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윤 박사와 김지철 목사가 함께한 종교개혁기념 강좌가 10월 16일 소망교회에서 열렸다. 두 사람은 바울의 칭의론과 성령을 통한 교회 개혁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15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종교개혁일이다. 그래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도 대개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주일로 지킨다. 신학계에서는 매년 10월 중·후반이 되면 종교개혁에 관한 화두들이 나온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얼마 안 남은 이때, 이러한 논의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김회권 교수(숭실대)가 소장으로 있는 하나님나라연구소도 종교개혁주일을 즈음해, 10월 16일 소망교회에서 기념 강좌를 열었다. 특별히 이번 집담회에는 바울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와 김지철 목사(소망교회)를 주 발제자로 선정했다.

두 사람의 발제와 함께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가 논찬 형식의 질의응답을 맡았고, 한완상 장로(전 통일부총리)와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김종희 대표(<뉴스앤조이>)가 특별 발언을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날 강의에는 하나님나라연구소 회원들과 소망교회 청년들, 목회자들까지 150여 명이 참석했다.

구호만 남은 개혁주의, 의인으로 못 살게 방해하는 칭의론

▲ 평소 한국교회에 쓴 소리를 많이 해 온 김세윤 교수는 이날도 "한국 목사들이 주장하는 개혁주의는 껍데기만 남았다"며 행함이 없는 모습을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먼저 김세윤 박사가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의 복음과 칭의론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자살하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지옥 갈 것", "한국교회 구원론이 구원파와 다르지 않다"는 등 평상시 한국교회의 비뚤어진 신학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해 왔다. 김 박사는 이날도 칭의론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교회 정통 장로교회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교리가 오히려 "의인으로서의 삶을 방해하는 칭의론"이라고 했다.

종교개혁 당시 칼빈이 제창한 '칭의론'은 당시 구원의 은혜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었다고 했다. 죄를 사해 주고 의인이라 칭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과 감사, 자유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칭의를 법정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면서, 교인들이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게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웃에 사랑을 베풀고 살려 하면, '네 공로로 네 선행으로 구원받으려 하냐'면서 도리어 이단 취급한다. 한국교회는 '나는 예수를 주로 영접하고 은혜 받아 의인이 됐다. 그러니 이제 최후 심판 때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제대로 아는 사람으로 각인됐다."

칭의 이후 성화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데, 이것도 바울이 말하는 성화 개념과 다르다고 했다. 성화는 칭의와 완전히 병행된다. 죄를 용서받는다는 칭의의 과정과 함께, 오염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쓰임받는 성화의 과정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성도'라는 표현이 본래 '성화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어 한국교회에는 '소극적 경건주의'만 있고 성화의 참모습은 없다고 비판했다. 성수주일하고 헌금하고 선교사를 보내는 일에만 집중하지, 사회·정치·경제·환경 등의 영역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신학계를 향해서도 당부의 말을 했다.

"풀러에서 한국 목사들 목회학 박사과정 가르치면서 보면 한국에서 배우는 신학들이 지나치게 관념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앙고백의 실존적 이해가 부족한 거 같다. 전 세계에서 사도신경 눈 감고 외우면서 하는 건 한국밖에 없을 거다. 이 신앙고백이 나로 하여금 어떤 가치관 삶을 살게 하는지 생각해 보고, 정치·사회적 상황과 나의 삶이 직접 연결되어 설교를 해야 한다. 이게 완전히 안 되고 있다. 나의 삶, 윤리적 선택과는 전혀 별개로 보는 현상이 있다. 부디 현장에서 신학을 실존적으로 가르치면 좋겠다. 이건 삶과 죽음의 문제기 때문이다."

김지철 목사, "성령의 열매, 성품의 변화로 나타나야 하는데 은사에만 집중"

▲ 김지철 목사는 성령을 새롭게 보고 이해해 교회개혁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대형 교회 목사로서의 책임을 다 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지철 목사는 1977년부터 25년간 장신대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2003년부터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교회 현장에서 본 실제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며, 교회 개혁의 화두로 성령을 제시했다. 특히 영적인 열광주의, 은사주의, 분파주의, 도덕적·성적 타락 등 고린도서에 나타난 고린도교회의 모습이 한국교회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면서 이를 토대로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보자고 했다.

한국교회는 '자칫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감정적인 모습으로 비칠까, 유별나게 은사만 강조하는 열광주의에 빠질까, 은사를 받은 목사들이 권위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사유화할까' 하는 마음에 거리 두기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교회가 영적 은사론에는 관심이 많지만, 인격과 성품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김지철 목사는 성령이 주는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는 은사였다고 했다. 특히 성령이 주는 9가지 열매는 모두 인격과 관련한다고 했다. 사랑·희락·화평 등 모두 품성의 변화·성숙과 관계되는데, 한국교회는 이것을 강조하지 않고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어 제자 훈련에서 한 걸음 더 올라서서 한국교회가 '자녀됨의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한 복종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 분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밥을 떠먹여 주고, 아침이 되면 잠을 깨워 주는 단계였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인들이 목사를 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누구는 바울에게, 누구는 게바에게 속했다는 의식 때문에 교회에 갈등이 생긴다. 교인은 목사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목사가 교인들에게 속한 것이다"며 교회를 위해 목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김지철 목사의 교회관과 대형 교회 목사로서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양희송 대표는 김 목사가 발표한 성령에 대한 얘기에 대체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한국교회가 개인적인 영성은 강조하지만 사회·정치적인 저항 영성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교회가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사회참여적인 부분을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김지철 목사가 이 둘의 평가를 반대로 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강경민 목사도 "현재 양쪽이 4:6 정도라면 몰라도, 9:1 정도로 오른쪽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사회·정치적인 부분을 좀 더 힘써야 하지 않겠냐. 보수화의 원인 중 하나로 한국교회가 지목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김지철 목사의 위치 때문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대형 교회가 교회 개혁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대형 교회는 낮은 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가'에 쏠렸다. 김 목사는 '소망교회가 바른 길을 감당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늘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하다며, 늘 부족하다고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목회 기간에 교회 공동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충성하고 사랑하겠다며 좋은 마음으로 봐 달라고 했다.

그는 큰 그림 속에서 공동체를 이뤄 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중심이 같고, 신앙 고백이 같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가 날려면 몸통뿐만 아니라 양쪽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는 빨갱이', '너는 수구'하면서 서로 날개를 잘라 버리고 몸통만 남았다. 그러한 점에서 통전성을 바라는 것이다. 예수는 우파 세력인 바리새인들과도, 좌파 세력인 열심당원들과도 함께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본받으면 좋겠다.

다른 현장을 인정하면서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고 있는가. 그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큰 교회가 나쁘다고 한 적은 없다. 큰 교회가 큰 교회답지 못한 게 나쁜 것이다. 무조건 큰 교회가 나쁘고 작은 교회는 좋고, 이러한 이분법은 아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답게 되어야 공동체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각자 맡은 일들을 해 나가고 있는데, 나는 먼저 소망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지는 데 관심을 쏟으려고 한다. 그런 후에 우리도 필요하면 도우려고 한다. '왜 소망교회에서 이런 일들을 하냐'고 생각하지 말고, '소망교회가 이런 것도 한다. 뭔가 변하려고 하나 보다'라고 봐 주면 좋겠다. 오늘 강좌도 그런 마음으로 함께 참여했다."

한완상 장로, "예수가 낮은 자와 함께한 것처럼, 교회도 비움과 낮춤의 모습 보여 달라"

▲ 한완상 장로는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한 장로는 한국교회가 낮은 곳에 계셨던 역사적 예수의 사랑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강좌 마지막 순서로 한완상 장로(새길교회·전 통일부총리)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장로는 정치사회학자로, 신학자로 살아왔다. 그는 김세윤 박사의 말을 듣고 사도 바울에게서 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지 물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자꾸 강조한다. '절대 주권'이란 말에 사랑이 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시고, 내려놓으시고, 희생하신 분이지 않는가. 절대 주권이란 게 권위주의적인 질서를 말하는 것 같아서 유신 체제를 살아 온 나로서는 불편하다.

갈릴리 예수의 모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민중들과 함께한 예수, 수제자가 칼을 들었을 때,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던 예수의 모습을 좇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역사적 예수의 모습과 사건들이 제자들을 통해 사도 바울에게 전해졌을 것 같은데, 사도 바울에게서 이러한 예수의 사랑을 볼 수 있는가?"

김세윤 박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란 용어가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자기 비움과 낮춤의 역설이라고 답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내어 줌으로 사탄에게서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낮춤의 모습, 예수가 보여 준 모습들이 바울의 말끝마다 배어 있다고 했다.

한완상 장로는 김지철 목사에게도 당부의 말을 했다. 소망교회 같은 대형 교회에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큰 교회다움은 비움에 있다. 소망교회가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 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소망교회에 소망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며, 더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권)'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지철 목사는 한 장로의 지적에 대해,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면 작아질 수밖에 없다. 큰 교회를 쪼개는 게 능사가 아니다. 교회 위치에서 전체 한국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 공동체 속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 이날 강좌에는 하나님나라연구소 회원 120여 명 외에도 소망교회 청년들도 다수 참석했다.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해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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