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바티칸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9월 23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워싱턴에 도착했다. 교황의 6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이 시작됐고, 미국 언론은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교황 방문 시기가 임박하자 '교황 마니아'가 쏟아졌고 트위터에서는 교황 묵시록이 유행하기도 했다. 8,000명의 저널리스트들이 공식적으로 교황 방문을 다룰 것을 공인받았고, 익명의 수많은 블로거와 트위터들이 교황의 모든 발언과 이미지를 자세히 진술할 태세를 갖추었다. 24일 미 의회 상·하원에서 합동 연설을 한 것도 교황 중 처음이었다.

'종교와 문화 포덤 센터(Fordham Center on Religion and Culture)'의 역사가이자 이사인 제임스 맥카틴(James P. McCartin)은 <소저너스>(Sojourners) 기고글에서, 교황에 대한 환영과 찬사, 특별히 지도적인 미국 정치가들이 던지고 있는 이러한 환호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서는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오랜 반가톨릭 정서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미국 백인 개신교도들은 가톨릭에 대한 깊은 불신을 지녀 왔다. 과거 교황들이 독립 정부를 세워 자치를 실현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무너뜨리고 가톨릭 신앙을 전 국민에 강요하려 했다는 생각이 미국의 반가톨릭 정서를 형성했다는 지적이다.

교황 피우스(Pius) 9세의 대리인 게타노 베디니(Gaetano Bedini) 대주교는 1853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암살 음모를 피해 야밤에 미국을 빠져나가야 했다. 민주적인 정부, 종교적인 자유, 그리고 ‘현대 문명’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는 미국을 비난하고 있던 교황에 가까운 인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은 필라델피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옥외 미사를 드리기로 예정되어 있는 거리를 채울 것으로 기대하지만, 19세기에는 원주민들이 가톨릭교회를 불태우고 폭도들로 하여금 '교황의 피 묻은 손'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도록 부추겼다.

1960년 존 F. 케네디가 첫 가톨릭 출신 대통령이 되었을 때 수백만 명의 개신교 목사들 앞에 서서 바티칸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공식적으로 맹세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미국 대법원 판사의 9명 중 6명이 가톨릭이다. 그들이 가톨릭인으로 미국을 통치할지 미국인으로 미국을 통치할지 미국인들은 우려한다고 제임스 맥카틴은 지적한다.

2015년 9월의 이례적인 교황 환영 분위기에서 더욱 주목하는 것은 가톨릭의 수장 교황의 방문을 더 큰 흥분 속에 맞이하고 있는 미국의 진보적인 개신교 언론이다. 그들은 연일 교황 방문을 주요 이슈로 보도하며 기대와 논평을 쏟아 내며 교황에 대한 환호와 기대를 밝혔다. 그들이 가톨릭 지도자를 반긴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낙태와 동성애 반대 이슈로 여타 모든 사회정의의 이슈들을 압살해 왔다. 이러한 정치·종교·문화 속에서 줄기차게 사회정의를 부르짖어 왔던 미국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사회정의 이슈가 척박한 미국의 담론 지평을 뚫고 나갈 세계적 권위의 지도자의 발언과 행보에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소저너스> 편집장 짐 월리스(Jim Wallis)는 교황의 행보와 발언을 매일 표지 기사로 싣고 그의 방문이 기독교 사회정의 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소저너스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분석과 논평을 약속했다. 또한 모든 가능한 인터넷 계정 등을 통해 실시간 보도를 약속하며 주말에는 교황 특별판을 낼 것이라 예보했다. 기독교의 사회정의 가치를 줄곧 부르짖어 온 소저너스는 그 가치를 온몸으로 구현하고 있는 교황의 걸음과 삶이 미국 사회의 담론을 변하게 할 것을 고대하고 있다. 무엇이 자비한 것이며, 무엇이 정의롭고 선하며 올바른 것인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어떠해야 하는지, 담론을 공적으로 변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다.

그는 교황의 행보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미국 방문 중 예정되어 있는 일정 때문이다. 의회와 유엔 연설, 예배 주관, 퍼레이드 참가뿐 아니라,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가 '소자'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만날 일정이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짐 월리스는 그들이 '난민과 이주민, 노숙자, 장애인, 저소득층 아이들과 감옥수'로, 그간 미국의 정치적 논의에서 악마화한 존재들이며 미국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무시해 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그들과의 만남을 주요 일정으로 설정했다.

"교황은 자신의 지위가 시작될 때부터 무엇이 중요하며, 누가 중요한 존재인지 우리의 담론을 바꿔 나갔다."

짐 월리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종종 눈멀고 귀 막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들 중 작은 자’들에 대한 관심과 우선권을 가져다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미국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닿게 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교황은 굳게 문을 걸어 잠근 교회를 바꾸고 있으며 교회가 문을 열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2013년 <회칙>에서 부르는 대로 '복음의 기쁨'이란 서로를 껴안는 것으로, 특별히 배제되고 밀쳐진 자들을 껴안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하고 있다. 또한 공통의 집으로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지구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새로운 퀘이커 공동체인 '예수의 친구들(Friends of Jesus)'의 창설자이자 워싱턴 D.C.의 풀뿌리 기독교 지도자 미가 베일(Micah Bales) 역시 <소저너스>에 기고한 글에서 교황 방문이 다음 3가지 이유에서 미국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첫째, 교황은 미국이 극단으로 치닫는 문화 전쟁을 넘어서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미국은 최근 끝없는 이념 논쟁에 지쳐 있다. 기독교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정치적 입장에 평가를 내리는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수백만 미국인들은 제도 교회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종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 조직 교회에 지쳐 나간 이들 중 많은 이들은 끝없이 판매당하며 모든 이들을 벙어리로 만드는 소비주의보다 더 깊은 영혼의 무언가를 갈급해 한다. 그들은 외국의 전쟁과 국내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우파 기독교의 제국주의적 성향에 역겨워하면서도, 화해와 평화와 정의의 진짜 복음에 목말라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은 이러한 미국의 위선적인 정치적 담론 틈새로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모든 생명이 보호받게 하는 것이 가능함을 확증해 주고 있다. 낙태로 위협받는 태아를 포함해 기후변화로 위협받는 자연 세계와, 수입 불평등·경제적 부정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현실에 짓눌려 있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예수 안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생명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하나님의 통치 비전을 지속해 내리라는 희망이다.

둘째로 교황 방문으로 미국이 변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기독교 공동체가 단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정치적 문화 전쟁의 적대감을 해소하며 교회 내 분열을 극복하게 한다. 기독교 세계는 수백 년간 다른 기독교 교파로 분열한 채로, 각각 자신이 단 하나의 유일한 참된 교회라 주장해 왔다. 복음주의적 선교에 뿌리내린 편견 없는 교회일치주의에 서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출현으로 미국은 지난 수세기 팽만해져 왔던 미국의 종파주의를 재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의욕을 내고 있다.

"내가 가톨릭이 아닌 중요한 이유가 있으며 교황이 퀘이커 교도가 아닌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다름은 우리의 삶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이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중대한 도전을 함께 인정하는 가운데, 그리고 우리가 환경 재앙과 경제적 잔악성을 함께 피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조치들에 함께하는 가운데, 우리 사이의 장벽들은 무너질 것이다. 예수의 제자이자 하나님 통치의 상속자로서 우리가 공유한 사회정의에 대한 소명은, 우리가 서로 많은 면에서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명이다."

교황 방문이 미국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가 무신론자들에게 다리를 놓을 것이라는 점에 있다. 교황은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자신을 보여 왔다. 로마 가톨릭이라는 경계를 넘어 소외된 자들을 향한 그의 연민과 사랑은, 종교는 거부하지만 영적인 수많은 불가지론자들과, 더욱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주류 복음주의가 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기독교를 자신의 선한 양심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 하던 무수한 미국인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조지 부시의 복음주의에 오랫동안 질려 있는 개신교 국가에 있어 교황의 방문은, 예수와 함께하는 삶이 어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해 주는 기회인 것이다. 교황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여기지 않지만, 예수의 단순하고도 혁명적인 믿음에 반향하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을 고무하고 있다.

"이는 흥미로운 순간이다. 그의 방문이 미국에 영적 삶을 고양시키는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느낀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는 수천 명이, 아마도 수백만 명이 예수 안에서의 사랑하고 신실한, 빛나는 삶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이 방문의 수확을 어떻게 거둬들일지에 대해 기독교도는 준비해야 한다."

이스턴대학의 사회학 명예교수인 토니 캠폴로(Tony Campolo)는 <레드레터크리스천>(Red Letter Christians)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신교 복음을 누구보다 잘 구현하고 있다며 반겼다. 지난 6월 18일 발표한 교황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는 환경을 오염하고 있는 무책임한 산업들을 성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기를 생산할 때 석탄이 태워지는데, 석탄에 의존한 전기 공장에서 쌓이는 연기는 매년 5만 명의 사망을 초래한다고 '사회적책임을위한의사회(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는 발표했다. 그는 하나님의 땅을 오염하는 일을 줄이자고 간청하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적 가치를 변하게 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에서 현대 세계에서 잔뜩 고양해 있는 개인주의가 개인적인 안위와 즐거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공의 선에 대해 헌신하게 할 수 있는 윤리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앞서 예수가 우리의 땅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르심은 물질적인 이기심보다 타인에 대한 안위와 복지를 우선에 두는 것에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토니 캠폴로는 단언한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회장이며 <함께 전진하라: 국가를 위한 도덕적 메시지>(Foward together: A Moral Message for the Nation)의 저자인 윌리엄 바버(William J. Barber) 목사와 <내 문 앞의 이방인>(Strangers at My Door)의 저자인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Jonathan Wilson-Hartgrove)는 <릴리전뉴스서비스>(Religion News Service)에서 미국의 남부 복음주의 설교자들 또한 형제로서 교황의 미국 방문에 흥분해 있다고 전한다. 그들은 새들백교회의 복음주의 지도자 릭 워렌 목사가 자신의 사역 초기에 교황이 주창하고, 강조하고 있는 사회정의 실천들에 눈감았던 것을 애통해 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에는 약한 자들을 공정히 대할 것과 가난, 정의, 그리고 사랑의 윤리에 대해 2,000군데 이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로, 이 사안들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의 복음을 정직하게 설파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중략) 예수조차 첫 설교를 시작할 때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했고, 제도적 부정의와 구조적 차별에 의해 가난하게 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했다. 교황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요청할 때 그는 신학적으로 정교이지만, 그가 불의에 도전할 때 그가 '정치적'이 된다며 그를 비판하는 것은 예수가 미국에서 환영받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윌리엄 바버 목사와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는 기업의 이윤에 의해 후원받는 종교 지도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반기를 드는 이유는 2000년 전 예수를 박해하기 위해 공모했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공유했던 것과 같은 이유라고 지적한다. 참된 신앙은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는 교황의 메시지는 "악을 합법화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자들에게서 그들의 권리를 강탈하는 자들에게 저주를"이라는 고대 유대교 본문을 떠올리게 한다. 교황과 마태복음의 예수 둘다 사랑과 자비와 정의가 율법의 중대한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그들은 주목한다.

"도덕적인 정치 비평 없이 우리는 결코 노예제도와 흑인 사형, 여성 권리 부정, 1929년의 주식 시장 붕괴를 초래한 탐욕에 결코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의 도덕적 비평 없이 우리는 결코 흑인 차별 정책을 해결하거나 모두를 위한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 싸우지 못할 것이다. (중략) 교황은 지혜롭게도 교회 건물 밖에, 그리고 거리에서 머물 예정이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그가 해야 할 말을 가슴에 품을 것이다. 따라서 환영한다. 도덕적 운동에서 형제된 교황이여. 당신이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 복음주의자적 정신이 세상에 기쁜 소식이다."

현재 미국 사회는 흑인 대통령 당선을 시발점으로 의료보험 개혁, 최근 전쟁을 지양하고 외교로 합의를 이끌어 낸 이란 핵 합의안의 높아진 의회 통과 가능성, 사회주의자 샌더스 의원의 돌풍까지. 반세기 역사를 장악했던 미국 기독교 보수의 의제를 뚫고 사회정의의 의제들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사회정의의 문제로 미국 사회의 의제를 선점해 가기 시작한 복음주의 진보 기독교인들의 걸음을 대로로 이끄는 계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흥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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