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총회는 교단 내부의 비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세습이나 납세 등 사회윤리와 연관된 안건들을 심도있게 다루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00회 총회를 맞은 한국 장로교단들은 저마다 산적한 내부 현안들을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수년째 논란인 은급재단의 납골당 비리 문제와 아이티 구호 헌금 전용 문제를 완전히 끝내겠다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은 최근 언론에 1,600억 원대의 비리가 있다며 보도된 연금재단 문제를 처리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 고신·고려는 각각 통합 총회를 치르느라 일반 회무를 다루지 않았다.

총회에서 결의하는 사항은 교단에 소속된 개교회들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과거에 터진 교단 내부 문제들을 봉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총회는 사회의 변화에 개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재작년, 예장통합과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총회에서 세습금지법을 제정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올해 총회에서는 이런 건설적인 논의가 부족했다.

기장, "목회자 납세는 '근로소득세'로"…다른 교단은 헌의 없어

지난해 정부의 세법 개정안 발표에서 종교인 납세가 빠졌을 때, 예장합동 총대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주요 교단들은 종교인 과세를 논의하지 않거나 유보했다. (관련 기사: [교단 총회 결산6] 목회자 세금 납부는 관심 밖의 일) 그러나 올해 8월 발표된 2015년 세법 개정안에서 정부는 종교인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번에는 교단들이 어떤 반응을 내놓았을까.

먼저 기장은 이번 총회에서 '목회자 납세'를 찬성한다고 결의했다. 이 같은 결정은 장로교단으로서는 처음이고, 교계에서는 성공회에 이어 두 번째다.

기장 총대들은 종교계가 정부 방침에 끌려 다닐 게 아니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 제안처럼 일정액을 정해 내는 '기타소득' 방식이 아닌, 수입에 따라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자고 결의했다. (관련 기사: [기장2] '목회자 납세 찬성' 입장 채택)

교회와사회위원장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는 총대들에게 "사회가 한국교회를 욕한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자. 목사도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고, 납세는 국민의 의무다"라고 했다. 총대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교계뿐 아니라 일반 언론들도 기장의 납세 결의 사실을 보도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은 사설을 통해 이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장을 제외한 다른 교단에서 납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에는 납세 관련 헌의나 발언이 전무했다.

▲ 예장통합은 목회자 윤리 강령을 제정했다. '유인물대로 받기로' 해 이 내용이 총회에서 직접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총대들은 이견 없이 받아들이고 오는 가을 노회부터 각 지교회 목회자들과 지키기로 했다. 사진은 목회자 윤리 강령 중 성윤리 부분. ⓒ뉴스앤조이 최승현

예장통합, 성도덕‧세습 문제 다룬 '윤리 강령' 제정…예장합동은 5년째 무산

예장통합은 이번 총회에서 목회자 윤리 강령을 제정했다. 지난 7월에는 목회자가 지켜야 할 사회윤리를 다룬 윤리 지침안을 공개한 바 있다. 여기에는 "나는 자신의 성적 자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회중이 나에 대해 성적 감정을 갖고 있거나, 반대로 내가 회중을 상대로 성적 감정을 갖고 있을 때 바르게 대처한다", "나는 목회 현장을 가족에게 세습하지 않겠으며, 은퇴와 동시에 지교회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와 같이 세습·성범죄 등의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관련 기사: 예장통합, '세습', '성범죄', '표절' 다룬 목회자 윤리 지침안 발표)

이 안건을 총대들은 그대로 받았다. 예장통합 사회봉사부 총무인 이승열 목사는 9월 21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리 강령을 곧 전국 65개 노회들로 보낼 것이다. 오는 가을노회에서 각 지교회 목사들이 이 내용을 읽고 지키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예장합동은 올해도 '목사 윤리 강령' 제정에 실패했다. 3개 노회에서 헌의했지만, 정치부는 이를 기각하자고 보고했다. 총대들은 이를 허락했다. 이로써 예장합동의 윤리 강령 제정 건은 96회 총회부터 5년 연속으로 무산됐다. (관련 기사: [합동14] 목사 윤리, 재정 윤리…'아몰랑')

윤리 강령 제정을 위해 3년째 헌의하고 있는 남평양노회 박광재 목사(영광교회)는 9월 22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대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라 이번에는 기대했는데, 지도부에서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목회와 정치 활동에 족쇄가 된다거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우리 교단이 제일 먼저 윤리 강령안을 연구해 내놓은 것으로 안다. 공청회까지 마쳤고 이제 채택하기만 하면 되는데 번번이 기각돼 안타깝다"고 했다.

예장합동에는 윤리 강령 제정과 더불어 대사회 신뢰 회복과 관련한 안건들이 몇 개 올라왔지만 모두 기각됐다. 모든 총회 공직자에게 김영란법을 적용하는 안을 연구하자는 헌의안과, 세례 교인 헌금의 사용 내역을 교단지에 공개하자는 헌의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예장합동의 윤리 관련 안건은 모두 기각됐다. 특히 목회자 윤리 강령 제정은 5년째 제정이 무산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편, 예장합동은 전병욱 목사 건을 평양노회로 돌려보냈다. 결국 전 목사의 성추행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삼일교회 교인들과 평양제일노회 목사들은 "원고와 피고의 소속 노회가 다른데 어떻게 재판하란 말이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관련 기사: [합동15-동영상] 전병욱 목사 재판, 평양노회에서 다시)

예장합동, 여전히 교회 세습 가능

이미 세습 금지를 결의한 바 있는 기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징검다리 세습'까지 금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총대들은 굳이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교단 내에 징검다리 세습을 감행할 만한 대형 교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관련 기사: [기장4] 징검다리 세습방지법은 시기상조)

아직까지 세습 방지 규정이 없는 예장합동에는 관련 헌의도 올라오지 않았다. 헌법개정위원회가 내놓은 헌법개정안에도 세습 관련 내용은 없었다. 지난 99회 총회의 '세습 관련 규정은 헌법대로 한다'는 결의가 유효하다. 예장합동 헌법에는 세습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세습이 가능한 상태다. (관련 기사: [합동22] 교회 세습, 사실상 '방치')

▲ 기장은 목회자 납세를 결의하는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동성애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위험 부담이 있다고 보고, 성 소수자 목회 지침을 만들자는 안을 기각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뜨거운 감자 '동성애'…"성경에 위배", "찬성자들 낙선 운동", "반대 대책 기구 구성"

100회 총회에서 각 교단들이 주목한 사회 이슈는 동성애 문제였다. 지난 6월 퀴어 문화 축제와 교계의 대규모 반대 집회 이후 교단들의 반동성애 정서는 총회로 이어졌다.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은 이번 총회에서 나란히 동성애자와 그 지지자들에 대해 대처하기로 했다.

예장합동은 '동성애 긍정론자들이 선거에 출마할 경우 낙선 운동을 펼치자', '동성애 및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책 기구를 결성하자'는 헌의안이 올라왔다. 총대들은 낙선 운동 건을 총회 임원회에 연구해 보라고 했다. 반동성애 기구 결성은 사회부에 맡기고, '적극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예장통합은 '동성애자 목사 안수가 성경에 절대 위배됨을 선포한다', '모든 동성애 활동은 성경에 위배된 것이므로 이에 협조하는 위정자들을 경고하는 공개 선언문을 선포한다'는 안건과 함께, 동성애자 목사 안수와 동성 결혼 주례를 허용한 미국장로교회(PCUSA)에 결의 취소를 권면하자는 안건이 올라왔다. 총대들은 이 안건을 총회 임원회에 일임했다. 동성애 문제로 PCUSA에서 떨어져 나온 복음주의장로교연합회(ECO)와 교류 여부도 연구해 보라고 했다.

진보적인 교단으로 분류되는 기장도 성 소수자 문제를 쉽게 다루지는 못했다. 이번 총회에서 '성 소수자 목회 지침'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가 총대들의 반발로 무산된 것이다.

최부옥 총회장과 배태진 총무 등 총회 임원들이 나서서 '동성애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자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지만, 총대들은 '뜨거운 감자'인 동성애 건을 언급도 하지 말자고 했다. (관련 기사: [기장3] 성 소수자 목회 지침 마련 연구 방안 기각)

배태진 총무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래에 다가오는 선교적인 도전인 동성애 문제에 대해 준비하자는 차원이었지, 동성애 찬반을 논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총대들이 아직까지는 많이 부담스러워한다. 어떤 식으로든지 입장을 정하면 다른 교단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냥 안 건드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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