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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교수의 '갑질' 하지 않는 사회를 위한 실천윤리학 강의

2013년 강좌 엮어 <약자 중심의 윤리 - 정의를 위한 한 이론적 호소> 출판

강동석 기자   기사승인 2015.09.06  22: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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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중심의 윤리 – 정의를 위한 한 이론적 호소>(세창출판사)는 우리 시대 기독교계의 어른 손봉호 교수가 2013년 12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에서 대중을 상대로 강연한 것을 묶어서 출판한 책입니다. 실천적 윤리학을 다루고 있는 교양서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답 없는 너에게>(홍성사) 이후 한 달 만에 나온 손 교수의 책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란 무엇인가, 사람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이며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타자, 약자, 고통, 윤리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는 이 책은 경쟁 사회로 점철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 <약자 중심의 윤리 - 정의를 위한 한 이론적 호소> / 손봉호 지음 / 세창출판사 펴냄 / 274쪽 / 1만 8,000원

한국은 10년 넘게 OECD 자살률 1위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또 잊을 만하면 '갑질 논란'이 토픽으로 떠올라서 많은 이의 공분을 사곤 합니다. 2014년 말 '땅콩 회항' 사건에서부터 지금까지 '갑질' 때문에 발생했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사회 상류층의 '갑질'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에 분노했습니다. 저자가 호소하는 약자 중심의 윤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약자를 위한 법과 사회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책 전반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 탐구에 천착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철학자답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현대 '정의론'의 대가 존 롤즈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을 아우르는 실천윤리학 이론 전반을 짚어 내면서 사람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습니다.

윤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저자가 머리말에서 잘 정리했듯이 이 책에서 주장하고 논증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윤리학은 어디까지나 실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의학이 사람을 고치는 데 쓰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윤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사람을 도덕적으로 이끌고,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지 못하는 윤리 이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할 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로 도덕적 행위는 행위자의 윤리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주장은 논증을 위한 전제에 해당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주장이 사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입니다.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윤리는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최대 행복론으로 정리할 수 있는 공리주의를 살짝 바꾸어 '최소 고통론'을 주장합니다.

"벤담과 밀이 제시한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최대 행복론이라 부를 수 있다. 그 이론에 나는 조금의 변형을 가해서 최소 고통론(最小苦痛論)을 제안함으로 윤리적 당위의 근거를 정당화해 보려 한다. 이 부분이 윤리적 당위의 근거에 대한 나의 입장이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윤리 이론의 핵심이다." (61쪽)

"행복 추구보다는 고통 회피가 우선적이란 사실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도 우선순위도 제시한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전에 우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게 하기 전에 우선 굶주리지 않게 해야 하고, 멋있는 옷을 입히기 전에 우선 헐벗지 않게 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우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행동하고, 벗어나야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69쪽)

주체 중심적 윤리에서 타자 중심적 윤리로

또한 저자는 전통적 윤리 이론이 행위를 하는 주체 중심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주체 중심의 윤리에서 타자, 약자 중심의 윤리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윤리의 근본적 속성에는 타자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합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간단한 말 한 마디가 오도하게 된 진실이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 설명하면서 주체 중심으로 윤리를 생각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오셀로 장군은 자신의 부인 데스데모나와 부관 캐시오가 가사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오해하고 맙니다. "나는 저런 것 좋아하지 않아!(Ha! I like not that.)"라는 말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지요. 이를 계기로 강한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된 오셀로는 아내와 부관의 불륜을 의심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맙니다. 요컨대 형식적으로 거짓말이 아닌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이를 오도하거나 잘못 판단하게 만든다면 윤리적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선을 위한 거짓말'에 대한 예화를 추가로 내어놓습니다. 기독교인 농부 이야기로, 주체 중심 윤리의 대변자인 칸트 이론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일화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이 네덜란드를 접수했는데, 정직하기로 유명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농부에게 한 유대인이 찾아옵니다. 자신을 숨겨 달라는 것이지요. 유대인을 숨겨 주자 나치 독일 경찰이 찾아와서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을 숨기고 있느냐고요. 그랬더니 농부는 꾀를 내어, 책상을 주먹으로 치면서 "여기에는 유대인이 없소!"라고 대답합니다. 최후 심판 때 하나님이 농부가 거짓말한 것에 대해 추궁할 때, '식탁에 유대인이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는 변명을 늘어놓기 위한 구실을 만든 셈이지요.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농부가 그렇게 구차스러운 방법으로 정직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는가? 역시 자기 행위의 영향을 받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정직성에 더 무게를 둔 주체 중심의 윤리의 전형이다. 내가 주장하는 타자 중심적 윤리에 의하면 그 노인은 자신이 정직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말에 영향을 받는 다른 사람들의 이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중략) 문제는 자신이 정직해야 하는가 않은가가 아니다. 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실제로 중요한 문제는 유대인과 독일 경찰 둘 가운데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가이다. 당연히 유대인 편을 드는 것이 정의롭다. 그러므로 그 노인은 '마귀처럼' 거짓말을 해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특히 약하고 의로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다." (182쪽)

이 책의 백미는 3장 '타자 중심의 윤리', 4장 '약자 중심의 윤리', 5장 '윤리적 자원'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이런 자잘한 예화들과 그것을 통해 논증하는 실천윤리학적 담론들에 있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세 장에 걸쳐서 왜 약자 중심의 윤리를 펼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증을 펼치는 저자의 필치는 굳고 단단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다른 윤리 이론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윤리의 실천적 측면을 고려했을 때, 각 이론들은 양면성과 모순성을 하나둘 갖고 있게 마련이지요. 누가 어떤 이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실천'의 문제입니다. 특정한 윤리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데 한 역할을 감당해 낸다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한 가지 이론에 근거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이론이나 주장에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이런 이유로, 저 사람은 저런 근거에 따라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어떤 이유나 근거에서든지 다른 사람, 특히 약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기만 하면 윤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198쪽)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여덟 가지 자원

저자는 마지막 5장에서 최소 고통론 실현을 위한 '윤리적 자원' 여덟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종교 △교육 △합리성 △자존심 △동정심 △위선 △시민운동과 내부 고발 △도덕적 선구자가 그것입니다. 종교가 종교다워지고 교육이 교육다워져야 한다는 것, 합리성·자존심·동정심·위선을 자극하는 것, 시민운동과 내부 고발을 통해서 사회를 조금씩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 도덕적 선구자들의 적극적 활동을 통해 도덕적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 등입니다. 자존심과 위선은 책을 읽어 보지 않으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는 저자의 관점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위선은 그 자체로 부정적이고 모든 사람이 가능하면 위선적이 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선적이 되지 않으려고 자신의 악한 동기를 그대로 실천에 옮겨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차라리 위선적이 되어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위선은 솔직한 것보다 더 도덕적이다." (251쪽)

아무튼 저자는 여덟 가지 자원을 분석하고 올바른 사회를 위한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 자원의 활용 방안이 궁금하거나 그가 말하는 약자 중심의 윤리학, 그의 호소에 구미가 당긴다면 서점으로 달려가고 볼 일입니다. 대중 강연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기독교 윤리를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논하는 '약자 중심의 윤리학'은 이미 산상수훈을 비롯한 예수님의 말씀에 녹아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에로스의 사랑과 아가페의 사랑을 비교하면서, 기독교적 아가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 내는 대목은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신학자 다드(C. H. Dodd)가 잘 지적한 것처럼 아가페는 '감정(emotion)'이나 '애정(affection)'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인 의지의 결단(an active determination of the will)'이다. 사랑스럽거나 존경스러운 대상에 감정적으로 끌리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지 않은 원수도 의지의 결단에 의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스럽거나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스러움 혹은 자격 있음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은 명령될 수 없고 의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아가페는 그런 감정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중략) 아가페의 사랑은 사랑하는 주체의 감정과 무관하게 사랑 받는 사람의 필요에 응하여 그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다. 사랑의 무게 중심이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의 수요에 있는 것이다." (206~207쪽)

저자는 더불어 사는 삶, 낙오자가 없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타인과의 경쟁이 두드러지고 있는 사회 속에서 타자 중심의 윤리, 약자 중심의 윤리를 호소하는 것이 어쩌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목소리와 움직임들이 조금이라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보탬이 된다면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저자는 각 사람이, 한국 사회가 도덕적 냉소주의와 윤리적 상대주의, 주체 중심적 윤리학을 넘어서 타자 중심, 약자 중심의 윤리로 나아가야 할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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