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란 서울시인권위원장이 6월 9일 열린 퀴어 문화 축제 개막식에서 축사를 전하고 있다. 그는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며, 성 소수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미디어몽구)

한국교회연합(한교연·양병희 대표회장)과 한국교회언론회(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가 6월 9일 열린 제16회 퀴어 문화 축제 개막식에서 축사를 한 서울시인권위원회 문경란 위원장을 비난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당시 문 위원장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이 온갖 선정적이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성 소수자가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왜곡하려 한다. 이는 성 소수자의 존엄을 짓밟고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폭력이며 범죄"라고 말했다.

6월 10일 한교연은 '서울시 인권위원장의 인권 편향 규탄'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문 위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한교연은 문 위원장이 기독교를 혐오 세력으로 지칭하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한교연은 문 위원장이 서울시민의 인권을 소홀히 하고 성 소수자 인권 보호에만 몰두한 것과 기독교를 폄하하고 비방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인권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성명서 보기)

교회언론회도 6월 10일 논평에서, 문경란 위원장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를 폭력으로 몰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을 혐오로 몰아가는 망언이라고 비난했다. 편파적이고 시민의 생각과 정서를 무시하는 발언은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며, 문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즉시 사과하고 스스로 공직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평 보기)

30년 가까이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문경란 위원장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기독교를 비난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축사를 들으면 알겠지만 특정 종교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기독교를) 폄하하고 비방했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문경란 위원장이 6월 9일 제16회 퀴어 문화 축제 개막식에서 전한 축사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문경란입니다.

먼저 퀴어 문화 축제 개막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열여섯 번째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가 올해는 이곳 서울광장에서 처음으로 개최돼 더욱 의미 있는 자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에는 메르스의 여파로 많은 분들이 직접 오시지는 못했지만, 이 축제와 함께하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예년에 비해 유래 없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아시다시피 16년간이나 지속되어 온 이 축제가 올해는 축제 개최 신청 과정에서부터 조직적인 방해와 차별과 혐오와 폭력 앞에서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할 정도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8일간이나 경찰서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이런 어처구니없고 괴이한 인권의 후퇴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번에는 다른 일을 제치고서라도 퀴어 문화 축제에 꼭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을 줄 믿습니다. 얼마 전 유엔에서 성 평등에 관해 연설했던 영화 '해리포터'의 여자 주인공 엠마 왓슨의 말대로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말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방송으로 이 개막식을 지켜보는 많은 분들은 앞으로 펼쳐질 이 축제의 여러 행사에 마음으로만 동참할 게 아니라 반드시 직접 참가해 성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함께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세계 인권 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그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천명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과 이 모든 국민 안에 성 소수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누가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고 누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그 어느 누구도 결정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외교부 또한 유엔에서 성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한 사항에 투표할 때면 예외 없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한 표를 던져 왔습니다. 성 소수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며, 이를 위해 인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온갖 선정적이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성 소수자가 우리와 똑같은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왜곡하려 합니다. 성 소수자도 우리와 같이 밥을 먹고, 학교를 다니고,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혐오 세력의 언행은 단언컨대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 소수자들의 존엄성을 짓밟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폭력이며 범죄입니다. 저는 여성학도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경험을 통해 성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여성과 인종, 장애와 이주자의 인권을 짓밟는 구조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르다고 비정상적이고 타락한 존재로 몰아가는 것은 현존하는 차별과 폭력과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퀴어 문화 축제는 억압적인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성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자유과 평등, 그리고 존엄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내는 시간입니다. 일 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마음껏 존재를 드러내며 동성애자의 자긍심을 높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낮의 태양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마음까지 상쾌하게 해 줍니다. 한낮의 태양처럼 뜨겁게, 그러면서도 지금 이 시각 불어오는 바람처럼 선선하고 쿨하게…. 이것이 바로 퀴어 문화 축제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올해 퀴어 축제의 구호는 '사랑하라 저항하라'입니다. 모든 인간이 어떠한 이유에도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듭시다.

이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즐겁게 축제를 엽시다. 자고로 축제는 신나고 행복해야 합니다. 일 년에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시간을 통해 한 해를 살아갈 자양분을 마음껏 섭취하고 힘내서 또 좋은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어렵게 어렵게 축제를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이 와서 함께 신나고 행복하게 놀아 봅시다. 다시 한 번 엠마 왓슨의 얘기를 빌려 봅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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