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의 모든 기도> / 톰 라이트 지음 / 백지윤 옮김 / IVP 펴냄 / 216쪽 / 1만 2,000원

"저녁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들어갔을 때, 예배당지기는 촛불을 켤 성냥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있었다."(9쪽) 톰 라이트의 <신약의 모든 기도>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그는 당시의 에피소드를 통해 기도의 중요성과 의미, 책 전반에 걸쳐 어떤 내용을 풀어 나갈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대략을 옮기면 이렇다.

예배당지기가 촛불을 켜기 위해 성냥을 찾는데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성냥갑은 비어 있고, 선반 뒤에도, 어디에도 성냥은 없다. 그때 누군가 부속 예배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정오에 켜 놓았던 촛불 하나가 아직 타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예배당지기는 새 양초에 불씨를 옮겨붙일 수 있었고, 안도의 미소와 함께 저녁 예배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톰 라이트는 신약의 기도들을 부속 예배실을 지키고 있던 촛불에 빗대고 있다.

기도가 절실한 시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우리는 어느 때보다 기도가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 가운데는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학자금 대출, 취업, 집값, 결혼, 인간관계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년과 노년들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중년의 위기, 노후 대비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 "준비 없이 당황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해. 나에게 기대지 말고"라는 어느 투자증권의 광고 카피는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교회 내부 상황은 또 어떤가? 청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으며, 교회학교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개신교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도마 위에 오르는 목회자의 윤리와 기승을 부리는 기독교 이단·사이비 문제는 답이 없다. 절실한 만큼 암담하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어디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할까?

우리 모두가 기도의 불을 켤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을 맞게 될 때, 남아 있던 촛불처럼 신약성경에 기록돼 있는 "오래되고 훌륭한"(10쪽) 기도들과 마주할 수 있다. 이 기도들은 우리가 기도의 불을 다시 켤 수 있도록 도와준다. 톰 라이트는 "그 오래된 기도들이 여전히 소리 없이 타오르며 빛을 발하는 신약성경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10쪽)고 밝힌다. 신약의 기도는 주저하는 우리들을 기도의 길로 인도하는 등불이 된다.

톰 라이트가 쓴 이 책은 신약에 나타난 기도에 대한 가르침(1부)과 신약의 기도 사례들(2부)을 중심으로, 기도와 성경 읽기를 같이 다루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근본이 되는 실천을 △기도 △성경 읽기 △성만찬 △가난한 이를 섬기는 일로 정리하며, 이 네 가지가 "강물처럼 서로 합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더욱이 기도와 성경은 별도로 다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성경은 기도를 돕고, 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가리키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기도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더 깊고 실제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우리의 현실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한다. 그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기도란 우리가 사는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신비로운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삶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맞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지 못하도록 벽을 쌓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 벽을 꿰뚫고 우리를 보시며 벽 저편에서 부드럽게 노크하시기도 한다.) 성경에서 땅과 하늘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실재와 하나님의 실재는 서로 꼭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 기도는 이런 땅과 하늘이 실제로 만나는 핵심 장소 중 하나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기도들, 특히 계시록의 기도들은 아예 하늘에서 일어나는데, 땅에 사는 우리도 그 문가에서 엿들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10~11쪽)

톰 라이트는 신약에 나타난 상당수의 기도들을 분석한다. 요한계시록도 예외는 아니다. 기도에 관한 가르침(1부)까지 포함하면 서른두 개를 다루고 있다. 때로는 강해 설교를 하듯이, 때로는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짧게는 한두 페이지, 길게는 서너 페이지 이상 할애하여 기도에 관한 통찰과 본문에 대한 주해를 차분하게 풀어 놓는다. 뛰어난 성경학자답게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각 기도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주해하는 바울의 기도에 녹아들어 있는 구약의 예언서에 나타난 그림들, 신약의 기도 곳곳에 인용하는 구약의 제왕시와 탄원 시편들까지. 자기 사례를 가지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기도를 이야기하는 대목이나, (행간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겟세마네에서 기도했던 예수님의 심정에 대해 토로하고 있는 부분, 현실성이 두드러지는 몇몇 해석은 인식에 충격을 준다. 이 중 한 가지를 옮겨 본다. 주기도의 '악에서 구하소서'에 대한 해설이다.

"주님의 기도는 어둡고 현실적인 어조로 끝난다. 예수님은 큰 시험의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홀로 그 어두움 안으로 걸어가야 함을 아셨다. 그분을 따르던 이들은 그 시험에서 구해지도록 기도해야 했다. 심지어 부활의 빛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이 함께하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더 많은 위기의 시간, 온 세상과 교회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의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는 시간이 분명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따른다면, 그 어두움이 얌전히 피해 가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그 최악의 재앙에서 보호받기를, 그리고 악에서(그것이 추상적인 악이든 인격을 지닌 '악한 자'이든) 구해지기를 기도해야 하고 기도할 수 있다." (28~29쪽)

톰 라이트의 해설은 오늘날 신앙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본문의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 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본문 자체에 집중해 주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본문에서 신약성경 전체로 관점을 옮겨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디모데전서 2:1-7을 본문으로 삼은 경우가 그렇다. 그는 말미에 이렇게 덧붙인다. "신약성경에서 기도로의 부르심은 또한 생각으로의 부르심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그리고 모든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명확하게 사고하라는 것이다. (중략) 그 가운데 우리 자신의 태도가 어떻게 자라고 변화하며 성숙해 가는지 지켜보아야 한다."(62쪽)

사려 깊고, 짜임새 있는 기도 지침서

한 가지 더 주목해서 말하자면, 톰 라이트는 글을 다룰 줄 아는 신학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소통하는 법'이 뭔지를 안다. 그의 여느 저작에서도 드러나는 강점이 기도를 설명하고, 촉구하는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톰 라이트는 성경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 친절한 안내자이자 최고의 과외 선생이다. 그는 자신과 주변의 사건, 사물의 이야기를 통해 신약의 기도에 접근하고 있다. 두괄식보다는 미괄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경청하게 된다. 탁월한 표현력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이 책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대화할 때, 혹은 강연 자리에서 예화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모본을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사려 깊고 짜임새 있게 글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중동에서 지낼 때다. 하루는 오후에 산책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간 허기가 져서 가판대에서 초콜릿을 샀다."(19쪽) "나는 후원금을 모금하는 일이 싫다."(30쪽) "전화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36쪽) "최근 나는 한 성공회 사제가 쓴 흥미로운 전쟁일기를 읽었다."(67쪽) 잘 쓴 소설의 첫 문장들 같다. 판에 박힌 듯하면서도 울림이 있다. 그의 글은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어필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 군데만 더 살펴보기로 하고, 나머지는 책을 구입할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전에 제자를 불러서 곁에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에 대한 해설이다. 톰 라이트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외로움을 읽는다. 잔잔하게 그분의 심정에 대해 숙고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가 겟세마네의 예수님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역시 겟세마네다. 그곳에서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시며,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분도(마 28:18) 우리보다 앞서 그 자리에 계셨음을 볼 것이다." (114~115쪽)

저명한 기독교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의 말을 받아 이야기해 보면,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배움은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도는 힘든 현실 가운데서도 우리를 경탄하게 하고, 하나님나라를 꿈꾸게 만든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냥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신약의 기도가 가리키고 있는 바, 기도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신앙과 복음의 지향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에 대한 좋은 지침서를 추천해 달라고 누군가 나에게 부탁한다면, 다른 많은 책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올 가을에는 톰 라이트의 <신약의 모든 기도>를 읽어 보라고 권할 것 같다. 신약의 기도들은 부속 예배실을 비추던 촛불처럼 우리의 기도를 불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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