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장고신 개혁그룹의 리더 가운데 한 사람인 정주채 목사(향상교회)가 교단에 쓴 소리를 했다. 김해복음병원의 부도에 대한 반성과 회개 없이 병원만 되찾아오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가 김해복음병원 부도 사태의 여파로 송도복음병원, 고려신학대학원까지 휘청거리는 등 교단 전체가 위기에 빠져 교단 지도부가 모금운동을 벌이는 상황에서, 개혁그룹의 대표적인 지도자 정주채 목사(향상교회)가 교단의 도덕적인 타락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예장고신은 관선이사를 파송한 교육인적자원부에 30억 원의 빚을 갚아 김해복음병원과 고려신학대학원 등을 운영하는 법인이사회를 찾아오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정 목사 등 개혁그룹은 빨리 찾아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모금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 목사는 "병원을 인수해 10년간 경영하면서 왜 빚이 6억 원에서 180억 원대로 치솟았는지 치밀한 반성 없이 경영권만 찾아오면 과거의 잘못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돈을 모금하기에 앞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차근차근 따져보고, '교단이 주인이면 주인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무책임하게 경영한 일에 대해 하나님 앞에 집단적으로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백서> 발간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잘못을 범한 '죄인'을 색출해 단죄하려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개인의 죄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되돌아보기 위해 <백서>를 발간한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최근 예장고신 교단에 돈 뿐만 아니라 합의서를 가져와야 법인을 돌려주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병원장과 노조, 교수협의회 등 복음병원의 다양한 주체들과 교단이 병원 경영과 관련해 합의하기 전에는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모금 활동을 펼친 예장고신 교단을 허탈해하고 있지만, 정 목사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그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지라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목사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가교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2월 1일 향상교회에서 정주채 목사와 나눈 인터뷰 요약문이다.

복음병원 사태의 핵심은 뭔가.

항상 근본적인 문제는 도덕성에 관한 것이다. 도덕적인 타락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다. 고신교단을 뒤흔든 김해복음병원 문제도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아 부실의 실체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김해복음병원을 인수할 당시 빚이 6억 원 정도였는데 10년이 흐르는 과정에서 180억 원까지 불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단이 주인이라는 말은 곧 주인이 없다는 말이 나돈다. 책임자들은 상황이 급하다고 23%에 이르는 사채를 쓰고, 교단 목회자들은 엄청나게 높은 이자를 딸린 사채를 소개하고, 직원들은 기강이 해이해지고…. 지금은 누구도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터졌고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총회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1999년에 내가 총대를 메고 복음병원 문제를 처리하자고 운동을 벌였다. 총회에서 매각하기로 결의까지 했다. 그러나 복음병원의 이사회가 거부했다. 그때 매각했더라면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우지 않고 처리했을 것이다. 사채도 이렇게 불지 않았을 것이다.

왜 해결하지 못했나.

이권에 개입한 사람이 워낙 많았다. 매각하면 사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반대한 것이다. 매각에 반대한 사람들이 교단 정치에 깊게 관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당시 50~60억 원 정도의 사채를 썼는데 지금 세 배로 불었다. 당시 나는 지금 처리하지 못하면 교단 전체가 큰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슬프게도 그대로 됐다. 결국 김해복음병원이 부도나고 관선이사까지 들어오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사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근본적인 처리는 불능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겠나. 잃어버린 돈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겠나. 책임자를 처벌할 수도 없다. 그러면 너무 많은 피를 보게 된다.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도덕적인 반성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경영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회개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간의 사태를 정리한 <백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작년 총회는 <백서> 발간 결의를 기각했는데, 정상회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해 <백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닌가.

교단 지도부는 <백서> 발간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화해에 방해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총회에 와서야 겨우 우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지만, <백서> 발간은 부결되고 말았다. 다행히 총회 이후 정상화위원회가 위원회 차원에서라도 <백서>를 발간하자고 결의했다.

<백서>에는 누가 돈을 떼어먹었느니, 누가 어떤 잘못을 했다느니, 누가 어떤 결의를 해서 피해를 입혔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누구를 벌을 주자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보복은 가능하지만 수습은 안 된다. 역사적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특정 세력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을 회개하자는 것이다.

총회가 부결한 사안을 하급 기관인 위원회에서 재론하는 것은 불법 아닌가.

어떻게 될지는 따져봐야겠다.

<백서>에 거론될 사람들의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

반발이 왜 없겠나. 반대도 하고 격렬한 토론도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아픈 과거를 정리하는데 그런 과정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총회는 이러한 혼란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반성의 과정이다. <백서> 발간이 잘못한 사람들을 벌주자는 이야기면 진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 모두가 반성하자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생각에 총회 지도부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발간하려는 <백서>로는 누가 돈을 얼마를 빼돌렸는지 같은 일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흐름만을 짚으면서 총회와 이사회 등 기관이 어떤 실책을 했는지 파악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사태는 복잡하지만 우리가 따지려는 일은 쉽게 눈에 보이는 부분이다.

<백서>를 발간한다고 회개운동이 자동으로 일어나지는 않을 텐데, <백서> 발간 이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백서>가 나오면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 분명해질 것이다.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는 법인이 나가야 할 방향도 드러날 것이다. 복음병원이 학교와 교단과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를 갖게 될 것인지도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 교단이 병원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3자 인수를 주장한다. <백서>가 나오면 앞이 보이지 않겠나.

지금 교단에서는 도덕적인 반성보다는 관선이사를 내보내기 위해 30억 원을 모으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나도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를 해도 교단 지도부 등에서 개혁 그룹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재정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니 우리를 반교단적인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우리는 교단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돈을 안 내려는 변명처럼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모금운동에 성의껏 동참했다. 빨리 법인을 찾아오는 걸 왜 반대하겠나. 우린 법인을 찾아와 병원을 경영하는 것보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철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거다. 그런 반성의 필요를 절감하지 못하는 상태, 도덕불감증에 걸린 상태에서는 다시 경영권을 찾아온들 또 과거의 일을 되풀이할 게 뻔하다. 또 부도난다.

안타깝게도 교단 내에서는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자는 주장이 무시당하고 있다. 교단 지도부는 우선 이사회를 교단으로 찾아온 다음에 회개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만 가져오면 뭐하나. 또 과거에 일어난 갈등과 무능한 경영은 재현된다.

교육부로부터 법인을 돌려받기 위한 돈은 어느 정도 마련했지만, 교육부가 합의서를 받아오라며 넘겨주지 않는 상태다.

사실 돈을 마련하는 것보다 합의서를 작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 부족한 돈이야 빌려서라도 마련하면 된다. 교육부가 요구한 합의서는 교단과 병원장, 노조, 교수협의회 등이 앞으로 어떻게 병원을 운영해갈 것인지, 부채와 채불 임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에 합의를 포함하는 문서다. 교육부는 교단에게 병원 운영의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말하는 거다. 병원장과 노조, 교수협의회 등도 교단이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단 지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병원을 운영하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가능하면 교단의 입김을 덜 받는 쪽을 택하려 한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토론이 필요하지만, 교단은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작업을 건너뛰고 일단 법인부터 찾아오려 한다. 그러니 불신이 가시질 않고 시끄러운 것이다.

최근 교단 신문인 <기독교보>에 '책임 경영' 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지적했다.

교단이 말하는 책임 경영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병원장에게 경영을 맡기겠다는 건지, 따로 CEO를 데려오겠다는 건지, 상임 이사장을 두겠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내 주장은 그렇게 막연하게 말하지 말라는 거다. 일은 기관장이 중심이 되어 책임지고 추진해야 한다. 병원의 경우는 병원장에게 맡기는 게 책임 경영이다. 그게 책임 경영이다. 그동안 이사회의 권한이 너무 컸다. 이사장이 여러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제 이사회는 후원이사회 수준으로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법인이사의 선출 방식도 총회에서 직접 선거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는.

우리는 지금 계파 싸움이 워낙 치열하다. 누가 병원 경영에 적임자인지 따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쪽 사람을 심으려 한다. 총회에서 직접선거로 이사를 뽑으면 이런 계파 정치만 득세한다. 정치색을 빼고 일꾼을 찾으려면, 총회 수뇌부와 기관장 등이 협의해서 인물을 인선하고 총회에서 가부만을 묻는 방식으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전문 식견을 갖춘 인사를 뽑을 수 있다. 그동안 경영을 모르는 목사들, 이름은 알려졌지만 실제 실무에는 기여하지 않는 장로들이 이사로 앉아 있었다. 이제는 이런 인사들은 배제해야 한다. 목사들은 상징적인 인물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빠지는 게 좋다. 성직자가 노조나 직원과 싸우고 고소당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

교단에만 로드맵을 제시하고 외칠 것이 아니라 개혁 진영에서 좋은 제안을 해야 하지 않나.

솔직히 마음이 급하다. 나는 올해 3월 안식년을 맞아 올해 9월까지 자리를 비운다. 곧 개혁그룹이 모여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치열하게 토론해 모두가 공감할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교단 지도부와 병원장, 노조, 교수협의회 등이 활발히 토론해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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