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직, 이제는 하느냐 마느냐 논할 단계를 지나고 있다. 목회자도, 교단도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9월 22일 감신대에서는 이중직 문제로 고민하는 40여 명의 신학생과 목회자가 모였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칼 바르트(Karl Barth)가 한 말을 서광선 목사(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해석했다. "신문을 보지 않는 믿음을 순수하고 거룩하다고 자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세상을 등진 허무주의이며 저세상과 천당만을 바라보는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신앙만큼이나 세상 일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는 칼 바르트의 말은 이중직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에게 조금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배달용' 신문을."

목회자 이중직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난해 <목회와신학>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설문 대상 목회자 900여 명 중 3분의 2가 최저생계비를 받지 못한다. 생계를 이유로 목회자들의 73.9%가 이중직을 찬성한다고 말했고, 이미 20% 이상의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관련 기사: [기획1] 생활 전선으로 떠밀리는 목회자들)

규모가 가장 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박무용 총회장)의 교세 통계도 이를 나타내 주고 있다. 전체의 절반가량 집계된 2015년 9월 자료에 의하면, 전국 3,200여 개 미자립 교회의 예산 총액은 463억 원이다. 한 교회당 평균 1,400만 원 꼴이다. 교회의 한 달 평균 수입이 120만 원에 불과한 셈이다. 반면 2,300여 개의 지원 교회(미자립 교회를 후원할 수 있는 교회)의 예산 총액은 미자립 교회의 30배인 1조 2,000억 원에 달했다. 한 교회당 5억 2,000만 원 꼴이다. 한 달 평균 수입은 4,300만 원대로, 미자립 교회와는 월평균 4,00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작은 교회들의 현실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목회자 수는 나날이 늘어 가고 있다. 예장합동의 경우 지난 한 해 목사·전도사가 최대 400명가량 늘었다. 반면 최근 2년 동안 교인 수는 30만 명 가까이 줄었다. (관련 기사: [합동9] 교인 2년간 30만 명 줄었는데, 목회자는 늘어)

목회가 날로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주요 교단들의 이중직에 대한 입장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채영남 총회장)은 지난 100회 총회에서 "목사의 이중직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고 했다. (관련 기사: [통합7] "이중직은 현실, 법으로 막고 정죄하면 안 돼") 기독교대한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도 올해 이중직 금지 조항을 폐지하기로 교단 헌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예수님도, 바울도 노동자…성과 속 구분하려 해선 안 돼"

"이중직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런데 헌법으로 이를 금하고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큽니다. 이중직 하고 싶지만 그거 하면 안 좋은 이미지로 비치거든요. 그렇다고 헌법을 대놓고 무시하면서 이중직 하면 마치 교단에 저항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신학교에서 잘 논의해서 현실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들이 왜 이중직을 꺼릴까 생각해 봤습니다. 본인 양심 문제보다는 교인 눈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목사의 직업 활동에 대한 신학을 정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중직을 할 수 있도록 교단에서 자격증 취득, 교육 과정 안내라든지 일자리 확충과 복지 혜택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피곤에 찌들어 있을 때가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교인들이 '목사님 피곤한 얼굴이 은혜가 된다'고 해요. 자기들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는 거죠. 교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이 발언들은 9월 22일 아레오파고스가 연 세미나 '투잡 목회의 시대: 목회자 이중직,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나온 참석자들 반응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이 세미나에는 학부생·신대원생과 현재 이중직 생활을 하고 있는 목회자까지 40여 명이 참석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중직에 대해 토론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한 홍승표 목사(전 기독교사상 편집장)는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가 성직'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거룩한 일을 하면서, 어떻게 택배를 하고, 택시 운전을 할 수 있냐는 의식이 있다는 얘기다. 참가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한국사회의 체면 차리는 문화 때문에 못 한다", "일하다가 교인 만나면 창피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홍 목사는 "예수님도 목수였고, 바울도 자비량 목회를 했다. 모든 게 성직이고 목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과 '속'을 구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발제자로 나선 홍승표 목사는 "목사 또한 노동해야 한다. 일반 성도들과 구분 짓기 위해 노동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피할 수 없는 현실, 어떻게·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이중직을 해야만 하는 현실을 알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세미나에서도 참가자들은 "교단 차원의 안내와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교단이 최저 생계비 지원해 줄 것 아니면, 최소한 일자리 알선이나 직업학교 소개라도 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결국 직업에 대한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택시 기사나 택배, 막노동과 같은 진입 장벽이 낮은 자리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교수·변호사나 지휘자·시인과 같이 사회적 지위가 있고 직업을 떳떳하게 밝히기 쉬운 '양성적' 이중직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음성적' 이중직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중직을 해 봤거나 하고 있는 경험자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부분 목회자들이 하고 있는 노동은 (전문성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수준이다. 신학 공부만 한 사람이 이력서에 뭘 쓸 게 있나", "전문성도 없으면서 어설프게 일하다가 도리어 교회 욕먹일까 봐 못하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신학생들도 이중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면서, 대신 잘 준비하기 위해서 목회 소양 이외에도 직업에 대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중직 문제로 고민하는 목회자들 위한 '목회자 직업학교' 준비 모임, 10월 5일 효창교회에서

신학생들에게는 '다가올 미래'지만, 목회자들에게는 '냉혹한 현실'이다. 당장 교회 임대료를 내야 하고,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현직 목사들에게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더 크게 다가온다.

<뉴스앤조이>와 목회멘토링사역원은 이중직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어떻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학교를 구상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 전문성이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다.

우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과 '교회2.0목회자운동', '교회개척학교, 숲'이 함께 여는 10월 5일 준비 모임이 있다. 이중직 생활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과, 이중직을 고민하는 목회자들의 솔직하고 현실적인 얘기를 나눈다. 논의를 통해 더 전문적이고 목회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을 만들어 주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관련 기사: '목회자 직업학교',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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