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밝힌 지 3일 만에, 전국에서 교수 102명이 국정교과서에 찬성한다고 지지 선언을 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교수들 중에는 신학교 교수도 있었다. (관련 기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기독교 공정 서술해야") 그중에는 박명수 교수(관련 기사: [인터뷰] 국정교과서 찬성 선봉장 박명수 교수)와 배본철 교수, 허명섭 연구위원 등 성결교단 서울신학대학교 산하 현대기독역사연구소 소속이 많았다. 

반면, 10월 26일 같은 서울신학대학교 동문 442명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찬성 의견을 보인 교수들과 다르게 "권력의 의도에 따른 국정교과서 추진이 우리나라 미래를 위한 정확하고 의로운 방향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서울신대 동문 및 성결 교인, 국정교과서 추진 철회 요구)

성명에 이름을 올린 사람 중에는 서울신학대학교 이신건 교수(조직신학)도 있었다. 이 교수는 독일 튀빙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교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꾸준하게 내는 교수 중 한 명이다. 이 교수는 서명에 이름을 올린 후, 페이스북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10월 30일, 학교 연구실에서 이신건 교수를 만나 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는 요즘처럼 성결교가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신건 교수는 "성결교단은 원래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서 시국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찬성이나 반대를 선언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이번처럼 교수·목사·학생이 함께 발언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이신건 교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박명수 교수와 전혀 다른 입장을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다음은 이신건 교수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같은 학교 박명수 교수가 공개적으로 국정화 찬성 의견을 발표했다. 동료 교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거 박명수 교수를 만났을 때 역사 교과서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런 식으로 터뜨릴 줄은 몰랐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 한국교회와 관련해서는 초기 성결교 교회사 정도만 가르쳤다. 성결교역사연구소라는 걸 만들어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로 이름을 바꾸더라. 지지 선언에 함께 이름을 올린 사람들도 그 연구소 소속이 많다. 그들은 박 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교인들 사이에 유언비어가 내포된 역사 찌라시가 돌기도 한다. 대부분 현행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하고, 교사들도 다 좌파라는 식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떠도는 소문 말고 정확하게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좀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일 수도 있다. 현행 교과서가 설령 좌편향이라고 해도 어느 부분이 그런지, 왜 좌편향됐는지 검증해야 하지 않겠나. 

찬성하는 사람들 주장대로 교사·교수들이 좌파라고 치자. 그러면 왜 그들이 좌파가 됐는지를 분석하는 게 먼저다. 그 후,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극단으로 가지 않는 건강한 좌파 또는 중도파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 교계는 국정화가 되면 기독교 분량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이유가 국정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보는가.

'국정화를 해서라도 기독교 서술이 많아지면 좋지 않은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면 당연히 부정적인 것도 많이 실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좋겠나. 기독교가 많이 실리면 갑자기 선교나 전도가 잘될까. 그거 하나 보고 교회 안 나가던 고등학생들이 '한국교회가 역사 속에서 진짜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까 우리 교회 나가자' 이런 단순한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독교 서술을 더 많이 넣으려고 국정화에 찬성하는 행동은 소탐대실이라고 본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기독교가 또 욕을 먹고 있다. 여론도 국정화 반대가 우세하다. 기독교는 오른손이 한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선한 일을 했어도 세상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핍박과 고난을 받는 게 기독교의 길이다. 왜 그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 보수 성향의 교계 단체들은 원래 친여당 성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요 장로교단 총회장들이 나서서 국정화에 찬성한다고 했다. 국정화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정치 선호도를 밝혔다는 비판도 있다. (관련 기사: 독립운동 기여한 기독교가 왜 '친일 미화' 우려되는 국정화에 찬성을…)

총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교단 전체를 대변하는 듯이 얘기하기 때문에 비중 있게 다가오기는 한다. 보수 교단 목사들은 종북 패러다임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현행 교과서가 북한을 찬양하고 남한을 폄하하고 좌파 이데올로기,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는 주장에 쉽게 세뇌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독교와 반공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어떤 사안이 좌파 이데올로기와 결합했다고 생각되면 목사들은 바로 반대한다. 

▲ 이신건 교수는 김동호 목사처럼 자기 소신을 밝히는 목사에게 '목사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지 말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주장했지만 뒤로는 권력과 결탁해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찬성하는 총회장을 향해 '목사가 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느냐'라는 말은 안 한다. 하지만 김동호 목사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고 글을 썼더니 비난이 쇄도했다. '목사가 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느냐'는 이유가 많았다. 과거 수많은 개신교 목사들이 박정희나 전두환을 찬양하는 발언을 할 때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왜 이번에만 유독 더 그럴까.

국정화에 찬성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다면서 좋아했을 것이다. 반대했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거다. 한국 기독교인 뿌리 속에는 정교분리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아주 강하게 깔려 있다. 한국 기독교는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늬만이라도 정교분리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다. 미국이 동아시아 침탈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선교에 더 공을 들였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자국에 반하는 일을 못 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한국 사람들에게 정치 활동은 배제하라고 가르쳤다. 한국이 그때부터 비정치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기독교 지도층은 겉으로는 정교분리를 외치고 뒤로는 권력과 결탁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승만만 봐도 정치와 종교가 왼전 결탁했다. 박정희 때도 정치에 가담하는 청년들에게 교회가 빨갱이·좌파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신앙을 지키라고 했다. 그렇지만 대학생 선교 단체인 CCC는 정동 러시아공관을 공짜로 받는 등 정부에게 많은 특혜를 받았다. 조용기 목사도 여의도에 교회 부지를 싸게 받고 삼선개헌 지지 선언을 했다. 주로 대형 교회들이 뒤로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앞에서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 청년들이 사회로 눈을 돌리지 못 하도록 막았다.

- 그랬던 기독교였는데, 이번 역사 교과서 사태만 봐도 그렇고 이제 정치 활동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맞다. 그동안 정교분리를 주장한 보수 기독교계도 봉은사역 이름 개정이라든가 사학법 개정 등 자신들의 이익과 맞닿은 부분에서는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선호도를 밝힌다. 70~80년대에는 정부에 저항하고 반대하던 교단의 지도자들이 교인들을 모아서 현장에 갔다면, 이제는 보수 쪽 사람들이 꾸준하게 활동하는 운동 단체가 생긴 것 같다. 다 모아 보면 비슷한 사람들이다. 자기들도 피켓 들고 시위하면서 "왜 기독교인이 혹은 목사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느냐"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모순적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이 싫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 꼭 정교분리를 염두에 두고 중립을 지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침묵하면서 양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중립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찬반 논쟁이 있을 때 '중립에 선다'는 것은 찬성에 가까운 행위다. 정치적 중립은 현실을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거다.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국정화에 찬성하거나 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어느 신약학 교수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왜 교회가 정치적인 일에 끼어 드냐고 하더라.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조차도 정치에 관심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비정치적 논리에 관심을 둔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냥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들의 정치 해석이나 논리가 틀렸다고 하면 되는데, 성명서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성명서 쓰는 행위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정치적인 사안에 교수가 발언하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교수조차도 저렇게 무지몽매한 이야기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약학을 전공한 신학자의 시야가 어떻게 그렇게 좁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몰트만 교수는 "비정치적인 신학은 이 땅에도, 하늘나라에도 없다"고 했다. 그동안 비정치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뒤로는 정치 세력과 결탁해 왔다.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정확하게 보여 주지 않았는가. 하나님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통치'라는 단어는 정치적인 용어다.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나라'라는 개념의 의미다. 헌데 아직까지 내세와 현실을 분리하는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전하는 목사들이 많다. 

- 한국교회가 취약한 정치의식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젊은이들조차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하면 좋은 곳에 취업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배우자 만나서 결혼하고, 남들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 계발적인 메시지만 듣는다. 이것이 한국교회 현실이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모든 정치 현상에 찬반을 논할 수는 없다. 근대화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의식의 변화는 노력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 성장만으로 열매의 질을 평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하위 단계다. 교회가 초보 신자들에게 복 받기 위해 예배하러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을 믿다 보면 그 위의 단계가 분명 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어떤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성도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에 관심을 두고 않는다. 전도 프로그램만 돌리고 있다. 

개인이 힘들면 아파도 참으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 사회라는 큰 구조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숙제가 있다. 절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서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을 얻는다. 어떻게 보면 세상이 교회보다 더 중요하다. 세상을 얼마나 공의롭게 만드느냐에 따라 삶의 길과 행복 여부가 달라지는데, 어떻게 세상에 무관심하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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