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분립을 결심했냐 하면 말이지…" 3년 전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나에게 교회 분립 개척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신 담임목사님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어떤 계기로 목사님이 일산은혜교회를 분립할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말이다. 그걸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교회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봐야 한다.

일산은혜교회의 모태는 남서울교회다. 당시 홍정길 목사가 담임하던 남서울교회는 창립 20주년이 되던 1995년에 20여 가정을 분립하여 남서울일산교회를 개척했다. 담임목사로는 10년간 부교역자로 섬긴 강경민 목사를 파송했다. 상가를 임대해서 시작한 남서울일산교회는 성장 일로를 달렸고 그럴수록 공간이 더 필요했다. 마침 인근에 예배당을 짓고도 건축비를 감당하지 못해 난관에 빠진 교회의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그 교회와 통합하여 1999년에 지금의 예배당으로 오게 되었다.

일산은혜교회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두 번 놀란다. 처음에는 동네가 아름다워서 놀란다. TV에 자주 나오는 예쁜 전원주택 단지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예배당이 작아서 놀란다. 교육관을 짓기 전까지는 주일마다 천여 명이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바글거렸다. 그때는 주일학교 예배드릴 자리도 부족해서 인근에 상가를 또 임대했었다.

그때 건축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근처에 건설 중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널찍한 땅을 사서 커다랗게 예배당을 지어 옮겨 가자는 아이디어였다. 사실 일산에 잘나가는 교회들은 다들 그 길을 갔고, 결국 대형 교회로 성장했다. 그때는 그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땅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건축은 물 건너가나보다 싶던 어느 날, 땅 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담임목사님이 땅 주인을 만났는데, 이게 웬일인가? 처음보다 엄청 낮은 가격을 부르는 것 아닌가? 이 정도면 계약해도 되겠다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그때, 예상치 않은 요구가 불쑥 들어왔다. "계약서를 한 장 더 써 주셔야겠습니다."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이중 계약서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게 업계의 관행이었다.

"그때 많은 생각이 오가더라고…" 목사님은 회한에 찬 눈빛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원래 세상 사람들 다 이러고 사는데, 땅 주인과 나만 아는 비밀인데, '나 하나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성도들 앞에서 공평과 정의를 설교했는데,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하나님나라 백성은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목사가 여기서 이럴 수는 없었다.

결국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날 깨진 건 그 계약만이 아니었다. 옛 방식의 목회 패러다임도 깨졌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확산이다.

교회가 열심히 전도하다 보면 인원이 늘고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반드시 한 교회의 수직 성장일 필요는 없다. 여러 교회로 수평 확산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한 장소에 있는 큰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여러 장소에 있는 작은 공간에 적은 인원이 모여도, 결국 모아 보면 전체 인원은 같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하고 욕심을 버리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일산은혜교회는 큰 교회를 지어 옮겨 가는 옛 방식의 성장 패러다임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당면한 공간 문제는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2011년에 본당 옆 주차장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교육관을 지었다. 지하는 소예배실, 1층은 카페, 2층은 회의실, 목양실, 관리장로님 사택으로 꾸몄다.

그리고 교회 분립을 시작했다. 우리 교회의 교회 개척은 처음이 아니었다. 당시 이미 세 교회를 개척한 바 있는데, 그 교회들은 '분립'이 아니라 부목사가 개척할 때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 네 번째 개척할 때야 비로소 교인들이 함께 가는 개척을 처음 시도했다. 인근 파주에 부목사와 10개 가정이 가서 운정은혜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여전히 교회를 떼어내는 분립이라기보다는 부목사가 개척할 때 개척 자금을 지원하고 교인들이 같이 가는 모양새였다. 이미 여러 중·대형 교회들이 시도한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이번 분립은 과거 개척 모델과는 네 가지 점에서 달랐다. 첫째, 정책적 분립이다. 4년마다 한 교회씩 분립 개척하겠다는 목회 방침을 3년 전부터 세워 놓고 준비한 개척이다. 둘째, 실질적 분립이다. 헌신한 20가정을 포함해 청·장년 50명 이상을 떼어 내는 분립이다. 셋째, 주체적 분립이다. 목사의 결정에 끌려가는 개척이 아니라 교인들이 헌신적으로 주도하는 개척이다. 나가는 교인들만 준비하는 개척이 아니라 보내는 교인도 참여하는 개척이다. 넷째, 사람의 분립이다. 돈으로 하는 개척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개척이다. "사람 없이는 개척해도 돈 없이는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교회 하나를 개척하는데 평균 2억 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개척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 교회로부터 오는 두둑한 재정 지원에 의지하는 개척이 아니다. 돈보다는 하나님나라의 상상력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분립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담임목사님은 처음부터 일반적인 지역 교회로 개척할 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나는 지역 교회는 너무 많다고, 대안 목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터라 노하우도 있었다. 일산 지역에 NGO를 세울까? 사회적 기업은 어떨까? 카페나 도서관도 괜찮지 않을까? 청년 목회를 전문으로 하는 교회는 어떨까?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에서 돌아서게 되었다. 우리 교회가 개척한 운정은혜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한 적 있었다. 아파트 상가 3층, 30여 명 모이는 개척교회였다. 아담한 예배당, 소박한 분위기, 반짝이는 눈빛, 부흥을 향한 열망.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서 익히 경험해 왔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목사님, 예쁘죠? 제 손녀입니다. 허허허" 예배가 끝나고 식사 교제를 하는데, 마주 앉은 장로님 무릎에 아기 천사가 올라앉았다. 그 곁에는 아들·며느리 집사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3대가 함께 하는 교회. 아주 보기 좋았다. '그래, 이게 교회다. 나는 이런 교회에서 자랐다. 내 자녀도 이런 교회에서 키우고 싶다. 이렇게 믿음의 가정을 이뤄가고,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다. 나도 이런 교회를 하고 싶다. 지역 교회를 하고 싶다.' 그렇게 전통적인 지역 교회를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교회는 선교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가족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과연 지역 교회를 담임하기에 적합한 인격을 갖췄냐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내게 남은 가장 큰 숙제다.

승천 직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의 확산을 지시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복음을 넓혀 가라고 명령하셨다. (행 1:8) 이는 수평적 확산이지 수직적 성장이 아니다. 아직도 교회의 수직 성장을 고집하는 야심에서는 자기 이름을 내고자 바벨탑을 건설하는 탐욕의 악취가 난다. 반면 복음의 수평적 확산을 시도하는 노력에서 선교 여행에 나선 바울의 순교의 체취가 난다. 교회 분립, 그것은 교회의 수직적 성장이 아닌 복음의 수평적 확산의 파도에 맨몸을 던지는 믿음의 도전이다.

남오성 / 일산은혜교회 목사,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 일산은혜교회 전경. (사진 제공 일산은혜교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