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7일, '416희망목공방'의 현판식이 있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전용재 감독회장과 박인환 목사(화정교회), 목공방 선생님인 안홍택·이진형 목사, 목공방 학생들인 세월호 희생 학생 부모들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안산 세월호 합동 분향소 주차장 한쪽에는 세월호 희생 학생들 부모가 모이는 목공방이 있다. 올해 7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아빠 6명과 엄마 12명이 모여 나무를 다듬고 만지며 아픈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9월 17일, 컨테이너에 '416희망목공방'이라는 현판을 다는 행사가 있었다. 그동안 이름 없이 운영하던 목공방에 새로운 이름이 생긴 것이다. 현판식에는 그동안 재정적인 도움을 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전용재 감독회장과 교단 내 세월호대책위원회 위원들, 목공 선생님 안홍택·이진형 목사, 목공방 학생인 아빠·엄마들이 함께했다.

전용재 감독회장은 목공방 이름처럼 이곳이 세상에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기독교의 정신은 어려운 사람, 아파하는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야속하고, 망할 정부라고 해도 눈여겨보면 의외로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 매주 화요일·목요일 아침, 아빠반 엄마반으로 나눠 목공 기술을 배웠다. 새로 선물받은 앞치마에는 OO아빠, OO엄마라는 글씨가 노란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아빠들, 자발적으로 목공방 시작

먼저 목공방을 하고 싶다고 한 건 아빠들이다. 작년에는 팽목항·광화문·청운동에 나가는 일이 많았지만, 올해 들어 안산 분향소 유가족 대기실에 머무는 아빠들이 늘어났다. 많은 아빠들이 일터에 나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지 아빠 유해종 씨는 작년 사고 이후, 사는 게 재미도 없고 돈 벌어야 할 목적도 이유도 없어졌다고 했다. 혼자 있기 힘들어 유가족 대기실에 오면 그나마 같은 처지에 있는 아빠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돌려 보며 욕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몇몇 아빠가 박인환 목사(화정교회)를 찾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물심양면으로 희생자 가족을 돕고 있는 박 목사는 목공이 취미다. 그는 평소 교회 앞마당에서 작업하며,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에게 기도 십자가를 깎아 전달하기도 했다. 아빠들은 목공이 우울함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박 목사를 찾았다. 이야기를 들은 박 목사는 또 다른 유가족 다영 아빠 김현동 씨에게 경기도 용인시 고기교회에서 목회하는 안홍택 목사를 소개받았다.

안홍택 목사는 고기교회에서 목공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5월 28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과 박인환 목사가 고기교회를 찾아 목공소를 견학했다. 그리고 안산에서도 목공소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기계가 없어 안 목사가 목공에 필요한 나무를 재단해 가져왔다. 안 목사는 또 한 명의 목사를 목공 선생님으로 소개했다. 경기도 의왕에서 목회하면서 목공 카페 '콩세알'을 운영 중인 이진형 목사(청지기교회)다. 두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으로 교단 내 '녹색교회네트워크'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다.

목공을 가르쳐 줄 선생님들은 준비가 됐다. 이제 부족한 기계와 장소를 보충할 차례였다. 이 부분은 서울의 교회들이 도왔다. 컨테이너 두 동을 잇는 천막을 만드는 데 필요한 300만 원은 청파교회(김기석 목사)가 지원했다. 엄마들이 배우는 DIY반의 부족한 재료값 400만 원은 정동제일교회(송기성 목사)가 부담했다. 박인환 목사가 속해 있는 감리회 본부에서 기계와 공구 1,760만 원어치를 지원했다.

▲ 이진형 목사(청지기교회)는 매주 안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가구를 설계하는 법부터 나무 손질, 재단하는 법까지 차근차근 가르쳤다. 작은 의자, 책장, 간이 책상까지 다양한 물건을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나무 만지며 조금이나마 위로받아

이렇게 여러 곳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분향소에 마련한 목공소는 어느 정도 틀을 잡았다. 7월 14일부터 두 달 동안 엄마·아빠들은 정말 열심히 배웠다. 목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들이 나무를 만지고 다듬는 법을 배웠다. 엄마들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왔다.

지난 8월 11일 들른 목공방에는 아빠 6명이 이진형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선반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아빠들은 하나하나 협력하며 선반을 만들어 나갔다. 한 명이 공구를 쥐면 다른 사람들은 나무를 잡아 주었다. 능숙하게 하는 사람도 실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질책하지 않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약 두 시간 만에 어른 가슴께까지 오는 3단 선반을 만들었다. 아빠들은 "조금만 더 하면 진짜 팔 수도 있겠는데?"라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뜨거운 여름, 한증막 같은 주차장 앞 컨테이너에서 아빠·엄마들은 땀을 흘렸다. 도언 엄마 이지성 씨는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아도 기분은 좋았죠. 목공을 하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고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힐링이 별 거 있겠어요. 지금도 유가족이 어디 다 같이 항의하러 가야 한다고 하면 가요. 그런 다음 날은 마음이 너무 힘든데 목공하면서, 또 공방에서 엄마들이랑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마음에 안정을 찾아요"라고 했다.

시찬 아빠 박요섭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무를 만지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차분해 지더라고요. 철을 만지면 차갑기만 한데, 나무는 사포질하고 표면도 갈고 하면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아요. 한 가지에 집중하니까 그때만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요"라고 했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누구 하나 쉽게 '치유'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진형 목사는 치유에 목적을 두고 유가족에게 목공을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정부를 상대로 지난 1년 동안 싸우면서 엄마·아빠들은 뭘 해도 안 되는 걸 경험했다. 하지만 목공을 하면서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니까 뿌듯해 하고, 그것이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받은 사랑,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416희망목공방'은 이름처럼 사회에 희망을 주는 곳이 되고 싶어 한다. 미지 아빠 유해종 씨는 목공방이 희망을 만들어 가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지난 1년 넘게 사회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받은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표했다.

바람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든 가구들을 팔아 사회에 환원하려고 계획 중이다. 10월 31일, 안산시청 앞 25시광장에서 마켓이 열린다. 이 마켓에는 '엄마의이야기공방'도 함께하며 수익금은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 안산 합동 분향소 한켠에는 유가족 대기실이 있다. 그 안에 '엄마의이야기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엄마들은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자수를 놓는다. 요즘은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다. 모두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엄마의이야기공방'은 유가족 대기실 한쪽에 마련된 엄마들만의 장소다. 작년부터 엄마들이 모여서 바느질을 하고 리본을 만들면서 팽목항·광화문 등 세월호 관련 현장에 보내는 일을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견딜 수가 없는데, 이곳에 오면 '함께'이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는 엄마들이 많다. 자수·캘리그래피 등의 전문가가 이곳을 찾아 엄마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다.

이 공방도 목공방과 마찬가지로 후원에 의해 운영된다. 어떻게 알고 지방에서 떡을 만들어 가져 오는 사람들도 있고, 공방에서 먹으라고 반찬을 해서 보내 주는 경우도 있다. 조금씩 도와주는 사람들 덕에 유지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후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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