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스앤조이> 독서 모임 '톨레레게' 후기입니다. 김성현 씨는 톨레레게 초반부터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톨레레게에 참석하며 느꼈던 소감을 적었다고 합니다. - 편집자 주

'왜 교회 안에서까지, 부(富)와 명예를 숭상하는 사회의 질서가 통용되는 것인가?'

제가 본 한국교회는 회집을 통해 부(富)와 명예를 약속하였고, 이를 축복의 증거로 간주하였습니다. 돈이 되는지 여부가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되고, 기도의 형식을 빌어 십일조를 내는 명단을 알렸습니다. 헌신과 헌금은 예금이요, 축복은 복리 이자라는 막말이 강단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임직을 받기 위해서 감사헌금 명목의 배당금이 정해졌고, 부교역자들은 항상 불안정한 근로 환경에 놓여 있었으며, 질병 등의 사유로 사역이 어렵게 된 부교역자에게는 사임이 종용되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을 빌어, 이런 교회를 '상향성의 종교'(상승을 지향하는 종교)라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걸어갔던 길을 따르는 것이요, 예수의 전 생애는 상향성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일생이었음을 돌아볼 때, '과연 이러한 상향성의 종교에 구원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속의 가치로 점유된 교회의 모습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고, 여전히 강단에서 나오는 축복의 말씀에 회중들은 "아멘"으로 답할 뿐이었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 즈음 우연히 접한 기사가 책 읽기 모임 '톨레레게'였습니다. 톨레레게가 이러한 상황에 해답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고 단지 교회 외부 모임을 통해 '숨통을 틔워 보자'라는 생각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통해, 예수의 삶, 위대한 신앙의 거목들 그리고 좁은 길을 걸어가려 애쓰는 길동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신앙, 삶, 교회에 관한 길동무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다르게 살아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을 꿈꾸게 되고, 낮아지는 길을 가셨던 예수를 좇고 싶어졌습니다.

나아가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답을 지워 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예수의 시선, 정치 및 종교 지도자를 향한 날카로운 저항의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의 궤적과 소명을 따라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의 죽음을 접하며, 상향성을 지향하는 삶의 오답을 지워 갈 수 있었습니다.

묵상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한 여정으로 나의 실존의 영역을 전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묵상을 하나님과의 소통과 교제 정도로 여겨 왔던 오답을 지워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법, 제도 등 잘못된 체제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대안을 만들고 투쟁하는 운동에 무관심했던 오답을 지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읽을 책들을 통해, 독선과 왜곡된 확신의 오답들을 지워 나갈 것입니다.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책의 힘이 이렇게 강력할지는 몰랐습니다. 상향성을 지향했던 인생의 프레임이 철저히 해체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37년간 교회 생활을 하였지만, 이제야 비로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배워 갑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하십니까? 혹시 저와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숨통이 조여 오시지는 않으신지요? 한 권의 책이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길동무가 되고 싶습니다.

김성현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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