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신학책에 묻혀 있던 김 전도사, 밥벌이를 하다

'파전행전' 그 첫 번째 이야기 - 안녕하세요, 김파전입니다

김정주   기사승인 2015.04.28  13:21:42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default_news_ad2
ad42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자신의 세대인 2030들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들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란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결혼을 하기 전, 혼자 살 때는 그래도 파트 전도사 사례비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왔지만, 결혼을 준비하며, 결혼을 하고 나니까 사례비만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알바를 하면서 결혼을 준비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여러 가지 복잡한 속사정(?)으로 결혼 후 부업을 그만두고 잠시 두 달 동안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새벽 기도 갔다 와서 책상에 앉아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부만 했다. 피곤하면 잠깐 눈 붙였다가 다시 앉고, 공부가 잘되는 날엔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안 하고 3시간이고 4시간이고 한 번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지키며 공부했다. 아내가 일을 하러 나갈 때도 책상에 앉아 있는 그 자세이고 갔다 와서도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기겁을 했다.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잔인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식의 칼을 갈면서 그 날카로운 끝을 영혼들에게 마구 갖다 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왜 새벽에 나와서 열렬하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큐티하지 않죠?
왜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서 열심이지 않습니까?
왜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왜 죄를 짓죠?

나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답답함을 느꼈다. 책상에 앉아서 말이다. 그리고 설교할 때나 양육할 때에 무의식적으로 그 날카로운 교리의 포크 끝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쿡쿡 찍어대곤 하였다.

왜 못하는 걸까? 
아니, 왜 안 하는 걸까?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책상에 앉아서 늘 그것만 생각하고 어떻게 찍을까를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의 재정 상태는 그런 나를 찍어 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공부만 하는 호사를 누리는 게 사치인 것 같아서 천국 소망은커녕 알바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을 괜찮은 알바가 없나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지지난주부터 나는 집에서 자전거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화물이라는 택배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오전 7시 반에서 11시 반까지 일을 한다. 딱 4시간만 빡세게 일하면 되니까 공부를 하면서도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하게 된 일이다 .

그래서 요즘은 5시에 일어나서 5시 반에 새벽 기도 가고 6시에서 6시 50분까지 기도하고 7시 20분까지 큐티하고 일터에 나가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일은 힘들지만 마음은 하늘이 주신 평강으로 가득하고 기쁘다…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일 시작하고 나서부터 새벽 기도를 나가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공부만 할 때에 새벽 기도를 다녀와서도 졸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잘 수 있는 환경이 열려 있었고, 공부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육체적인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으니까 전혀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 기도를 갔다가 바로 일하러 가면, 그 어마어마한 육체적인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실제 피곤보다 내가 잘 수 없다는 더 무서운 상상 속의 피곤이 대단한 부담으로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났을 때 바로 수면 기도 모드로 전환하고 이불 골방에서 기도했다. 

또한 '일을 하면서도 예배할 수 있지,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예배드리러 가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3.5톤 트럭에 가득 찬 택배들을 보면,

"주님 오늘도
이 자리 가운데
저와 함께해 주실 거죠?"

라고 물을 때 주님은 웃으실 뿐 말이 없으신 것 같았다. 40킬로그램이나 되는 쌀자루를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

지난주에는 절인 배추 15박스(하나당 20킬로그램)를 두 박스씩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까지 걸어서 배달했고, 오늘은 40킬로그램짜리 쌀 다섯 포대를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까지 걸어서 배달했다. 삶의 예배가 웬 말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다 못 박았다고 생각한, 옛사람의 쌍시옷의 옷을 입은 언어들이 샘솟듯 터져 나올 뻔했다. 

쌀드 리프트
배추 프레스
베어링 컬
계단 런지
배달 핏

헬스장에서 만든 보여 주기 근육이 아니라 실전용 근육인 소위 말하는 '노가다 벌크(근육 총량)'와 '노가다 데피(근 선명도)'로 말미암아서 영은 말라 가고 있는데 육은 점점 근육질이 되어 갔다. 얼마 후면 나의 별명이 '어깨깡패', '등신'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아…
책상에서
상상했던
그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 3시간이고 4시간이고 한 번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지키며 공부하다가, 재정 상태 때문에 택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진 제공 김정주)

목회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부르주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정직하게 주어진 책상에서의 경건한 의무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면 일반 성도들보다 영적으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 근데 책상에만 앉아서 영적인 부르주아 꼴을 하고 있으면 다소 잔인해진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이해 결핍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진실되고 정직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성도들이어도 연약함이 있고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이 획일화된 날카로운 교리의 칼을 갖다 대어서 고기 썰 듯이 썬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설교나 가르침은 오히려 그 사람들의 마음에 큰 기스를 낸다. 진실되고 정직하게 전하는 것은 잊지 말되, 그럴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깊이 끌어안고 스스로 안에도 그러한 연약함이 있음을 함께 나누며 선포해야 한다. 그럴 때 날카롭지만 차가운 가르침보다 조금 무디더라도 뜨겁게 달구어진 그 가르침이 더 빨리 마음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법이다.

설교가 현실적이어야지 사람들이 듣는다고 하면서 한껏 시대정신의 흐름에 합류한 설교들을 현실적인 메시지라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이러한 성도들의 현실 속 사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함께 깊이 느끼면서 많은 눈물을 머금고 외치는 설교가 바로 진정한 현실적인 설교라고 생각한다.

악함이 아니라 약함이었다

결혼 전에 나는 여의도에서 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했다. 새벽 근무를 나갈 때에는 5시 반까지 출근해야 해서 3시 50분에 일어나서 바로 4시 첫차를 타야지 간신히 늦지 않고 갈 수 있었다. 근데 그 첫차에는 항상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곤히 자고 있던 시간에 그렇게 많은 성도님들은 깨어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책상에 앉아서 공부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오후 근무를 나가면 낮 12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일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몸이 지친 날에는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맨 정신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속에서 기도의 가닥도 잘 잡히지 않았다. 아니, 기도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이런 상태로 집에 가서 아내를 만나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직장인들의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왜 그들이 집에 안 들어가고 술을 마시는지에 대해서도 정죄가 아닌 깊은 연민이 들었다. '술 마시는 게 죄'라는 어쭙잖은 단죄보다 그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그 사람들의 영혼의 곤고함이 바로 앞에서 어른거려서 많이 울었다. 

성경을 많이 보고 싶었다. 두꺼운 책들을 읽고 싶었다. 글도 쓰고 싶었고 마음껏 기도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도저히 재정적인 형편이 감당이 안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있는 갈급함이 느껴졌다. 성경을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알고 싶은데 잘 모르겠는,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잘 터지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현실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사랑할 힘조차 점점 빠져나가는 그런 것들….

'악함'
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약함'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 성경 학교와 교회에서 실시하는 단기 선교가 연속으로 겹쳐서 말도 안 되는 식으로 근무를 조정하니까 팀장이 호출을 했다. 팀장이 근무표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마디했다.

씨X 장난하나…
정주 씨는 일하러 온 거야, 놀러온 거야
그럴 거면 일 그만두고 교회에서 살지.
뭐 하는 거야
아 진짜 존X 짜증나게 하네
거기 서 있지 말고 나가요.

얼굴이 빨개져서 그 길로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욕을 먹어서 눈물이 난 게 아니라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나야 뭐 전도사이고 신학생이었으니까 직장 다니면서 수련회나 여름 성경 학교나 선교나 늘 갈 수 있어서 몰랐는데, 평신도로 헌신하는 그분들 중 어떤 분들은 이런 식으로 욕을 먹어 가면서 참여하신 거였다. '믿음이 없어서 수련회를, 선교를, 여름 성경 학교를 못 온 게 아니었구나. 참여가 쉬운 게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몰려왔다. 그동안 나는 쉽게 말했구나, 그것도 못 하냐고, 그 정도 순종할 믿음도 없냐고….

많이많이 울었다.
책상에만 앉아서
공부했다면
알 수 없었던 치명적 배움이었다.

막내야~ 커피 한 잔만

이런 훈련의 시간 속에서 반년 조금 넘게 성경도 많이 못 보고 두꺼운 책도 읽지 못하고 기도도 많이 못했다. 책상에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었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때 이후로 설교가 많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신학적인 묵직함이야 여전히 부족하지만 성도들의 삶의 그 속사정들을 품은 눈물을 머금어서 그런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묵직함이 설교에 생명을 부여해 주었다. 부족하나마 성도님들의 삶의 아픔을 공감하며 현실적인 설교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시금 일을 하면서 책상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배움의 길이 아니고, 일을 하는 것 또한 배움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비와 긍휼로 갈지 않은 교리의 칼날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양민 학살을 자행한다. 잔인한 설교자가 아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절대 사수하면서 계속 공부해 나가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허락된 시간 속에서 이렇게 틈틈이 꼭 일을 하고 싶다. 그래야 사람이 신앙이란 이름으로, '신학 함'이란 행동으로 잔인해지지 않는다.

글을 쓸 때에는 창조주가 된 듯 자아가 팽창되기 쉽고, 말씀에 붙잡혀서 열렬하게 쏟아 내는 파토스 이면에는 자아 성취와 자기 증명이라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나둘씩 신학적인 지식들이 쌓이다 보면 신학적 허세에 영적 후까시가 생기곤 한다. 큐티해도 기도해도 쉽게 이런 은밀한 죄들은 털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4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 5개를 등에 지고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하다 보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숭고하게 이별하듯 뜨겁게 소멸된다.  

'막내야, 커피 한 잔만~'이라는, 같이 일하는 형님들의 구수한 음성이 성경을 읽을 때보다 존재 본연의 위치를 정확히 꼬집어 낸다. 

   
▲ 물류 창고에서 한 컷. 40킬로그램짜리 쌀포대 5개를 등에 지고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하다 보면, 신학적 허세에 영적 후까시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숭고하게 이별하듯 뜨겁게 소멸된다. (사진 제공 김정주)

위대한 신앙 위인보다 사람이 되고 싶다. 탁월한 종교 전문가 목회꾼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모든 과정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나눠 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다
그댈
먼저
제일 먼저
안아 줄 거다-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ad47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동영상 기사

default_news_bottom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