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예수는 누군가를 '극혐' 하지 않으셨습니다'를 쓰고 나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습니다. 오해에 대한 해명도 해야겠고, 더 얘기해야겠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댓글 대부분은 한국 기독교인 중 '신앙이 좋다'는 분들이 주로 내미시는 논리입니다. 댓글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보편적인 기독교인의 생각'이라 보고, 그에 대한 반론과 추가적인 내용을 담아 봤습니다.

1. 죄와 죄인을 따로 미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독교인은 죄를 미워하는 것이지, 죄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는 댓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저만 인상 깊은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댓글 '호감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합리적이면서도 원칙적인 기독교인'인 듯한 느낌입니다. 참 옳은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성애'만' 미워하고, '동성애자'는 사랑한다는 말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능력을 너무 높이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특정인의 죄를 미워하면 그 죄인도 함께 미워하게 됩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아니꼽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맞았습니다. 그러면 그 '폭력'은 미워하고, 그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따로 떼어 미워하지 않습니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른 예시도 하나 들어 볼까요. 성폭행범의 성폭행 사실만 따로 떼어서 미워하고, 성폭행범은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범죄자 인권을 위해 뛰어드는 변호사들이 사회적으로 욕을 무진 먹습니다. 그렇게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뛰어든 분들에게는 "네 여자 친구가 강간을 당해도 그런 얘기할 수 있느냐"는 등의 비난이 쏟아집니다. 하기야 나나 내 가족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저라도 찢어 죽이고 싶을 것입니다. 어쨌든 제 결론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죄만 '똑 떼어서' 미워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죄와 죄인을 구분하여 감정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감정을 이분법적으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라고 다르겠습니까. 동성애를 미워하면서 동성애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지금 하시는 '극혐'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아닙니다. '동성애자'를 향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죄는 미워해도 인간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갈 이상향입니다. 그런 예수님과 똑같이 못하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 분노의 감정이 동성애자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동성애를 향한 것인지 정말 구분 가능한지는 되물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 동성애자를 사랑해서 그렇다고요?

저는 현재 동성애 혐오가 동성애자를 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도 있더군요. 혐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반대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분들은 동성애자들을 사랑하기에, 기독교인들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를 사랑한다?' 인터넷에 올려 볼까요. 기독교인이 동성애자를 사랑해서 반대하는 것 같으냐고 설문 조사를 해 봅시다. 제가 보기에 기독교인이 아니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거짓된 사랑의 매'가 떠오릅니다. '진실 없는 사랑'으로, 자신이 내키는 대로 휘두른 폭력을 사랑이라고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요. 저 때만 해도 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때릴 때마다 '너희를 사랑해서 그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차라리 '학교의 질서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납득이 갔을 텐데 말입니다. 한 가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몇몇 학생이 고등학교 때 방학 자율 학습을 '딱 한 번' 도망친 적이 있습니다. 그 담임선생님께서는 도망친 학생들의 뺨을 몇 대 후려쳤습니다. 뺨을 때리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너희들을 사랑해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이 뺨을 때린 담임선생님께서는 단 한 번도 학생들과 대화하신 적이 없었던 분입니다. 때로는 수업하기 싫다며 교무실에 계시면서 자율 학습을 시키고는 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뺨을 때렸다고 생각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태도와 지금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치고는 참 거칠고, 무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잘되기를 바라서 이렇게 한다는 것은 괴담에 가깝습니다. 저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를 대하는 것을 보면 사랑해서 그렇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관심을 기울여 주고, 함께 대화 나누고 손잡아 주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엇나갈 것 같으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충고합니다. 이런 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인들께서 동성애자를 위해 손 내민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SNS나 인터넷은 물론이고 교회에서도 동성애자를 '때려잡아야' 할 것처럼 분노하시는 건 봤어도, 이 사람들을 예수님 품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직접 만나 보고 노력하셨던 기독교인들이 '이건 죄악이니 시정해야 합니다'고 외쳤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정말 사랑으로 동성애자를 대하시던 분이 그랬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보여 주신 것이 정말로 사랑일까요?

이번 퀴어 축제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퀴어 축제 반대 집회에서 내건 동성애자를 반대하는 구호는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퀴어 축제를 반대하시는 분의 구호 중에서 "너희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너희 때문에 마음 아프다"는 등의 내용을 본 일이 없습니다. 사랑은 공감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 함께 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신앙이 좋다는 여러분들은 이 시대를 아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느낌에는 동성애자들 때문에 아파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둘러본 퀴어 축제의 구호를 몇 개 보지요.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너희의 죄악이 가득 찼다"와 같은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댓글에서 주장하시는 것처럼 동성애자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듯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께서 동성애자를 향해 하시는 게 '혐오'입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게 '극혐'입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싫어하는 것입니다. 정말 죄인을 사랑한다면 저 죄인들을 향해 손을 먼저 내밀고, 대화하는 게 우선입니다. 지금이라도 동성애자를 향해 손을 뻗어 주세요.

3. 동성애자를 인정하면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배운다는 건 괴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면, 모두 동성애자가 된다'는 식의 논리를 설교 때 많이 씁니다. "죄를 죄라 못 하니, 우리 아이들의 윤리관이 무너질까 염려된다"는 "동성애에 대한 인정은 더 많은 동성애자를 낳는다"와 같은 주장을 펼치십니다.

사실 문제는 '인정'이냐 '조장'이냐는 것입니다. '동성애만이 답이며, 동성애를 꼭 해야 한다'는 것과 '그냥 놔두자'는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 제 글과 여러 사람의 의견은 '그냥 좀 놔두자'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놔둔다고 어떻게 되는 것은 없습니다.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 좀 해 준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동성애가 인정되는 사회'가 되면 동성애자들이 숱하게 양산될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은 대체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가지고 사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국민의 20~30%밖에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무신론자와 무종교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는 지금, 온 세상이 기독교가 아니라 타 종교를 가져야 할 텐데, 이상하게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삽니다.

동성애자를 인정하면 동성애를 배운다는 분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에 종교의 자유를 주면 안 됩니다. 타 종교에 대한 자유가 인정이 되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슬람교나 불교로 개종하면 어쩌시려고 합니까?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거리 곳곳에 타로 집과 사주 집이 가득합니다. 그런 것에 우리 아이들이 현혹되어서 하나님 대신 미신을 믿으면 대체 어쩌시려고 그런 우상들은 놔두시는 겁니까? 저런 샤머니즘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심지어 '사주 카페', '타로 카페'와 같은 것이 '문화 상품'이라면서 팔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의 길은 오직 주만 아신다'는 욥의 고백 대신에, 점집에 가서 미래를 점치는 판입니다. 그런 우상들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는 바람에 하나님 대신 다른 우상을 섬길까 염려되지는 않으신지요.

어디 종교뿐이겠습니까. 문화적 가치관 역시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합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저를 '우파 신자유주의자'라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얘기한다고 해서 제 생각이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남이 어떻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등장하는 논리가 '악한 것은 빨리 배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성애를 얼마나 악하다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동성애는 돈을 준다고 해도 따라 하기 힘든 것입니다. 잘생긴 톱스타 배우가 남자인 저를 유혹한들 제가 바지를 벗겠습니까? 동성애는 개인의 취향입니다. 사실상 따라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동성애의 자유를 인정해 준다고 동성애가 증가하겠습니까.

4. 성경적으로 볼 때 동성애자는 죄인이 확실한데 왜 이렇게 관대하냐고요?

저번 글의 주제였는데, 다시 한 번 반복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동성애자가 성경적으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알 수가 없고, 그들이 설령 죄인이라고 해도 그들에 대한 혐오는 신앙인의 행동이 아닙니다.

일단 성경적으로 동성애자가 죄인이라는 분들의 입장을 반박해야겠습니다. 성경에 나온 동성애에 대한 구절인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해 동성애를 심판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들까지도, 대개 폭력과 강압에 의한 성관계, 나그네에 대한 핍박 등 성경의 다른 윤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성애 그 자체가 심판을 몰고 왔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특히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 문제입니다. 성경 문자 그대로라면, 동성애자는 죄인이고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건데, 그런 성경 해석은 무척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 해석은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아시다시피 여러 번 번역된 것입니다. 번역 작업을 하다 보면 당연히 오역이 생깁니다. 특히 역사 비평적으로만 봤을 때도, 성경은 여러 번 필사와 가필을 거쳐 완성된 것입니다. 정경을 인정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잡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성경을 역사적 맥락에 따라 계속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이런 질문에도 답을 해 보셔야 합니다.

성경에 "돌로 쳐 죽이는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 가지 예로, 민수기에 보면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주일에 일하는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합니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요일에 일하는 모든 기독교인 청년을 돌로 쳐 죽여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예로, 신명기에는 결혼할 여자가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혼전 순결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면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는 모든 여성을 돌로 쳐 죽여야겠습니다(절대로 여성 비하 발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역사적 맥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성애자들을 끝끝내 죄인이라며 혐오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를 반성경적이라며 반대하는 분들은 우상 파괴 운동, 안식일 지키기 운동, 혼전 순결 운동, 타 종교 무너뜨리기 운동 등은 왜 안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죄를 응징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퀴어 축제가 아니라 명동에 있는 온갖 점집과 산 곳곳에 있는 절부터 무너뜨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성경적으로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죄이므로, 꼭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으시면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숙박업소 여성 분들이 결혼하셨는지 하지 않으셨는지 검사라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신명기에 의하면 바람 피우는 남성 분들도 이참에 모두 돌로 쳐서 죽여야 할 것 같습니다(용서가 안 되기는 하나, 죽일 수는 없지요).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잘못된 것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떼어서 '역사적 해석'을 가미해야 하고, 다른 부분은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모순적인 것입니다. 어떤 것을 해석하고, 어떤 것은 문자 그대로 믿을지 기준이 참 애매합니다. 목사님들이 '신학 공부하셨으니까 그분들의 말이 맞지 않겠느냐'는 질문은 앞서 말씀드렸던 성경의 해석에 대반 부분, 그리고 우리나라 신학대학에 접속하셔서 교육과정을 보시면 아마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참고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합동, 통합 등 교파가 100개가 넘습니다. 그 모든 교단이 하는 말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신학교마다 배우는 것도 다르고요).

이런 말을 하면 꼭 나오는 반론이 있습니다. "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느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잊으시면 안 됩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성경적 상식들도 그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들을 어릴 적부터 보고 익힌 것에 불과합니다. 동성애가 죄라며 타박하는 목사님 역시 그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성경을 보고 또 다시 자신이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적'이라며 동성애자들을 타박하는 것은 그 누군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온 동성애가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설사 성경적으로 '죄'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어떻게 수용할지는 성경의 근본적인 정신과 함께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거처럼 동성애를 했다고 돌로 쳐 죽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교회 내에 여론도 중요합니다만, 진정으로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이고, 이제 이걸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성애가 여러분이 혐오하시는 대로 죄라 할지라도, 품어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경에서 '죄'라고 표현했다면 죄일 수는 있겠습니다. 그래 봐야 여러 죄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전에 쓴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동성애자들도 우리가 같이할 이웃 중 하나입니다.

5. 맺음말

끝으로는 제 개인적 경험과 함께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동성애자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동성애자를 '혐오'했던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동성애는 죄라고 배웠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해 한 치 용서도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동성애는 미워하고, 동성애자는 미워하지 말자'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경험이 제 인식의 틀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일반화의 오류를 각오하고서라도 제 개인 얘기를 조금 해 보겠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했던 형이 있었습니다. 그 형은 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목회자의 아들이었고, 기독교 집안에서 건실하게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딱 하나 특이한 점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를 나오지 않는 형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 형이 동성애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갑자기 치가 떨렸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마음까지 혐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해 준 사람은 '그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형은 사실 동성애 때문에 가족에게서도 버림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성애 때문에 스스로 너무 힘들어 주변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 사람들이 극도의 혐오를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곧 '죄'이니,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살겠다"고 말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는 '동성애'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치를 떨고, 동성애자라는 순간 그 사람이 싫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곰곰이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동성애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교회가 그들을 받아 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받아 줄 사람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도 많이 느꼈습니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다 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동성애자들은 편견을 이기지 못하기에 교회로 오지 못합니다. 과거에 창녀나 병자가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듯이 말입니다. 동성애라면 치를 떨며 이를 득득 가는 모습과, 바리새인들이 창녀와 병자가 죄인이라며 이를 득득 가는 모습이 무엇이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은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상위법입니다. 지금처럼 사랑하지도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온갖 혐오를 하는 것이 바른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동성애자가 죄인이라면, 돌아오길 바란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돌이키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극단적 혐오 현상 혹은 혐오하면서 사랑한다고 속이기까지 하는 것은 분명히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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