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박철수 목사의 기고입니다. 독서 부흥 운동은 박 목사의 평소의 지론입니다. 박철수 목사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꾸준히 교회와 사회 개혁을 추구해 왔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열기가 가득했던 시기에 교회도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자는 뜻을 모아 1986년 복음주의청년연합을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습니다. 1991년 <복음과상황> 창간 당시에는 초대 편집인을 지냈습니다. 분당두레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23년간 시무하다 2011년 목회 현장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지도위원과 성서한국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교회의 갱신>, <축복의 혁명>, <성경의 제사>, <하나님나라> 등을 집필했습니다. - 편집자 주

나는 40~50대에 유럽을 구경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활동했던 독일의 종교개혁 도시 비텐베르크를 세 번이나 갔던 일이다. 비텐베르크는 조그마한 소도시였는데, 내가 갔을 때는 통일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과거 비텐베르크는 동독 치하에 있었다. 안내자는 나의 비텐베르크 방문이 통독이 되고 난 다음 외국인으로서는 거의 처음 방문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비텐베르크는 문자 그대로 루터의 도시요, 종교개혁의 중심 도시이다. 아직도 종교개혁 당시의 신학교로 사용되었던 성교회와 루터하우스(루터박물관)가 있다. 그 작은 도시의 중심에는 루터의 동상이 거의 15m 높이로 세워져 있었다. 관광할 것이라고는 이것들밖에 없었다.

그중 특히 나에게 루터의 박물관은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도 루터의 박물관을 보기 위해 베를린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멀리 떨어진 그곳에 온다고 했다. 나는 루터가 숨 쉬고 살았던 시골을 보고 루터의 박물관을 본다는 것이 어떠한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보다 가슴 떨리고 기쁜 일이었다. 150여 평 정도 되는 규모의 목조 3층 건물이었다.

▲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중의 책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은 성경 밖에서도 보아야 잘 볼 수 있다. 오늘의 내 신앙이 깊이를 더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이 나라를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사진 출처 Pixabay)

비텐베르크의 루터하우스

박물관에는 작은 출입문이 있었는데, 들어서자마자 인쇄기 두 대가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가로막고 있었다. 웬, 인쇄기가 가로막고 있나 생각했다.

순간, 아! 인쇄기가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1456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결코 종교개혁은 가능하지 않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루터의 글들과 설교들이 '소책자'로 인쇄되어 당시에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책을 읽는 사람들(당시에는 글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림을 통해 성경을 해설해 주었다), 특히 에라스무스를 중심한 인문주의자에 의해 회자되었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철옹성 같은 로마 가톨릭의 독재와 부패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러니 종교개혁은 당시의 글(책)을 볼 줄 아는 지성인들에 의해 일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터 박물관은 이 두 대의 인쇄기와 함께 1~3층이 온통 책과 문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는 루터 이전에 발행되었던 신학 서적들과 각종 성경 번역서들이 그리고 루터 자신이 썼던 소책자들과 그 자신이 번역했던 성경전서가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당시에 사용됐던 다양한 크기와 색깔을 가진 면죄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당시 루터가 설교했던 교회에서 사용했던 구제를 위한 공동 기금 모금 통을 보는 것도 그랬다.

시사 주간지 <타임스>는 1999년 한 천년이 끝나는 마지막 호에서 지난 1000년 동안 세계를 가장 크게 움직였던 발명품을 선정하면서 1위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말했다. 굉장한 통찰이다.

책 하면 부정적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식인이나 읽는 것, 책을 읽으면 교만한 사람이 된다는 등의 인식들도 있다. 또 어떤 집에 가면 읽지도 않는 책을 집안 중심에 가득 차도록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 폰 보급률이 세계 1위이지만 OECD 33개국 중 책을 안 읽는 나라로는 최하위급에 속한다. 중국과 인도만 해도 이미 전국적으로 독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0여년 전 동경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여러 나라를 다녀 본 사람이 드물었던 시대였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내려 전철을 타고 동경 시내를 가야 했다. 나는 거기 전철 안에서 가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전철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나에게 보여 주려는 듯 신문이 아닌 책들을 읽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책을 좋아하는 나는 시간을 내서 동경 시내에 있는 책방을 가 보았다. 아, 이럴 수가 있는가! 제법 큰 5층 건물이 책들로만 가득 찬 서점이라니! 그때 당시의 나에게는 충격적이고 신기하기만 했다. 일본 사람들은 책을 어디에서든 읽기 위하여 문고판 책들을 만들고, 어느 곳에서든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문고판은 바로 일본을 본 딴 것이다.

일본에는 내가 좋아하는 파스칼 연구가들이 프랑스 다음으로 많다. 일본은 기독교인들이 극소수인데도 세계적 신학자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이 작은 일본이 세계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은 그들이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백성들은 위대하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위대하다.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외교관이자 발명가이며 그의 자서전으로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 독학했고, 책을 사서 볼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공공 도서관을 세계 최초로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나는 책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세상을 호흡할 수 없다. 책 중의 책 성경을 읽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모든 책들은 성경의 주석서들이다. 신학자들이 쓴 신학 저서뿐만 아니라 신문 방송 등 모든 것이 다 신학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책을 읽거나 쓰지 않으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고, 그의 제자들에게 매일 오전 또는 24시간 중에 5시간 이상 책을 읽을 것을 권장했다. "우리가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가 시작하는 일이 한 세대가 지나면 끝나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웨슬레는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왜?!

무엇이 책을 읽게 하는가! 언젠가 목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 강의를 몇 년 동안 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강의가 끝나고 질문하실 분은 질문하라고 말했다. "저는 책만 보면 잠이 오는데, 어떻게 해야 책을 읽을 수 있습니까?" 당당히 어쩌면 뻔뻔스럽게 첫 번째 질문자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즉시로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답변했다. "책만 보면 잠이 오는 사람들은 목사를 그만두시오!"라고 외쳤다. 폭소가 일어났지만 내 말은 진정이었다.

책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가? 나는 지금도 서점에 갈 때마다 항상 무슨 신비스런 보물 창고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야! 우리나라에도 책이 이렇게 많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왜 책을 읽지 않는가?'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얼마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 곳인가. 나 자신이 신기하고 너도 신기하고 꽃도 신기하고 사회도 신기하고 정치도 신기하고 하늘도 신기하고 하나님도 신기하고 성경도 신기하지 않은가! 물질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왜 이 세상이 이렇게 부조리한가? 하늘은 왜 푸른가?

사과나무의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무도 신기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그냥 떨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은 몇 천년 동안 알고 있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당연시하고 있었을 때 1687년 뉴턴은 그것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고, 마침내 지구는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는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다. 20세기의 아인슈타인은 같은 속도로 달리는 두 대의 기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보고, 가까이 다가오는 기차는 매우 빨리 달리는 것을 느끼고 저 위대한 '상대성 원리'를 발견했다.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가? 게을러서? 바빠서? 습관이 안 돼 있어서? 돈이 없어서? 그래도 책을 읽어야 희망이 있다. 사람은 호기심이 있어야 무엇을 할 수 있다. 호기심의 덩어리인 책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 중 위대한 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호기심이다.

정보 통신 혁명을 일으켰던 빌 게이츠는 <미래로 가는 길>에서 말하기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책의 사람 스펄전 목사님은 6세부터 책을 읽고 죽을 때까지, 눈이 멀 때까지 책을 읽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그는 서재에 1만 2,000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또한 스펄전은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250권의 책을 참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최대의 화가요, 당시 잘못된 네덜란드 교회를 비판한 사람('별이 빛나는 밤'에서 잘 보여 준다), 그를 가장 많이 연구한 어느 학자는 예수님을 가장 많이 전도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람, 반 고흐 또한 독서가 만든 사람이다. 반 고흐는 르낭의 <예수의 생애>로부터 <천로역정>,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같은 신앙 서적들을 비롯하여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키츠, 롱펠로우, 휘트만, 하이네 등 여러 시인들의 책,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프랑스 문학, 볼테르, 그 외에도 발자크, 모파상, 엘리어트, 칼라일의 <의상철학> 등의 책을 읽었다. 그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타난 책만 해도 300여 권, 문학에 관해 언급한 책도 800여 권이나 된다. 고흐가 맨 처음 그린 책은 성경이었고, 자기의 서재도 그렸다.

▲ 반 고흐 작 < Still Life - French Novels and Rose >(1888년). 반 고흐도 책의 사람이었다. (사진 출처 위키아트)

나는 "젊은 시절에 책을 읽었지만 이제는 직장 일에 바쁘고 사업이 바빠서 책을 안 읽는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책을 읽지 않는 순간부터 늙어 가는 것이다." 호기심을 잃은 인간의 남은 생애에는 단지 늙어 가는 일만 남아 있다.

세계 문학사의 거인, 괴테는 "만권의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고, 프랑스의 철학자 몽톄뉴는 "가장 값싼 방법으로 가장 오랫동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독서다"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속담에 "20년 배운 것도 2년 안에 다 까먹는다"는 말이 있다. 왜 저 유대인들이 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가? 책을 읽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문필가 토마스 칼라일은 "오늘의 참다운 대학은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만 인생의 혁신(renovation)이 가능하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만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shift)가 가능하다.

독서 부흥회

우리는 한국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그 변화의 방법으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결코 독서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의 질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필수 요건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목사님도 책을 읽어야 하고, 교인들도 책을 읽어야 한다. 신학자들도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 성숙할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이 변화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 중에서도 성경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는가. 교회는 1년에 한두 번씩 좋은 강사를 초청해 부흥회를 갖는다.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정한 부흥은 강사가 전하는 성경 말씀의 질적 수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부흥 강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책은 가장 좋은 부흥사다. 책은 세계적 강사다. 그야말로 좋은 책은 세계적인 스승에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책이기 때문에 더 정돈되어 있고 반복 학습이 가능하다. 세계적 강사를 모시려면 시간도 들고 비용도 들지만, 책을 통해 부흥회를 여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책을 통해 수없이 많은 부흥 경험을 했다.

세계 교회 역사상 종교 부흥 운동이 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리라. 앞에서 언급한 종교개혁이 그렇다.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필립 슈페너, 감리교 운동의 웨슬레, 미국 대각성 운동의 조나단 에드워즈가 모두 엄청난 다독가였고 독서를 통해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믿음의 귀한 인물이 되었고 큰 부흥과 성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스펄전과 책

기독교 설교 역사의 황태자 스펄전(1834~1892), 그는 어떻게 책을 읽었는가? 찰스 스펄전의 생애를 그린 <스펄전>의 1장 '소년과 책'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이렇게 증언하는 대목이 나온다. "찰스는 좋은 체격으로 건강했으며 다정하고 근면했다. 그리고 스펄젼은 늘 책을 읽었고 언제나 책을 읽었다. 찰스가 없을 때에는 으레 나의 서재에 있었다." 스펄전은 노후에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책을 읽는 비서를 두고 책을 읽었다.

스펄전은 디모데후서 4장 13절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를 본문으로 이렇게 설교했다.

"바울은 성령 충만함을 받았으나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30년 동안 설교했으나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비밀을 보았지만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했지만 책을 원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모든 설교자들을 향해 책을 읽지 않는 설교자는 아무도 그의 설교를 듣거나 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이여! 바울과 같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는 것이 영적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처럼 강조하는 것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다!!

나는 목사들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책을 잘 읽지 않는 반지성주의에 빠져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명색이 독서를 하는 사람도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자기가 선호하는 책만 읽을 뿐 다양한 책을 읽지 못한 것 또한 안타까울 뿐이다. 또 책을 보는 사람도 깊은 내용이 담기지 못한 얄팍한 경건 수준의 책만 전부인 줄 알고 성경의 웅대한 스케일인 하나님나라를 보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고!

그리고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혼자 열심히 잡히는 대로 읽으면 혼란에 빠지고 헤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책을 읽는 데도 좋은 멘토가 필요하다. 이것이 어렵다면 몇 사람이 함께 모여 독서 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다.

이런 일화가 기억난다. 영국에 살고 있는 한 스승이 갑자기 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 어디를 가시느냐고 물었다. 스승은 내가 영국을 보기 위해 유럽을 간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다시 놀란다. 여기가 영국이지 않습니까. 스승이 대답하기를 나는 영국을 보기 위해 유럽을 간다.

성경은 성경만 보면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 밖에서도 보아야 잘 볼 수 있다. 오늘의 내 신앙이 깊이를 더하고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 점점 미신화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어그러진 이 땅을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박철수 / 전 분당두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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