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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개신교·불교·가톨릭의 '썰전', "너희 종교엔 희망이 있니"

내부 개혁자들의 이야기, 파렴치한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구권효·송인선   기사승인 2015.06.11  2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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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불교·가톨릭의 내부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6월 6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 모였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한국의 3대 종교, 개신교·불교·가톨릭의 내부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6월 6일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뉴스앤조이> 사무실에 모였다. 각 종교의 문제점과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개신교에서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방인성 목사와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가, 불교에서는 바른불교재가모임 공동대표 우희종 교수와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원장 김종규 변호사가, 가톨릭에서는 해방신학연구소 김근수 소장과 의정부교구 현우석 신부가 패널로 참석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5월 말부터 개신교·불교·가톨릭의 상황을 기획 기사로 다룬 바 있다. (바로 가기: '지금 이웃 종교는') 취재에서 드러난 이웃 종교의 모습은 개신교의 타락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도층에 있는 종교인은 대부분 돈과 권력을 탐닉하며 약자에게 무관심했다. 소수의 사람이 내부에서 자정의 목소리를 냈고, 예수와 부처의 삶을 되새기며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종교 본연의 모습을 바라는 한마음 때문인지, 참석자들은 초면임에도 오랜 벗처럼 교제했다. 이들은 현재 각 종교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소개하며 좌담을 시작했다. 자신의 종교에서 드러나는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는 현실에서 종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돈·권력·섹스에 취약한 성직자들…평신도는 '들러리'

먼저 각 종교가 본연의 모습을 망각한 현상이 무엇인지 짚었다. 패널들은 주로 종교를 업으로 삼는 '성직자'의 세속화를 지적했다. 종교인이 일반 신도 위에 있는 것처럼 군림하고, 돈·권력·섹스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방인성 목사는 종교인이 현실 너머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방인성(개신교) /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 안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치·사회에 관심 있는 건 좋은데,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잊었다. 정치와 야합하는 모습도 많다. 선거철이나 공직자에 대한 하마평이 돌 때, 그 후보가 개신교인이라고 하면 무분별하게 지지하고 세력화한다. 그 사람이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정치를 해 나가는지는 관심이 없다. 이것이 종교 갈등을 일으키고 사회 분열을 야기한다. 정의, 생명, 평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패권주의적인 입장을 개신교가 드러내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개신교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너무 옹호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무분별한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로, 교회 건물을 무리해서 크게 짓고 헌금을 강요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양희송(개신교) / 다른 종교도 해당하는 내용이겠지만, 개신교에는 돈 문제와 성 문제가 두드러진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종교 단체 운영 자금>에 따르면, 2006년 기준 가톨릭·불교의 연간 운영 자금은 각각 4,000억 원인데 비해, 개신교는 약 3조 원이다. 헌금을 어마어마하게 한다는 거다. 그러나 이건 빛 좋은 개살구다. 개신교가 건축으로 진 빚이 사금융까지 포함하면 10조 원이다. 헌금의 대부분을 은행 빚 갚는 데 쓴다는 거다. 실제로 개신교는 돈이 없다. 교회에서 돈은 많이 도는데 정작 필요한 데 쓸 수 없는 실정이다.

성 문제에 관해서는, 작년 국정감사 때 경찰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요 전문직의 강력 범죄 현황을 보면, 성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른 전문 직종 1위가 종교인이었다. 그게 정확히 목사인지 신부인지 승려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다수가 목사이지 않을까. 여하튼 종교인이 성범죄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한 가지는 대표성의 위기다. 현재 개신교를 대표할 만한 단체나 사람이 없다. 어떤 단체도 한국 개신교를 대변하지 못한다. 개교회의 상회인 노회(지방회)나 연합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몇몇 대형 교회가 규모에 기반을 두고 대표성을 띠는 듯하다. 하지만 과도한 대표성을 대형 교회에 실어 줬을 때, 그 교회에서 문제가 나타나면 개신교 전체의 위상이 하락한다. 개신교에는 상징적인 대표도 없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처럼 대사회적인 존경을 끌어낼 사람이 없다.

우희종(불교) / 정치와 야합하는 것, 돈과 성 문제 모두 조계종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종단의 타락과 부패, 비리는 말로 다 못 한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주지스님을 쫓아다닌다. 주지는 법회에서 정치인을 소개하고 신도들은 박수를 친다. 금권 선거도 팽배하다. 승려들이 본사 주지가 되려고 돈을 쓴다. 최근 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양쪽 주지 후보 모두 승려 9명에게 500만 원씩 건넨 것이 드러났다. 주지 선거에 돈이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런 바탕에는 왜곡된 가르침이 자리 잡고 있다. 불교가 '깨달음'만 강조하는 것이다. 깨달음만 신화화·신격화하고, 그 이후 중생과 함께하는 삶은 온데간데없다. 관념적 깨달음이 무엇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전무하다. 스님들도 당황한다. 선방에 앉아 있지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탈이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깨달아야 한다고만 되풀이하고 있다. 출가자(승려)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 교단자정센터 원장 김종규 변호사는 재가 불자들이 불교 개혁의 주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김종규(불교) / 승려 중심의 불교가 되어, 재가 불자(일반 신도)들은 승려의 입만 쳐다보는 것이 문제다. 깨달음만 강조하는 종단의 교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현재 종단은 참선 중심의, 깨달은 후에야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것은 결국 출가자, 곧 머리를 깎아야만 깨달음에 가까워진다는 식으로 변질됐다. 재가자들은 그 다음 차례라는 생각으로 기다려야 한다. 모든 것이 승려 중심으로 돌아가고 일반 신도는 구경만 하는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버렸다.

김근수(가톨릭) / 가톨릭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길거리 신부들이 가톨릭의 권위를 세우고 있지만,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주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문제는 가톨릭과 관련한 어젠다가 모두 성직자들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가톨릭에서 돈과 권력에 대한 분석이 나오면 십중팔구 성직자들과 관련 있다. 성직자들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세간의 조명을 받는 건 성직자들이라는 뜻이다.

일반 신도들은 언제나 조연에 머무르고 있다. 가톨릭의 대외적 인상이 화려하고 잘 정비되어 있는 것에 비해, 신도들의 신앙 수준은 초라하다. 신앙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보니 권력을 쥐고 있는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 의식 또한 미미하다. 각종 문제를 성직자가 가지고 있는 마당에 답도 그들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다.

현우석(가톨릭) / 가톨릭은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의 대중적 흐름과 그 가치에 묻어가는 경향이 있다. 70~80년대 민주화의 열망이 일던 시기에는 가톨릭도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갔다. 정작 움직인 건 정의구현사제단 등 소수에 불과하지만, 김수환 추기경부터 신도들까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제단의 활동이 뒷받침된 것이다. 이후 한국 사회가 좀 안정되고 잘살아보자는 욕망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자 가톨릭도 비슷한 분위기로 갔다.

2013년, 의정부교구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그중 '교회 가르침과 상충되는 법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답한 사람은 25.3%뿐이었다. 교회의 가르침과 삶이 따로 가는 것이다. 이런 수치라면 교회에서 아무리 비판 의식을 가르치고 사제들이 개혁에 앞장서더라도 신도들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어 버린다.

한국 사회 좇아 몰염치해지는 종교

한국교회가 보수화했다고 이야기한다. 진리를 보수한다는 건 좋은 뜻일지 모르나, 여기에서 보수는 정치적인 의미이다. 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 기관이나 대형 교회는 대부분 현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는 모습이다. 이는 개신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패널들은 한국 종교의 보수화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인성(개신교) / 개신교가 심하지만 다른 종교도 비슷한 것 같다. 종교가 '종북·좌파' 프레임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종북이라는 말만 나오면 목사건 신도건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다. 극우적인 정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프레임에 국민도 종교도 말려든다. 개혁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해방신학연구소 김근수 소장은 가톨릭 개혁을 위해서 신도들의 의식을 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김근수(가톨릭) /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가톨릭 주교들에게만 선거권을 주면 한국은 새누리당이 영구 집권할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선거권을 줘도 마찬가지다. (웃음)

현우석(가톨릭) /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몰염치해졌고, 종교가 사회를 닮아 가는 것 같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윤리와 상식을 벗어난 발언을 용인한다. 예전에는 극우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말을 못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파렴치한 발언과 행동을 떳떳하게 한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극우적인 생각을 드러낸다. 그만큼 사회가 몰염치해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가톨릭은 한국 사회 분위기와 비슷하게 간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후, 한 주교의 글이 서울대교구 주보에 실렸다. 그는 "교황님이 다녀가신 정도로 교회가 바뀔 것 같으면 교회는 수도 없이 탈바꿈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다녀갔는데 왜 가톨릭은 변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안팎에서 있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저렇게 한 것이다. 교황이 와도 소용없다는 거다. 예전 같으면 감추었을 생각을 그냥 말한다. 몰염치한 한국 사회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 아니겠나.

우희종(불교) / 지금 한국 사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재벌의 입장과 기득권을 강화해 주고 약자를 착취하는 상황이다. 큰 틀에서 조계종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사태를 보면, 조계종단의 최고 권력자가 민주적인 과정을 짓밟고 특정인을 총장으로 세우는 일을 뻔뻔스럽게 하고 있다. 드러내 놓고 개입하고 나서 규탄하니 모르쇠다. 종교 집단은 뭔가 달라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그냥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양희송(개신교) / 몰염치한 사회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것을 잘 나타내 주는 개념이 김홍준 교수의 <마음의 사회학>에서 나오는 '속물주의'다. 한국 사회에 경제 위기가 오다 보니,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지고, 생존 그 자체가 정당화되어 버렸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속물스러운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가는데, 종교가 이를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편승했다.

시민사회와 다른 종교만의 역할이 있다면

"세월호 참사가 진짜 종교인과 가짜 종교인을 나눠 주었다." 한 세월호 유가족의 말이다. 참사 이후 지속적으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행동한 종교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민이 있다. 일반 시민단체 운동가들과는 다른, 종교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우희종(불교) / 한국 사회와 종교를 생각할 때 답답한 면이 한 가지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종교인들의 모습에서도 느꼈는데, 종교인들의 활동이 일반 시민단체의 활동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치유하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종교인이 던질 메시지는 없었을까. 슬픔과 괴로움과 비탄에 대한 위로를 넘어, 초월적인 부분에 대한 연결이 부족했던 것 같다.

   
▲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는 개신교 안에 공론의 장을 만들어 대안을 모색하는 에너지가 튀어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양희송(개신교) / 종교인의 역할이 시민운동에 머릿수만 채우는 게 아니라면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사람들도 영성은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성이 골방에서 기도해야 하는 차원이 되면 안 된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사회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종교의 기능을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런데 개신교는 이렇게 할 내부 동력이나 역량이 없다. 뚜렷한 방향이나 흐름이 안 보인다.

김근수(가톨릭) / 사회 현안에 대해, 종교 내부에서는 보통 두 가지 역할이 제시되곤 한다. 하나는 시민단체와 다르게 현실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예전보다 민주화했지만 부패는 더 일상화되었다. 이런 곳을 탈출하는 방법은 영성밖에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학생에게 줄 과제지, 초등학생에게 줄 과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와 함께, 오히려 종교인이 더욱 정의를 외치는 것이다. 나는 이 사회에 정의를 강화하는 게 더 급하다고 본다. 확실하게 약자들의 편을 드는 게 중요하다.

방인성(개신교) / 영성을 이야기하면 일상적인 삶과 분리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성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당연히 삶의 실천이 같이 가는 것이다.

다만, 종교인이 현실 너머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우희종 교수의 말은 고민할 가치가 있다. 사회적 약자가 있는 현장에서 동고동락한 것만으로 종교인의 역할은 충분한가. 작년 광화문에서 40일 단식을 했을 때, 나는 고통받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신해 종교인으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일반 시민사회가 말하는 내용과 차이가 없었다. 기도를 한다든지 예배를 드린다든지 방법론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극우적인 정치인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예언자적인 콘텐츠가 빈약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희년'이 그것이다.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사회·경제 체제를 희년의 정신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장 고통당한 자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나는 그 간극을 메울 것을 찾을 수 없었다.

현우석(가톨릭) / 종교인의 사회참여는 일반 시민단체와 꼭 달라야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달라야 한다면, 그 행동이 종교적 동기여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 물론 인간은 기본적인 연민이나 배려심,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인은 결국 신의 명령과 요청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종교인이면서 사회운동하는 이들에게 이런 신학적 뒷받침이 잘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오히려 신학은 점점 비중이 작아지고, 일반 시민 활동가와 똑같아진다.

김근수(가톨릭) / 종교가 고통당한 자에게 답을 줄 수 있는가. 그럴 능력이 있나.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던 남미의 신학자들은 종교가 답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종교는 자꾸 해답을 주고 위로를 주려고 하는데, 이건 종교가 답을 가지고 있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답이 없다. 우리는 관찰자다. 고통당한 당사자에게 답이 있는 것이다. 이걸 한국 종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종교인들은 현실의 문제를 자꾸 종교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노동쟁의 현장이든, 세월호 참사든, 일련의 상황들이 종교적 언어로 너무 빨리 번역된다. 고통받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답을 종교인이 대신해서는 안 된다.

개혁은 일반 신도들의 의식 변화부터

종교의 사회적 기능, 종교 본연의 역할을 고민하는 종교인은 사실 소수다. '주류'는 이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 어떻게 이들을 견인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개혁을 외치는 사람으로서 각 종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물었다.

   
▲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우희종 교수는 종교가 고통받는 약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우희종(불교) / 기본적으로 지금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 추구를 장려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고 제재를 가하는 종교인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무소유'라는 말을 오해해 자본을 아예 부정해 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불교는 자본이 인간 위에 있을 수 없고, 인간이 자본과 욕망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뭔가 급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도 인간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김종규(불교) / 불교에는 '사부대중'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은 승려와 재가 불자를 모아 놓고 모두 하나라고 말했다. 이게 사부대중의 뜻이다. 그런데 한국 불교에서는 이 개념이 허울에 불과한 것 같다. 출가자들, 특히 비구(남자 승려)들이 깨달음과 돈을 소유하면서 불교 내 권력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재가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불교 중심에서 멀어진 형국이다.

사부대중의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자가 출가자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재가자가 나서 불교를 정화한 사례가 있다. 과거 대만에서는 승려의 타락이 심각했다. 대만 불교가 아예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형성될 정도였다. 이에 재가자들이 발 벗고 나서 스님들을 정화한 것이다. 일례로, 고기를 파는 식당 주인들이 "머리 깎았으면 들어오지 마라, 들어오고 싶으면 머리 기르고 오라"며 스님을 쫓아냈다. 지금 대만 불교는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한국 불교도 바뀔 수 있다. 재가자가 승려의 말만 듣는 굴종의 신앙에서 벗어나 개혁의 주체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 의정부교구 현우석 신부는 종교가 몰염치한 한국 사회를 닮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현우석(가톨릭) / 가톨릭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대로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교종이 한 100년은 더 살아야 할 것이다. (웃음)

김근수(가톨릭) /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보면 가톨릭 주류에도 희망이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기만 하고 교황의 개혁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이 물러나면 가톨릭은 금세 개혁과 상관없던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톨릭의 주류가 더욱 수구적으로 굳어진다 하더라도 신도들의 의식을 깨워 개혁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평신도를 교육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원래 주류에는 답이 없다, 비주류에 답이 있지. 물론 이게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양희송(개신교) / 개신교 내부가 개혁이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면, 차라리 빨리 뛰쳐나와 각자도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구조를 바꾸는 일은 에너지만 소진되는 게 아닌가 해서다. 그래도 일단 계속해서 제도를 압박해야 한다. 교회 내 재정 투명성이나 양성 평등, 바뀌어야 할 것들을 지속적으로 얘기해서 의식을 환기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몇 년 전 개신교 일각에서 벌였던 한기총 해체 운동과 같이, 언론이 계속해서 보도하면 어떻게든 변화가 되었다. 공론의 장을 형성해, 문제를 현 체제에 맡기지 말고 대안을 모색하는 에너지가 튀어나오도록 해야 한다.

방인성(개신교) / 교회 개혁 운동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것이다. (웃음) 그럼에도 교회 개혁은 목사로서 끊임없이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개신교에는 생명·평화의 가치를 가진 작은 교회 운동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형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룡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생태계의 원리다. 교회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개혁은 평신도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인들에게 성서를 제대로 가르치고 민주적인 소양을 훈련시켜야 한다.

돈 문제도 중요하다. 탐욕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이걸 개인적인 윤리 문제로 치부해 교인들에게 청빈의 삶을 강요하는 건 기만이다. 종교는 경제구조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장차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극단적 사회주의와 남한의 극단적 천민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경제체제가 필요하다. 여기에 종교가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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