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슐리 매디슨 해킹 사건으로, 많은 기독교인이 이 불륜 조장 사이트에 가입한 흔적이 드러났다. 

'애슐리 매디슨'(Ashley Madison) 사태를 둘러싼 해명과 반성의 글은 '부도덕'하기 짝이 없다. 잘못한 것도 문제지만 이후의 모습이 더 심각하다. (관련 기사: 불륜 조장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 불똥, 교계까지 튀어)

용서를 누가 해야 하는가

얼마 전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은 아베 총리의 태도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사죄 종결은 피해자들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 잘못에 대한 용서는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권리이지, 사고를 친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에 대해 '인신매매' 운운하고 적극적 평화를 이야기하며 '재무장'을 시도하는 아베 총리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분노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하찮은 수준의 기독교인들

애슐리 매디슨 사태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가입자들의 구성 비율에서 조금도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보다 우월한 측면이 없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이럴 거면 설교를 왜 들었으며 기도는 왜 했으며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거나 독선적으로 굴긴 왜 굴었단 말인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수치이다.

더 황당한 건 이후의 모습들이다. 유튜브에서 잘나가는 커플이라는 '샘과 니아 레이더 부부'는 '용서받음'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아내가 용서해 줬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고, 하나님이 용서를 해 주었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번 사태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조시 더거 역시 과거 자신이 저지른 가족 성추행 등의 잘못에 대해 "이미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았다"고 선언한 적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잘못했던 일이 밝혀지기 전에 솔직하게 먼저 털어놓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상황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전말이 드러나니까 '양심선언'이랍시고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결론은 '셀프 용서'이다.

이미 용서를 구했고, 용서받았다. 대체 누구한테 용서를 구했단 말인가? 샘과 니아 레이더 부부의 유튜브 팔로워가 35만 명이라고 한다. 공개적으로 기독교 가정을 일구어 가며 동성 결혼에도 반대해 온 그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샘의 고백에 용서의 대상은 '아내'와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35만 명은? 한 부부를 보면서 기대하고, 기독교적 가치에 공감하며 한 부부를 응원해 온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치와 문화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그들과 그것들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구나 하나님이 용서하셨다? 본인이 모세인가? 대체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짠' 하고 나타나셔서 "너를 용서했다"고 말씀이라도 해 주신단 말인가? 그렇다면 영상으로 찍어서 공개를 해 보던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괴로웠을 것이고,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했을 것이고, 그 과정 중에 심적인 위로라든지 종교적인 카타르시스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서적인 안정에 불과하다.

여기 정확한 성경적 근거가 있다. 다윗과 밧세바. 모두가 알다시피 다윗은 구약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다윗이 밧세바라는 여인을 탐했고 그 과정 중에 밧세바의 남편을 의도적으로 죽였다.

다윗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간과하셨던가. 나단 선지자를 보내 분명히 죄를 규정하셨고 죄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예고하셨다. 나단이 지적할 때 다윗은 무엇이라 했는가. 즉각 인정했고 무릎 꿇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왕국을 그냥 놔두었던가. 다윗의 간구에도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은 죽었다. 이후 다윗의 인생 여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수많은 은혜로 그에게 복을 주셨지만 수많은 채찍으로 그와 그의 왕국을 후려치셨다. 죄를 간과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떠했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명쾌하게 신앙의 요체를 고백한 베드로의 잘못 앞에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 16:23, 새번역)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성경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용서를 구했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는 말은 허무맹랑한 소리다. 차라리 "하나님이 나의 죄를 보시고 이렇게 공개하셔서 나를 채찍질하셨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수만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이다.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말이야 말로 최악의 비겁한 변명이다. 또한 본질적으로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 기만적인 행위이다.

유사한 장면이 떠오른다. 10년쯤 되었을까. 한참 학력 위조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연극배우 윤석화 씨의 학력 위조가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화여대를 나오지 않았는데 이화여대 출신이라고 칭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도 30년 동안. 그 당시 윤석화 씨의 발언도 꼭 같았다. "이미 하나님 안에서 회개했다."

이창동 감독이 만들고 송강호와 전도연이 열연했던 영화 '밀양'을 기억하는가.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려 마음먹은 여인 앞에서 살인자는 무엇이라 말했던가. "나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습니다. 따로 당신께 용서받을 필요 없습니다."

이보다 더한 종교적 위선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면, 마치 일본의 전쟁 범죄를 사과하러 꾸준히 국내를 방문하는 일본 목사님들처럼 무릎 꿇고 끊임없이 눈물로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정상적인 태도이다.

하다못해 정치인들도 잘못을 범하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의원직이나 장관직을 내려놓기도 한다. 그것이 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며, 용서를 구하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태도가 왜 죄와 용서를 유독 강조하는 기독교인들의 문화에 유독 없단 말인가.

미국 교회의 문제라고? 과연 우리 한국 기독교는 어떠한가. 용서는커녕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조용기 목사가 수백억의 헌금을 자신의 아들에게 눈먼 돈처럼 물려주었음에도, 그가 했던 행위는 고작 "나는 아간이 아닙니다"라는 말과 자신을 지지하는 성도들을 향한 '큰절'밖에 없었다.

너무나 많은 증언들이 나옴에도 전병욱 목사는 본인의 성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공개적인 사과나 유감을 표명한 적이 없다. 그리고 결국 홍대새교회는, 그간 삼일교회나 이 문제를 지적했던 여러 사람들을 향해 고소를 하고 사건 자체가 없었다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디 이런 수준의 일들이 한두 개일까.

대체 우리는 왜 기독교를 믿는단 말인가

모든 성도들은 기독교적 규범과 기준에 맞춰 완벽한 삶을 살아 내야만 한다? 이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주장이다. 기독교를 믿게 되는 과정이 워낙 다양하고, 믿는 이의 수준 또한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성자가 되고 위대한 인간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 못한 현실 자체를 지속적으로 바꾸고 개선해 나가야 할 노력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설령 아직 그 수준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용서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라도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설교 가운데 없다.
죄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범주가 성도들 가운데 없다.
죄에 대한 치리와 극복에 대한 교회의 의지와 실천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이 모호하다. 죄인은 죄인인데 본인이 어떤 죄인인지조차 사실 잘 모른다. 더구나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 배우는 것은 대부분 추상적인 개념들이다. 값싼 은혜, 값비싼 은혜, 루터, 본회퍼. 신학적 논쟁은 지겹기까지 하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이렇게 모호하게 죄의 문제를 설명함에도 매주 강조하는 것이 '당신은 이미 용서받았다', '예수 믿으면 용서받은 자다’ 식의 자기도취적인 해방감만을 끊임없이 주입받는다는 사실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가톨릭을 비판하면서, 루터의 이신칭의를 들먹이면서 결국 '당신은 용서받았고, 그것이 은혜다. 은혜에 감사하라' 바로 이 메시지만 너무나 명쾌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감상적으로 주입받고 또 주입받는다. 악기 연주와 함께. 그러니 잘못을 했을 때, 누가 봐도 부끄러울 때 우리는 더더욱 뻔뻔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차피 용서받았는데.

정상적인 신앙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상식을 관통하면서도 감히 초월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의 독단적인 진리는 과연 무엇일까.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시작해 볼 노릇이다.

정상적인 교회 문화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왜 잘못이 생기면 유독 제대로 잘못을 사과하지도, 처리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가. 크나큰 한국교회의 자기모순에 속상하기만 하다.

심용환 / '깊은계단&5분인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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