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서울병원 전경 (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 갈무리)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받는 공격에 격심한 공포를 느낀다. 유인원 시절 수풀 사이에 숨어 있던 뱀과 같은 파충류로부터 급습당해 본 트라우마 그 진화론적 흔적이다. 이른바 무의식 속에 잠재된 파충류공포증(herpetophobia)으로 에덴동산에서 유혹자가 뱀으로 나타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온 나라를 한 달째 마비시키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보다 보이는 권력의 무능함이 더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메르스보다 박근혜가 더 공포스럽다는 말은 괴담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몸만 위협하지만, 무능력한 정부는 세월호에서 메르스까지 참사가 터질 때마다 삶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은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초동 대처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세월호 다큐의 재방송이었다. 세월호처럼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국정의 최종 책임자 대통령 자신이 패닉 상태에 빠진 듯했다. 결국 대통령과 정부의 이런 무능력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 정부의 초기 대응 부실 책임에 대한 '부작위 위법 확인 청구의 소'를 당하는 사태까지 초래하고 있다.

메르스로 드러난 이 사회의 정치-경제 권력, 박근혜 정부와 삼성의 민낯

얼마 전 시골에 다녀왔는데, 메르스 공포는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시간에 걸쳐 버스, 지하철, KTX, 다시 경춘선, 택시 등을 갈아타며 도착할 때까지 승객들의 화제는 단연 메르스였다. 역들은 평소와 달리 한적했고, 도시의 거리도 낮잠에 빠진 듯하고 눈에 띄는 것은 가는 곳마다 비치된 손 세정제뿐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WHO에서 한국의 독특한 병원 문화라고 지적받자 병문안 발길도 끊기고, 기침도 눈치 보며 조심스레 한다. 메르스 사망자 시신은 온몸에 바이러스가 퍼져 있어 매장 과정에서 전염된다며 수의도 입히지 않고 즉각 화장하고, 그마저 일반 사망자의 화장이 끝난 오후 5시 이후에야 한다. 과히 흑사병 돌던 중세 분위기 아닌가. 한여름 밤을 달구는 호러 영화 같은 이런 분위기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한 대책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지만, 공포가 한반도 남녘을 휩쓸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런 호러도 이젠 개그로 넘어가는가.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지방자치단체-보건소로 이어지는 국가 방역 체제를 작동시킬 책임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 의료 문외한인 것부터가 코미디지만, 교육부가 <메르스 질병 정보 및 감염 예방 수칙>에서 '익히지 않은 낙타 고기나 멸균되지 않은 생낙타유를 먹지 말라'고 해 실소를 자아내자, 이에 뒤질세라 문체부가 메르스 확산으로 요우커(중국 관광객)가 줄자 '여행 중 메르스 걸리면 여행 공짜'라는 대책을 발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그냥 웃어넘기기엔 섬뜩한 것이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경제 권력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민낯이 드러난 까닭이다. 메르스는 묘하게도 대한민국 최대 의료 시설 삼성서울병원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는데, 국민에겐 바벨탑 붕괴와 같은 충격이었다. 글로벌 기업이면서도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의식 곧 기업 윤리에선 바닥을 치는 삼성, 그러면서도 의료 영리화 추진을 주도하며 삼성 의료 왕국 꿈꾸는 삼성, 정부가 병원 명단 공개를 미룬 것이 결국 삼성서울병원 감싸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권과의 유착 관계도 짐작하게 만들었다.

메르스 사태가 의료 영리화 움직임에 대한 비판 여론을 확산시킬 것은 분명하다. 의료진들이 목숨을 걸고 매달렸는데도 불구하고 확산을 막지 못한 것이 이를 맡아야 할 공공 의료의 열악함과 부실함 때문임이 밝혀진 까닭이다. 그럴진대 공공 의료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려는 의료 영리화, 특히 영리 추구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삼성이 의료 영리화의 주축이 된다면, 우리나라 공공 의료가 어떻게 추락할지는 눈앞에 그려지는 그림 아닌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가 결코 남의 나라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공 의료 시스템 부실화가 빚은 메르스 확산 사태를 박근혜 정권이 어떻게 수습해 나가며, 그와 관련해 악화된 여론을 어떻게 잠재워 나갈 것인가를 주목해야 하는 것도 '원격 진료'를 삼성서울병원에만 잠시나마 특혜를 베풀었듯이 의료 영리화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메르스 공포에 묻혀 버린 탄저균 배달 사고, 불평등한 SOFA 개정해야

더 안타까운 것은 메르스 사태로 묻히는 이슈들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 샘플이 배송된 '배달 사고'다. 메르스 공포가 현재의 것이라면 탄저균 공포는 미래에 다가오는 공포다. 같은 균이라도 낙타가 옮기는 것과 미군에서 만든 생물학전 무기는 다르다.

지난 4월 말, 실험 목적의 탄저균 샘플을 미 국방부로부터 반입한 오산 기지 내 생물학 실험실은 주한 미군의 새로운 한반도 생물학전 대응 전략인 '주피터 프로그램'(JUPITR,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 인식)의 일환으로 새로 들여온 유전자 분석 장비를 6월 5일 행사에서 시연하기 위해 5월 21일부터 탄저균 샘플로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것이 살아 있는 탄저균 샘플이라는 미 국방부 통보를 받자 샘플을 폐기하고 실험에 참여했던 미군과 연구원 22명(미 공군 5명, 미 육군 10명, 정부 계약 근로자 3명, 시민 4명)에게 즉시 탄저균 백신과 항생제를 투여한 뒤 격리 조치했다. 실험실 역시 잠정 폐쇄할 예정이라는데 주피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한 탄저균 실험은 언제라도 재개할 수 있는 잠정 중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 미군의 생물학전 대응 실험 장소로 한국을 택한 이유가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자원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한국도 우호적이어서라는데, 그만큼 우리가 탄저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오산 기지로 보낸 '시베리아 탄저균'은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사망 위험성이 두 배 이상 높으며(치사율 95%) 100㎏이 투하되면 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갈 '죽음의 수소폭탄'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검역 주권까지 침해하면서 미군이 탄저균과 같은 위험물질 반입과 실험에 대해 한국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9조(통관과 관세)의 '미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 화물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세관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이라는데, 탄저균 공포까지 현실화할 불평등한 SOFA 개정에 대해서도 메르스 못지않게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의 대형화-집중화 현상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는 정부,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메르스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기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무능을 지나 국가 범죄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바탕인 사회 공공성을 파괴하고 국가권력 사유화에 앞장섰던 이명박근혜 정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세월호와 메르스로 나타나며 정권은 정권대로 부메랑을 맞고 우리 모두도 값비싼 사회비용을 치르고 있다. 메르스 해결책은 이미 찾아진 듯하다. 지구촌 시대를 흔히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회'(society living with virus)라 부르는데, 주기적인 감염 병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국가 방역 체계를 비롯해 공공 의료 시스템의 강화다.

하지만 더 근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대형화-집중화 현상이다. 메르스가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해 대형 병원을 초토화시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형화-집중화로 초래된 약육강식의 빈익빈 부익부 사회에 대한 경고다. 대형 병원 선호에 죽어 가는 동네 병원들, 슈퍼마켓 잠식하며 골목 상권 독식하는 대형 마트들, 벤처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조차 생존하기 힘들게 만드는 대기업, 특히 삼성동물원-LG동물원이라 표현할 만큼 재벌 위주의 기업 환경, 대형화-집중화 현상의 약육강식 사회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이런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

메르스 공포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꺼려 한다는데 대형화-집중화의 심벌인 바벨탑을 붕괴시킨 하늘의 비책이 바로 사람을 흩어 버리는 것이었다. 교회마저 대형 교회를 선호해 세계 10대 메가처치 가운데 다섯 개나 몰려 있다는 대한민국, 20년 지방자치 시대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중앙 집중화의 견고한 서울 공화국, 지금이야말로 탈산업 정보화 시대에 맞지 않게 대형화-집중화의 길로만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재구조화에 나설 때다. 세월호로도 바꿔지지 않자 재차 메르스로 경고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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