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관한 문제는 사실 성경 해석의 문제이다.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동성애에 관한 입장이 달라질 것이다. 김정운기 님의 '목사님들, 동성애가 그리 무섭습니까'라는 글은 우리들에게 해석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답변을 하는 것이 성경을 해석하여 오늘날의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도록 돕는 목회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1. 동성애가 고대부터 있어 온 하나의 성적 지향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김정운기 씨는 앞에 언급한 글에서 "동성애는 이성애처럼 자연스러운 성의 모습"이며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하나의 성적 지향"일 뿐 이상한 것도 불온한 것도 아니라 타락한 모습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성경은 동성애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증오하는 죄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죄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기준이 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우길 수는 없을 것이다.

고대부터 동성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전혀 증명해 주지 않는다. 고대부터 존재해 온 것은 탐욕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도둑질과 음란의 모습들이 고대부터 존재해 왔었고, 그 모든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이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의 죄악이 뿌리 깊고 악함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2. 성경의 문자적 적용에 대하여

김정운기 씨는 앞에 언급한 글에서 레위기 15장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부정에 관한 규정들이나 바울 서신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과 여자가 수건을 써야 하는 규정들은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으면서 오로지 동성애에 대해서만 문자적인 적용을 하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라고 비판하였다. 그런 주장을 하는 김정운기 씨에게는 이렇게 역으로 묻고 싶다. 그러는 그대는 왜 사랑하라는 명령은 문자적으로 지키면서 다른 명령들에 대해서는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는가?

어차피 우리는 성경을 100% 문자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어떤 것은 문자적으로 받아야만 하고 어떤 것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과연 동성애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불변의 도덕법에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 시대에 있었던 한시적이거나 문화적인 명령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에 해당하는 것인가. 이 질문 앞에 우리가 함께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성애에 관한 명령은 영원불변하는 도덕법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에 관하여 긍정적인 언급을 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은 그만 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들이 있고, 우리가 더 이상 신정국가 체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들도 있으며, 문화적인 표현을 벗기고 그 정신을 지키는 것들도 있다. 동성애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은 그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당연히 이것은 도덕법적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3. 동성애가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김정운기 씨는 동성애가 아무런 사회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나는 이러한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동성애 자체를 범법 행위로 간주하거나 처벌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세상의 법은 최소한의 규정만을 다루고 있다. 이 세상의 법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마음이나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처벌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전에는 간통을 범죄로 보고 형법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형법으로 다루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는 형법으로 다룰 사항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형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죄악인가 아닌가 여부를 말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비록 아무런 사회적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는 죄이고 잘못은 잘못인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지 않은 것은 아니며, 동성애의 죄악은 분명하게 죄악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4. 동성애는 후천적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 결정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김정운기 씨는 디크 스왑이 쓴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성 정체성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나오는 것으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반대되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 과학이라는 것도 객관적으로 중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연구자의 선입견이나 여러 가지 요소에 따른 당파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김정운기 씨는 그 가운데 자신의 입장에만 맞는 연구 결과를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백번 양보해서 동성애가 후천적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 결정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기와 미움과 질투와 탐욕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모든 죄성들은 후천적으로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며,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씨름해야만 한다.

5. 퀴어 축제에 사람이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나는 퀴어 축제는 중단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바바리맨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향해 성적인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가 반사회적인 행위이듯이 동성애자들이 시민들 앞에서 자신들의 알몸을 드러내 놓고 시위하는 것은 범법 행위로 제지당해야 마땅한 것이다. 퀴어 축제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의 '죄성'이 있는 것이다.

6. 글을 맺으며

물론 동성애가 죄악이기 때문에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박해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성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속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말하는 반면, 우리 크리스천들을 향해서는 동성애가 죄임을 분명하게 견지하면서도 그들을 사랑으로 품자고 말하고 싶다. 주님께서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만드시기 원하셨던 것처럼, 그들도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고 그 죄악에서부터 돌이키는 결단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의 죄악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동성애자를 향해서 핏대를 세우면서 욕을 하면서 나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 관대할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 핏대를 세우는 일보다도 나 자신의 죄악을 더 많이 바라보고 회개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옛날 바리새인들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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