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6회를 맞은 한국 퀴어 문화 축제는 예년과 달리 개신교의 조직적 반대에 직면했다. 6월 13일 열릴 예정이던 퀴어 퍼레이드는 날짜를 변경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28일로 옮겼다. 같은 날, 인근에서 퀴어 퍼레이드 저지 연합 예배를 예고한 개신교 측과 충돌이 예상된다. (관련 기사: 한국교회 22개 교단장들, 퀴어 퍼레이드 저지 총공세 예고)

미국에서는 6월을 '퍼레이드의 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회 변화에 힘입어 교계에서도 성 소수자를 목사로 세우고 교인으로 인정하는 등 분명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둘러싼 신학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관련 기사: 팀 켈러 vs 토니 캠폴로, 동성 결혼 찬반 대립)

여러 의견이 공존하는 미국에서 한 목사가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한 소감을 썼다. 지난 6월 15일, <미디엄>이라는 매체에 올라온 글은 <허핑턴포스트>, <소저너스> 등에도 잇따라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 목사는 '복음주의언약교회(Evangelical Covenant Church)' 교단 소속이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월드비전 선교사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하다 2014년 귀국했다. 그는 아내 사라와 함께 미국 동부 포틀랜드(Portland) 시에 '그리스도교회(Christ Church)'를 개척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에서 그와 교인들은 한 가지 사항에 동의했다. 성 소수자를 교인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 교회에서 성 소수자들은 다른 교인처럼 교회학교 교사로, 행사 자원봉사자로, 성찬 예식을 돕는 사람으로 활동했다. 그리스도교회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적인 필립스지만, 퀴어 퍼레이드에 직접 참가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지역 교회에 다니던 친구가 필립스와 아내 사라를 초대한 것이다. 교회에서 성 소수자를 만날 수는 있었지만, 한 번도 퀴어 퍼레이드에 간 적이 없었던 필립스는 용기를 내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 목사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2014년 미국 포틀랜드 시에 그리스도교회(Christ Church)를 개척한 그는 성 소수자를 온전한 교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 소수자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하기로 한 그지만 퀴어 퍼레이드에 행진자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미디엄> 기사 갈무리)

필립스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까지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성 소수자를 위한 공개 행사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같은 교단 선배와 동료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가 속해 있는 교단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공개된다면, 교단 내에서 매장당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빨간색 스톨을 목에 두르고 피켓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그가 든 피켓은 행진하기 전 동료 목사에게 건네받은 것인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권리와 평등을 무시했던 사람들의 편협하고 판단하고 기만하고 조종하는 행동을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사과합니다." 

그는 행진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성 소수자들이 자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그동안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한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목사 스톨만 보고 혐오를 표해 왔던 기독교인으로 오해하면 어쩌지', '내 사과를 받아 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고 했다. 

그러나 행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동이 차올랐다. 함께 행진하던 성 소수자와 지지자들은 필립스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성 소수자 중 일부는 눈물을 닦으며 "고마워요", "당신의 사과를 받아 줄게요"라고 말했다. 필립스는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선글라스를 낀 게 다행일 정도로 눈물이 계속 쏟아졌어요. 그들의 용서와 관용은 내가 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제가 미처 헤아릴 수도 없는, 그들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도 내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필립스는 모든 행진을 마치고 자긍심(Pride)을 느꼈다고 했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 소수자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행진이라 '게이 프라이드(Gay Pride)'라고도 불린다. 성 소수자가 아닌 자신도 동일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는 '사랑이 이긴다(Love wins)'는 문장이 실제로 이뤄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이라고 했다. 

그동안 성 소수자 교인들을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했던 필립스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받아들인다'는 단어를 쓰는 것이 그들을 온전하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음을 알았다고 했다. 신실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동역자'가 아닌 '받아들여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고백했다.

퀴어 퍼레이드를 경험한 필립스는 앞으로의 목회가 더 기대된다고 했다. 목회자로서 퍼레이드에 참여했던 성 소수자들과 다시 만나 더 깊은 영적인 대화를 이어 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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