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리더러 나가라는 건 아니겠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난 3월, 일산은혜교회 분립개척준비위원회 첫 번째 회의 자리에는 싸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정적을 깬 건 담임목사님의 인사말이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2015년 1월 담임목사님은 당회에서 교회 분립안을 발의했다. 올해 교회를 분립하고 남오성 목사를 분립 교회의 목사로 결정하는 안이었다. 한 달의 숙고 끝에 당회는 교회 분립안을 통과시켰고, 7명의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우리 교회 특성을 고려하여 연령대는 40~50대(남성 4명, 여성 3명)로 구성했다. 장로 1명, 권사 1명, 안수집사 2명, 서리집사 3명이었다. 이런 시도가 우리 교회에서 처음일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서도 유례가 흔치 않은지라 지명된 위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여러분을 모신 것은 분립 개척을 위한 기본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교인을 대표하여 아이디어를 내주시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지혜를 모아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더러 분립 개척하러 나가라는 말 아닙니다. 허, 허, 허."

담임목사님 말씀 끝에, 누군가 내쉬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날 3월 회의에서 나는 지난 경과와 향후 일정을 보고했다. 3년 전부터 교회 분립과 관련하여 담임목사님과 나눈 대화를 요약하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분립 개척 준비 일정을 제안했다. 4월 회의 때는 다른 교회의 분립 사례를 검토하기 위해 향린교회-섬돌향린교회, 예인교회-더작은교회, 산울교회-광교산울교회, 나들목교회-나들목일산교회를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5월에는 위원들 각자가 품고 있는 분립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았고, 6월 회의 때는 이것을 정리하여 7월 당회에 올릴 보고서의 시안을 마련했다. 매달 회의가 진행될수록 위원들은 첫날의 어색함을 잊고 분립 교회를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 활력이 넘쳤다.

준비위원회 활동과 더불어 교육도 이뤄졌다. 나는 16주 동안 수요일 저녁마다 전 교인을 대상으로 교회론을 강의했다. 먼저 3~4월에는 에베소서를 강해하며 본문에 집중했다. 이미 도래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나라의 여명기에, 사탄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 사이에 놓여 있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이뤄 가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어 5~6월에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공부했다. 주로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란 무엇인가>(IVP), 존 스토트의 <살아있는 교회>(IVP), 하워드 스나이너의 <참으로 해방된 교회>(IVP)를 살펴보았다.

지난 7~8월, 나는 8주간 주일예배 설교를 담당했다. 회의와 교육을 통해 응축된 분립의 비전을 선포한 것이다. 7월에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창의적, 도전적, 희생적으로 헌신한 아브라함, 여호수아, 갈렙,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었다. 8월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되는 그리스도인만의 희로애락, 즉 기쁨·분노·슬픔·즐거움의 이유를 살펴보며 앞으로 개척할 분립 교회의 방향성을 나누었다.

그사이 분립에 대한 당회의 논의는 구체화되었다. 지난 7월, 준비위원회 보고서를 접수한 당회는 두 달간 면밀한 검토·수정·보완을 거쳐 9월 최종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헌신된 20가정을 포함한 장년 60명이 분립 개척교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적극 독려하고, 성탄절 헌금(5,000만 원 목표)을 지원하고 목회자 사례비는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담겨 있었다. 지원금은 다른 교회 개척 사례와 비교할 때 적은 편이다. 하지만 '교인의 창의적 헌신에 근거한 탈자본적 개척'이라는 분립 개척의 정신을 반영하여 결정하였다.

9~11월은 기도와 결단의 시간이다.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시간이다. 모든 교인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이를 위해 담임목사님이 매주 토요일 새벽에 분립 개척을 위한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고백컨대, 기도가 가장 힘들다.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제일 고통스럽다. 이를 통해 11월이면 모든 일산은혜교회 교인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주님 나라를 위해 분립 개척교회에서 일할 것인가, 일산은혜교회에서 일할 것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자기 편의와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12월 첫 주 토요일 저녁에는 분립 교인의 첫 모임이 시작될 것이다. 이후 12월 한 달간 준비 모임을 거쳐 2016년 1~2월에는 일산은혜교회 안에서 분립 교회가 독자적인 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교회 안의 교회인 셈이다. 그리고 분립 개척교회는 3월 첫 주에 설립 예배를 드릴 것이다. 교회의 위치는 일산 또는 그 인근, 즉 일산은혜교회 교인들이 이사 가지 않고 모일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할 것이다.

이상의 분립 개척을 위한 일련의 과정, 즉 1~2월 당회 결의, 3~6월 준비위원회 회의와 교회론 교육, 7~8월 비전 선포 설교, 9~11월 기도와 결단, 12~2월 분립 교인 모임과 예배, 3월 분립 교회 설립에는 이번 분립 개척을 규정하는 중요한 원리가 일관하게 흐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교회를 개척한다'다. 누가 교회를 분립 개척하는가? 바로 일산은혜교회다. 그렇다면 일산은혜교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교인 공동체다. 모든 교인이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 분립에 참여한다. 남오성 목사나 분립 교인의 결의가 아닌 일산은혜교회의 공식 의사 결정 기구인 당회의 결의를 통해 분립을 결정한 것이다. 준비위원회도 분립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구성되었고, 분립을 위한 교육과 설교도 분립 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교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기도회도 남오성 목사가 분립에 관심 있는 교인만을 위해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님이 전 교인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분립 교회에 갈지 말지 결단하는 것도 관심 있는 일부 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내려야 하는 것이다.

목사가 개척한 교회가 결국 목사의 교회로 전락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떻게 하면 목사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처음 개척할 때 하나님이 개척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개척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공동체가 참여하는 개척을 통해, 어느 개인도 자기가 교회를 개척했다고 주장할 수 없으면 하나님의 개척이 될까? 그렇게 개척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리되지 않는 헝클어진 상념이 어지러이 오간다. 어쨌든 '교회가(!)' 교회를 분립 개척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보려는 일산은혜교회의 도전은 계속된다.

남오성 / 일산은혜교회 목사, 빅퍼즐아카데미 대표,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 일산은혜교회 전경. (사진 제공 일산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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