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학교 3학기 두 번째 강좌가 9월 14일 효창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정용섭 목사가 '원고 작성,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강좌에는 64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9월 14일(월),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교회에서 설교 학교 3학기 두 번째 강좌가 열렸습니다. 정용섭 목사가 '원고 작성,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이날 강좌에는 64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정용섭 목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데이비드 고든 목사가 쓴 책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 목회자 중 30%만이 청중들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 매스미디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적절하게 배양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우리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목사는 "읽고 쓰는 힘을 기르지 못한 설교자들이 내용은 없고 감동만 주려는 설교를 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또한 익숙한 종교적 언어에 조건 반사의 형태로 '아멘'을 외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청중들의 태도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정 목사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들어, 한국교회의 영적인 바탕이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동굴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 틀 안에 갇히고 맙니다. 동굴 바깥의 세계를 아무리 설명해 줘도 전달이 안 됩니다. 정 목사는 "설교자의 역할은 신자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껍질을 벗겨서 그 실체를 직면하게 하는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설교자는, 동굴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동굴 바깥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 설교자들에게 영적인 결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정 목사는 "그때그때 예화만 달라지는 빤하고 심심한 이야기를 가지고 재밌게 약을 팔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독교 신앙의 실체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신학교 다닐 때는 얼마간 있지만, 목회 현장에 들어서면 잊어버리는 풍토에 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정 목사는 "신학교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도전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골치 아픈 문제는 뒤로 가게 마련이다"고 진단했습니다.

정 목사는 "설교자는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잘 따라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독교 신앙의 실체를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한다. 상식적이고 인격적으로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설교자들에게 끊임없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 목사는 목회자들이 성경의 무수한 주제와 이야기의 국면들 앞에서 다양한 궁금증을 지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풍월로, 상투성에 머물러 있는 설교로는 동굴 안에서 칙칙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 정용섭 목사는 "설교자는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잘 따라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독교 신앙의 실체를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정 목사가 말하는 진정한 설교 원고 쓰기는 성서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일과 같습니다. 그는 "성서 텍스트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청중들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설교자가 죽는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설교자는 자기 영혼을 살리고, 영적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목회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목회나 설교가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 목사는 "은혜로운 설교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정성과 몇 가지 스킬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청중들에게 은혜받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설교는 아름답게 들릴지는 몰라도 신학적으로 빈곤한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정 목사는 바둑 기보를 예로 들었습니다. 바둑의 고수가 둔 한 수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뒤따라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그 의미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풍부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고 심심한 해석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 그 외 다른 모든 영역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의 세계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설교자는 성서 텍스트와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히 많은 맥락에 질문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상투성에 젖어 버리기 쉽고 그 안에 담긴 미세한 차이를 포착해 내기란 요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 목사는 성서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질문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진리에 이르는 첫걸음과 마지막 걸음은 모두 질문이다"고 했습니다. 하이데거(Heidegger)가 쓴 <기술에 대한 질문(Die Frage nach der Technik)>이라는 책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위험이 가까이 올수록 점점 더 구원을 향한 길이 밝게 빛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질문이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사유의 경건성(종교성)이기 때문이다(Je meher wir uns der Gefahr nähern, um so heller beginnen die Wege ins Rettende zu leuchten, um so fragender werden wir. Denn das Fragen ist die Frömmigkeit des Denkens)."

질문하는 힘은 사유하는 훈련을 통해 길러집니다. 정 목사는 신대원에서 설교 기술, 복장, 음성 등을 코치해 줄 것이 아니라 성서 텍스트를 주석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설교의 실용성을 극복하고 스스로 신학을 뛰어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정용섭 목사는 "모든 진리에 이르는 첫걸음과 마지막 걸음은 모두 질문이다"고 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설교자가 성서 텍스트와 성실하게 대화하면 할수록 설교를 듣는 청중들도 자연히 성서 텍스트와의 대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정 목사는 "설교자들이 청중들에게 화끈한 대답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설교자의 역할은 청중들을 영적인 세계로 인도하는 것뿐이다. 소를 물가로 데리고 갈 뿐이지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는 소가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청중들의 변화는 설교자의 몫이 아니라 성령의 몫이다. 오늘 설교자들은 물을 먹이는 일에 관심이 많다. 청중들을 어린아이처럼 다룬다. 모든 것들을 일일이 가르쳐 주려고 한다. 일종의 계몽 설교가 주를 이룬다. 나는 청중들을 계몽하려고 하지 않는다. 함께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자고 권면할 뿐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이, 설교자는 성서의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전할 뿐이다."

강의 주제는 '원고 작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설교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올바른 지향점에 대해서 폭넓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00여 분 동안 강의가 이어졌고,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뒤따랐습니다.

▲ 100여 분 동안 강의가 이어졌고, 강의 후에는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원고 작성뿐 아니라 설교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통찰과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설교 학교 3학기는 이제 두 번의 강의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10월 1일(목)에는 은혜샘물교회에서 박은조 목사와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설교 전달, 청중과 호흡하는 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눕니다. 10월 12일(월)에는 효창교회(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최철호 목사와 함께 '말씀과 공동체,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주제로 공부합니다. 참여를 원하는 분들은 아래 링크한 기사를 통해 안내 사항을 확인하시고 참가 신청서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김기석·정용섭·박은조·최철호 목사의 '원고 작성부터 설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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