불렀다. 인도자의 구호에 맞춰 "친일 미화 독재 찬양 국정교과서 반대한다"는 구호도 외쳤다. 목회자들의 행진을 지켜본 일부 시민은 박수를 쳐 주며 응원했다.

참석자들은, 행진 중간에 기아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 중인 을지로에 있는 한 빌딩을 찾아 노동자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과거 인권위원회가 입주해 있었던 빌딩 옥상에서 155일째(11월 12일 기준)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최부옥 총회장과 배태진 총무는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방한복과 방한 이불 등을 전달했다. 농성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들은 고맙다는 듯 양손을 흔들었다.

▲ 기장 총회는 사전에 집회 신고를 했고, 아무런 방해 없이 가두 행진을 할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광화문광장에는 행진 1시간 만에 도착했다. 오후 6시, 어둑해진 광장에 220개 가방과 촛불이 켜져 있었다. 이날 '2015년 수능일 세월호 기억 행동 아이들의 책가방' 퍼포먼스가 열렸고, 시민들이 각자 준비한 가방을 자리에 놓아둔 것이다. 가방에는 학생 이름이 적힌 단원고 명찰과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미수습된 학생 4명의 자리에는 노란 종이배가 놓였다.

목회자들의 지지 방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 이창현 군의 아버지 이남석 씨는 "저도 교회에 다니는데, 목사님들의 발언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천과 행동으로 꿈과 희망을 안겨 주는 목사님들이 계셔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각각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조용히 기도를 하거나,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다.

배태진 총무는 "역사를 마음대로 하려는 대통령의 교만한 생각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를 담은 복음서도 여러 개인데, 어떻게 역사를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기장은 선교적 역량을 집중해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앞으로 노회와 개교회를 통해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참석자들은 행진을 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국정교과서 반대 구호를 연신 외쳤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행진 도중, 을지로에 있는 한 빌딩에 멈춰 섰다.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기아자동차 해직 노동자가 감사의 뜻으로 팔을 흔들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1시간 만에 도착한 광화문광장 바닥에는 많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살아 있었다면 11월 12일 수능을 치렀을 것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광화문에 도착한 목회자들이 아이들의 가방과 이름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희생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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