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퀴어 문화 축제가 끝났다. 퀴어 퍼레이드가 진행되던 6월 28일까지, '동성애는 죄'라는 명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이 올라왔고 댓글은 수십 개씩 달렸다. 여러 교단과 단체들은 연합해서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었다.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 퀴어 문화 축제 역사상 한국 기독교가 공동으로 대응한 것은 처음이었다. 

양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정작 기독교인 동성애자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에서 게이·레즈비언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퀴어 퍼레이드가 있기 이틀 전, <뉴스앤조이>는 세 명의 '퀴어 기독교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세 명 모두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차세기연)'에서 활동하고 있다. 차세기연은 성 소수자의 동등한 인권을 지지하는 기독인이라면 동성애자뿐 아니라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곳이다. 

'안개(남)'는 올해 서울의 한 신학교를 졸업했다. '리무(남)'는 현재 재학 중인 대학교 내 성 소수자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레송(여)'은 직장에 다니면서 차세기연 운영 위원을 겸하고 있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신앙적인 배경이 다른 세 명의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세 분 다 기독교인이라고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셨나요? 

레송: 모태신앙이에요. 가족들 모두 교회에 다니고 있고요. 

안개: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가족 모두 교회 열심히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에요. 리무네 친척 중에는 목사님도 있어요. 모태신앙도 못 고치는 동성애인 셈이죠. (웃음)

- 그럼 지금도 모교회에 다니세요? 

리무: 아니요. 지금은 다 떠나서 두 명은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 다니고, 한 명은 그냥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 다니던 교회를 떠나신 특별한 계기나 사건 같은 게 있었어요? 

리무: 딱 어떤 사건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고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어렸을 적부터 다니던 교회를 다녔어요. 서울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교회인데요. 지금도 저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그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예전에 한창 보수 기독교계에서 차별금지법·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운동할 때, 그 교회에서도 로비에서 반대 서명을 받더라고요. 그걸 보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설교 시간 동성애자 혐오 발언도 자주 들었는데요, 그런 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결국 못 참고 나오게 된 거죠.

레송: 저는 어렸을 때 장로교 교회에 다니다가 감리교 교회로 옮겼고, 이후에는 이곳저곳 교회를 옮겨 다녔어요. 설교 시간에 동성애 혐오 발언이 심해지면 못 견디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대형 교회를 선호했어요. ㅅ교회에 다니다 예배 끝나고 나오니까 로비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자 친구가 다니던 ㅂ교회에 잠시 다니다가, 그 후에는 ㅇ교회로 옮겨 갔어요. 

회사에서 아웃팅(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경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할 때였는데요, 회사 앞에 ㅇ교회가 있었어요. 그때는 정말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만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회사 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새벽 기도 갔다가 출근하고 그랬죠. 회사 끝나고 나면 집에도 못 가겠더라고요. 집에 가면 괴로운 마음에 언제 목을 맬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회사 끝나면 ㅇ교회 저녁 예배에 갔어요, 성경 공부도 하고 그랬죠. 한 반 년 동안 그렇게 다녔는데, 거기서도 동성애 혐오 설교의 수위가 높아지더라고요. 더 듣고 있다가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 지를 것 같아서 나왔어요. 그 교회는 지금 퀴어 문화 축제 반대에 앞장서고 있어요. 

- 리무 씨 말을 들어 보면, 10대 때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은데요, 그때 이야기 좀 해 주시겠어요? 

리무: 저는 제가 중학교 때부터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알았어요. 다른 친구들이 예쁜 여학생을 찾을 때, 저는 잘생긴 남학생에게 눈길이 갔죠. 중1 때 성격이 소극적었는데, 2학년이 되면서 반장이 되고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자연스레 대인 관계가 넓어지고 친구도 많아지더군요. 위기는 중3 때 찾아왔어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제 성적 지향을 들켰고, 학교에서 왕따가 됐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성격 좋고 친구 많은 학생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게이 새끼'가 됐더라고요. 학교에서 단체로 여행을 갔는데 얼마 전까지 같이 밥 먹고 장난 치고 놀던 친구들이 '넌 남자 좋아하는 새끼'라면서 자기 근처로는 오지도 말라고 하더군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 후로는 저 자신을 숨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일부러 여자 친구도 사귀어 보고요. 이렇게 내 자신을 둘로 나누다 보니까 자기혐오도 심했죠. 

고등학교 때도 위기가 찾아왔어요. 중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급생이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등학교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더라고요. 원래부터 학교 생활에 별 미련이 없었기 때문에 이참에 커밍아웃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날부터 누군가 '너 게이야?'라고 물어보면 아무렇지 않게 '응, 나 게이야'라는 대답을 반복했어요. 그렇게 1년을 보냈더니 적어도 동급생들은 제가 게이라는 걸 알더라고요. 그 후로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도 저랑 친해지려고 한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죠.

- 안개 씨는 신학교를 졸업하셨잖아요. 그러면 신학교 가기 전에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셨나요? 어떻게 신학교까지 가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안개: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이 야한 동영상 보는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는 죄라고 생각했어요. 또래 남학생들이 수련회 가서 은혜받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야한 영상을 지우잖아요.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도 그런 것처럼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죠. 같은 맥락으로 신학교를 간 거에요. 신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신앙생활하면 이 감정들이 다 사라질 거라고 믿었죠. 어렸을 때부터 '동성애는 죄'라고 배웠기 때문에 더욱더 제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변하지 않는 삶을 살다가, 군대 다녀오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동안 막연하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 온 것 자체에도 회의가 드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과 싸웠어요. '싸웠다'는 표현이 맞을 거에요. 정말 울고불고 몇 날 며칠을 기도에만 매달렸어요.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현실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기도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응답을 받은 거죠. 정말 신비한 체험이었는데요, '그래도 내가 널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렇게 듣고 나니까 모든 게 정리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가 동성애자여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고백하려고 했는데요. 그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깨끗하게 접었죠. (웃음)

- 레송 씨는 힘들게 대형 교회를 다녔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지금은 어떤 교회를 다니세요? 

레송: 오래 전부터 알던 목사님이 있었는데요. 8년 정도를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아웃팅을 당해서 회사를 떠나야 했을 때도 '왜 떠나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대로 이유를 말할 수 없더라고요. 그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셔서 그곳에 다녔는데요. 어느 날, 새벽 기도를 가다가, 문득 이제는 제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목사님한테 '사실은 나 여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다'고 고백했더니 예상대로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죠. 

충격을 받으시긴 했지만, 그분은 교회 일부 성도들에게 동성애자에 대해 교회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느냐고 물었대요. 다행히 목사님이 대화했던 교인들은 '예수님이라면 동성애자를 보고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주제로 의견을 나눠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들은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동성애자를 정죄하거나 밀치지 않고, 안아 줬거나 손을 잡아 줬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던 분들이었대요. 감사한 일이죠. 

그 후 이 목사님이 동성애가 무엇인지 배우려고 관련 세미나도 다니고, 저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목사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후에는 교인들에게도 하게 되더라고요. 1년 동안 교인들 한 명 한 명에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단 한 명의 교인이라도 절 거부하면 떠날 각오로 했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공포감을 느꼈죠. 다행히 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주셔서 매주 감사했어요. 

- 다른 퀴어 기독인들이 들으면 부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떠나신다고요?

레송: 어느 순간 목사님이 저를 불편해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교회니까 매주 새로운 신자가 오면 서로 소개를 하는데요. 그때마다 저를 '동성애자'로 소개하는 것에 목사님이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너를 동성애자로 보는 것이 싫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건 저를 부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또 다른 교인들도 저라는 사람은 인정해 주시지만, 다른 성 소수자나 사회 약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때면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 한국 기독교인들이 '정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들 몸을 사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월호 때도 그렇게 유가족들이 원했는데, 결국 대다수는 가만히 있었는데요. 이런 것과 성 소수자 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세요? 

안개: 저는 같다고 봐요. 한국 기독교인들은 말로만 사랑하는 것 같아요.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게 잘 보이지 않아요.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칼에 찔리고 있으면, 강도의 손에서 그 칼을 빼앗아서 부러뜨리던가 아니면 최소한 그 사람이 해를 안 당하게 같이 찔리던가 하는 게 사랑 아닌가요? 그냥 옆에 서서 '어떡해, 칼에 찔리고 있어. 어떡해' 발만 구르면서 보기만 하는 건 방관하는 거죠. 바로 옆에서 사람이 칼에 찔려 죽어 가고 있는데 옆에 서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래도 우리는 저 강도와 다르지' 하며 만족하는 거에요. 이게 '착한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중립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화가 나는 거는요. 칼에 찔려 죽은 우리가 서서 구경하던 사람에게 '왜 거기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우리를 사랑한다면서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구경하던 사람은 '왜 화를 내고 그래? 우리가 너희를 찌른 건 아니잖아. 강도한테나 뭐라고 해'라고 대답하는 상황이에요. 저는 이 지점에서 침묵하는 그리스도인들한테 정말 화가 나요. 차라리 칼로 찌르면, 하지 말라고 저항할 수 있죠.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가서 제가 '당신 왜 가만히 있냐'면서 때리면 저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잖아요. 가만히 서서 발만 구르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세월호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 세월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얼마 전, 고 육우당 추모제에도 세월호 유가족이 오셨다면서요. 

안개: 예, 지난 4월인데요, 그때 유가족 한 분이 오셔서 지지 발언을 해 주셨어요. 사회 약자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성 소수자가 장애인, 미혼모, 이주 노동자, 불법 해고자 등이 투쟁하고 집회하는 현장에 함께하는 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외받고 차별받는, 폭력의 피해자인 사람들이 느끼는 연대감 때문인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아팠는데, 당신은 얼마나 아팠어요?'라는 마음이 소수자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지금 한국교회는 자신들을 향해 혐오 발언을 계속 내뱉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신앙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세 명 모두 답은 비슷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하나님뿐이었다. 

퀴어 기독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원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다르다. 누구는 자신을 숨기고 신앙생활하기를 원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교회에서 커밍아웃하고 신앙생활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콕 집어서 성 소수자만을 위한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를 원한다. "아, 하나님 왜 저는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라는 기도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 생활의 기쁨을 알기에, 이들은 더더욱 교회를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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