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학교 3학기 첫 강의를 열었습니다. 지난 9월 8일(화) 서울 용산구 청파동 청파교회에서 김기석 목사가 91명의 목회자를 만났습니다. '설교자를 위한 글쓰기'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강의 내용은 목차를 따라 전개되는 매뉴얼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과 글이 가진 본래적 속성에 대한 한 편의 긴 탐구 기록 같았습니다.

첫 번째 탐구는 '호명(呼名)'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더라는 한 시인의 말처럼, 이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가 지닌 속뜻이란 것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김기석 목사는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장면을 언급했습니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김기석 목사는 창세기 3장 타락 사건에서 언어의 변모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한때는 가슴 절절한 사랑 고백이었던 '호명' 행위가 한순간에 상대방을 탓하고 지배하는 언어로 뒤바뀝니다. 김 목사는 말합니다.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기도 하고, 갈라 세우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가진 본래적 속성이다."

▲ 9월 8일 청파교회에서 설교 학교 3학기 첫 번째 강좌를 열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는 언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기도 하고 갈라 세우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다음은 '인간은 왜 글을 쓰려고 할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마녀 키르케 섬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마녀의 약초 즙을 마시고 돼지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돼지로 변하고 서로에게 말을 하려고 하지만 입에서는 '꿀꿀' 하는 울음소리만 나올 뿐입니다. 이것을 두고 한 문학가는 '비동일성의 고통'이라는 해석을 내놨다고 합니다.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의 언어가 아닌 짐승의 울부짖음일 때 '나'라는 주체가 비동일성의 고통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김기석 목사는 비동일성의 고통을 겪는 인간이 선택하는 두 가지 전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는 망각의 길이다. 돼지로 변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 사실을 즐겁게 여기기까지 한다. 다른 하나는 기억의 길이다. 끊임없이 망각을 깨뜨리려고 전투를 벌인다. 인간 됨의 회복을 꿈꾸는 길이다."

김 목사는 "자본주의의 습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현실의 비동일성을 견뎌 내야 하는 고통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인간 됨'의 상실, 내가 진정 '나'인 것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현실을 두고 김 목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은, 말하고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이러한 망각에 저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라는 낱말을 헬라어로 '알레테이아(alētheia)'라고 하는데, 이 역시 망각에 대한 저항(a(非) + lētheia(망각))을 뜻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이날 강좌에는 91명의 목회자가 모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시종일관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며 김기석 목사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이제부터는 '어떤 말이고 글이냐'가 중요해집니다. 김 목사는 "인간은 이야기를 듣고 자기를 형성해 가는 존재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듣는 이야기를 통해 자기 삶을 만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저자가 됩니다. 김 목사는 "저자라면 표절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가 되어서 본질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원본(original)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복사본(copy)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국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대부분의 설교도 원본(original)이기를 포기한 복사본(copy)인 경우가 많습니다. 김기석 목사는 "교회성장주의야말로 한국교회의 원죄다. 교회성장주의가 한국교회의 획일화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저마다 자기 이야기의 주인이 되어야 하지만, 성장주의의 복사본이 광범하게 퍼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입니다.

▲ 김기석 목사는 교회성장주의가 한국교회의 획일화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성장주의의 복사본이 광범하게 퍼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입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김기석 목사는 그동안 질서 정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새롭게 재구성하고 다시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화해, 용서, 은혜, 구원 등과 같은 신학적인 언어가 더 이상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에서 아무런 새로움도 발생하지 않는다. 신학적인 용어들이 내 속에서 아무런 감동을 일으키지 않게 된 것이다.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짐작되는 너무 빤한 언어가 돼 버렸다."

김기석 목사는 설교자의 언어가 상투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목사는 "신학적 언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내 삶 속에서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학적인 언어들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는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며, 목회자들의 글쓰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상투성을 극복하기 위해, 김 목사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성경을 '주름 잡힌 텍스트'라고 했습니다. 장구한 세월의 이야기가 압축 과정을 통해 주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늘 한 점 없이 매끈한 텍스트라면 팩트로만 이해하면 그만일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름과 주름 사이를 오가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예로 모리아산을 향하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을 향해 걸었을 '사흘 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사흘 길을 가는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략돼 있는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김 목사는 "상상력을 통해 자기 삶으로 연상이 가능해진다"고 했습니다.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방법들로, 김 목사는 "상투적인 해석에 저항해야 하고, 남들이 다 하는 얘기를 똑같이 해서는 안 되며, 최소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한 사태, 한 사물을 바라볼 때 다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 강의가 끝난 뒤에는 참석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한 참석자가 많았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글쓰기 요령을 전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100분 가까이 이어진 강의에 모든 참석자가 시종일관 주의를 집중하고 경청했습니다. 시간이 짧아 아쉽다는 참석자도 많았고, 글쓰기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습니다. 보내 주신 의견과 제안은 목회멘토링사역원 사역 계획에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이 주최하는 설교 학교 3학기 과정은 계속 이어집니다. 총 3번의 강의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9월 14일(월)에는 정용섭 목사의 '원고 작성 어떻게 할 것인가', 10월 1일(목)에는 박은조 목사의 '설교 전달,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길', 10월 12일(월)에는 최철호 목사의 '말씀과 공동체,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주제로 강의합니다. 참여를 원하는 분은 다음 링크한 기사를 따라 들어가셔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김기석·정용섭·박은조·최철호 목사의 '원고 작성부터 설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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